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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어떻게 사랑이 바뀌니?" 이 대사는 이른바 수사 의문문입니다. 화자는 사랑이 바뀌는지 물으나, 이건 대답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대답을 듣기 위해 화자는 이것을 묻지 않습니다. 이 물음은 사랑이 바뀌지 않는다고 반박합니다. 사랑이 바뀌지 않는다고 강조하기 위해 화자는 (수사) 의문문을 말합니다. 왜 화자가 사랑이 바뀌지 않는다고 강조하나요? 왜 화자가 수사 의문문을 말하고 사랑이 고정적이라고 강조하나요? 만약 사랑이 바뀐다면, 화자에게서 사랑은 떠날 겁니다. 만약 사랑이 떠난다면, 화자는 혼자가 될 겁니다. 화자가 혼자이기 때문에, 더 이상 화자는 사랑에게 기대지 못합니다. 화자가 사랑에게 기대지 못하기 때문에, 화자는 기반을 잃습니다. 화자가 기반을 잃기 때문에, 화자는 추락할지 모릅니다. 사랑은 인생..
[굶주리는 사람들과 외계인들. 양쪽 사이에는 관계가 없는 것 같으나, 여기에는 연결 고리들이 있습니다.] 제목처럼, 반다나 싱이 쓴 는 굶주리는 사람들을 이야기합니다. 소설 주인공은 아내입니다. 아내로서 소설 주인공은 살림을 맡습니다. 집안에서 잔치가 벌어지기 때문에, 소설 주인공 아내는 온갖 음식들을 준비합니다. 풍족한 음식들은 요란한 잔치로 이어집니다. 잔치가 벌어지는 동안, 소설 주인공은 굶주리는 사람들을 인식합니다. 풍족한 음식들 속에서 소설 주인공은 굶주리는 사람들을 인식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오직 풍족한 음식들만 바라보나, 소설 주인공은 풍족한 음식들과 굶주리는 사람들을 대조합니다. 분명히 이 세상에는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풍족한 음식들과 굶주리는 사람들이 함께 있습니다. ..
[이런 생태계 게임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간접적으로 야생 동물들이 될 수 있습니다.] 1995년 비디오 게임 는 생태계 시뮬레이션 장르입니다. 작은 청어부터 거대한 백상아리까지, 게임 플레이어는 다양한 물고기들을 조종할 수 있습니다. 물고기들은 먹이를 먹고, 포식자를 피하고, 살아남아야 합니다. 는 여러 배경 무대들을 보여주고, 물고기들은 여러 배경 무대들을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는 다소 단순한 게임이나, 생태계 시뮬레이션 장르에서 이런 형식은 나름대로 유구한 전통(?)을 자랑합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야생 동물을 직접 조종하고, 야생 동물이 되고, 야생을 누비고, 살아남습니다. 야생 동물 시점으로 게임 플레이어는 자연 생태계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직접 야생 동물이 되기 때문에, 게임 플..
반다나 싱이 쓴 는 문자 그대로 허기를 이야기합니다. 어떤 관점에서 허기는 긍정적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일부러 굶는 것처럼, 허기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즐겁게 요리를 기다릴 수 있습니다. 시장(허기)이 반찬이라는 속담처럼, 허기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요리를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만약 허기가 없어진다면, 먹거리 방송들은 별로 인기를 끌지 못할 겁니다. SNS 유저들은 맛집들을 자랑하지 못할 겁니다. 먹거리 방송 시청자들은 허기가 사라지지 않기 원할 겁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허기는 부정적입니다. 결국 인간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언젠가 허기를 느낍니다. 유기체 동물로서 인간은 먹고 살아야 합니다. '살기 위해 먹는가, 먹기 위해 사는가'라는 농담은 재미있으나, 인간이 먹지 않..
"인간의, 인간에 관한, 인간에 대한 SF는 없다." 예전에 이렇게 alt.SF 웹진은 주장한 적이 있습니다. 2014년 8월 기사에서 alt.SF 웹진은 '결국 사이언스 픽션 역시 보편적인 인간을 이야기한다'는 주장에 크게 반박했습니다. 이런 주장은 사이언스 픽션이 자랑하는 정수를 버립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개인과 개인 수준을 넘어 인간 사회, 인류라는 종, 우주 어딘가에 존재할 수 있는 어떤 지성, 아니면 우주 그 자체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장르입니다. 만약 사이언스 픽션이 오직 보편적인 인간들만 이야기한다면, 이건 망원경으로 샬레를 들여다보는 행위와 다르지 않을 겁니다. 사이언스 픽션이 자랑하는 재미는 심지어 마지막 한 방울조차 SF 요소에 들었습니다. 이렇게 alt.SF 웹진은 주장하고 보편적인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