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호라이즌 제로 던>의 기계 괴수들과 환경 아포칼립스 본문
[기계 괴수들은 멋집니다. 하지만 자연 생태계와 생태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너무 얄팍합니다.]
비디오 게임 <호라이즌 제로 던>은 일종의 사냥 액션 게임입니다. 광대한 자연 환경 속에서 주인공 사냥꾼은 위험한 야수들을 사냥해야 합니다. 비디오 게임이 발달했을 때부터 이런 사냥 액션 게임은 꾸준히 인기를 끌었습니다. 비디오 게임들은 오리 같은 작은 새들, 사슴이나 불곰 같은 커다란 포유류들, 공룡 같은 괴수들을 내보냈고, 게임 플레이어들은 신나게 동물들을 학살했습니다. 사슴 사냥이나 불곰 사냥이 현실적인 사격 게임이라면, 공룡 사냥은 비일상적인 사냥 액션일 겁니다.
<몬스터 헌터> 같은 게임은 다양한 무기들과 장비들을 도입했고, 작은 공룡부터 거대 괴수까지 줄줄이 늘어놓습니다. 형식적으로 <호라이즌 제로 던>은 <몬스터 헌터>와 비슷합니다. 광대한 자연 환경이 있고, 여러 장비들이 있고, 다양한 야수들과 괴수들이 있고, 주인공 사냥꾼은 야수들을 사냥하거나 채집하거나 길들입니다. 뛰어난 그래픽은 웅장한 자연을 치장하고, 그 속에서 거대 괴수는 우렁차게 울부짖습니다. 어떤 괴수는 하늘을 날고, 어떤 괴수는 지하를 뚫고, 어떤 야수는 늘씬하고 은밀합니다. 어쩌면 <호라이즌 제로 던>은 기술적 자연이 될 수 있을지 모르죠.
한 가지 독특한 점은 <호라이즌 제로 던>에 등장하는 야수들과 괴수들이 기계라는 사실입니다. 야수들과 괴수들은 포유류나 파충류나 공룡처럼 생겼으나, 진짜 동물이 아닙니다. 표범이나 악어나 티-렉스처럼 생긴 로봇일 뿐입니다. 그것들은 자연 생태계의 구성원처럼 보이나,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았고, 자연 생태계의 진짜 구성원이 아닙니다. 게다가 생체 괴수를 좋아하는 괴수 팬은 <호라이즌 제로 던>에 실망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게임 속의 거대 기계들은 멋집니다. 스톰버드가 펄럭거리며 하늘을 나는 광경이나 썬더죠가 쿵쿵거리며 걷는 광경은 정말 로망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미적인 측면에서 생체 괴수와 기계 괴수는 분명히 다르고, 생체 괴수는 훨씬 강하게 야성을 풍길 수 있습니다. 아무리 썬더죠가 멋지다고 해도, 생체 괴수를 좋아하는 괴수 팬에게 치렁치렁한 기계 부품들과 포탑들은 꽤나 어색하게 보일지 모릅니다. 인간은 시각적인 동물이고, 시각은 인간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죠. 개인적으로 썬더죠가 멋진 디자인이라고 생각하나, 저는 썬더죠보다 알로사우루스 같은 진짜 공룡이 더 좋습니다. 아무리 썬더죠가 기관포들을 퍼붓고 강력한 원반들을 날린다고 해도, 썬더죠는 진짜 동물이 아니죠. 뭐, 이는 개인적인 취향일 뿐입니다.
아쉽게도 <호라이즌 제로 던>에는 기계 괴수를 바라보는 관념이나 심리적인 묘사가 부족합니다. 이 게임은 이런저런 줄거리를 늘어놓고 여러 등장인물들을 보여주나, 그런 줄거리와 등장인물들은 기계 괴수에게 상투적인 반응만 비칠 뿐입니다. 사이언스 픽션을 보는 이유가 뭘까요. 저는 비일상적인 경이나 공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이언스 픽션 속에서 인간은 비일상적인 존재를 만나고 경이나 공포를 느낍니다. 그런 경이나 공포는 사람들의 관념이나 사회 구조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지 모릅니다.
<호라이즌 제로 던>은 그런 특이한 관념이나 사회 구조를 보여주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게임은 멋지고 웅장한 그래픽과 디자인을 자랑하나, 사고 방식이나 사회 구조는 거기에 미치지 못합니다. 게임 제작진이 그런 걸 묘사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을 겁니다. <호라이즌 제로 던>은 사냥 액션 게임이고, 그게 본분입니다. 추상적인 사고 방식이나 관념을 묘사하기 원한다면, 그래픽 대신 텍스트가 필요합니다. SF 소설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 때문이겠죠. 소설이 사람들의 관념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소설은 아무리 멋진 영상조차 설명하지 못하는 영역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호라이즌 제로 던>이 빈약한 게임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호라이즌 제로 던>은 여러 가지를 갖춘 풍성한 게임입니다. 사냥 액션 게임으로서 좋은 점수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기계 괴수를 좋아하지 않는 괴수 팬이라고 해도 썬더죠에게 몇 번 시선을 줄 수 있겠죠. 저는 그저 어떻게 SF 소설과 SF 게임이 다른지 설명할 뿐입니다. 아울러 또 다른 아쉬운 점은 환경 아포칼립스를 전개하는 줄거리입니다. 환경 아포칼립스를 이야기함에도 <호라이즌 제로 던>은 상투적인 요소들을 늘어놓을 뿐입니다.
이 게임은 거대한 음모와 비밀이 있는 것처럼 호들갑을 떠나, 결국 그것들은 진부한 공식들에서 별로 멀어지지 않습니다. 여기에 현대 문명을 진단하는 예리한 시선이나 날카로운 직감은 없어요. <호라이즌 제로 던>은 그저 다른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떠드는 요소들을 종합했을 뿐이죠. 이 게임은 왜 그런 환경 아포칼립스가 발생했는지 말하지 않고, 어떻게 그런 재난을 막을 수 있는지 분석하지 않아요. 환경 아포칼립스는 이미 19세기 작가들도 떠든 장르입니다. 21세기 SF 게임은 뻔한 공식에서 벗어나고 좀 더 급진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을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