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SF 평론이 장르보다 '매체와 형식'에 치중한다면…. 본문
[킴 스탠리 로빈슨의 '강연', 옥타비아 버틀러의 '소설', 아마노 코즈에의 '만화'는 다른 형식들에 기반합니다.]
다른 많은 생명체들처럼, 우리 인간에게는 몸이 있습니다. 우리는 특정한 형태를 유지해야 하고, 이것을 위해 우리는 화학적인 질서를 특정하게 조절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영양분을 소모해야 합니다. 영양분을 소모하기 위해 우리는 먹어야 합니다. 우리는 육체적인 존재입니다. 모든 인간은 육체적인 존재입니다. 극지 이누이트 할머니부터 아마존 열대 밀림 소녀까지, 예외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포스트 모더니즘과 해체 이론이 상대성과 차이를 떠든다고 해도, 여기에는 상대성과 차이가 없습니다. 예외 없이, 인간은 육체적인 존재입니다. 우리에게는 특정한 형태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뭔가를 만든다고 해도, 여기에는 특정한 형태, 물질성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특정한 형태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뭔가를 만든다고 해도, 여기에는 특정한 형태, 물질성이 있습니다. 사이언스 픽션 역시 예외가 되지 못합니다. 사이언스 픽션에게는 특정한 형태, 물질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이언스 픽션 개념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이언스 픽션을 다루기 원한다면, 우리는 물질성에 기반해야 합니다. 특정한 형태 및 형식 없이, 사이언스 픽션은 존재하지 못합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대화, 산문, 그림, 동영상, 조각, 기타 등등에 기반해야 합니다.
이런 형태들과 형식들과 매체들 없이, 사이언스 픽션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육체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특정한 형태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사이언스 픽션을 다룰 때, 우리는 사이언스 픽션에게 특정한 형태, 형식, 매체를 부여합니다. 대학교 강당에서 킴 스탠리 로빈슨이 소설 <에코토피아>와 흡혈귀 자본주의를 강연하는 동안, 사이언스 픽션은 말(語)에 기반합니다. 옥타비아 버틀러가 흑인 여자 초인이 표범으로 변신한다고 쓰는 동안, 사이언스 픽션은 소설에 기반합니다. 아마노 코즈에가 화성 베네치아와 운디네를 그리는 동안, <아리아>는 만화에 기반합니다. 이렇게 사이언스 픽션들은 특정한 형태들, 형식들, 매체들에 기반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것들을 형태나 형식이나 매체나 다른 뭔가라고 부른다고 해도, 뭐라고 우리가 부른다고 해도, 사이언스 픽션들이 형식에 기반할 때, 우리는 사이언스 픽션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SF 독자가 혼자 머릿속에서 생체 우주선을 상상한다고 해도, 이것 역시 어떤 형식에 기반할 겁니다. SF 개념 그 자체는 형식들에서 자유로우나, 우리가 사이언스 픽션을 다룰 때, 사이언스 픽션은 형식들에 기반해야 합니다. 그래서 공룡들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 <쥬라기 월드>는 많은 제작 비용을 투자해야 합니다. 컴퓨터가 고급 사양이라면, 게임 플레이어는 행성 4546B 해저 풍경을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을 겁니다. 컴퓨터 없이, 외계 해저 풍경을 감상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형식에 기반해야 합니다. 형식 없이, 우리는 사이언스 픽션을 다루지 못합니다. 우리가 사이언스 픽션을 생각하고, 말하고, 쓰고, 그리고, 기타 등등 다루고 싶다면, 형식은 필수적입니다. 이렇게 사이언스 픽션과 형식들이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사이언스 픽션을 만들고 감상하는 동안, 우리는 사이언스 픽션 그 자체보다 형식에 치중할지 모릅니다. 아니면 특정한 형식을 위해 우리는 사이언스 픽션을 이용할지 모릅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마스터 오브 오리온>을 플레이한다고 해도, 게임 플레이어는 <마스터 오브 오리온>이 스페이스 오페라보다 4X 게임에 훨씬 가깝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이런 게임 플레이어는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 소설들을 읽지 않을 겁니다.
