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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가상 동물원의 필요성 본문

생태/문화·기술로서 자연

가상 동물원의 필요성

OneTiger 2017. 4. 29. 20:00

배미주의 <싱커>는 사이버펑크 소설입니다. 여느 사이버펑크 소설처럼 <싱커>의 주인공들은 다른 대상에 접속하죠. 그 대상은 야생 동물들입니다. 사람들은 야생 동물들에 접속하고, 동물들의 삶과 자연 생태계를 생생하게 만끽합니다. 결국 이런 접속은 자연 생태계를 지켜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지고요. 저는 이 소설을 읽고, 일종의 가상 동물원을 떠올렸습니다. 가상 현실 기술을 이용해 사파리를 만들고, 관람객들은 그 가상의 사파리를 체험합니다. 이런 가상 동물원은 크게 두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우선 우리는 동물들을 착취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동물원은 감옥입니다. 동물들이 갇힌 감옥이죠. 동물들은 비좁은 우리 안에서 평생 지내야 하고, 그 때문에 종종 병에 걸리거나 정신병에 시달리거나 심지어 죽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가상 동물원은 말 그대로 가상 현실이기 때문에 실제 동물들을 착취할 필요가 없습니다. 게다가 가상 동물원은 야생 동물들의 삶을 보다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동물원의 호랑이는 호랑이의 본질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합니다. 호랑이는 민감하고 은밀한 사냥꾼입니다. 호랑이는 화려한 줄무늬를 자랑하는 암살자입니다. 암살자가 이 동물의 본질이라고 할 수 없겠으나, 암살 기술은 호랑이의 생존에 상당한 영향을 끼칩니다. 하지만 동물원은 전시를 위해 탁 트였고, 호랑이는 전혀 수풀에 자신을 숨길 수 없습니다. 은신을 못 하는 호랑이가 무슨 호랑이겠어요.


예전에 저는 비디오 게임 <압주>를 이야기하면서 가상 동물원이 필요할 거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비록 <압주>는 비디오 게임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동물원처럼 착취적인 감옥보다 훨씬 나을 겁니다. 제가 아무리 <압주>를 플레이해도 그 어떤 상어나 거북이나 돌고래나 오징어도 죽지 않을 겁니다. 누군가처럼 생태 수족관을 만든답시고 돌고래를 죽일 필요가 없어요. (동물을 죽이는 행위가 생태 체험이라니, 웃기지도 않는 헛소리입니다.) 게다가 <압주>에서 플레이어는 돌고래들이 활발하게 헤엄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습니다. 수족관이나 동물원에서 관람객들은 고작 돌고래 쇼나 구경할 뿐입니다. 그런 인위적인 재롱 잔치보다 <압주>의 돌고래들이 훨씬 자연 상태에 가깝겠죠. 저는 이런 게임이나 증강 현실 프로그램이 훨씬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동물원을 찾는 대신 <압주> 같은 게임으로 야생 동물들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단 이런 게임만이 아니라 각종 생태계 시뮬레이션 게임들도 좋은 선택입니다. 가령, <타이토 에콜로지>나 <울프 퀘스트> 같은 게임들은 어떨까요. 아니, <타이토 에콜로지> 같은 게임이 너무 아기자기하다면, 좀 더 현실적인 증강 현실 게임들도 많습니다. 저도 아직 그런 게임을 플레이한 적이 없으나, 앞으로 그런 것들이 훨씬 대중화될 수 있겠죠.


마침 <어린이 과학 동아> 5월호의 기사는 동물원의 변화입니다. 디트로이트 동물원은 "코끼리에게 가장 좋은 방법은 코끼리를 소유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고, 코끼리 전시관을 닫았다고 합니다. 만약 사람들이 코끼리를 보기 원한다면,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면 됩니다. 요즘에는 촬영 기술이 대단히 발달했기 때문에 동물들의 삶을 아주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크리쳐 캠이나 드론 카메라 같은 것들은 자연 다큐멘터리의 고증을 생생하게 높여줍니다. 만약 그런 동물들의 삶을 더욱 가까이 보고 싶다면, 각종 비디오 게임이나 가상 현실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아마 누군가는 동물원의 교육 효과를 주장할 수 있겠으나, 도대체 그 착취적인 현장이 어떤 교육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건 노예 제도가 교육적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좁은 우리 안에서 늑대가 안절부절 못하고 정신병에 걸리는데, 그게 어디가 교육적이겠어요. 코끼리가 비좁은 우리 안에서 끙끙거리는데, 그게 교육적 효과가 있겠습니까. 털이 죄다 빠진 타조가 정말 생태학적 감수성을 키울 거라고 생각하나요. 설사 몇몇 동물원은 안전하게 운영된다고 해도 동물원은 근본적으로 자연 생태계의 참모습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그걸 생태학적 감수성으로 치환할 수 없죠.


소설 <싱커>처럼 사이버네틱 기술이 발달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그런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도 이미 생태계 시뮬레이션 게임들은 많고, 가상 현실 프로그램도 더욱 발달할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억압적인 동물원 대신 그런 게임이나 프로그램을 이용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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