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흉몽>과 SF/판타지, 공통점과 차이 본문
[중세 판타지는 던전 언데드를 묘사합니다. 스페이스 오페라가 다르지 않… 은가요?]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입니다. 사회에서 우리 인간이 살아가기 때문에, 인간은 무인도가 아닙니다. 인간은 무인도보다 관계에 가깝습니다. 심지어 이 관계는 인간성을 형성합니다. 인간이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인격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관계는 인간성, 인격을 형성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인간이 사회적인 존재라고 해도, 사회는 아주 크고 복잡합니다. 사회가 아주 크기 때문에, 인간은 모든 사회 구성원과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그래서 소설은 유용할 수 있습니다. 소설은 허구적인 사회 관계를 제시합니다. 독자는 소설을 해석하고 등장인물과 허구적인 관계를 맺습니다.
김이설 작가는 <흉몽>을 썼습니다. 이 단편 소설은 가난한 인간이 너무 처절하고 비참하다고 묘사합니다. 가난이 억압하기 때문에, 인간은 막다른 골목에 부딪힙니다. 처절하고 비참한 골목에서 끔찍하게 인간은 몸부림칩니다. 지옥 같은 한계 내부에서 가난한 인간은 피, 눈물에 빠집니다. <흉몽>에서 이건 주된 분위기입니다. 비록 독자가 가난하지 않다고 해도, 독자는 <흉몽>을 해석하고 가난한 등장인물과 사회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독자가 소설을 해석하고 가난한 등장인물 심리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독자는 가난한 인간이 처절하고 비참하다고 겪을 수 있습니다.
독자가 등장인물 심리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독자가 등장인물에게 감정을 이입하기 때문에, 소설은 유용합니다. 이건 소설에게 오직 이 미덕만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소설에게는 다른 여러 미덕들이 있습니다. 언제나 허구적인 사회 관계를 맺기 위해 독자가 소설을 선택하나요? 그건 아닙니다. 다른 목적들을 위해 독자는 소설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이유들이 무엇이든, 분명히 사회 관계는 소설 미덕이 될 수 있습니다. 사회 관계가 소설 미덕이기 때문에, 비록 소설이 학문이 아니라고 해도, 소설은 유용할 겁니다. 비단 소설만 아니라 다른 여러 이야기들 역시 비슷합니다.
이야기는 등장인물을 제시합니다. 소설처럼, 만화, 연극, 영화, 애니메이션 같은 이야기들 역시 등장인물들을 제시합니다. 심지어 테이블 게임, 비디오 게임조차 등장인물을 제시합니다. 심지어 롤플레잉 게임 플레이어는 주인공조차 창조할 수 있습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주인공을 창조하기 때문에, 게임 플레이어는 주인공과 훨씬 깊은 관계를 맺는지 모릅니다. 만약 독자가 흑인 여자라면, 아무리 이 독자가 <반지 전쟁>을 좋아한다고 해도, 이 독자는 너무 많은 백인 남자들을 만날 겁니다. <네버윈터 나이츠>, 이 롤플레잉 게임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흑인 여자 드루이드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흑인 여자 게임 플레이어가 흑인 여자 드루이드를 창조하기 때문에, <반지 전쟁>보다 <네버윈터 나이츠>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등장인물에게 훨씬 깊은 감정을 이입할 수 있습니다. "모든 소설은 자전 소설이다. 소설은 작가를 반영한다." 만약 이 주장이 완전히 틀리지 않는다면, 소설 등장인물이 작가를 반영하는 것처럼, 게임 등장인물 역시 게임 플레이어를 반영하는지 모릅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등장인물을 창조하고 조종하는 동안, 게임 플레이어는 자신을 등장인물에게 대입하는지 모릅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창조하기 때문에, 소설보다 게임에서 감정 이입은 훨씬 깊어지는지 모릅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주인공을 직접 창조하고 깊은 감정을 이입하는 것처럼, 비단 소설만 아니라 게임 역시 등장인물을 제시합니다. 문제는 이겁니다. <흉몽>은 이른바 주류 문학입니다. 이건 <흉몽>이 현실을 모방하고 반영한다는 뜻입니다. 이 단편 소설 세계가 현실을 모방하기 때문에, 이 세계와 현실은 아주 가깝습니다. <흉몽>과 달리, <네버윈터 나이츠> 세계와 현실은 아주, 아~주 다릅니다. <네버윈터 나이츠>에서 드루이드는 자연 신성 주문을 외우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습니다. 이 세계 설정은 중세 유럽 판타지입니다. 현실에서 인간이 자연 신성 주문을 외우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나요?
