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겸손함의 학문과 정복자들의 수탈 본문
천문학자나 우주 생물학자들은 천문학이 겸손함을 가르친다고 이야기합니다. 가령, 크리스티안 하위언스는 수많은 정복자들을 비판했습니다. 정복자들은 엄청난 땅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지만, 지구는 수많은 행성들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고, 인류도 우주의 중심이 아닙니다. 아무리 정복자들이 전쟁을 일으키고 아무리 많을 땅을 차지해도 우주 전체로 따진다면, 그들의 영토는 지극히 미미합니다. 이 우주는 얼마나 광대합니까. 우리는 우주의 한계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다른 문명이 존재하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 주변만을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정복자들이 엄청난 전쟁을 벌인다고 해도 설사 정복자들이 지구를 차지한다고 해도 지구는 그저 일부분, 아니, 모래알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크리스티안 하위언스 같은 과학자는 통치자들이 겸손함을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얼마나 우주가 넓은지 보고, 얼마나 지구가 작은지 보고, 따라서 겸손함을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만약 그런 통치자들이나 정복자들이 겸손함을 배운다면, 이 광대한 우주와 작고 작은 지구를 비교할 수 있다면, 무모한 전쟁은 사라질지 모릅니다.
이런 연설은 아주 감동적입니다. 우주 속의 인간을 되돌아보게 하죠. 저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저는 제 자신이 너무 작아진다고 느낍니다. 이 광대한 우주에 비한다면, 우리 인류는 얼마나 왜소할까요. 그야말로 티끌조차 되지 못하겠죠. 문득 저 자신이 당장 사라져도 아무렇지 않겠다는 생각마저 드는군요. 하지만 천문학자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뭔가 좀 어긋난 것 같습니다. 아무리 우주가 넓다고 해도 정복자들은 그런 우주에 눈길을 돌릴 수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정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큰 이득을 얻을지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들의 일차적인 목적은 이득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 정복자들 앞에서 겸손함이나 우주의 광대함을 떠들어봤자 그냥 시간 낭비일 겁니다. 아니, 오히려 정복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우주가 그렇게 넓다고? 좋아, 그렇다면 지구를 정복한 다음 우주까지 정복하자. 그리고 우주를 정복하기 위해 계속 약자들을 착취하자. 저 넓은 우주를 정복할 때까지 전쟁과 착취는 끝나지 않는다." 사실 과학이 시야를 넓히면 넓힐수록 기득권들은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애씁니다. 이제 기득권의 시선은 남극이나 지구 궤도나 외계 행성(화성)까지 다다랐습니다.
안타깝게도 과학자들이 정복자들에게 뭐라고 설교하든 정복자들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우리는 정복자가 아니라 저항자들에게 초점을 맞춰야 할 겁니다. 우주가 넓든 말든, 정복자들과 저항자들은 항상 싸웠습니다. 그리고 저항자들이 아주 치열하게 싸웠을 때, 정복자들은 잠깐 멈추거나 몸을 사리거나 물러났습니다. 천문학은 보통 사람들에게 겸손함을 가르칠지 몰라도 이득을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자들에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못할 겁니다. 오히려 지구 너머에 정복할 영역이 더 남아있다고 가르칠 뿐이겠죠.
크리스티안 하위언스는 우주가 얼마나 넓은지 강조하고 정복자들에게 반성하라고 요구했지만, 오히려 정복자들은 남극과 화성을 정복하자고 생각할 겁니다. 애초에 그런 식으로 말이 통할 것 같았다면, 정복자들은 전쟁에 나서지 않았을 겁니다. 따라서 설교를 하고 싶다면, 정말 말이 통하는 상대에게 해야 할 겁니다. 정복자에게 설교할 것이 아니라 저항자들을 응원해야 합니다. 그들이 더욱 가열차게 싸울 수 있도록.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저항자들을 도울 수 있도록. 그게 바로 독립과 해방으로 가는 길이겠죠.
그렇다고 해서 크리스티안 하위언스의 설교가 잘못 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천문학은 분명히 인간에게 겸손함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런 연설을 들을 때마다, 천문학을 볼 때마다 경외적인 어마어마함을 느낍니다. 천문학은 '겸손함의 학문'이고, 저는 천문학자들이 계속 그런 논의를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문제는 그것만으로 한계가 있다는 뜻입니다. 기득권에게 "착하게 살라."고 설득해봤자 그런 설득은 먹히지 않습니다. 기득권을 그렇게 설득하려고 애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그런 노력이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 의문입니다.
천문학자들은 만약 기득권이 천문학을 배우고 '겸손함의 학문'을 깨닫는다면 기득권이 정복과 수탈을 멈출 거라고 생각하더군요. 저는 그 학자들의 선의를 믿어 의심하지 않으나, 유감스럽게도 기득권은 겸손함의 학문 따위에 관심이 없을 겁니다. 오히려 기득권은 천문학이 더 넓은 땅을 안내하기 바라겠죠. 그래야 자신들이 더 많이 정복할 수 있기 때문에. 따라서 아무리 천문학자의 설교가 감동적이라고 해도 설교만으로 부족합니다. 저는 그런 천문학자들이 겸손함의 학문만 이야기하지 말고 저항자들을 응원했으면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