아무리 소설 <마일즈의 전쟁>이 재미있는 스페이스 오페라라고 해도, <마일즈의 전쟁>은 4X 게임이 아닙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 소설들보다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을 좋아할 겁니다. 이 게임은 중세 유럽 판타지이나, 장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에 바이오스피어 건물이 없다고 해도, 바이오스피어 건물보다 형식(4X 비디오 게임)은 훨씬 중요합니다. 사이언스 픽션과 4X 게임이 똑같이 '장르'가 된다고 해도, 사이언스 픽션은 내용적인 장르이고, 4X 게임은 형식적인 장르입니다. 4X 게임이라는 형식(장르)이 똑같다면, 내용이 스페이스 오페라가 되거나 중세 유럽 판타지가 된다고 해도, 게임 플레이어는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비단 게임만 아니라 다른 형태들, 형식들, 매체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평론을 볼까요. "단편 소설 <신천지의 악몽>에서 소설 시점은 인간을 조명한다. 소설 속에는 외계 생명체가 있으나, 소설 시점은 외계 생명체 시점을 조명하지 않는다. 독자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독자는 인간 등장인물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외계 생명체를 바라본다. SF 소설 속에서 시점은 이런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자, 이건 SF 평론입니다. 단편 소설 <신천지의 악몽>은 사이언스 픽션입니다. 이 평론이 사이언스 픽션을 말하기 때문에, 이 평론은 SF 평론이 됩니다. 하지만 이게 정말 SF 평론인가요? 만약 평론가가 형태, 형식, 매체에 치중한다면, 평론가가 SF 소설을 말한다고 해도, 이건 SF 평론이 아닐지 모릅니다.
이런 평론은 어떤가요? "소설 <드래곤 라자>에서 소설 시점은 인간을 조명한다. 소설 속에는 유사 인간 종족이 있으나, 소설 시점은 유사 인간 종족 시점을 조명하지 않는다. 독자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독자는 인간 등장인물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유사 인간 종족을 바라본다. 판타지 소설 속에서 시점은 이런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이건 SF 평론이 아닙니다. 소설 <드래곤 라자>는 중세 유럽 판타지입니다. 그래서 이 평론은 판타지 평론입니다. SF 평론과 판타지 평론은 다릅니다. SF 평론과 판타지 평론은 달라야 합니다. 소설 <드래곤 라자>에는 우주선 항해가 없고, 유전자 조작 동물이 없고, 새로운 진화 역사가 없습니다. 하지만 <신천지의 악몽> 평론과 <드래곤 라자> 평론은 형식적으로 똑같습니다.
[늪지 행성과 수경 재배 농장은 중세 유럽 판타지가 아닙니다. 하지만 SF 설정은 중요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SF 평론가는 또 다른 평론을 쓸 수 있습니다. "소설 <메트로 2033>은 기나긴 여정을 묘사한다. 방대한 지하철 던전 속에서 소설 주인공 아르티옴은 기나긴 여정을 떠난다. 기나긴 여정 동안, 아르티옴은 수많은 등장인물들을 만난다. 이 소설이 기나긴 여정을 묘사하고 수많은 등장인물들을 보여줌에도, 이 소설은 아르티옴 시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소설 <메트로 2033>은 어떻게 주인공 시점이 기나긴 여정과 수많은 등장인물들을 다루는지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은 오직 전지적 작가 시점만 기나긴 여정을 묘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장소들과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전지적 작가 시점이 종횡무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고정 관념이다. 소설 <메트로 2033>처럼, 주인공 시점은 기나긴 여정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이런 <메트로 2033> 평론은 SF 평론 같습니다. 하지만 이건 어떤가요. "소설 <드래곤 라자>는 기나긴 여정을 묘사한다. 방대한 바이서스 대륙에서 소설 주인공 후치 네드발은 기나긴 여정을 떠난다. 기나긴 여정 동안, 후치 네드발은 수많은 등장인물들을 만난다. 이 소설이 기나긴 여정을 묘사하고 수많은 등장인물들을 보여줌에도, 이 소설은 후치 시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소설 <드래곤 라자>는 어떻게 주인공 시점이 기나긴 여정과 수많은 등장인물들을 다루는지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은 오직 전지적 작가 시점만 기나긴 여정을 묘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장소들과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전지적 작가 시점이 종횡무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고정 관념이다. 소설 <드래곤 라자>처럼, 주인공 시점은 기나긴 여정을 이야기할 수 있다."