아니, 현실에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인간은 자연 신성 주문을 외우지 못합니다. <네버윈터 나이츠>에서 드루이드는 표범(팬서) 동료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 이건 중세 판타지 설정입니다. 현실에서 인간이 열대 밀림 표범을 소환할 수 있나요? 이건 절대 가능하지 않습니다. 오직 중세 판타지 세계에서만 인간은 드루이드가 되고, 신성 주문을 외우고, 열대 밀림 표범을 소환할 수 있습니다. 위험한 던전에서 드루이드는 표범 동료와 함께 해골 병사들을 처치합니다. 현실에서 해골 병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중세) 판타지 세계에서만 해골 병사는 존재합니다. 현실과 판타지 세계는 다릅니다.
아무리 게임 플레이어가 주인공을 창조하고 깊은 감정을 이입한다고 해도, 아무리 흑인 여자 게임 플레이어가 흑인 여자 드루이드를 창조한다고 해도, 현실에서 포가튼 렐름 드루이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인간이 열대 밀림 표범을 소환하지 못하기 때문에, 드루이드는 비(非)현실 등장인물입니다. <흉몽> 세계와 현실이 아주 가깝기 때문에, 여자 청소 노동자는 현실에 아주 가깝습니다. 여자 청소 노동자가 현실에 아주 가깝기 때문에, <흉몽>은 황당무계하지 않습니다. <흉몽>과 달리, 포가튼 렐름 드루이드는 비현실 등장인물입니다. 아아…, <네버윈터 나이츠>는 너무 황당무계합니다.
독자가 여자 청소 노동자에게 감정을 이입할 때, 이건 황당무계하지 않습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포가튼 렐름 드루이드에게 감정을 이입할 때, 이건 너무 황당무계합니다. 아무리 포가튼 렐름 드루이드가 황당무계하지 않다고 해도, 아무리 판타지 드루이드에게 또 다른 미덕들이 있다고 해도, 분명히 <흉몽>과 <네버윈터 나이츠>는 다릅니다. 아무리 <흉몽>이 처절하고 비참한 등장인물을 묘사한다고 해도, <흉몽> 세계는 현실과 아주 가까우나, <네버윈터 나이츠> 세계와 현실은 너무, 너~무 멉니다. <흉몽>과 <네버윈터 나이츠>에게 비현실 설정은 가장 결정적인 차이들 중에서 하나입니다.
주류 문학과 중세 판타지에게 비현실 설정은 가장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하지만 오직 중세 판타지만 비현실 설정을 묘사하나요? 그건 아닙니다. 스페이스 오페라 역시 비현실 설정을 묘사합니다. <흉몽> 세계와 현실은 아주 가깝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 세계와 현실은 너무, 너~무 멉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장거리 우주선을 묘사할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 장거리 우주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독자가 SF 소설을 해석하고 우주선 선장에게 감정을 이입한다고 해도, 이건 비현실적인 감정 이입입니다. <흉몽> 같은 주류 문학과 스페이스 오페라에게 비현실 설정은 가장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흉몽> 같은 주류 문학과 스페이스 오페라, 중세 판타지에게 비현실 설정이 가장 결정적인 차이이기 때문에, 스페이스 오페라와 중세 판타지는 비슷합니다. 현실에서 장거리 우주선 선장과 포가튼 렐름 드루이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비현실 설정은 공통점이 되고, 이 공통점은 스페이스 오페라와 중세 판타지를 분류합니다. 스페이스 오페라와 중세 판타지에게 비현실 설정이 공통점이 되는 것처럼,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는 비슷합니다. 그래서 'SF&F'는 성립합니다. SF&F가 성립하기 때문에,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는 겹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두 장르가 비슷하게 겹칠 수 있나요?
