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윌리엄 모리스 (35)
SF 생태주의
소설 를 일종의 환상 문학으로 간주할 수 있을까요.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어느 이상한 세계(미래)를 여행합니다. 이건 만큼 비일상적인 요소이고, 당연히 는 환상 문학에 속할 겁니다. 이 책은 판타지 소설이나 SF 소설보다 사상/철학 서적에 가까우나, 그렇다고 해도 비평가들은 이 소설이 드러내는 환상 문학적인 면모를 간과하지 못하겠죠. (게다가 처럼 정말 SF 소설이라고 강렬하게 주장하는 소설도 있고요.) 윌리엄 모리스는 여러 환상 소설들을 썼고, 저는 이것들이 후대에 영국 판타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들었습니다. 환상 소설들을 쓰는 작가답게 윌리엄 모리스는 에서 '이상한 왕국'을 이야기합니다. 소설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왜 사람들이 환상 문학을 추구하는지 묻습니다. 우리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현실과..
[나뭇잎 돛처럼, '야생'을 걷는 자들에게 야생은 숲입니다. 하지만 숲은 야생의 전부가 아니겠죠.] 윌리엄 모리스가 쓴 소설 는 우리나라에서 로 번역되었습니다. 아마 어떤 독자는 어니스트 칼렌바흐가 쓴 소설 와 헛갈릴지 모릅니다. 게다가 많은 창작물들이나 철학 서적들은 '에코토피아'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하죠. 생태적인 낙원을 강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들을 고려한다면, 칼렌바흐가 정말 멋진 용어를 대중화한 것 같습니다.) 를 번역한 박홍규 교수는 이 소설이 19세기에서 드물게 생태 철학을 강조하는 유토피아 로망스이기 때문에 일부러 저렇게 번역했다고 밝혔습니다. 확실히 19세기 이전에 흔히 알려진 유토피아 소설들은 생태 철학을 그리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자연 환경을 우선적으로 내세우지 않았죠...
윌리엄 모리스의 는 생태 사회주의의 고전으로 불립니다. 원래 이 책의 제목은 이지만, 번역자 박홍규 교수는 '자연 환경을 강조하는 유토피아 로망스'라는 관점을 고려했고 그래서 라고 번역했다고 밝혔습니다. 비슷한 시기의 다른 사회주의 유토피아 소설들, 이나 와 달리 는 정말 자연 환경을 강조합니다. 은 공산주의 생산력과 자연 환경의 한계를 이야기합니다. 는 산업 군대를 강조하기 때문에 자연 환경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반면, 는 매연과 산업 폐기물을 부정하고 싱그럽고 울창한 숲을 찬양합니다. 우스갯소리를 하자면, 우드 엘프의 원조는 존 로널드 톨킨이 아니라 윌리엄 모리스일 겁니다. 소설 속의 사회주의자들은 마음 속 깊이 맑은 강물과 목가적인 초원과 울창한 숲을 사랑하기 때문이죠. 아쉽게도 모리스의 사상은..
종종 같은 소설은 소설이 아니라 사상 철학 서적이라는 푸념을 받습니다. 사실 이런 소설들은 극적인 전개나 줄거리보다 특정한 사상을 길게 풀어놓는 것에 주목하죠. 같은 소설도 겉보기에는 해양 모험물이지만, 그 알맹이는 사상 철학 서적에 가깝습니다. 주인공 선원이 고래 머리를 보며 칸트를 운운하는 장면은 거의 뭐…. 따지고 보면, 윌리엄 모리스의 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의 우리말 번역자 박홍규 교수는 아예 사회주의 철학 설명까지 달아놨습니다. 사실 박홍규 교수가 이 소설을 번역한 이유는 그저 소설을 출판하고 싶기 때문이 아니라 윌리엄 모리스의 생애와 사상을 널리 퍼뜨리기 원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윌리엄 모리스 본인도 딱히 소설을 쓰고 싶다거나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없었을 겁니다. 윌리엄 ..
와 는 모두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이야기합니다. 자유 시장이 사라지고, 착취와 오염이 줄어들고, 사람들은 평등하게 일하고, 노동의 진정한 가치가 살아나고, 이런 이야기들이 전개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두 소설의 사회주의 체계가 완전히 똑같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런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과정 역시 다릅니다. 는 정당들이 평화롭게 사회주의 이행을 건설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자본주의가 사라졌다고 말합니다. 반면, 는 그렇게 평화롭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인민들이 평등한 구조를 원해도 기득권은 권력을 쉽게 내려놓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엄청난 무장 투쟁이 벌어졌고, 피비린내와 화약 냄새가 진동하는 끝에 인민들은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 있었습니다. 의 방법이 더 좋을 듯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처럼 흘러갈지 모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