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자연 본문
[게임 <타이토 에콜로지>의 한 장면. 사라진 공룡들 역시 자연입니다. 자연은 언제나 바뀝니다.]
대부분 SF 소설들은 미래의 첨단 문명과 깊은 연관을 맺습니다. 사람들은 SF 소설을 이야기할 때, 공중 비행 자동차, 하늘을 찌르는 마천루, 거대한 발전소와 막대한 동력원, 어마어마한 도시, 각종 첨단 장비들을 머릿속에 떠올립니다. 하지만 모든 SF 소설이 그렇다고 할 수 없습니다. 몇몇 소설들은 오히려 인류가 너무 발전에만 매달리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에코토피아 뉴스>, <아이슬란디아>, <에코토피아 비긴스>, <홍수> 등은 지나친 발전과 개발을 경고합니다. 가끔 이런 유토피아 소설들은 너무 낭만적으로 보입니다. 심지어 <에코토피아 뉴스>나 <아이슬란디아>는 퇴행적으로 보일 지경입니다.
물론 인류는 이렇게 과거로 퇴행할 수 없을 겁니다. 저는 인류가 산업 발전과 경제 개발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고 봅니다. <에코토피아 뉴스>는 철제 공장이나 철제 다리를 원수마냥 씹어먹을 것처럼 보이지만, 저는 어느 정도의 환경 오염이나 생물 다양성 감소를 감안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이런 시각은 너무 성장이나 개발에만 목을 맨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자연 환경보다 성장이나 개발을 우선시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과연 자연 환경이 무엇일까요.
자연 환경은 무엇이고, 왜 우리는 자연 환경을 보존해야 할까요. 사실 지구 생태계는 언제나 똑같지 않았습니다. 지구의 나이는 45억 년이고, 그 동안 숱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지구 생물들은 모두 주변 환경을 바꿨습니다. 미생물부터 커다란 동물들까지 다들 영향을 미칩니다. 식물 플랑크톤은 산소를 뿜고, 비버는 댐을 만들고, 코끼리는 숲을 쓰러뜨리고, 울창한 삼림은 거대한 그늘을 조성합니다. 식물들은 온화하게 보이지만, 식물들 역시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그 와중에 자연 환경을 바꿉니다. 인류 이외에도 수많은 존재들이 자연 환경을 바꿉니다. 보이지 않는 미생물, 커다란 동물들, 어마어마한 나무들. 모두 자연 환경을 바꿉니다.
만약 정말 자연 환경을 보존하고 싶다면,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생물은 생존을 위해 주변 환경을 필연적으로 바꾸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막연하게 아름답고 깨끗한 자연'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환경 운동가들이나 생태 사회주의자들은 그런 막연하고 관념적인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환경 운동에 반대하는 이들이 저런 관념을 외칩니다. 미세 먼지를 뿜고 강물을 오염시키고 핵 폐기물을 묻는 사람들은 막연히 아름답고 선한 자연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무분별한 발전을 찬양하는 이들은 그런 관념이나 추상이나 주관을 외치지만, 환경 보호는 그런 관념과 하등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자연 환경을 보존하는 이유는 그게 우리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고 우리의 정신적 유산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주 간단한 논리입니다. 미세 먼지를 뿜으면, 사람들이 병에 걸립니다. 강물을 오염시키면, 사람들이 오염된 물을 먹습니다. 핵 폐기물을 묻으면, 그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저런 공장이나 발전소나 송전탑 때문에 사람들은 고향에서 쫓겨나고 길거리에서 쓰러집니다.
도대체 왜 경제가 성장해야 하나요? 도대체 왜 산업이 발전해야 하나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정말 저런 발전소나 댐이나 송전탑이 사람들을 잘 살게 해줬나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이 사람들을 잘 살게 해줬나요. 그렇다면 4대강 사업 때문에 고향을 잃고 썩은 물을 마시는 사람들은 뭐가 될까요. 이게 바로 환경 보존의 기초적인 논리입니다. 하지만 무분별한 발전을 찬양하는 이들은 결코 이런 착취와 수탈을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경제가 성장한다면 그 혜택이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갈 거라고 착각하죠. 뭐, 그 사람들은 어디 꿈나라에서 살지 않나 싶습니다.
또한 자연 환경은 정신적 유산이 될 수 있습니다. 호주의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등은 굉장한 경관을 자랑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대자연의 웅장함을 선사합니다. 우리는 각종 자연물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거나 치유력을 느낍니다. 우리만 아니라 우리의 후손들도 그런 걸 느낄 수 있습니다. 만약 자연 생태계가 사라진다면, 우리는 그만큼 예술적 영감이나 정신적 유산을 잃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걸 우리 후손들에게 뺏을 권리가 없습니다. 산업 발전은 그걸 파괴할 권리가 없습니다. 정말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고 싶다면, 그만큼 혜택을 평등하고 골고루 분배하야 합니다.
하지만 어디 산업 자본주의가 한 번이라도 그런 적이 있었나요. 심지어 모든 것이 좋아 보이는 호황기 시절에도 산업 자본주의는 그런 적이 없었죠. 이것 역시 환경 보존의 중요한 논리입니다. 우리 인간은 그저 숨만 쉬고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술을 즐길 수 있습니다. 빵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장미도 필수적입니다. 그게 인간적인 삶이죠. 아무르 호랑이가 없어도 자연 생태계는 붕괴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위대한 자연 유산을 잃습니다. 따라서 광범위한 야생 보호 구역을 확보하고, 아무르 호랑이들이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무분별한 개발에 찬성하는 이들은 이런 현실을 파악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자연을 외칩니다. 사실 자연 생태계를 공부한다면, 그런 관념적인 자연이 존재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 저 성장주의 사람들은 자연 생태계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저렇게 관념만을 외치겠죠. 실제 자연 생태계를 모르는 광신도들이 진화론을 부정하는 것처럼. 성장주의와 광신도는 별로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