21세기 초반 오늘날, 남한 사람들은 투표할 수 있습니다. 21세기 초반 오늘날, 남한 사회에서 투표는 어색하지 않고 이상하지 않습니다. 많은 남한 사람들은 투표가 기본 권리라고 판단합니다. 하지만, 만약 남한 사람들이 시간 여행하고, 조선 사회로 돌아가고, 투표 권리를 주장한다면, 조선 국왕이 이 권리를 허락할까요? 투표가 공화국 시민 기본 권리이기 때문에, 조선 국왕이 이것을 허락할까요? 그건 아닙니다. 남한이 공화국이기 때문에, 남한은 투표 권리를 인정하나, 조선이 왕국이기 때문에, 조선은 투표 권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조선 국왕은 투표 권리를 억압하고 공화국을 부정할 겁니다.
만약 남한 사람들이 투표 권리를 주장한다면, 조선 국왕은 남한 사람들을 탄압할 겁니다. "무엄하도다! 당장 이 역적들의 주리들을 틀어라!" 이렇게 조선 국왕은 노발대발할 겁니다. 조선 국왕이 노발대발하는 것처럼, 조선 사회와 남한 사회는 시대 격차를 드러냅니다. 조선에서 남한으로, 시대가 흐르는 동안, 상식은 크게 바뀌었습니다. 조선 사회에서 투표 권리는 상식이 아니나, 남한 사회에서 투표 권리는 상식입니다. 시대가 흐르는 동안, 상식이 바뀌는 것처럼, 상식은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시대 격차는 상식이 고정적이지 않다고 보여줍니다. 미래 사회에서도 상식은 고정적이지 않을 겁니다.
시대가 흐르는 동안, 상식이 바뀌기 때문에, 만약 500년이 흐른다면, 미래 사회에서 상식은 바뀔 겁니다. 많은 남한 사람들은 자유 민주주의가 상식이라고 믿습니다. 조선 국왕이 혈통 계승을 믿었던 것처럼, 많은 남한 사람들은 자유 민주주의가 상식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이건 그저 지배적인 관념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시대가 흐르는 동안, 상식이 바뀌기 때문에, 500년 이후, 어쩌면 자유 민주주의는 상식이 아닐 겁니다. 사이언스 픽션에서 미래가 자유주의 사회가 아닌 것처럼, 상식은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미래를 묘사하고 상식이 고정적이지 않다고 강조할 수 있습니다.
사이언스 픽션이 미래 사회를 묘사하는 것처럼, 스페이스 오페라는 미래 사회를 묘사합니다.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주된 배경 무대는 과거 사회보다 미래 사회입니다. 장거리 우주선 선장은 미래 사회 등장인물입니다. 반면, 장르 명칭이 가리키는 것처럼, 중세 판타지는 과거 사회를 묘사합니다. 포가튼 렐름 드루이드가 네버윈터 군주를 알현하는 것처럼, 중세 판타지는 과거 사회를 묘사합니다. 이건 중세 판타지가 100% 과거 사회에게 기반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흑인 여자가 드루이드가 되고 지식인이 되는 것처럼, 중세 유럽 판타지는 오직 100% 진짜 중세 유럽에게만 기반하지 않습니다.
중세 판타지는 근대 사회를 반영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중세 판타지가 근대 사회를 반영한다고 해도, 중세 판타지에서 미래 사회는 주된 배경 무대가 아닙니다. 장거리 우주선 선장과 달리, 포가튼 렐름 드루이드는 과거 사회 등장인물입니다. 스페이스 오페라 등장인물과 중세 판타지 등장인물은 대조적입니다. 스페이스 오페라와 중세 판타지가 대조적이기 때문에,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는 대조적입니다. 두 장르는 대조적이나, 사람들은 두 장르가 겹친다고 간주합니다. IMDB는 2014년 영화 <고지라>가 사이언스 픽션이라고 분류합니다. <고지라>와 달리, 영화 <콩: 해골섬>은 판타지입니다.
2014년 <고지라>가 사이언스 픽션이고, <콩: 해골섬>이 판타지이기 때문에, 고지라와 킹콩은 대조적입니다. 킹콩이 판타지 설정인 것처럼, 거대 괴수 팬들은 모스라가 판타지 설정이라고 분류합니다. 킹콩보다 모스라는 판타지 거대 괴수에 훨씬 가깝습니다. 하지만, 비록 모스라가 판타지 괴수라고 해도, 고지라(SF)와 모스라(판타지)는 똑같은 세계 설정(몬스터버스)에 속합니다. 아니, 이미 토호 원작 영화들에서 고지라와 모스라는 똑같은 세계 설정에 속합니다. 토호 원작 모스라 역시 판타지 거대 괴수이나, 판타지 괴수와 SF 괴수들은 똑같은 세계 설정에 속합니다. 두 범주는 비슷합니다.
