SF 생태주의
<내추럴 셀렉션>, 기계적인 추적들만 가득한 괴수 이야기 본문
피터 벤츨리가 쓴 <죠스>는 SF 소설이 아닙니다. 흠, 그렇죠. 이건 SF 소설이 아니에요. 하지만 저는 수많은 창작가들이 이 소설에 상상 과학을 덧붙이기 원한다고 생각합니다. <죠스>는 매력적인 이야기 구조를 선보입니다. 어느 날 무시무시한 바다 괴수는 해안을 습격하고, 사람들은 연이어 죽어나가고, 그 괴수를 잡기 위해 주연 인물들은 출동하고, 주연 인물들과 바다 괴수는 한바탕 싸움을 벌이고, 기타 등등. <죠스>는 바다라는 장엄한 공간과 육식동물이라는 원초적인 공포와 거기에 맞서는 사투와 인간 승리를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바다와 육식동물은 상상 과학을 자극하기에 아주 좋은 소재입니다. 우리 인류는 아직 바다를 제대로 모르고, 따라서 SF 창작가들은 미지의 심연에서 기이한 야수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사실 저는 비단 <죠스>만 SF 창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해양 소설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알프레드 테니슨이 노래한 <크라켄>이나 <백경> 같은 소설이나 <노르웨이 자연사> 같은 박물학 서적이나 고대 신화까지, 장엄하고 무시무시한 바다 이야기는 모두 SF 창작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겠죠. 하워드 러브크래프트가 다곤을 만든 것처럼.
하워드 러브크래프트는 신화적인 상상력을 외계인과 결합했고, 그래서 다곤 같은 바다 괴수를 설정했습니다. 모비 딕이 포경선들을 거침없이 침몰시키는 것처럼 다곤은 인류 문명을 마음껏 짓밟습니다. 인류는 저 거대한 바닷속에 뭐가 있는지 제대로 살피지 못합니다. 바다는 모비 딕이나 다곤 같은 괴수를 감추었으나, 인류는 그걸 볼 수 없습니다. 허먼 멜빌은 바다 밑바닥에서 모비 딕이 지옥과 접촉할지 모른다고 말했으나, 그 장면을 자세히 그리지 못했죠. 하워드 러브크래프트는 인류가 바다 밑바닥에서 그런 것들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할 거라고 말했고요.
두 작가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고 서로 다른 소설을 썼습니다. 하지만 바다라는 공간은 두 작가에게 비슷한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적어도 <백경>과 <다곤>에서 바다는 불가해한 괴수를 품은 장소입니다. <죠스>는 좀 더 다릅니다. <백경>과 <다곤>에서 인간은 불가해한 바다 괴수를 이기지 못하나, <죠스>에서 바다 괴수는 훨씬 현실적인 차원으로 들어옵니다. 그래서 인간은 불가해한 괴수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고, 괴수를 조사하고 분석하고 이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죠스>는 <백경>이나 <다곤>보다 훨씬 대중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겠죠.
<죠스>에서 바다는 장엄하고 섬뜩한 공간이나, 인류는 그걸 이성적으로 조사하고 이길 수 있습니다. 만약 창작가가 단순한 백상아리가 아니라 다른 바다 괴수를 상정한다면, 인류가 바다 괴수를 조사하는 과정은 더욱 극적으로 보일 겁니다. 만약 바다 괴수가 단순한 백상아리가 아니라 고대 생명체나 돌연변이나 개조 동물이라면…. 창작가는 좀 더 풍성한 이야기를 펼칠 수 있겠죠. <메그>는 그렇게 차별화를 꾀하는 소설이고요. <메그>는 <죠스>를 모방하는 수많은 아류작들과 다릅니다. 적어도 <메그>는 메갈로돈이라는 야수를 이용해 <죠스>가 말하지 못하는 신비스럽고 무서운 고대를 소환합니다.
