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진화 심리학이라는 광신 본문
[생물 다양성은 육식동물들이 투쟁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고유한 문화가 있어요.]
영화 <쥬라기 월드>를 보면, 남자 주인공이 벨로시랩터를 길들입니다. 군대 관계자는 벨로시랩터들을 생체 병기로 사용하기 원하죠. 남자 주인공은 거기에 동의하지 않으나, 그 군대 관계자는 벨로시랩터가 훌륭한 병기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은 자연계의 동물들은 경쟁하고 죽이는 것밖에 모르고 자연계가 투쟁의 장소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벨로시랩터 역시 자연이 마련해준 병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남자 주인공은 딱히 반박하지 못해요.
솔직히 이런 사상은 그리 낯설거나 드물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연계를 잔혹한 전장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생물들이 생존을 위해 싸우고 죽인다고 생각합니다. 이빨과 발톱, 피에 젖은 송곳니 따위는 자연계를 대변하는 이미지입니다. 하지만 표트르 크로포트킨이 이야기한 것처럼 생물들은 그저 죽고 죽이지만 않습니다. 때때로 생물들은 서로 공생하고, 그런 공생 관계 역시 자연 생태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아마 저 군대 관계자 역시 자기 뱃속에서 미생물들과 공생하지 못했다면 제대로 먹고 살지 못했을 겁니다.
각종 창작물에서 "이 세상은 약육강식. 자연계에는 정글의 법칙이 작용한다."는 대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개똥 철학을 읊조리는 만화부터 천문학적인 비용의 블록버스터 영화까지, 이런 대사들은 곳곳에서 수를 놓습니다. 물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자기 뱃속에서 공생하는 미생물들을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참으로 편향적이고 왜곡된 대사라고 볼 수 있겠죠. 그 자신이 상호 공생 때문에 살아있음에도 약육강식 운운하고…. 더욱 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상을 사회 체계에 적용한다는 겁니다.
"자연계는 서로 죽이고 죽이는 구조이다. 따라서 치열한 경쟁은 과학적이고 자연적인 현상이다. 과학적이고 자연적인 현상은 옳다. 따라서 인간들이 서로를 착취하는 것도 옳다." 대략 이런 논리입니다. 이런 논리 때문에 유럽 백인들은 흑인이나 원주민이 열등하다고 여겼고, 동물을 전시하는 것처럼 원주민들을 전시했습니다. 다행히 우생학은 공식적으로 사라졌으나, 여전히 이런 사상은 곳곳에서 잠복하고 끈질기게 수명을 이어갑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진화를 근거랍시고 들먹이고 인종이나 성이나 계급을 차별합니다. 뭔가가 자연적이거나 진화론스럽게 보이면, 사람들은 그걸 절대적인 진리처럼 여깁니다.
저는 자연계가 완전히 죽음의 전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연계가 조화롭고 화기애애한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치열한 경쟁과 상호 공생은 모두 자연계를 이루는 요소입니다. 그 중 어느 하나에만 무게를 둘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생물은 적에게서 탈출하기 위해 진화했고, 어느 생물은 다른 누군가를 돕기 위해 진화했습니다. 그 두 가지는 모두 진화론을 떠받칩니다. 게다가 더욱 중요한 것은 자연계의 현상을 인류 사회에 그대로 대입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인간은 자연계의 다른 동물들과 별로 다르지 않으나, 어떤 점에서 한편으로 꽤나 특별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지 연구할 필요가 있으나, 동물들의 습성을 무조건 사회에 적용할 이유가 없습니다. 흔히 진화 심리학자들은 "남자가 바람을 피우는 것은 본능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라고 말합니다. 사실 이런 학자들은 사회적인 요인을 하나도 고려하지 않습니다. 제대로 연구하지 않았다는 뜻이죠. 솔직히 학자라고 부르기 민망합니다. 저런 사기꾼(?)들을 학자라고 불러야 하다니….
저는 태생적인 특성과 문화적인 영향을 단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우리가 우리의 행동을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치열한 경쟁이 자연 법칙이기 때문에 자유 시장이 자연적이고 옳다고 말합니다. 이미 19세기에 그런 논리가 유행했고, 그래서 크로포트킨 같은 사회주의자는 거기에 반박하는 글을 썼어요. 인간은 다른 야생 동물과 다릅니다. 우리의 생리적 구조는 동물들과 별로 다르지 않겠으나, 인간들만의 독특한 문화까지 무시할 수 없을 겁니다.
우리는 우리만의 문화가 있고, 우리 행동을 적당한 수준에서 조절할 수 있습니다. 동물들이 서로를 죽고 죽인다고 해도 우리들이 그걸 고스란히 본받을 이유가 없어요. 우리는 각종 생물들의 공생 관계만 본받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은 진화론을 치열한 경쟁으로만 바라보고, 자연 현상을 사회 구조에 적용하고, 결국 착취와 수탈이 옳다고 떠듭니다. 싸구려 만화 속이든, 현실 속이든, 그런 사람들을 숱하게 볼 수 있습니다. 우생학의 그림자는 여전히 세상 곳곳에서 악영향을 퍼뜨리는 중이죠.
저는 진화론을 부정하는 것만큼 진화론을 아무 데나 들이대는 것도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인간이 다른 동물들처럼 자연계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왜 우리만의 특성을 이해하지 않습니까. 모든 생물들은 저마다 특징이 있고, 그래서 생물 다양성은 아름답죠. 우리는 우리의 특징을 더욱 발달시킬 수 있고, 여느 생물과 다른 우리만의 문화를 만들 수 있어요. 그것도 진화라면 진화겠죠. 자연 과학을 빙자하는 저런 사기꾼들을 보면, 저는 사회 과학자들의 어깨가 정말 무거울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