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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판타지와 제2의 천성으로서 신화 본문

SF & 판타지/외계인과 이방인

SF/판타지와 제2의 천성으로서 신화

OneTiger 2021. 6. 2. 20:00



"습관은 제2의 천성이다." 이 문구에서 습관은 오래된 것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습관이 제2의 천성이고, 오래된 것이 습관이기 때문에, 오래된 것은 제2의 천성이 됩니다. 만약 오랜 동안 어떤 사람이 문학들을 읽는다면, 이건 습관이 될 테고, 이 사람에게 독서가 제2의 천성이기 때문에, 이 사람은 책벌레, 책덕후가 될 겁니다. 이 사람이 책덕후이기 때문에, 만약 이 사람이 문학들을 읽지 않는다면, 책덕후에게 이 상황은 어색하고 낯설 겁니다. 제2의 천성(독서) 없이, 책덕후는 어색하고 낯선 상황에 부딪힐 겁니다. 비단 독서만 아니라 다른 습관들, 다른 오래된 것들 역시 비슷합니다.

 

만약 오랜 동안 어떤 사람이 스페이스 오페라를 좋아했다면, 이 사람에게 이건 습관이 될 테고, 이 사람에게 SF 덕질이 제2의 천성이기 때문에, 이 사람은 SF 팬덤에 속할 겁니다. 이 사람이 SF 팬덤에 속하기 때문에, 만약 이 사람이 스페이스 오페라를 즐기지 않는다면, SF 팬에게 이 상황은 어색하고 낯설 겁니다. 아무리 다른 문화가 감동적이고 훌륭하다고 해도, 비록 어떤 스페이스 오페라들이 그저 3류 모험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해도, 제2의 천성 때문에, SF 팬은 감동적이고 훌륭한 다른 문화들보다 3류 우주 모험 이야기를 원할지 모릅니다. SF 팬은 오래된 것을 쉽게 버리지 못합니다.



아무리 어떤 예술 영화나 어떤 운동 경기나 어떤 뮤지컬이나 어떤 아이돌 노래가 감동적이고 훌륭하다고 해도, 아무리 이것들이 엄청난 인기를 끈다고 해도, 비록 스페이스 오페라가 보잘것없는 모험 이야기라고 해도, 제2의 천성 때문에, SF 팬은 예술 영화와 운동 경기와 뮤지컬과 아이돌 노래보다 보잘것없는 스페이스 오페라를 원할지 모릅니다. 제2의 천성 때문에, 오랜 동안, SF 팬이 스페이스 오페라를 좋아했기 때문에, SF 팬에게 보잘것없는 우주 모험은 흥미진진한 서사가 될지 모릅니다. 이 관점에서 덕질 역시 습관입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덕질하든, 덕질은 오랜 기간을 가리킵니다.

 

덕질은 짧은 기간보다 오랜 기간을 가리킵니다. "나는 ○○○ 덕후야." 이 문장에서 덕후는 짧은 기간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오랜 기간은 주관적인 기준일 수 있으나, 비록 이게 주관적이라고 해도, 분명히 사람들이 덕후를 언급할 때, 사람들은 덕후가 오랜 기간을 의미한다고 판단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어떤 취향에 입문한다면, 이 사람이 덕후일 수 있나요? 입문자가 덕후일 수 있나요? 글쎄요, 대답은 애매합니다. 반면, 만약 20년 동안 어떤 사람이 어떤 취향을 지속적으로 유지한다면, 이 사람은 덕후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사람을 덕후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덕후는 짧지 않습니다.



덕후는 짧기보다 깁니다. 만약 20년 동안 덕후가 취향을 지속적으로 유지한다면, 심지어 이 덕후는 전문가에 가까울지 모릅니다. 종종 덕후와 전문가를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덕후가 전문가가 되는 것처럼, 오랜 동안 덕후가 취향을 유지하기 때문에, 덕후는 취향을 쉽게 버리지 못할 겁니다. 덕후가 취향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리 다른 문화들이 감동적이고 훌륭하다고 해도, 덕후는 취향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겁니다. 덕질이 오랜 기간을 가리키기 때문에, 덕질은 제2의 천성입니다. 덕질이 제2의 천성이기 때문에, 덕후는 취향을 쉽게 버리지 못합니다. 덕후는 취향과 함께 살아갑니다.