소설 속에서 메갈로돈은 그저 뻥튀기된 백상아리가 아닙니다. 메갈로돈은 고대라는 신성하고 무시무시한 아우라를 둘렀고, 덕분에 작가는 훨씬 경악스러운 이야기를 펼칠 수 있었어요. 어쩌면 누군가는 <메그>가 평면적인 해양 테크노 스릴러라고 비판할지 모릅니다. 저는 그런 비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해도 저는 메갈로돈이 등장하는 그 장면에 어떤 울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 전체는 평면적일지 모르나, 그런 울림 덕분에 <메그>는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비단 <메그>만 아니라 수많은 SF 소설들은 이런 극적인 울림을 노릴 겁니다. 저는 읽어본 적이 없으나, 해외 도서 커뮤니티에서 여러 작가들은 그런 소설들을 줄줄이 올립니다. 데이브 프리드먼이 지은 <내추럴 셀렉션>은 그런 소설들 중 하나입니다. <내추럴 셀렉션>은 전형적인 <죠스> 이야기와 비슷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바다 괴수는 일반적인 백상아리가 아닙니다. 이상하게 생긴 가오리들이 나타나고, 일련의 과학자들은 이 신종 가오리를 뒤쫓습니다. 그러는 동안 신종 가오리들은 여러 생명체들을 습격하고, 결국 사람들조차 안전하지 않습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 신종 가오리들이 꾸준히 진화를 거듭한다는 특징입니다. 소설 제목처럼 자연 선택은 신종 가오리들에게 다른 능력을 부여하고, 이야기는 더욱 파국적으로 흘러갑니다. 신종 가오리를 추적하는 동안 과학자들은 깊은 바닷속에 들어가고, 기이한 이빨을 건지고, 과학적인 논의를 거치고, 과학을 무시하는 상업 사회에 분노하고, 서로 연애도 하고, 무시무시한 괴물과도 직접 싸웁니다. <내추럴 셀렉션>은 독자들이 기대하는 여러 이야기들을 차례로 늘어놓고, 착실하게 바다 괴수가 등장하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바다 괴수를 묘사하는 분위기나 어둡고 갑갑한 심해 풍경은 그럴 듯합니다. 과학자들이 깊고 깊은 바다로 들어가는 과정은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는 장면처럼 보입니다. 데이브 프리드먼은 깊은 바다가 인간을 압도하는 그런 느낌을 놓치지 않아요. 아울러 작가는 어떻게 신종 가오리가 무시무시한 바다 괴수가 될 수 있는지 자세하게 표현합니다. 소설 속에서 그런 표현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어떻게 신종 가오리가 사람들을 습격할 수 있는지 열심히 당위성을 부여합니다. 어쩌면 작가가 그 부분에 제일 공을 들였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런 표현은 별로 과학적이고 엄밀한 고증이 아닐지 모르나, 데이브 프리드먼은 뜬금없이 괴수가 사람들을 습격하는 이야기에서 탈피하려고 노력한 것 같습니다. 작가는 언제든 자연계에서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생명체가 나타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신종 가오리를 통해 그런 현상을 보여줍니다. 거기까지는 좋습니다. 자연 선택 이론과 신종 가오리와 바다 괴수가 착실한 설정들. 그런 것들은 좋습니다. 만약 데이브 프리드먼이 설정집을 쓰고 싶었다면, 다소 이견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내추럴 셀렉션>은 좋은 설정집이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데이브 프리드먼은 설정집이 아니라 소설을 썼습니다. 그리고 소설, 특히 SF 소설은 그저 설정들을 늘어놓는 범주에서 멈추지 말아야 할 겁니다. 그렇게 설정들이 중요하다면, 독자가 그저 설정집을 읽으면 그만일 겁니다. 작가 역시 설정집을 슬 수 있겠죠. 구태여 작가가 소설을 쓰거나 독자가 소설을 읽을 이유는 없죠. 작가와 독자가 소설을 쓰거나 읽는 이유는 그저 설정을 연구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런 설정이 관념이나 사회 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느끼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저 설정만을 위해 SF 소설을 읽는 독자가 있을지 몰라요. 하지만 저는 설정들을 나열하는 범주에서 작가가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SF 소설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설정에 반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은 다양한 감성들을 드러낼 겁니다. 사람들이 기이한 현상에 부딪힌다면, 누군가는 열불을 낼 테고, 너무 흥분한 누군가는 저도 모르게 말실수를 저지를 테고, 그런 말실수는 돌이키지 못할 상처가 될 테고, 그런 상처들은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헤집을 테고, 누군가는 사과를 거듭할 테고, 그렇게 인간 관계가 흩어지거나 다시 회복될 테고…. 저는 소설이 그런 장면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 감성들이 재미와 감동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메그>에서 메갈로돈이 등장하는 장면이 극적인 이유는 소설 주인공이 그만큼 시련을 겪기 때문입니다. SF 소설에서 재미와 감동은 그저 치밀하고 기발한 설정만으로 나타나지 않아요.
이는 모든 SF 작가가 심리나 분위기를 뛰어나게 묘사하거나 연출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등장인물이나 분위기는 얼마든지 평면적일 수 있어요. 하지만 적어도 작가는 상상 과학이 인간들의 관념과 사회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표현해야 하겠죠. 그런 표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왜 독자들이 SF 소설을 읽어야 할까요. 이는 비단 <내추럴 셀렉션> 같은 괴수 소설에만 해당하는 사항이 아닙니다. 로저 젤라즈니가 쓴 <프로스트와 베타>에서 인간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오직 기계들만 등장하죠. 기계들은 감정이나 기분을 수치나 논리로 계산하지 못한다고 이야기해요.
