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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타임 패트롤> - 얼마나 깊이 역사에 간섭할 수 있는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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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패트롤> - 얼마나 깊이 역사에 간섭할 수 있는가?

OneTiger 2017. 11. 28. 19:52

추리 소설들 속에서 어떤 탐정들은 전문 분야를 맡습니다. 가령, 데니스 루헤인이 쓴 추리 소설들 속에서 패트릭 켄지는 실종 사건을 전담합니다. 원래 추리 소설에서 가장 자극적인 사건은 밀실 살인 사건이나, 패트릭 켄지는 주로 실종 사건들에 끼어들죠. 사실 여러 범죄들은 성향이 다르고, 따라서 탐정들도 각자 장기를 발휘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신기술을 이용하는 범죄자가 등장한다면, 당연히 탐정 역시 신기술을 전문적으로 연구해야 할 겁니다.


이런 추리 소설은 SF 소설처럼 보이는 테크노 스릴러로 이어질지 모르죠. 사실 SF 작가들은 신기술을 이용한 범죄들을 내놓곤 합니다. 신체 개조나 가상 현실은 범죄로 쓰이기에 아주 좋은 신기술일 겁니다. 따라서 신체 개조나 가상 현실을 전담하는 탐정이나 경찰이 등장할지 모릅니다. 인조인간을 구분하고 전문적으로 쫓아다니는 탐정처럼. 그리고 시간 여행 역시 아주 각광을 받는 범죄 기술이 될 수 있겠죠. 만약 범죄자가 과거로 돌아가거나 과거를 조작할 수 있다면? 그건 미래를 바꿀 테고,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대체 역사로 발전할 겁니다. 그래서 폴 앤더슨은 <타임 패트롤> 시리즈를 썼을 겁니다.



<타임 패트롤>을 우리말로 번역한다면, 시간 경찰대가 제법 어울릴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이 소설은 시간 경찰대를 다룹니다. 누군가가 시간 여행 기술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를 때, 시간 경찰대는 그걸 막습니다. 시간을 이용한 범죄…. 가능성들은 무궁무진할 겁니다. 과거에서 뭔가를 훔치거나 누군가를 죽이거나 어떤 사건을 방해하거나 등등. 누군가는 거기에서 막대한 이득을 챙길 테고, 심지어 역사를 바꿀 수 있겠죠. 당연히 많은 사람들은 역사를 바꾸기 원할 테고, 시간 경찰대는 불철주야 그걸 막고 역사를 원래대로 되돌려야 합니다.


<타임 패트롤>은 통상적인 시간 여행물처럼 보이나, 소설 주인공이 경찰이기 때문에 탐정 소설 같은 박진감을 더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모든 시리즈가 전부 탐정 소설은 아닙니다. 소설 주인공이 여러 시간대에서 활약한다는 특성 덕분에 오히려 이 소설은 탐정 소설과 멀어지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경찰이 신분을 감추고 범죄자를 쫓는 내용과 비슷하죠. 어떤 독자는 이 소설 시리즈가 SF 추리 소설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시간 범죄를 다루는 <타임 패트롤>은 <마법사가 너무 많다>나 <얼터드 카본>과 전혀 다릅니다.



소설 주인공을 비롯해 시간 경찰들은 고대와 현재와 미래를 수시로 여행합니다. 사실 그들에게 고정된 시간 관념은 없습니다. 현실 속에서 일반적인 사람들은 항상 미래를 향하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뭐, 아시모프가 쓴 <죽은 과거>처럼 그렇지 않을 경우가 있으나, 대부분 일반적인 사람들은 시간을 고정적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시간 경찰들은 여러 시간대를 건너뛰고, 덕분에 그들은 자신이 특정한 시간대에 고정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1970년대에 태어났다고 해도, 만약 그 사람이 시간 경찰이 된다면, 그 사람은 고대 중국이나 중세 사라센이나 근대 남아메리카나 21세기 유럽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1970년대에 태어났다는 사실에 별로 상관하지 않겠죠. 어쩌면 개인적으로 특정한 시간대를 선호할지 모르나, 이 사람은 특정한 시간대에 얽매이지 않을 겁니다. 1970년대를 규정하는 관념들은 이 시간 경찰에게 별로 의미가 없을 겁니다. 어쩌면 이 사람은 고대 중국과 중세 사라센과 근대 남아메리카와 21세기 유럽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을지 몰라요.



그렇다고 해도 모든 시간 경찰이 모든 시간대를 여행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소설 주인공 에버라드는 고위급이고, 덕분에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 수 있습니다. 솔직히 시간 경찰이 주인공이라면, 재미를 보장하기 위해 시간대를 신나게 건너뛸 수 있어야 할 겁니다. <타임 패트롤>을 읽을 때, 독자는 보랏빛 염료가 유명한 고대 티레, 유럽 침략자들이 들쑤시는 근대 남아메리카, 2차 대전으로 정신이 없는 유럽, 기이한 발견이 도사리는 북아메리카, 비장미가 감도는 고대 북유럽 등을 방문할 수 있어요.


