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지배 계급을 넘지 못하는 전복과 혁신과 파격 본문
전복과 혁신과 파격. 흔히 SF 소설들은 이런 수식어들을 장식합니다. 그리고 그런 수식어들은 별로 틀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찬사를 보내는 SF 소설들은 정말 전복적이고 혁신적이고 파격적이죠. 우선 SF 소설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뒤집습니다. 기존의 세계는 뒤집어지고 새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타임 머신>에서 시간 여행자는 인류와 동물들이 사라진 세상을 목격합니다. 그 세계조차 영원히 이어지지 않고, 언젠가 다른 세계가 도래하고, 지구 자체가 멸망에 이를 것처럼 보입니다.
쥘 베른은 어느 단편 소설에서 세계가 끊임없이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이야기했습니다. 영원히 반복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포스트-포스트 아포칼립스입니다. 폴 앤더슨은 어떤 방사능 아포칼립스 소설에서 인류가 돌연변이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외칩니다. (이른바) 정상인들은 그게 불만이었으나, 세상은 변했고 인류는 돌연변이들 없이 살아가지 못해요. 존 윈덤은 <바퀴>나 <트리피드의 날>에서 사회가 계속 변한다고 말합니다. 특히, <트리피드의 날>에서 어떤 사회학자의 입을 이용해 전복과 적응을 이야기하죠. SF 소설 속에서 사회, 문명, 행성, 우주는 연이어 무너집니다.
아울러 SF 소설은 혁신적입니다. 기존의 세상이 무너진다면, 새로운 세상이 도래할 테고, 새로운 세상은 기존의 세상과 다를 겁니다. 과거는 사라지고 미래가 다가옵니다. 혁신이라는 단어는 긍정적이나, 새로운 세상은 부정적일지 몰라요. 하지만 부정적이라고 해도 SF 소설에서 과거는 부서지고 사람들은 새로운 전망을 바라봅니다. 어쩌면 그것은 (혁신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긍정적인 어감처럼) 장밋빛 미래일지 모릅니다. 이런 장밋빛 미래를 제안한 작가로서 휴고 건즈백은 이름을 날렸죠.
중요한 초기 SF 작가들은 많으나, 메리 셸리나 쥘 베른이나 허버트 웰즈와 달리 휴고 건즈백은 비판적인 소설들보다 기술적인 유토피아를 꿈꾸는 소설들을 남겼죠. 덕분에 미국 대중에게 사이언스 픽션을 널리 퍼뜨릴 수 있었고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부분 혁신적인 사이언스 픽션은 휴고 건즈백에서 비롯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비단 휴고 건즈백뿐이 아니죠. <세계 SF 걸작선>에서 홍인기 편역자는 SF 작가들이 놀라운 청사진을 그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에드워드 헤일이 예견한 인공 위성이나 키플링이 말하는 항공 우편, 에드윈 발머가 제시한 거짓말 탐지기, 클레브 카트밀이 상상한 원자 폭탄을 이야기했어요.
물론 혁신을 이야기하는 만큼, SF 작가들이 예견하지 못하는 미래들도 많습니다. SF 작가는 점쟁이가 아닙니다. 그저 SF 작가는 상상력을 펼치기 좋아할 뿐입니다. 그 상상력이 당대의 과학적 패러다임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SF 작가는 (저도 모르게) 미래를 예견할 수 있고, 그건 혁신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혁신을 이야기하고 싶다면, 낡은 것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중세 사람들은 신에게 굴종했으나, 21세기에 종교는 낡은 것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종교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나, 중세와 달리 사회 구조를 좌우하지 못하죠.
사람들이 관습을 버리는 것처럼 SF 작가들은 소설 속에서 주류적인 사고 방식을 과감하게 무너뜨립니다. SF 작가들은 주저하지 않습니다. 사회가 동성애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나요? SF 작가들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사회가 동성애를 부정적으로 바라본다고 해도 SF 작가들은 과감하게 금기를 묘사하고, (주류적인 시선이 보기에) 더욱 혐오스러운 것들을 한껏 묘사합니다. 인간이 징그러운 벌레와 성교하거나 인간이 추악한 생명체로 변하거나 인간이 기계가 되거나 가족 관계가 산산이 부서지거나…. SF 작가들은 주저하지 않아요.
SF 작가들은 전복과 혁신과 파격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SF 소설을 읽는 독자는 시야를 넓힐 수 있습니다. 뭔가 다른 것을 상상할 수 있죠. 하지만 가끔 저는 SF 소설이 부딪히는 장벽을 봅니다. 아무리 SF 작가가 혁신적이라고 해도 SF 작가들이 현대 문명을 깊이 꿰뚫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SF 작가는 현대 사회가 허용하는 만큼 전복적이고 혁신적이고 파격적입니다. 현대 사회가 허용하지 않는다면, SF 작가 역시 주류적인 사고 방식에 복종합니다.
그래서 아마 로버트 하인라인이나 폴 앤더슨이나 할 클레멘트나 잭 밴스처럼 기라성 같은 SF 작가들이 베트남 침략을 지지했을 겁니다. SF 작가들은 얼마든지 편협해질 수 있고, 얼마든지 지배 계급에게 굴종할 수 있고, 얼마든지 주류적인 사고 방식을 지지할 수 있습니다. SF 독자들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SF 독자들은 가부장적인 사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거나 자본주의 폭력을 응원하거나 소수 민족을 모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광경은 드물지 않습니다. 아무리 전복적이고 혁신적이고 파격적인 SF 작가조차 지배 계급의 발바닥을 핥을 수 있어요.
물론 언제나 말하는 것처럼 그런 작가들이 잘못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지배적인 관념을 뛰어넘기는 정말 어려운 법이죠. 솔직히 저는 지배적인 관념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이 특별히 똑똑하거나 예민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떤 사람들은 정말 똑똑하거나 예민하나, 대부분 사람들이 지배적인 관념에서 벗어나는 이유는 그저 운이 좋기 때문이에요. 에릭 올린 라이트는 세계적인 사회학자이자 마르크스주의자입니다. 하지만 에릭 라이트가 좌파적인 가정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 양반은 그저 착하게 살라는 설교만 늘어놨을지 몰라요. 이런 지식인들만 아니라 SF 작가들 역시 마찬가지죠. 그래서 비록 극소수이나, 좌파적인 SF 소설들이 더욱 빛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소설들이야말로 정말 전복적이고 혁신적이고 파격적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