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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SF 소설이 <기후 변화의 심리학>에 보탬이 될 수 있을까 본문

생태/환경 보호

SF 소설이 <기후 변화의 심리학>에 보탬이 될 수 있을까

OneTiger 2018. 8. 3. 23:12

조지 마셜이 쓴 <기후 변화의 심리학>은 왜 사람들이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지 논의합니다. 숱한 과학자들이 기후 변화가 위험하다고 경고함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기후 변화 이론을 회의적이거나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그들은 기후 변화 이론을 믿지 않고, 과학자들을 불신합니다. 그들은 지구 기후 체계에 아무 이상이 없다고 생각하고, 온실 가스가 환경 재앙을 부를 거라는 소식에 두 귀를 막습니다. 그들은 기후 변화 이론이 그저 지루하고 소모적인 논란거리라고 생각해요.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요? 왜 인류 문명이 전대미문의 행성적인 환경 재앙에 직면했음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기후 변화를 외면할까요? <기후 변화의 심리학>은 여러 각도들에서 이런 물음에 대답합니다. 이 책은 분명히 생태학 서적에 속하겠으나, (제목처럼) 생태학보다 심리학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조지 마셜은 온갖 통계 자료들이나 과학적인 분석 자료들을 늘어놓지 않습니다. 조지 마셜은 지구 생태계나 생물 다양성을 늘어놓지 않습니다. 저자는 기후 회의론자들(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왜 기후 회의론자들이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지 귀를 기울입니다.



<기후 변화의 심리학>은 모두 42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것들 중 대략 40장을 이야기하는 동안 조지 마셜은 왜 기후 회의론자들이 환경 재앙을 무시하는지 알려줍니다. 환경 운동가들이나 과학자들은 기후 변화가 아주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이론이라고 생각하나, 기후 회의론자들은 논리나 분석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기후 회의론자들을 지배하는 요소는 과학이나 논리나 분석이 아니라 감성이나 신념이나 주관적인 경험입니다. 인간은 별로 논리적인 동물이 아닙니다. 인간은 꽤나 감성적인 동물이죠. 아무리 어떤 이론이 논리적이라고 해도, 만약 그게 어떤 사람의 감성이나 신념이나 주관적인 경험에 맞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그 이론을 무시할 겁니다. 그 사람은 최선을 다해 트집을 잡을 테고, 그 이론을 헐뜯고 비웃고 야유할 겁니다.


기후 회의론자들은 겨울철의 고드름을 가리키고, 아직 지구가 뜨거워지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아무리 과학자들이 북극 빙하 자료들을 들이댄다고 해도, 기후 회의론자는 겨울철의 고드름을 가리킬 겁니다. 아무리 객관적인 자료들조차 개인적인 경험을 이기지 못합니다. 게다가 환경 운동가들은 너무 비극을 강조합니다. 환경 운동가들은 당장 세상이 망하고 모두가 죽을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런 묵시적인 외침은 사람들을 자극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밝고 화려하고 화기애애하고 희망찬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환경 운동가들의 목소리는 쉽게 퍼지지 못합니다.



대기업들의 광고들은 멋지고 화려합니다. 사람들은 그런 크고 화려하고 멋진 광고들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환경 운동가들은 자꾸 재앙과 멸망과 종말을 강조합니다. 사람들은 그런 소리들을 듣기 싫어합니다. 그래서 대기업들의 광고를 널리 인기를 끌고, 환경 운동가들의 외침은 멀리 퍼지지 못합니다. 이는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자료에 관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감성적이고 주관적인 신념에 관한 문제입니다. 환경 운동가들이 정말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다면, 환경 운동가들은 좀 더 밝고 재미있고 화사한 뭔가를 건네야 할 겁니다.