어떤 소설은 탐정 이야기에 가까우나, 경찰이 주인공임에도 대부분 이야기들은 탐정 소설과 거리가 멉니다. 저는 그렇다고 생각해요. 고대 티레 이야기를 탐정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해도 북아메리카나 고대 북유럽 이야기는 전혀 아니죠. 특히, 고대 북유럽 이야기는 탐정 소설과 별로 상관이 없어 보이고요. 시간 경찰이라는 설정은 주인공이 여러 시간대들을 누비도록 돕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전형적인 탐정이나 형사가 아니에요. 오히려 역사가에 가깝다고 할까요. 현대인이 고대 티레에서 범인을 추적한다면, 그 현대인은 탐정보다 역사가가 되어야 할 겁니다. 저는 이 글에서 탐정 소설로 말머리를 열었으나, <타임 패트롤> 시리즈에서 탐정 소설을 기대하는 독자는 실망할 겁니다.



소설 주인공이 여러 시간대를 넘나든다고 해도 작가는 전세계를 무대로 삼지 않습니다. 이 소설 역시 유럽이 중점이고, 유럽에 관련된 다른 지역들이 나오는 듯합니다. 현실 속의 정세가 유럽을 둘러쌌기 때문에 유럽을 이야기하는 소설을 쓰기가 편했겠죠. <타임 패트롤>을 비롯한 이 소설 시리즈는 여러 중단편들을 섞었기 때문에 독자는 왜 에버라드라는 인물이 시간 경찰에 들어갔는지 먼저 읽어야 할 겁니다. 그게 기초적인 설정이고, 기초적인 설정을 넘어간다면 이후 이야기들을 헛갈릴지 모릅니다.


하지만 나중에 에버라드 이외에 다른 사람들도 등장하고, 그들도 다양한 시간대에서 여러 모험들을 거칩니다. 작가는 소설의 시점을 시간 범죄자와 시간 피해자와 학자 등으로 옮기고, 다양한 시간대를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합니다. 그런 이야기들도 분명히 굉장한 재미를 선사하나, 저는 좀 더 탐정 소설들이 많기를 바랐습니다. 소설 주인공이 시간 경찰이라면, 이야기 구조가 좀 더 탐정 소설에 가까워야 할 겁니다. 뭐, 주인공이 경찰이라고 해도 작가가 무조건 탐정 소설을 써야 하는 의무는 없습니다. 개인적인 취향이 그런 쪽이라는 뜻입니다.



어쨌든 소설이 다양한 시간대를 보여주기 때문에 독자는 특정한 시간대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저는 좋은 SF 소설이 고정 관념을 해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SF 소설을 읽는 독자는 다른 세계, 다른 생명체, 다른 문명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주류적인 방식에 얽매인 고정 관념이 훨씬 넓어질 겁니다. 다른 주류 문학 역시 그런 해방감을 선사할 수 있으나, SF 소설은 시각이 훨씬 넓기 때문에 독자 역시 훨씬 넓은 시각을 펼칠 수 있죠. <타임 패트롤> 시리즈는 여러 시간대를 통해 고정 관념을 깨뜨립니다.


하지만 가끔 저는 이 소설이 좀 더 파격적으로 나갔다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종종 시간 여행 소설들은 미래가 고정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등장인물들이 무슨 행동을 하든 역사는 바뀌지 않습니다. 역사는 특정한 줄기를 따라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령, 코니 윌리스가 쓰는 시간 여행 소설들은 그런 경향을 따르죠. 아무리 등장인물들이 노력해도 결국 역사는 자신의 궤도를 찾아갑니다. <타임 패트롤> 시리즈는 그렇게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설이 좀 보수적으로 보인다고 할까요. 그런 보수적인 면모가 좀 아쉬웠습니다.



물론 이는 소설이 나쁘다거나 재미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좀 더 파격적으로 나갈 수 있으나, 작가가 그러지 않았다는 뜻일 뿐입니다. 게다가 시간 경찰들은 언제나 한 가지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과연 역사에 얼마나 많이 개입해야 하는가?" 이는 소설 시리즈를 관통하는 물음입니다. 범죄자를 막기 위해 시간 경찰은 과거로 돌아갑니다. 범죄자를 쫓기 위해 시간 경찰은 저도 모르게 역사에 개입합니다. 사실 시간 경찰이 과거로 돌아가는 행위 자체가 이미 역사에 개입했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시간 경찰은 자신의 흔적을 과거에 남기지 않고 '정상적인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애씁니다.


