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SF 생태주의

환경 보호라는 상품성 본문

사회주의/사회 공학

환경 보호라는 상품성

OneTiger 2017. 4. 25. 20:00

여러 SF 장르 중에서 현실과 가장 가까운 하위 장르는 환경 아포칼립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생물 다양성 감소, 기후 변화, 미세 먼지, 핵 폐기물 등등. 환경 아포칼립스는 더 이상 SF 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마가렛 앳우드는 자기 소설이 사이언스 픽션이 아니다 운운했는데,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커트 보네거트와 비슷한 이유인지 모르죠.) 어쨌든 <인간 종말 리포트> 같은 소설은 정말 사이언스 픽션의 경지를 넘어선 것 같습니다. 그냥 또 다른 현실처럼 보입니다. 지금 이 현실에는 합성 동물도 없고, 인류 멸망도 없고, 생체 개조 매춘부도 없으나, 솔직히 <인간 종말 리포트>에서 상상력만큼이나 현실의 파탄도 쉽게 찾아볼 수 있어요. 하지만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더 이상 소설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생물 다양성이 이만큼 감소했음에도 환경 보존은 아주 상투적인 싸구려 용어가 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기업들이 너도나도 환경 보존과 친환경과 녹색 경제를 외치기 때문입니다. 그 기업들이 친환경을 외치는 이유는 그게 하나의 상품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친환경이 소비자의 시선을 끌기 때문이죠. 그래서 수많은 기업들은 어떻게든 자신들을 친환경으로 포장하려고 애씁니다. 심지어 환경 보호 단체에게 그런 걸 문의하는 기업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허허.


하지만 정말 친환경적으로 바뀌고 싶다면,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서 벗어나야 할 겁니다. 우리가 여기까지 걸어왔기 때문에, 공장을 마구잡이로 짓고, 숲을 밀어내고, 폐기물을 퍼뜨렸기 때문에 환경이 오염되었기 때문이죠. 무늬만 녹색으로 칠한다고 전부가 아니죠. 체계 자체를 바꿔야 하죠. 만약 지금까지 공장식 농장을 유지한 기업이 있다면, 진짜 동물 복지를 실천해야 할 겁니다. 물론 친환경을 외치는 수많은 기업들은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으려고 합니다. 당연하겠죠. 어차피 그런 기업들은 그저 소비자 때문에 녹색 무늬를 칠했을 뿐이니까요. 만약 소비자가 친환경을 별로 매력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기업들 역시 친환경 따위를 헌신짝처럼 버릴 겁니다. 상품일 뿐이니까요. 그 외에 어떤 가치도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모든 것이 상품이 되고, 상품이 되지 않는 것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으니까요. 사실 자본주의가 그토록 숭상하는 경쟁이란 것은 바로 상품이 되기 위한 경쟁이죠. 상품이 되지 못한다면, 생명 윤리든 생태계 순환이든 고려될 필요가 없어요. 그게 경쟁의 진면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끊임없는 이윤 축적. 더 많은 돈.


물론 자본주의의 혁신적인 생산성을 많은 진보를 이룩했습니다. 그 점을 부정할 수 없겠죠. 자본주의는 엄청난 식량 생산, 위생과 의료 기술의 발달, 정보 기술의 혁명, 기타 여러 가지 것들을 이룩했습니다. 문제는 그게 하루 아침에 그냥 반짝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값싼 공산품을 대량으로 만들고 싶다면, 그만큼 많은 자재와 원료가 필요합니다. 그만큼 많은 공장을 돌려야 하고, 공장은 많은 연기와 폐기물을 내뿜어야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런 것 때문에 피해를 입을 겁니다. 어느 한편에는 값싼 공산품으로 윤택하게 생활하는 사람이 있고, 어느 한편에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그렇게 피해를 입는 사람을 돌보지 않아요. 혹은 그저 잠깐 동정할 뿐입니다. 절대 발전과 생산과 경쟁을 멈추지 않아요. 어쨌든 상품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상품을 만들지 않는다면, 자본주의는 즉시 멈출 테니까요.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 사람은 정작 생산된 상품을 이용하기 어렵고, 따라서 피해를 입는 사람이 윤택하게 사는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셈입니다. 북반구 강대국 때문에 남반구 개발도상국들이 죽어나가는 것처럼. 북반구는 환경을 오염시키면서 상품을 만들지만, 가난한 남반구는 환경 오염의 피해를 받음에도 그 상품을 이용하지 못하는 것처럼.


정말 친환경으로 변하고 싶다면, 체계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될 겁니다. 오직 이윤만을 축적하기 위한 상품 체계를 바꿔야 할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녹색으로 치장해봐야 녹색 페인트만 낭비하는 꼴이겠죠. 녹색이라도 다 똑같은 아니죠. 녹색당의 녹색 나뭇잎은 청아하지만, 기업들의 친환경 녹색 광고는 사실 녹색 맹독에 가까울 겁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