하지만 기계는 인간들이 남긴 물품을 조사하고, 마침내 어떤 관념을 형성합니다. 그래서 프로스트가 베타를 부르는 장면은 애틋하고 장엄하죠. 이는 모든 창작가가 로저 젤라즈니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상상 과학이 파장을 미치는 관념들이나 사회 구조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내추럴 셀렉션>이 그런 파장을 보여주나요? 글쎄요, 저는 그런 장면을 별로 읽지 못했습니다. 기이한 신종 가오리는 이런저런 사건들을 저지르나, 소설 주인공들은 기계적으로 신종 가오리를 쫓아다닐 뿐입니다. 이 소설에는 오직 기계적인 추적들만 가득합니다.
위에서 잠시 저는 <백경>을 언급했습니다. 허먼 멜빌은 향유 고래와 고래들에 관해 열심히 썰을 풀었어요. 허먼 멜빌은 오직 고래들을 기계적으로 묘사하는 범주에서 그치지 않았죠. 향유 고래라는 존재를 지옥 끝까지 쫓아갈 것처럼, 허먼 멜빌은 온갖 사상들을 늘어놓습니다. 그래서 <백경>은 괴악한 소설이나, 그렇게 강렬한 소설이 되었죠. <백경>처럼 사이언스 픽션이 아닌 소설 역시 그런 사상들을 이야기했습니다. 따라서 사이언스 픽션은 관념이나 사상이나 사회 구조를 더욱 아득하게 논의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적어도 좋은 SF 소설은 그렇게 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데이브 프리드먼은 오직 가냘픈 인간들이 기계적으로 바다 괴수를 쫓아다니는 내용을 서술했을 뿐입니다. 신종 가오리는 무시무시한 바다 괴수로 바뀌었으나, 인간들의 관념은 그런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군요. 설정은 뭔가 변화를 추구하나, 이야기와 감성은 그런 변화를 쫓아가지 못합니다. 솔직히 이야기와 감성은 아예 쫓아가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전복적인 관념이나 사상이나 감성은 그저 들러리에 불과합니다. 그런 것이 없다면, SF 소설을 읽을 이유가 무엇이겠어요. 뭐, SF 창작 동호회에 간다면, 다들 그런 설정을 실컷 구경할 수 있을 걸요.
많은 사람들은 SF 소설에서 기발하고 독특하고 엄밀한 설정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사실이에요. SF 소설은 그런 설정에 기반하고, 여타 문학들과 달리 더 멀리 볼 수 있죠. 하지만 오직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죠. 때때로 기발한 설정보다 전복적인 관념이나 사회 구조는 훨씬 더 커다란 울림을 자아낼 수 있습니다. <메그>와 <내추럴 셀렉션>은 엇비슷한 소설입니다. 소재, 분위기, 이야기 전개, 기타 등등. 하지만 <메그>가 재미있는 이유는 그저 거대한 고대 상어를 보여주기 때문이 아닙니다. 메갈로돈이 등장할 때, 소설 주인공이 처한 위상 역시 심해에서 하늘로 솟구치기 때문이죠.
이는 <메그>가 파격적인 관념을 보여준다는 뜻은 아닙니다. 비록 어떤 소설이 얄팍하고 1차원적이라고 해도, 변화하는 관념을 부각한다면, 그 소설은 재미있는 SF 소설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내추럴 셀렉션>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바다 괴수는 열심히 바뀌나, 바다 괴수 이외에 아무 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관념이 바뀌지 않는 SF 소설. 사회 구조가 바뀌지 않는 SF 소설. 그저 무시무시한 바다 괴수를 보고 싶다면, 설정 놀음으로 충분합니다. 구태여 몇 백 쪽짜리 소설을 읽을 필요는 없겠죠.
게다가 작가는 열심히 상업에 물드는 과학을 비판하나, 그 수준은 얄팍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런 SF 소설에서 상업을 비판하고 과학을 옹호하는 목소리를 찾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스티븐 굴드 같은 저명한 과학자들 역시 상업성을 경계하고 과학을 지지합니다. 그래서 괴수 작가들 역시 그런 목소리를 모방합니다. 문제는 그들이 절대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부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상업성을 경계할 수 있죠?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그 자체로 이윤을 향해 작동하는 상업 체계입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모든 것을, 심지어 사람 목숨조차 상품으로 바꿉니다. 임금을 벌기 위해 인간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해야 합니다. 노동력을 판매하지 못하는 인간은 굶어죽어야 합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그런 것입니다. 하지만 <내추럴 셀렉션> 같은 SF 소설은 자본주의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아니, 이 소설은 아예 자본주의가 뭔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가 뭔지 모름에도, <내추럴 셀렉션>은 열심히 상업성을 비판하느라 애씁니다. 이는 꽤나 어처구니가 없는 자가당착입니다. <내추럴 셀렉션>은 자신이 뭐라고 말하는지 몰라요.
※ 저는 <내추럴 셀렉션>이 드러내는 단점들을 다른 괴수 소설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여러 괴수 소설들 중 <프래그먼트>가 <내추럴 셀렉션>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제가 <프래그먼트>를 비판한다면, <내추럴 셀렉션>과 똑같은 소감을 적을지 모르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