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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나는 이것을 느끼지 않아." 예술 평론에서 이 문구는 심각한 걸림돌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술 작품들이 감동적이라고 느낍니다. 예술 작품들이 감동적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예술 작품들을 만들고 예술 작품들을 사랑합니다. 감동은 느낌입니다. 느낌은 주관적입니다. 느낌이 주관적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똑같이 느끼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아주 다양한 것처럼, 느낌들은 아주 다양합니다. 느낌들은 똑같지 않습니다. 느낌들이 똑같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사람들이 똑같은 소설을 읽는다고 해도, 사람들은 똑같이 느끼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소설이 감동적이라고 느낍니다. 어떤 사람들은 소설이 흥미롭다고 느낍니다. 소설은 흥미로우나, 이 흥미는 감동으로 승화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소설이 재미없다고 느낍니다..
"전설이 아니라 레전드." 한때 사람들은 이런 농담을 떠들었습니다. 사실 전설과 레전드는 똑같은 뜻입니다. 하지만 전설은 한국어이고, 레전드는 영어입니다. '전설이 아니라 레전드'는 부정과 외국어를 이용해 똑같은 뜻을 반복합니다. 그래서 이 농담은 어떤 대상이 훨씬 대단하다고 강조할 수 있습니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동물 변신이나 생체 우주선이나 생체 개조를 굉장히 강렬하게 묘사해. 이 분야에서 옥타비아 버틀러는 전설이 아니라 레전드야." 이 문구는 부정을 이용해 똑같은 뜻(전설과 레전드)을 두 번 반복하고, 그래서 옥타비아 버틀러는 훨씬 대단하고 그뤠잇한 작가가 됩니다. 비록 '전설이 아니라 레전드'는 일반적인 표현 방법이 아니나, 그것 때문에 이 문구는 옥타비아 버틀러를 훨씬 강조할 수 있습니다. 우..
예전에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을 때, 어떤 사람들은 소설을 걱정했습니다. 만약 인공 지능이 인간 고수를 이길 수 있다면, 인공 지능이 인간 소설가보다 훌륭한 소설을 쓸지 모르죠. 사실 이는 단순한 걱정이 아니라 우리가 직면한 현실입니다. 이미 인공 지능은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어쩌면 인공 지능 소설가들이 정말 인간 소설가들을 밀어낼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술 작업이 인간의 영역이고, 기계가 그런 인간적인 영역을 뺏어간다고 한탄합니다. 하지만 저는 한 가지가 궁금합니다. 왜 예술 작업이 오직 인간임을 드러내는 작업이 되어야 할까요? 로봇이 위험하고 힘든 노동을 도맡는다면, 아무도 그걸 불평하지 않을 겁니다. 사람들은 위험하고 힘든 노동을 빨리 로봇에게 맡기기 원하겠죠. 하지만 로봇이 그림을 그리거나..
[기이하고 울창한 자연과 적막한 폐허와 위험한 동물들. SF 창작가들은 계속 이런 설정을 사랑하겠죠.] 소설 은 아르카디와 보리스 스트루가츠키 형제가 썼습니다. 장르를 규정하기가 좀 애매하군요. 아마 우주적 공포로 부르면 좋을까요. 하지만 일반적인 우주적 공포와 달리 이 소설에서 공포나 광기보다 비극이나 암울함이 두드러집니다. 하워드 러브크래프트 같은 작가는 비슷한 소재를 이용해 공포와 광기를 강조하겠으나, 처럼 스트루가츠키 형제는 (종종 유머나 개그를 곁들이지만) 공포보다 무력함이나 비극성을 드러냅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어느 날, 외계인들이 지구에 방문합니다. 그들은 금방 떠나고, 그들이 머물렀던 자리는 '존'이라고 불립니다. 이 구역 안에서 굉장히 기이한 현상들이 벌어집니다. 만약 누군가가 여기..
[영화 에 나오는 노틸러스. 바다의 시미터. 고증은 다소 어설프나, 모양은 독특합니다.] 흔한 스페이스 오페라는 우주 함대를 해군 체계처럼 구성하곤 합니다. 함재기, 고속정, 호위함, 구축함, 순양함, 전함, 모함 등이 우주 함대를 이루죠. 때때로 우주 고속정이나 구축함은 '어뢰'를 쏩니다. 우주의 발사체를 그저 미사일이라고 부르지 않고 어뢰라고 부릅니다. 저는 그게 뭔가 해군다운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우주 함대가 해군의 체계를 모방한다고 해도 '잠수함'이라는 이름을 우주선에 붙일 수 없을 겁니다. 잠수함의 주된 역할은 말 그대로 잠수이지만, 우주에서 잠수할 수 없기 때문이죠. 아무리 우주가 또 다른 바다처럼 보여도 우주는 바다처럼 수중과 수면으로 나뉘지 않아요. 따라서..
어떤 창작물을 평가하는 기준은 다양합니다. 누군가는 작가의 성향을 중시할 테고, 누군가는 작품 자체의 주제를 중시할 테고, 누군가는 지리적인 영향을 중시할 겁니다. 또 누군가는 시대상을 중시할 겁니다. 그래서 평론가들은 특정 시기의 소설들을 한데 묶고, 이런 작품들을 서로 비교하거나 검토합니다. 가령, 일제 시대의 소설들은 여러 모로 비교할 점들이 많습니다. 어떤 작가는 저항을 부르짖고, 어떤 작가는 풍자와 해학으로 맞섭니다. 어떤 작가는 그저 아름다운 감수성만 노래합니다. 똑같은 저항 작가라도 성향은 크게 다를 수 있습니다. 이육사 선생과 윤동주 시인의 면모가 서로 다른 것처럼요. 21세기 독자는 채만식의 같은 소설에서 당시 시대의 암울한 분위기와 사회주의를 바라보는 시선 등을 탐구할 수 있고, 이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