 

만약 덕후가 취향을 잃는다면, 이건 너무 허전하고 막막할 겁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거대 괴수와 우주선 바이오 돔을 좋아합니다. 오랜 동안, 저는 SF 생태학, 가상의 생태학을 좋아했습니다. 비록 오랜 기간이 주관적인 기준이라고 해도, 저는 오랜 동안 제가 SF 생태학, 가상의 생태학을 좋아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오래되었기 때문에, 이건 습관입니다. SF 생태학 덕질이 습관이기 때문에, 저에게 이건 제2의 천성입니다. 저에게 제2의 천성이 있기 때문에, 만약 제가 거대 괴수와 바이오 돔을 포기한다면, 만약 더 이상 제가 SF 생태학, 가상의 생태학을 덕질하지 못한다면, 이건 너무 막막할 겁니다.



만약 제가 오래된 취향을 포기한다면, 이건 너무 너무 허전할 겁니다. 비록 오랜 기간이 주관적이라고 해도, 제 관점에서 오랜 동안 제가 덕질했기 때문에, 만약 이 취향(거대 괴수, 우주선 바이오 돔)이 사라진다면, 이건 너무 허전하고 막막할 겁니다. 이게 그저 개인적인 상황에 불과한가요? 그건 아닙니다. 다른 많은 덕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래된 것이 습관이 되는 것처럼, 덕후들에게 덕질들이 오래된 것이기 때문에, 덕질들은 제2의 천성이 되고, 오랜 동안, 덕후들이 덕질했기 때문에, 만약 더 이상 덕후들이 덕질하지 못한다면, 덕후들은 너무 너무 허전하고 막막하다고 느낄 겁니다.

 

20년 동안, 덕후가 덕질했기 때문에, 덕후 인생에서 덕질은 커다란 비중을 차지합니다. 덕질은 덕후의 일부입니다. 덕질이 제2의 천성이기 때문에, 덕질은 덕후 인생을 구성합니다. 만약 덕후가 덕질하지 못한다면, 덕후의 일부가 사라지기 때문에, 덕후 인생의 일부가 텅 비어버리기 때문에, 덕후는 너무 허전하다고 느낄 겁니다. 덕후 인생에서 덕질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덕후는 취향을 쉽게 버리지 못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제가 거대 괴수와 우주선 바이오 돔을 좋아하지 못한다면, 저는 제 인생이 막막하고 허전하다고 느낄 겁니다. 저는 취향을 버리지 못합니다.



이건 언제나 모든 덕질이 고정적이고 절대적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덕질은 필연적이지 않고 필수적이지 않습니다. 이건 덕질이 오래된 것이기 때문에 덕후가 오래된 것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덕후들은 취향들을 바꾸는지 모릅니다. 언제나 모든 덕후가 취향을 100% 유지하나요? 이게 절대적인 법칙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아이돌 팬은 야구 경기에 푹 빠질 수 있습니다. 뮤지컬 관객은 극장보다 서점을 찾고 문학들에 빠질 수 있습니다. 책벌레는 문학보다 영화에게 관심을 기울일 수 있습니다. 언제나 모든 덕질은 100% 완벽하지 않습니다. 취향은 얼마든지 바뀝니다.

 

저는 제가 우주선 바이오 돔을 계속 좋아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모든 덕질이 100%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어쩌면 저는 우주선 바이오 돔을 버리고 다른 문화를 좋아할지 모릅니다. 저는 제가 우주선 바이오 돔, 인공 폐쇄 생태계 설정을 계속 좋아한다고 장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제가 SF 생태학을 좋아했기 때문에, 저는 가상의 생태학을 계속 좋아할지 모릅니다. 저에게는 이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른 덕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덕질, 취향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나, 오래된 것이 습관이고, 덕질이 제2의 천성이기 때문에, 덕후들은 취향들을 쉽게 버리지 않습니다.