위 문단은 <메트로 2033>과 <드래곤 라자> 평론을 보여줍니다. 두 평론은 형식적으로 똑같습니다. <메트로 2033>이 포스트 아포칼립스이고, <드래곤 라자>가 중세 유럽 판타지임에도, 두 평론은 형식적으로 똑같습니다. 심지어 평론가는 장르와 매체를 뛰어넘고 <메트로 2033>과 <울티마 언더월드>를 비교할 수 있습니다. <울티마 언더월드>는 중세 유럽 판타지입니다. 제목처럼, 이 게임은 언더월드, 지하 던전을 보여줍니다. 아주 방대한 지하 던전 속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주인공 시점을 이용해 기나긴 여정을 떠나고, 수많은 장소들에 들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메트로 2033>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방대한 지하철 던전 속에서 독자는 주인공 시점을 이용해 기나긴 여정을 떠나고, 수많은 장소들에 들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메트로 2033>과 <울티마 언더월드>에는 똑같은 형식이 있습니다. 그건 방대하고 기나긴 던전 탐험과 주인공 시점입니다. 이런 형식이 똑같기 때문에, 평론가는 <메트로 2033>과 <울티마 언더월드>를 비교할 수 있습니다. 만약 평론가가 <메트로 2033> 평론과 <울티마 언더월드> 평론을 쓴다면, 두 평론은 형식적으로 똑같을지 모릅니다. 내용적으로 두 평론은 다를 겁니다. <울티마 언더월드>에서 게임 주인공은 칼라시니코프 소총으로 무장하지 않습니다. <메트로 2033>에는 두족류 수중 괴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내용이 다르다고 해도, 형식은 똑같을 수 있습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 평론과 중세 판타지 게임 평론은 형식적으로 똑같을 수 있습니다. 만약 두 평론이 (형식적으로) 똑같다면, 아무리 평론가가 <메트로 2033>을 떠들거나 <울티마 언더월드>를 떠든다고 해도, 이게 SF 평론이 되거나 판타지 평론이 되나요? 흔히 우리는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골수 SF 독자들은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를 가르기 원합니다. 심지어 골수 SF 독자들은 오직 소설만 사이언스 픽션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alt.SF 같은 까탈스러운 골수 팬은 소설이 최고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소설 평론과 게임 평론은 비슷해지거나 똑같아질 수 있습니다. 평론은 장르와 매체를 뛰어넘고 여러 창작물들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첫째 문단에서 저는 형태, 형식, 매체를 이야기했으나, <메트로 2033>과 <울티마 언더월드>가 보여주는 것처럼, 평론은 형태, 형식, 매체를 뛰어넘고 '소설' <메트로 2033>과 '게임' <울티마 언더월드>를 함께 묶을 수 있습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비일상적인 상상력으로 시대 격차와 서구 근대화를 강조하나, 사이언스 픽션에는 오직 이것들만 있지 않습니다. 사이언스 픽션에는 다양한 측면들이 있고, 이것들은 장르와 매체를 건너뛰고 다른 것들과 만날 수 있습니다.