이 책을 읽었을 때, 저는 SF 소설이나 SF 게임을 머릿속에 떠올렸습니다. SF 세상에는 자연 환경을 보존하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가령, 4X 행성 게임 <시드 마이어의 알파 센타우리>에는 생태주의를 추구하는 가이아의 양녀들이라는 세력이 나옵니다. <알파 센타우리>에서 가이아의 양녀들은 실질적인 주인공 세력입니다. 게임 <판도라: 퍼스트 콘택트>에 나오는 테라 살붐 역시 마찬가지죠. 이런 게임들을 이용해 환경 운동가들이 환경 보존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제임스 카메론이 <아바타>를 만든 이유는 그런 것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좀 더 깊고 사변적인 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우리는 킴 스탠리 로빈슨이 쓴 <오로라> 같은 소설을 읽을 수 있고요.



만약 환경 운동가들의 외침이 너무 부담스럽다면, <판도라: 퍼스트 콘택트>나 <아바타>나 <오로라> 같은 SF 창작물들은 훨씬 재미있는 매개체가 될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이런 SF 창작물들을 통해 생태주의를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고요. 사실 킴 스탠리 로빈슨 같은 SF 작가는 어떻게 우리가 생태적인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지 꾸준히 강연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강연들은 환경 운동가들이 외치는 묵시적인 경고보다 나을지 모릅니다. 무엇보다 조지 마셜은 환경 운동가들이나 과학자들이 공동체, 연대, 희망, 활기 같은 대중적인 개념을 이용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환경 운동가들이 자꾸 절망적인 지구를 들이대거나 과학자들이 계속 딱딱한 자료들을 밀어넣는다면, 기후 회의론자들은 그것들을 외면할지 모릅니다.


당장 먹기에 곶감이 달다는 속담처럼, 아무리 묵시적인 경고나 분석적인 자료들이 중요하다고 해도, 환경 운동에는 좀 더 대중적이고 친근한 매개체가 필요할지 몰라요. 생태 유토피아를 그리는 SF 창작물은 그런 매개체가 될 수 있을지 모르죠. 문제는 예전에 엘리너 아나슨이 지적한 것처럼 그런 유토피아 소설들이 디스토피아 소설들이나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들보다 드물다는 사실입니다. 킴 스탠리 로빈슨 같은 작가는 상대적으로 드물죠. 게다가 4X 전략 게임들 중 <판도라: 퍼스트 콘택트>처럼 생태 유토피아를 이룩하는 게임 역시 드뭅니다.



저는 킴 스탠리 로빈슨 같은 SF 작가나 <판도라: 퍼스트 콘택트> 같은 SF 게임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런 작가들이나 게임들의 생태 철학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고, 이런 작가들이나 게임들이 정말 좋은 매개체가 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킴 로빈슨 같은 작가들이 늘어난다면, 그런 현상은 환경 운동에 좀 더 보탬이 될 수 있을지 모르죠. 비록 <기후 변화의 심리학>에는 SF 이야기가 많지 않고, 게다가 그것조차 부정적입니다. (정말 말년에 마이클 크라이튼은 노망이 난 것 같아요.) 하지만 SF 세상에는 환경 운동을 긍정하는 사례들 역시 있고, 저는 그런 사례들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 <기후 변화의 심리학>에는 한 가지 커다란 오류가 있습니다. <기후 변화의 심리학>은 거의 40장에 걸쳐 이런저런 상황들을 살핍니다. 하지만 조지 마셜은 한 번도, 단 한 번도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비판하지 않습니다. 사실 기후 회의론자들이 늘어나는 진짜 이유는 환경 운동가들이 자본주의를 비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유주의 진영에서 앨 고어는 기후 변화를 비판하는 대표적인 인사입니다. <기후 변화의 심리학> 역시 여러 차례 앨 고어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앨 고어가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비판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앨 고어는 아주 열심히 자본주의를 밀어줍니다. 당연히 기후 회의론자들은 앨 고어가 대기업을 지원하는 동시에 대기업을 비난한다고 생각할 겁니다.


기후 변화를 정말 비판하고 싶다면, 우리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파고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환경 운동가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그래서 기후 변화 담론은 피상적인 수준에서 그칩니다. 그건 더 많은 기후 회의론자들을 양산하고요. 조지 마셜은 이런 상황을 절대 이야기하지 않는군요. 조지 마셜 역시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아직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킴 스탠리 로빈슨 같은 작가는 비단 기후 회의론자들만 아니라 조지 마셜에게도 필요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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