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s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관리 메뉴

SF 생태주의

기술적 자연 게임과 생태적 감수성 본문

생태/문화·기술로서 자연

기술적 자연 게임과 생태적 감수성

OneTiger 2017. 8. 16. 20:00

[게임 <압주> 예고편의 한 장면. 이런 '기술적 자연'은 광활한 생물 다양성을 제시합니다.]



예전에 생태계 비디오 게임과 자연 환경의 관계를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몇몇 비디오 게임은 자연 생태계의 정수나 근본을 묘사하고, 플레이어는 그런 게임을 통해 생태적인 감수성을 맛보곤 합니다. <압주>는 아주 대표적인 사례일 겁니다.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는 얕은 해안과 깊고 어두운 해저와 하늘거리는 바닷말들과 화려한 산호초와 원시적인 해양 파충류와 조우합니다. 사방에서 온갖 생명들이 돌아다니고, 주인공 잠수부는 그런 충만한 생명력 속에서 헤엄칩니다.


이 게임은 뚜렷한 줄거리나 규칙이 없음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해양 생태를 간접적으로 체험했고 생태적 감수성을 키웠기 때문일 겁니다. 비단 <압주>만 아니라 여러 비디오 게임들은 그런 감수성을 노립니다. <주 타이쿤>이나 <오퍼레이션 제네시스> 같은 게임은 어떨까요. 플레이어는 가상의 자연 환경을 창조하고 어떻게 동물들이 활동하는지 지켜봅니다. 이런 게임 역시 생태적 감수성을 키울 수 있겠죠. <심사파리>나 <벤처 아크틱> 같은 게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서브노티카>나 <플래닛 익스플로러> 같은 게임은 어떨까요. 이런 게임들의 주제는 건설과 생존입니다. 플레이어는 안전 가옥을 짓고 생존해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플레이어는 자재와 식량을 얻기 위해 주변의 자연 환경을 탐험해야 합니다. <서브노티카>나 <플래닛 익스플로러> 같은 게임은 광대하고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자랑하고, 수많은 생명들은 생태계를 구성합니다. 플레이어는 그 가운데에서 대자연의 광활함을 만끽할 수 있죠. 비록 이런 게임들은 건설과 생존을 강조하지만, 저는 <플래닛 익스플로러>가 나름대로 생태적 감수성을 담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강조하듯 <에코 - 글로벌 서바이벌 게임> 같은 경우는 아예 제목에 '에코'라는 단어를 붙였습니다. 흠, <몬스터 헌터>나 <호라이즌 제로 던> 같은 게임은 어떨지 모르겠군요. 이 게임들은 사냥이 주제이고, 플레이어는 뭔가를 죽이거나 파괴하는 것에서 재미를 느낍니다. 이런 사냥이나 파괴는 생태적 감수성과 거리가 멀다고 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이런 게임들 역시 대자연의 광활함을 자랑합니다. 이런 게임들은 생태적 감수성보다 환경적 감수성을 내세우는 것 같습니다. 생태와 환경은 다르죠. 녹색당이 환경주의가 아니라 생태주의인 것처럼.



따라서 <압주> 같은 게임을 '기술적 자연'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릅니다. 피터 칸 같은 학자는 인간이 가상의 자연을 접할 때 생명애(바이오필리아)를 느낀다고 주장합니다. <압주>에서 플레이어가 자연의 광대함을 느끼고 기쁨을 얻는 것처럼 기술적 자연은 인간에게 생태적/환경적 감수성을 제공할 수 있어요. 사실 피터 칸은 어느 논문에서 <주 타이쿤>을 사례로 들었죠. 기술적 자연은 비단 비디오 게임만 가리키지 않습니다. 피터 칸과 연구진은 사람들에게 <살아있는 지구> 같은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여줬고, 사람들의 스트레스가 낮아졌다고 진단했습니다.


피터 칸은 인간이 태고 적부터 숲이나 바다에서 원대함을 느꼈고 그런 경관이 심리적인 안정을 준다고 주장합니다. 이른바 자연의 치유력이 그런 것이겠죠. <내셔널 지오그래픽>도 그런 실험을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주장이 정말 옳은지 알지 못하지만, 어쨌든 분명히 많은 사람들은 <압주> 같은 게임에서 어떤 신성한 영감을 체험하는 듯합니다.



피터 칸 같은 학자는 이런 기술적 자연이 환경 보호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를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이른바 현대 문명인이 대자연을 접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킬리만자로,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에버글레이즈, 아마존, 울루루, 극지의 오오라, 거대한 향유 고래, 위풍당당한 아무르 호랑이, 기타 등등…. 어떤 사람은 동네 뒷산에서 생태적 감수성을 키울 수 있겠으나, 모든 사람이 그러지 못하겠죠. 따라서 <압주> 같은 게임은 현대 문명인이 쉽게 대자연을 접하는 방법이 될 겁니다. 아울러 동물원 같은 억압적인 감옥도 없앨 수 있고요.


물론 그저 자연의 광대함만 느끼는 것으로 부족하죠. 왜냐하면 현대 산업 문명에서 자연 환경을 파괴하는 주범은 자본주의 체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생태 사회주의를 지지해야 할 겁니다. 결국 이런 기술적 자연은 생태 사회주의로 이어져야 하고, 그때 인류는 자연 환경을 제대로 보존할 수 있겠죠. 저는 사람들이 <압주>나 <주 타이쿤> 같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시에 장 자크 루소나 윌리엄 모리스나 앙드레 고르를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