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개인과 사회. SF 소설이 무엇을 바라보는가? 본문
인류 문명을 평가하는 방법들은 여러 가지입니다. 그것들 중 가장 흔한 방법은 개인과 사회를 대조하는 방법입니다. 이는 인류 문명을 평가하는 가장 유명한 방법들 중 하나일 겁니다. 사실 21세기 초반 현재에 개인과 사회를 대조하는 방법은 가장 지배적인 방법이겠죠.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가장 지배적인 사회 구조이고, 자본주의가 가장 싫어하는 사상이 공산주의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를 뒷받침하는 사상들은 자유주의나 개인주의입니다. 이런 사상들은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고, 사회보다 개인을 우선시합니다.
심지어 마가렛 대처처럼, 자유주의는 아예 사회가 없다고 무시할 수 있어요. 물론 고전적인 자유주의 사상가들은 마가렛 대처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고전 자유주의가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 이유는 그때 대기업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대기업들이 존재했다면, 고전 자유주의 사상가들은 아주 열심히 대기업들을 깠을 겁니다. 하지만 고전 자유주의 사상들은 대기업들이 나타날지 알지 못했고, 결국 개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뒷받침하는 사상이 되었죠. 그렇게 자유주의는 많은 왜곡들을 당했습니다.
반면, 공산주의를 뒷받침하는 사상은 사회주의나 공동체주의입니다. 이런 사상들은 개인이 오롯한 개인이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이라고 주장합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사회 속에서 인간은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 없이 인간을 말하지 못합니다. 사회주의나 공동체주의는 이런 생각을 밑바닥에 깝니다. 공산주의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렇다고 해도 공산주의는 자유주의를 완전히 배척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문구들 중 하나는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입니다. 즉, 자유로운 개인 생산자들이 연합할 때, 공산주의는 나타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이익이 사회 전체의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그런 사회는 공산주의 사회가 되지 못하겠죠.
어쩌면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장점들을 결합하고 싶어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자유주의적 사회주의가 진짜 공산주의라고 주장하고요. 저는 그게 사실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기에서 저는 그걸 논의하지 않을 겁니다. 제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비교한 이유는 그렇게 개인과 사회를 비교/대조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인류 문명 속에서 숱한 개인들이 독립적으로 살아갈까요? 아니면 사회 그 자체가 정말 존재할까요?
사실 개인과 사회를 딱 부러지게 나누기는 어려울 겁니다. 심지어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지지하는 열정적인 자본가조차 사회를 무시하지 못할 겁니다. 심지어 골수 빨갱이들조차 개인을 무시하지 못할 겁니다. 중요한 것은 비중이죠. 사회가 존재한다고 인정한다고 해도, 자본가는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할 테고, 환경 오염을 사회적인 비용으로 내몰 겁니다. 국가가 가장 커다란 사회 단위이기 때문에 골수 빨갱이들은 개인들이 국가에 충성해야 한다고 말할 겁니다. 개인과 사회가 완전하게 나뉘지 않는다고 해도, 여러 사상들은 한쪽에 좀 더 많은 비중을 두겠죠.
이 부분에서 저는 SF 장르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이런 물음에 SF 장르가 뭐라고 대답할까요? SF 장르가 개인과 사회 중 어디에 더 비중을 둘까요? 저는 SF 장르가 사회에 더 많이 비중을 둔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SF 장르가 개인을 무시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지만 SF 장르는 시대가 바뀌는 거시적인 이야기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래서 SF 소설은 개인의 심리보다 사회 구조에 주목합니다. 저는 그게 SF 장르의 본질적인 특징이라고 생각해요. 이는 SF 장르가 좌파적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는 그저 SF 장르가 사회 구조를 더 많이 이야기한다는 뜻입니다. (좌파는 사회 구조를 넘어 계급 구조를 살피고 밑바닥 계급을 지지해야 하죠.)
SF 장르는 시대가 바뀌는 과정에 주목합니다. 왜 시대가 바뀔까요? 과학 기술 때문에? 과학 기술이 널리 퍼진다면, 그게 시대를 바꾸는 근본적인 이유가 될까요? 저는 과학 기술과 함께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인간 관계입니다. 과학 기술이 널리 퍼진다면, 인간 관계가 바뀔 겁니다. 과학자들이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돈다고 말한다면, 교회의 권위는 땅에 떨어질 겁니다. 교회가 태양이 지구 주변을 돈다고 말하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교회를 떠받들지 않을 테고, 그렇게 인간 관계는 달라질 겁니다. 민중들과 교회의 관계는 바뀌고, 그건 시대적인 변혁을 촉발하겠죠.
따라서 시대적인 변혁은 개인에게서 비롯하지 않습니다. 시대적인 변혁은 인간 관계에서 비롯합니다. 인간 관계는 사회 구조로 쉽게 이어집니다. 인간 관계가 인간이 개인으로서 존재하지 않고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고 말하기 때문이죠. 이는 사회에 비중을 두는 시각입니다. 그래서 SF 장르는 개인보다 인간 관계와 사회 구조에 중점을 둡니다. 그래서 여러 평론가들은 SF 소설들이 개인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본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미 말했다시피 이는 SF 장르가 개인을 무시하거나 좌파적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지만 개인과 사회를 비교할 때, SF 장르는 사회에 비중을 둘 겁니다.
물론 이런 특징은 다른 단점들을 부를지 모릅니다. 개인적인 심리에 초점을 맞추는 독자는 SF 소설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겠죠. 뉴웨이브 SF 소설들을 비롯해 많은 SF 소설들은 개인적인 심리를 꽤나 강조했으나, 여전히 전통적인 SF 창작 방법은 개인보다 사회(인간 관계)일 겁니다. 다른 창작 방법들이 늘어난다고 해도, 사회를 살피는 시각은 계속 전통적인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만약 이런 전통적인 방법이 바뀐다면, 이제까지 평론가들이 떠든 숱한 비평들 역시 우르르 바뀌겠죠. 저는 그런 상황이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전통적인 창작 방법이 바뀐다면, 그때 SF 장르는 사라지고 다른 장르가 나타날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