덕질이 제2의 천성이 되는 것처럼, 만약 오래된 것이 습관이라면, 신화와 종교는 어떤가요? 신화와 종교는 오래된 것입니다. 아니, 신화와 종교는 그저 단순한 오래된 것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신화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합니다. 신화는 아주 아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합니다. 신화가 몇 천 년 역사를 자랑하기 때문에, 인류 역사에서 신화는 아주 오래된 것입니다. 심지어 신화는 가장 오래된 것인지 모릅니다. 비록 신화가 가장 오래된 것이 아니라고 해도, 분명히 인류 역사에서 신화는 아주 오래된 것입니다. 신화가 아주 오래된 문화인 것처럼, 기나긴 인류 역사는 유구한 신화와 함께 흐릅니다.

 

만약 오래된 것이 습관이라면, 신화가 아주(가장)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기 때문에, 인류 역사에서 신화가 아주(가장) 오래된 문화이기 때문에, 인류에게 신화는 습관인지 모릅니다. 만약 인류에게 신화가 습관이라면, 이 습관은 제2의 천성일 겁니다. 이건 인류에게 신화가 제2의 천성이라는 뜻입니다. 덕후 인생에서 덕질이 아주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것처럼, 인류 역사에서 신화는 아주 커다란 비중을 차지합니다. 덕질 없이, 덕후가 너무 막막하고 허전하다고 느끼는 것처럼, 신화가 제2의 천성이기 때문에, 만약 인류 문화에서 신화가 사라진다면, 인류는 이게 너무 허전하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만약 인류 문화에서 신화가 사라진다면, 인류는 이게 너무 막막하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덕질이 덕후 인생을 구성하는 것처럼, 신화가 인류 역사를 구성하기 때문에, 덕후가 취향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처럼, 인류 문화는 신화를 쉽게 버리지 못합니다. 인류 문화가 신화를 쉽게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인류 문화는 신화를 계속 붙들기 원합니다. 덕후가 취향을 계속 즐기는 것처럼, 인류 문화는 신화와 함께 흐르기 원합니다. 19세기 근대화 이후, 과학은 종교를 밀어냈습니다. 19세기 근대화 이후, 종교는 전통적인 힘을 잃었습니다. 과거 사회들과 달리, 종교는 진리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종교는 유일한 진리가 아닙니다. 이제 종교는 선택입니다. 과학이 종교를 밀어냈고, 종교가 전통적인 힘을 잃었고, 종교가 유일한 진리를 보장하지 않고, 종교가 선택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신화 시대가 끝났다고 주장하는지 모릅니다. 19세기 근대화 이후, 신화 시대는 끝났고, 과학 시대는 시작했습니다. 과학이 종교를 밀어냈기 때문에, 더 이상 신화 시대에서 인류는 살아가지 않습니다. 이제 과학 시대에서 인류는 살아갑니다. 과학 시대에서 계몽주의는 인류 사회를 뒷받침합니다. 계몽주의가 인류 사회를 뒷받침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사고합니다.



하지만 이게 사실인가요? 정말 신화 시대가 끝났나요? 과학 시대에서 사람들이 논리적으로 사고하나요? 종교보다 계몽주의가 인류 사회를 뒷받침하나요? 습관은 제2의 천성입니다. 신화는 아주 유구한 역사(가장 유구한 역사)를 자랑합니다. 반면, 과학이 유구한가요? 과학이 오래된 것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오히려 과학 역사는 너무 짧습니다. 19세기 근대화 이후, 과학이 본격적으로 발달했기 때문에, 과학 역사는 그저 200년 남짓에 불과합니다. 만약 우리가 17세기 계몽주의, 19세기 고전 과학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과학 역사는 훨씬 짧을 겁니다. 이 상황에서 과학 역사는 100년 남짓입니다.