하지만 이런 작업은 쉽지 않고, 범죄자가 기승을 부릴수록 시간 경찰은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지 고민합니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천둥 소리>라는 소설에서 작은 개입이 엄청난 변화를 초래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시간 경찰은 자신이 그런 변화를 초래하지 않을지 전전긍긍합니다. 만약 시간 경찰이 누군가를 때리거나 누군가와 대화하거나 심지어 누군가를 죽인다면, 역사는 아주 크게 바뀔지 모릅니다. 시간 경찰이 아는 역사는 바뀌고, 시간 경찰은 역사 속의 미아가 될지 모르죠. 역사 속의 미아….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 이는 개념적인 용어일 뿐이나, 시간 경찰은 정말 역사 속의 미아가 될지 몰라요. (로망이 팍팍 묻어나는 설정인 듯.)



게다가 시간 경찰 역시 하나의 인간입니다. 시간 경찰은 과거에서 수많은 부조리를 목격하고, 그 부조리를 고치고 싶어합니다. 만약 어떤 시간 경찰이 중세 왕조 시대로 돌아간다면, 고통을 받는 소작농들이나 노예들을 목격할 겁니다. 시간 경찰은 그런 노예들을 풀어주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시간 경찰이 노예들을 풀어준다면, 아무리 의도가 선하다고 해도, 그건 역사를 크게 바꾸겠죠. 따라서 시간 경찰은 착취를 당하는 노예를 그저 바라봐야 합니다. 이는 시간 경찰에게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로 작용하겠죠. 눈 앞에서 사람들이 고통을 겪으나, 시간 경찰은 거기에 간섭하지 못합니다. 시간 경찰은 수많은 학살들과 고통들을 견뎌야 합니다. 그게 역사이기 때문에. 그렇게 인류 문명이 흘러왔기 때문에.


비단 시간 경찰만 아니라 현실 속의 우리들도 그런 고통을 느낄 수 있겠죠. 흔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반도가 5천 년의 역사를 경험했다고 자랑합니다. 글쎄요, 그게 자랑인가요? 흔히 사람들은 조선 왕조 5백년을 자랑합니다. 그게 자랑인가요? 5백 년 동안 왕족과 귀족들은 수탈을 반복했어요. 그런 수탈의 역사가 정말 자랑일까요? 왕족과 귀족들이 수탈하는 동안 이른바 민초들은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모두 똑같고 평등한 인간들이나, 누구는 귀족이었고 누구는 노비였죠. 모두 똑같은 인간이나, 남자는 잘 나갔고 여자는 그렇지 못했어요. 그게 자랑스러운 역사일까요? 물론 이는 현대적인 시각입니다. 저는 현대적인 시각으로 과거를 비판할 마음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과거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 그게 잘못된 고통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그리고 그런 고통은 21세기 현재까지 여전히 이어지는 중입니다.)


사실 폴 앤더슨만 아니라 다른 작가들도 이런 고민을 다룹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코니 윌리스 역시 <화재 감시원>에서 그걸 이야기했죠. 하지만 시간 경찰은 경찰이고, 그래서 더욱 큰 권한이 있습니다. 평범한 시간 여행자와 다르죠. 오히려 시간 경찰이 평범한 시간 여행자라면, 아무 걱정 없이 역사를 바꿀지 모릅니다. 평범한 여행자와 달리 시간 경찰은 자신이 따라야 하는 규칙이 있고, 그 규칙은 역사에 함부로 개입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어쩌겠습니까.



그래서 시간 경찰들은 함부로 첨단 장비를 사용하지 못합니다. 광선총이나 비행 차량을 보유했으나, 시간 경찰들은 그런 장비들을 쉽게 사용하지 못해요. 만약 고대 중동에서 시간 경찰이 광선총을 쏘거나 비행 차량을 탄다면, 그 장면을 목격한 고대 사람들은 아주 난리법석을 부리겠죠. 그건 역사에 파장을 미칠 테고, 시간 경찰은 다시 "얼마나 많이 역사에 개입할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할 겁니다. 문제는 범죄자들이 (역사를 바꾸려고 작정했기 때문에) 첨단 장비들을 거리끼지 않고 사용한다는 사실입니다. 한쪽은 광선총을 쏘고, 다른 한쪽은 돌팔매를 쏘고…. 별로 공정한 싸움이 아니겠죠.


게다가 시간 경찰은 함부로 장비를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과거 사람들에게 붙잡히거나 쫓길지 모릅니다. 시간 경찰은 첨단 장비를 보유한 미래 사람이나, 고대 사람들에게 끙끙거려야 하죠. 이런 모순 역시 <타임 패트롤> 시리즈가 선사하는 재미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끔 작가가 편법을 부리는 듯하고, 능구렁이처럼 대체 역사를 슬쩍 넘어가는군요. 이런 점을 보완했다면, 소설이 좀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분명히 재미있는 소설 시리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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