고지라와 모스라가 똑같은 세계 설정에 속하는 것처럼,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는 비슷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고지라가 판타지에 가깝다고 분류하는지 모릅니다. <고지라>는 엄중한 과학 고증에게 기반하지 않습니다. <고지라>가 엄중하지 않기 때문에, 이건 '진짜 SF' 영화가 아닙니다. <고지라>는 그저 사이언스 픽션을 빙자할 뿐입니다. 그렉 이건은 <쿼런틴>을 썼습니다. <쿼런틴>이 엄중한 과학 고증에게 기반하기 때문에, 이 소설은 '진짜 SF'입니다. 적어도, <고지라>보다 <쿼런틴>은 진짜 사이언스 픽션에 가깝습니다. <쿼런틴>처럼, 하드 사이언스 픽션은 진짜에 가깝습니다.
중세 판타지는 하드 사이언스 픽션이 아닙니다. 아니, 비단 중세 판타지만 아니라 다른 판타지들 역시 하드 사이언스 픽션들이 아닙니다. 중세 판타지를 비롯해 판타지들은 근대 과학보다 신화, 전설, 민담에게 기반합니다. 마법 주문은 근대 과학보다 신화, 전설, 민담에게 기반합니다. 아무리 26세기 미래 사회에서 자연 학파 마법사가 그린 드래곤을 소환한다고 해도, 배경 무대(26세기 미래)와 상관없이, 자연 학파 마법, 그린 드래곤은 신화, 전설, 민담에게 기반합니다. 자연 학파 마법사와 달리, 하드 사이언스 픽션에서 미래 기계 공학자는 신화, 전설, 민담보다 첨단 기술들에게 기반합니다.
미래 기계 공학자가 첨단 기술들에게 기반하기 때문에,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가 다른가요? 하지만, 아무리 하드 사이언스 픽션이 엄중한 과학 고증에게 기반한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하드 사이언스 픽션은 빤따스띡한 차원을 향해 도약합니다. 만약 하드 사이언스 픽션이 오직 하드 사이언스만 강조한다면, 많은 SF 독자들은 실망할 겁니다. <쿼런틴>의 후반부가 엄청난 도약을 보여주는 것처럼, 하드 사이언스에서 빤따스띡한 차원으로, 하드 사이언스 픽션은 도약할 수 있습니다. 하드 사이언스 픽션과 달리, 과학 논문은 도약하지 않습니다. 과학 논문에게 이 도약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와 판타지는 멀지 않습니다. 하드 SF 역시 판타지를 추구… 하나요?]
만약 과학 논문이 엄청난 도약을 보여준다면, 이건 과학이 아닐 겁니다. 과학 논문이 도약하지 않고, 하드 사이언스 픽션이 도약하는 것처럼, 결과적으로, 하드 사이언스 픽션은 판타지를 추구합니다. 아무리 시작이 과학 고증이라고 해도, 하드 사이언스 픽션은 판타지에 도달합니다. 판타지에 도달하기 위해 과학 고증에서 하드 사이언스 픽션은 시작합니다. 이 관점에서 하드 사이언스 픽션은 과학 논문보다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아무리 x가 y에 수렴한다고 해도, 수렴은 일치가 아닙니다. 아무리 하드 사이언스 픽션이 과학 논문에 수렴한다고 해도, 하드 사이언스 픽션은 과학 논문이 아닙니다.