 

과학 역사가 그저 100년을 넘을 뿐이기 때문에, 아무리 우리가 17세기 계몽주의, 19세기 근대화를 고려한다고 해도, 과학 역사가 그저 200~400년에 불과하기 때문에, 과학은 오래된 것이 아닙니다. 과학은 그저 짧은 것에 불과합니다. 과학과 달리, 신화는 무려 수 천 년을 자랑합니다. 과학은 남짓이라는 단어와 어울리고, 신화는 무려라는 단어와 어울립니다. 과학이 짧기 때문에, 과학은 남짓이고, 신화가 오래된 것이기 때문에, 신화는 무려입니다. 짧은 것이 습관(제2의 천성)일 수 있나요? 짧은 것이 오래된 것을 100% 밀어낼 수 있나요? 만약 이게 가능하다면, 습관은 제2의 천성이 되지 않을 겁니다.



아주 오랜 동안, 덕후가 취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처럼, 아주 오랜 동안, 인류 문화는 신화와 함께 흘렀습니다. 덕질이 덕후 인생을 구성하기 때문에, 덕후가 취향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처럼, 신화가 인류 역사를 구성하기 때문에, 인류 문화는 신화를 쉽게 버리지 못하는지 모릅니다. 인류 문화가 신화를 계속 붙들기 때문에, 아무리 19세기 근대화가 과학을 제시했고 과학이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해도, 여전히 신화 시대에서 인류는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과학 시대는 신화 시대를 완전히 몰아내지 못했는지 모릅니다. 적어도 여전히 인류 문화는 신화와 함께 흐르는지 모릅니다.

 

중세 사회는 신화 사회, 종교 사회였습니다. 중세 사회가 신화 시대였고, 여전히 인류 문화가 신화를 붙들기 때문에, 인류 문화는 중세 사회(신화 시대)를 모방합니다. 인류 문화가 중세 사회를 모방하기 때문에, 여전히 인류 문화가 신화 시대를 붙들기 때문에, 중세 유럽 판타지는 커다란 인기를 끕니다. 과학 시대가 시작했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근대 인간들입니다. 근대 인간과 중세 인간은 다릅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 많은 근대인들은 중세 판타지를 좋아합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드루이드가 대지 모신을 숭배하고 야생 동물로 변신하는 것처럼, 중세 판타지는 신화를 제시합니다.



대지 모신은 신화에 속합니다. 중세 판타지가 중세 사회를 모방하고, 중세 사회가 신화 시대이기 때문에, 중세 판타지는 신화 시대를 재현합니다. 중세 판타지가 신화 시대를 재현하고, 인류 문화가 신화를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중세 판타지를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이건 중세 판타지가 근대 인간을 100% 배제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분명히 계몽주의가 인류 사회를 뒷받침하기 때문에, 역사적인 중세 사회와 달리, 중세 판타지는 계몽주의를 어느 정도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중세 판타지에서 대지 모신은 계몽주의와 함께 살아갑니다. 사이언스 픽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중세 판타지처럼, 사이언스 픽션은 신화 시대를 재현합니다. 신화에서 영웅은 엄청난 능력을 선보이고 어려운 과업을 해결합니다. 신화에서 영웅에게는 기적과 초능력이 있습니다. 스파이더맨은 SF 설정입니다. 방사능 실험 거미가 피터 파커를 물었기 때문에, 스파이더맨은 SF 설정입니다. 스파이더 그웬과 마일즈 모랄레스와 페니 파커(SP//dr) 역시 SF 설정입니다. 장르 명칭처럼, 사이언스 픽션은 사이언스(과학)에게 기반합니다. 사이언스 픽션이 사이언스에게 기반하기 때문에, 사이언스 픽션이 신화 시대를 밀어내나요? 하지만 페니 파커는 영웅입니다. 페니 파커에게는 초능력(기적)이 있습니다.





