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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 판타지/어떻게 읽는가

SF 소설을 상상하고 해석하는 방법들

OneTiger 2018. 3. 17. 09:55

구글링 이미지에서 <페르디도 거리의 기차역>을 검색하면, 다양한 그림들을 볼 수 있습니다. 모두 뉴크로부존을 묘사했으나, 풍경들은 각자 다릅니다. 어떤 그림은 19세기 런던의 전형적인 한 장면을 뻥튀기하고, 뉴크로부존에 덧붙입니다. 이런 그림 속에서 건물들이나 구조물들이나 다리들은 훨씬 웅장하나, 기본적인 분위기는 19세기 런던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뉴크로부존이 이렇게 생겼다고 상상했습니다. 차이나 미에빌이 영국 작가이고 런던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저는 뉴크로부존이 비틀리고 과장된 19세기라고 상상했어요.


하지만 어떤 그림은 19세기보다 20세기 초기 같은 느낌을 풍깁니다. 규모는 웅장하나, 너무 삭막하고, 사이언스 판타지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요. 어떤 그림은 높은 탑들과 아파트들을 하늘로 쭉쭉 세우고, 좀 더 판타지 같은 느낌을 강조하죠. 어떤 그림은 정부 건물과 요란한 집들과 휘어진 철도를 보여주고, 색감이 고색창연합니다. 어떤 그림은 건물들보다 전투 비행선들과 중무장한 병사들을 보여줍니다. 심지어 어떤 그림은 스팅펑크보다 사이버펑크에 가깝습니다. (http://fav.me/d7ugr3y) 아니, 솔직히 작화가가 너무 미래적으로 그리지 않았나요. 이건 <페르디도 기차역>이 아니라 <스노 크래시> 같은 소설에 훨씬 어울리는 듯하군요.



비단 이런 그림들만 아니라 소설 표지 그림들 역시 다양합니다. 가루다나 케프리 같은 유사 인간 종족을 묘사하는 방법들 역시 서로 다릅니다. 소설은 하나이나, 그림들은 다양합니다. 똑같은 책을 읽었으나, 독자들이 서로 다른 풍경들을 상상했다는 뜻입니다. 이는 소설이 드러내는 장점이거나 단점일 수 있습니다. 작가는 어떤 느낌이나 연상을 제공하고, 독자들은 서로 다르게 해석합니다. 덕분에 독자는 자유롭게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소설을 썼을 때 작가가 떠올린 연상이나 느낌과 다를지 모릅니다.


독자가 다르게 해석한다고 해도, (소설 내용을 왜곡하지 않는다면) 작가는 그런 해석에 참견할 권한이 없을지 모릅니다. 다양한 표지 그림들과 팬 아트들을 봤을 때, 차이나 미에빌은 뭐라고 생각했을까요. 사람들이 서로 다르게 뉴크로부존을 해석했기 때문에 화가 나거나 당황했을까요. 그렇지 않았을 겁니다. 그건 환상 소설이 짊어져야 하는 숙명(?)일지 몰라요. 아니, 숙명은 너무 거창한 표현이군요. 그걸 뭐라고 부르든, 하드 SF 소설을 읽거나 사이언스 판타지를 읽은 독자는 작가가 제시한 연상이나 느낌에서 얼마든지 멀어질 수 있어요. 지금까지 SF 독자들은 그런 길을 걸었습니다.



소설은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소설을 해석할 때, 독자는 자신의 경험에 의존해야 합니다. 작가는 거기에 일일이 간섭하지 못하고, 다양한 뉴크로부존들을 묘사한 삽화들처럼 작가와 독자는 서로 다른 그림을 그릴지 모릅니다. 문제는 SF 작가가 가상의 공간이나 생명체를 상상한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작가가 보르네오 밀림을 쓴다고 가정하죠. 보르네오 밀림은 진짜 존재하는 공간입니다. 작가와 독자가 서로 다른 풍경을 상상한다고 해도, 똑같이 보르네오 밀림을 경험할 수 있고, 그래서 작가와 독자가 비교적 비슷한 풍경을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SF 작가가 쥐라기 숲 속과 스테고사우루스를 묘사한다고 가정하죠. 스테고사우루스나 쥐라기 숲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스테고사우루스의 불완전한 골격이나 나뭇잎 화석만 볼 수 있을 뿐입니다. 당연히 고생물학자들은 서로 다르게 스테고사우루스를 고증합니다. 공룡 소설을 쓰는 작가 역시 자신만의 스테고사우루스를 고증할 테고, 독자 역시 그렇겠죠. 만약 SF 작가가 우주 구축함을 묘사한다면? 우주 구축함은 완전히 존재하지 않는, 진짜 상상의 영역입니다. 독자는 (작가가 연상한 것과 아주 다른) 우주 구축함을 상상할지 모릅니다.



드래곤이나 그리폰 같은 판타지는 신화에 바탕을 둡니다. 그래서 서사 판타지 독자는 좀 더 쉽게 소설을 해석할 수 있을지 모르죠. 그리폰은 가상의 동물입니다. 하지만 고대 사람들은 어떻게 그리폰이 생겼는지 묘사했고, 판타지 작가들과 독자들 역시 그걸 참고합니다. 그래서 판타지 작가와 독자는 비교적 비슷한 그림을 연상할 수 있을 겁니다. 반면, 우주 구축함이나 외계 생명체는 그렇지 않고, SF 독자는 소설을 해석하기가 비교적 어려울지 모릅니다. SF 작가가 그저 '우주선이 어두운 우주를 날아간다'고 쓴다면, 독자들은 서로 다른 우주선을 떠올릴 겁니다. 누군가는 길다란 우주선을 떠올릴 테고, 누군가는 원반 우주선을 떠올릴 테고, 누군가는 구체 우주선을 떠올릴지 모르죠.


심지어 SF 작가는 우주선이 무슨 모양인지 아예 설명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때 독자는 자신의 경험에 최대한 의존해야 합니다. 솔직히 SF 소설을 읽을 때마다, 제대로 소설을 해석했거나 작가의 상상력을 제대로 따라갔는지 저는 의문이 듭니다. 과학 잡지나 SF 게임이 제시하는 그림들은 좋은 참고 자료가 될 수 있으나, 하드 SF 작가들은 그런 것을 훨씬 뛰어넘고 정말 파격적인 상상력을 내놓습니다. 저는 그걸 따라가지 못하겠어요. 그래서 SF 소설은 어렵죠. 어려움을 따라가지 못할 때, 저는 책을 덮거나 대충 넘어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SF 소설은 어려운 대신 재미있고, 무엇보다 SF 소설이 선보이는 재미를 다른 곳에서 찾기 어렵습니다. 외계 행성에 사회주의 문명을 건설하거나 거대 괴수를 연구하는 이야기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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