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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사회 공학

코뮨주의와 국가주의

OneTiger 2017. 7. 5. 20:13

낸시 크레스의 소설 <스페인의 거지들>은 불면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소설 속의 주연들은 잠을 자지 않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잘 때, 불면자들은 연구하거나 공부하거나 작업하거나 놀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불면자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두 배의 시간을 누릴 수 있죠. 당연히 이들은 우월한 지위를 누리고, 보통 사람들은 불면자들을 두려워합니다. 이런 반목은 으레 차별과 폭력과 갈라서기로 이어지죠.


과거 올라프 스태플던이 <이상한 존>에서 말한 것처럼 불면자들은 자신만들의 공동체를 만듭니다. 그러던 중 어떤 불면자는 세상을 한 바퀴 둘러보고, 코뮨에서의 삶이 참 좋았다고 말합니다. 일반적인 도시와 마을은 (불면자를 포함해) 서로를 차별하지만, 코뮨에는 그런 게 없기 때문입니다. 이 코뮨이 어떤 형태인지 소설 속에 정확히 나오지 않습니다. 어쩌면 사회적 소유를 근간으로 삼는 공동체일 수 있어요. 모두가 토지나 하천을 공유하고, 생산 수단이 사회적 소유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일정한 권리를 누리는…. 이런 게 바로 코뮨 정신이죠.



사실 공산주의는 이런 코뮨 정신의 연장선입니다. 그래서 공산주의는 잘못된 번역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공산주의라는 용어를 비판하고 코뮨주의를 선호하죠. 사이언스 픽션이 공산 과학이라고 잘못 번역되는 것만큼 공산주의 역시 잘못된 번역일 겁니다. (저는 사이언스 픽션을 상상 과학이라고 생각합니다. SF 소설은 상상 과학 소설이죠.) 하지만 코뮨을 우리말로 번역하기 어렵습니다. 공동체주의라고 하기 좀 그렇고, 뭐라고 부르면 좋을지 모르겠군요. 그래서 그냥 원문의 뜻을 존중하는 사람들은 코뮨주의라고 부르겠죠.


공산주의자들은 이런 코뮨 정신을 전세계적으로 확대하기 원했습니다. 마침내 러시아에서 볼셰비키는 혁명에 성공했지만, 수많은 난관에 부딪힙니다. 그 중에서 내전과 반혁명이 제일 큰 문제였을 겁니다. 결국 코뮨은 국유화와 일당 독재로 이어지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 = 강력하고 중앙 집중적인 독재 구조'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 = 국가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코뮤니즘은 절대 스테이티즘이 아니지만, 이런 오해가 너무 흔한 것 같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국가의 간섭을 좋아한다'거나 '공산주의자들은 시장과 국가 중에서 국가를 좋아한다'는 오해입니다. 공산주의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큰 세력을 과시하는 사회 민주주의 역시 국가를 중시하는 사회주의죠.



하지만 원래 공산주의자들이 모두 국가를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비단 공산주의만 아니라 다른 좌파들도 국가에 우호적이지 않아요. 장 자크 루소 같은 고전적인 인물부터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 같은 본격적인 공산주의자들을 거쳐 오늘날의 생태주의까지, 좌파는 국가의 간섭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루소는 국가가 항상 돈 많은 자들의 편이라고 생각했고, 마르크스는 정부가 자본가 계급의 도구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의 생태주의나 무정부주의는 당연히 중앙 집중적인 구조를 거부합니다. 무정부주의는 태생적으로 그런 걸 싫어하죠. 녹색당은 지역 사회에 투신하고요.


마르크스는 공산주의가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본인도 공산주의의 정확한 실체를 알지 못했겠으나, 아주 강력한 중앙 집중적 정부는 공산주의가 아닙니다. 때때로 마르크스는 그런 뜻을 비쳤으나, 근본적인 공산주의는 독재 정부나 큰 정부와 거리가 멀죠. 사실 사회주의가 '사회'주의인 이유는 그만큼 '사회'를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국가인가요. 사회가 정부인가요. 사회와 정부는 다릅니다. 사회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임이고, 그런 사회 조직들을 강화하는 것이 사회주의의 목표입니다. 사회주의자들이 국가의 개입을 반기는 것은 그게 당장 자본가의 횡포를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개입은 사회주의의 근본 목표가 아니죠.



공산주의를 비롯한 각종 좌파들은 목표는 대략 비슷합니다. 방법론과 전술은 서로 다르지만, 어쨌든 좌파들은 중앙 집중적인 권력 구조보다 분산된 권력 구조를 선호합니다. <뒤 돌아보며> 같은 소설은 산업 군대를 예찬하지만, 그런 소설조차 기본 소득처럼 시민 개개인에게 권력을 분배하고 사회적인 역량을 강화시킵니다. 하지만 소련과 중국 같은 나라의 이미지가 너무 강한 듯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공산주의를 코뮨이 아니라 국가주의로 오해하는 것 같아요. 게다가 공산주의자들 중에서 크고 강력한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정말 존재하고요.


하지만 저는 그런 공산주의자들이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공산주의든 사회주의든, 결국 코뮨과 사회를 강화해야 합니다. 코뮨과 사회를 강화하고 싶다면, 구성원들에게 골고루 권력을 부여해야 합니다. 권력의 사회적 공유라고 할까요. 기본 소득을 지급하고, 무작위로 국회 의원을 뽑고, 선거 자금을 일정하게 나누고…. 이런 것들 역시 '권력의 사회적 공유'가 될 수 있겠죠. 사회주의를 이야기하고 싶다면, 왜 사회주의가 '사회'주의인지 고민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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