비록 페니 파커가 벽을 기어오르지 못한다고 해도, 분명히 페니 파커에게는 초능력이 있습니다. 스파이더 그웬에게는 초능력이 있고, 마일즈 모랄레스에게는 초능력이 있습니다. 스파이더 그웬은 초능력을 발휘하고 영웅이 됩니다. 이 관점에서 신화 영웅과 SF 초인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원더 우먼이 아마존 전사(공주)이고, 토르가 묠니르를 휘두르고 외계인들을 물리치는 것처럼, 심지어 사이언스 픽션은 신화 영웅을 직접 제시합니다. 왜 사이언스 픽션이 신화 영웅을 재현하나요? 왜 많은 사람들이 원더 우먼과 스파이더맨을 좋아하나요? 유구한 신화가 제2의 천성이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중세 판타지와 대지 모신과 드루이드. 사이언스 픽션과 원더 우먼과 스파이더맨. SF/판타지가 신화를 재현하기 때문에, 여전히 근대 인간들은 SF/판타지를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이 관점에서 몬스터버스 역시 근대 신화입니다. 몬스터버스는 티타누스 모수라(모스라)가 어머니 자연, 대지 모신이라고 설명합니다. 중세 판타지에서 드루이드가 대지 모신을 숭배하는 것처럼, 몬스터버스는 대지 모신 모스라를 제시합니다. 몬스터버스가 대지 모신을 제시하기 때문에, 웅녀가 신화 설정인 것처럼, 몬스터버스는 신화를 재현합니다. 신화가 제2의 천성이기 때문에, 근대 인간은 모스라를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근대 인간들이 드루이드와 원더 우먼과 페니 파커와 모스라를 좋아하는 것처럼, 여전히 인류 문화는 신화와 함께 살아갑니다. 만약 이 해석이 틀리지 않는다면, 이건 신화 시대가 끝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인류는 과학 시대에 들어섰는지 모르나, 습관이 제2의 천성인 것처럼, 신화가 제2의 천성이기 때문에, 아무리 계몽주의가 인류 사회를 뒷받침한다고 해도, 한편으로 신화 시대에서 인류는 살아갑니다. 신화 시대에서 인류가 살아가기 때문에, 여전히 인류는 종교적입니다. 아무리 뭔가가 과학적이라고 해도, 이건 과학보다 종교인지 모릅니다. 녹색 자본주의는 과학보다 종교입니다.

 

자본주의에게 이윤은 가장 중요한 목표입니다. 이윤이 가장 중요한 목표이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많고 많은 것들을 상품화합니다. 많고 많은 것들이 상품이기 때문에, 자연 환경은 예외가 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는 자연 환경을 상품화합니다. 더 이상 자연은 자연보다 상품입니다. 자연 환경이 상품이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자연 환경을 보호하지 못합니다. 자본주의가 자연 환경을 보호하지 못하기 때문에, 녹색 자본주의는 망상입니다. 자유주의가 자본주의를 정당화하기 때문에, 자유주의는 그저 종교에 불과합니다. 뭐라고 보수 우파 지식인들이 떠들든, 그들은 그저 광신도들에 불과합니다.



보수 우파 지식인들이 녹색 자본주의 종교를 떠받들기 때문에, 그들은 광신도들입니다. 생태 사회주의는 녹색 자본주의가 망상과 종교라고 비판합니다. 녹색 자본주의는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신화 시대에서 인류가 살아가기 때문에, 자유주의가 그저 종교에 불과한 것처럼, 사회주의는 그저 종교에 불과한지 모릅니다. 사회주의자들은 그들이 종교적이지 않다고 100% 완벽하게 확신하지 못합니다. 만약 사회주의가 그저 종교에 불과하다면, 자유주의가 망상인 것처럼, 사회주의가 망상인가요? 사회주의가 망상이기 때문에, 사회주의에게 아무 가치가 없나요? 그건 절대 아닙니다.

 

근대 생태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주의에게 기반합니다. 근대 생태 사회주의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커다란 비중을 차지합니다. 계몽주의 이후, 여러 철학들, 이념들, 세계관들, ~주의들은 쏟아졌으나, 이것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편들지 않습니다. 아무리 이것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편든다고 해도, 이것들보다 마르크스주의는 가난한 사람들을 훨씬 편듭니다. 그 어떤 계몽주의 철학보다 마르크스주의는 가난한 사람들을 가장 편듭니다. 비록 생태 사회주의가 그저 종교에 불과하다고 해도, 만약 우리가 자연 환경과 가난한 사람들을 함께 떠들기 원한다면, 생태 사회주의는 커다란 도움이 될 겁니다.



※ 애니메이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스틸샷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g4Hbz2jLxvQ

※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스크린샷 출처: WillE,
https://www.youtube.com/watch?v=iR1_6l4E0T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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