하드 사이언스 픽션이 과학이 아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하드 사이언스 픽션이 판타지를 추구하기 때문에,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는 비슷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x가 y에 수렴한다고 해도, 수렴은 일치가 아닙니다. 수렴이 일치가 아니기 때문에,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는 다릅니다. 아무리 사이언스 픽션이 판타지를 추구한다고 해도, 독립적인 영역에서 사이언스 픽션은 존재합니다. 판타지는 이 영역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그리폰 북스는 SF 소설들을 선보입니다. 그리폰 북스는 SF 전문 계열입니다. 판타지보다 SF가 훨씬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SF 독자들은 그리폰 북스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바버라 햄블리는 <밤을 사냥하는 자들>을 썼습니다. 이 소설은 뱀파이어(흡혈귀)를 묘사합니다. 뱀파이어(흡혈귀)는 SF 설정보다 판타지 설정, 고딕 호러 설정입니다. 비단 SF 소설들만 아니라 <밤을 사냥하는 자들> 역시 그리폰 북스에 속합니다. SF 소설들과 함께 흡혈귀 소설이 그리폰 북스에 속하는 것처럼, 사이언스 픽션은 판타지와 멀지 않습니다. 만약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가 너무 다르다면, 그리폰 북스는 오직 SF 소설들만 포함했을 겁니다. 그리폰 북스는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가 겹친다고 증명합니다. 문제는 기술 진보 분위기입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기술 진보적입니다.
비디오 게임 <데드 스페이스>는 고딕 호러에 가깝습니다. <데드 스페이스>가 복잡하고 위험한 던전(우주선 이시무라)과 무시무시하고 혐오스러운 언데드들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데드 스페이스>는 오직 던전과 언데드만 보여주지 않습니다. 이 게임은 첨단 기술들을 보여줍니다. 첨단 기술들은 던전과 언데드 같은 고딕 호러 분위기를 어느 정도 밀어냅니다. <데드 스페이스>와 달리, 중세 판타지는 첨단 기술들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중세 판타지는 기계 공학 기술자가 컴퓨터를 조작하고 강화복을 설계한다고 묘사하지 못합니다. 기술 진보 분위기는 아주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술 진보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해도, <데드 스페이스>는 던전 언데드를 묘사합니다. 아무리 하드 사이언스 픽션이 과학 고증에게 기반한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하드 사이언스 픽션이 판타지를 추구하는 것처럼, 아무리 기술 진보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해도, <데드 스페이스>는 던전 언데드를 묘사합니다. 중세 판타지는 던전에서 드루이드가 표범 동료와 함께 해골 병사들을 때려잡는다고 묘사할 수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데드 스페이스>와 중세 판타지는 겹칩니다. 두 가지가 겹치기 때문에, 이건 SF&F가 성립한다는 뜻입니다.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는 가깝습니다.
이렇게, SF/판타지를 바라보기 위한 두 관점은 대립합니다.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는 비슷하거나 비슷하지 않습니다. 두 관점은 대립하나, 두 관점은 틀리지 않습니다.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는 비슷합니다. 이 분류는 틀리지 않습니다.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는 비슷하지 않습니다. 이 관점 역시 틀리지 않습니다. 이 블로그 역시 두 관점이 옳다고 주장합니다. 이 블로그가 두 관점을 함께 편들기 때문에, 박쥐가 이 편에 붙거나 저 편에 붙는 것처럼, 어떤 사람들은 이 블로그가 박쥐에 가깝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록 이 블로그가 간사한 박쥐에 가깝다고 해도,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가 겹치든, 겹치지 않든, 우리가 사이언스 픽션을 인식하기 때문에, 우리는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가 겹치거나 겹치지 않는다고 논쟁합니다. 사이언스 픽션이라는 단어가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를 논쟁할 수 있습니다. 만약 사이언스 픽션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논쟁하지 못할 겁니다.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가 겹치든, 겹치지 않든, 두 관점은 이 사실에 동의해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사이언스 픽션이라는 단어를 언급할 수 있나요? 19세기 서구 근대 사회에서 사이언티픽 로망스라는 단어가 비롯했기 때문입니다.
사이언티픽 로망스가 사이언스 픽션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만약 우리가 어떻게 사이언스 픽션이 나타났는지 파악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사이언티픽 로망스를 파악해야 합니다. 19세기 서구 근대 사회에서 사이언티픽 로망스라는 단어가 비롯했기 때문에, 만약 우리가 사이언티픽 로망스를 파악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19세기 서구 근대 사회를 분석해야 합니다.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가 겹치든, 겹치지 않든, 이건 확실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19세기 서구를 분석해야 합니다.
※ 게임 <Fractured Space> 스크린샷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MgKVV4pZBW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