다시 '매체에 치중하는' 평론을 볼까요. "소설 <노인의 전쟁>에서 소설 주인공은 농담들을 늘어놓는다. <노인의 전쟁>에서 소설 시점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이다. 소설 화자와 소설 시점 사이는 상당히 가깝다. 소설 시점과 소설 화자는 밀착했다. 소설 화자가 웃긴 것들을 생각하기 때문에, 시종일관 <노인의 전쟁>은 해학적인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다. 만약 <노인의 전쟁>이 3인칭 관찰자 시점을 선택했다면, 아무리 소설 주인공이 만담들을 떠든다고 해도, 이런 해학적인 분위기는 많이 옅어졌을지 모른다. <노인의 전쟁>은 1인칭 소설 화자와 해학적인 분위기를 훌륭하게 연결한다." 이건 SF 평론입니다.
하지만 이건 어떤가요? "소설 <드래곤 라자>에서 소설 주인공은 농담들을 늘어놓는다. <드래곤 라자>에서 소설 시점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이다. 소설 화자와 소설 시점 사이는 상당히 가깝다. 소설 시점과 소설 화자는 밀착했다. 소설 화자가 웃긴 것들을 생각하기 때문에, 시종일관 <드래곤 라자>는 해학적인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다. 만약 <드래곤 라자>가 3인칭 관찰자 시점을 선택했다면, 아무리 소설 주인공이 만담들을 떠든다고 해도, 이런 해학적인 분위기는 많이 옅어졌을지 모른다. <드래곤 라자>는 1인칭 소설 화자와 해학적인 분위기를 훌륭하게 연결한다."
[이 게시글은 <드래곤 라자>를 열심히 떠들었습니다. 자, 이건 <드래곤 라자>가… 아닌가요?]
이렇게 <노인의 전쟁> 평론과 <드래곤 라자> 평론은 똑같아질 수 있습니다. 전자가 스페이스 오페라이고, 후자가 중세 유럽 판타지라고 해도, 평론은 장르를 뛰어넘고 매체 형식에 치중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평론가는 스페이스 오페라와 중세 유럽 판타지와 주류 문학과 로맨스 장르를 함께 묶을 수 있습니다. 만약 평론가가 SF 그 자체만 평가한다면, 평론가는 이런 '함정'에 빠질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게 함정이 아니라고 생각할 겁니다. 우리가 스페이스 오페라와 중세 유럽 판타지와 소설과 비디오 게임을 함께 이야기한다고 해도, 왜 이게 잘못인가요? 이 블로그 역시 장르와 매체를 뛰어넘고 다양한 창작물들을 함께 이야기합니다. 이건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SF' 평론가가 근본적으로 'SF'를 말하기 원한다면, SF 평론가는 SF 그 자체보다 어떻게 내용과 형식이 결합하고 사이언스 픽션을 만드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SF 평론가가 어떻게 내용과 형식이 결합하고 사이언스 픽션을 만드는지 파악하기 원한다면, SF 평론가는 사이언스 픽션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합니다. SF 평론가가 사이언스 픽션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원한다면, SF 평론가는 어떻게 사이언스 픽션이 나타나기 시작했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사이언스 픽션에게는 생산 조건이 있습니다. SF 평론가는 생산 조건을 파악해야 합니다.
※ 이런 게시글은 날로 먹는 게시글에 가깝습니다. Ctrl+C, Ctrl+V들이 많기 때문에, 분량은 쭉쭉 늘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게시글과 횟집 사이에는 커다란 유사성이 있습니다. 솔직히 학생들이 문학 수업 과제들을 작성할 때, 학생들은 소설 문구들을 인용하고 분량을 쉽게 늘릴 수 있습니다. 특히, 시(詩)에 여백들이 많기 때문에, 시는 최고입니다. 아, 물론 문학 수업 강사들 역시 이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Ctrl+C, Ctrl+V는 눈치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