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상상 과학과 과학적 사회주의 본문
흔히 사이언스 픽션은 공상 과학으로 번역되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공상 과학이 올바른 용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공상은 논리적이지 않은, 다소 부정적인 느낌을 풍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SF 소설을 '사변 소설'이라고 부르고 싶고, 적어도 사이언스 픽션에서 핵심은 공상이 아니라 '상상 과학'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반복하는 이유는 공상 과학이라는 용어가 앞으로 사라지지 않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일반인들부터 지식인들까지, 다들 공상 과학이라는 용어를 거리끼지 않고 사용합니다.
솔직히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SF 소설들을 읽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이 그저 허버트 웰즈나 쥘 베른이나 조지 오웰을 대충 읽고, 블록버스터 영화들이나 비디오 게임들만 보고, 대충 사이언스 픽션을 정의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SF 소설을 좋아하거나 말거나, 적어도 여러 SF 소설들을 읽었다면, 공상 과학이라는 번역이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SF 소설을 사변 소설이라고 부르든, 과학 소설이라고 부르든, 상상 과학 소설이라고 부르든, 어쨌든 공상 과학은 아니죠. 게다가 사람들은 과학이라는 단어조차 오해할지 모르겠어요.
사실 이 '상상 과학'이라는 용어를 제안한 장본인은 SF/판타지 도서관의 표도기 관장님입니다. 제가 알기로 표도기 관장님이 이를 널리 쓰자고 제안했습니다. 만약 사이언스 픽션을 상상 과학으로 불러야 한다면, 왜 '과학'이라는 단어를 붙일까요. 메리 셸리나 허버트 웰즈나 휴고 건즈백이 과학자들과 과학자에 준하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삼았기 때문에? 과학자들이 소설 속에서 중심적으로 활약하기 때문에? 과학자가 등장하지 않는다고 해도 자연 과학적인 소재를 활용하기 때문에? 네, 표면적으로 살펴본다면, 그런 이유 때문에 사이언스 픽션은 상상 과학으로 불릴 겁니다. 인조 인간과 보행 병기와 만능 잠수함과 우주선은 전부 자연 과학을 이용한 소재이고, 그래서 과학이라는 단어가 사이언스 픽션에 붙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전부가 아니죠. 상상 과학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과학과 다릅니다. 아주 엄밀한 하드 사이언스 픽션도 있고, 환상적인 소프트 사이언스 픽션도 있으나, 양쪽 모두 일반적인 과학과 다릅니다. 과학 잡지들을 열심히 구독한다면, 아마 SF 소설을 읽기에 도움이 될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과학 잡지가 곧바로 사이언스 픽션이 되지 않습니다. 상상 과학은 과학이 아닙니다. 과학적으로 보이는 상상력입니다. 상상 과학은 현실 속의 자연 과학에서 출발하나, 현실 속의 자연 과학만으로 상상 과학이 되지 않습니다. 상상력을 결합하는 순간, 상상 과학은 자연 과학에게 작별을 고하고 뭔가 다른 것이 됩니다.
덕분에 별로 치밀하게 고증하지 않는 소설들 역시 SF 소설이 될 수 있을 겁니다. 하드 SF 소설은 사이언스 픽션의 세계에서 가장 핵심에 속하나, 고증이 치밀하지 않은 소설들 역시 얼마든지 SF 울타리 안에 들어갈 수 있어요. 심지어 사이언스 픽션은 검마 판타지와 결합하고, 스팀펑크와 비슷한 뭔가를 만들 수 있습니다. 최신 과학 잡지와 검마 판타지 속의 증기 전차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입니다. 서로 아무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죠. 스팀펑크 소설에서 아무리 인공 지능이나 자동 인형이 등장한다고 해도 그걸 기술적 특이점이나 빅 데이터 기술과 연관시키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설사 스팀펑크 소설의 자동 인형과 최신 기술적 특이점 이론을 연관시킬 수 있다고 해도 그건 비유적인 연관일 뿐이겠죠. 그래서 어슐라 르 귄은 SF 소설이 자연 과학을 이용한 은유라고 말했을 겁니다. 어쩌면 다른 평론가들이나 작가들이나 독자들은 이런 정의에 반대할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장르를 아주 명확하게 규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SF 소설이 자연 과학을 이용한 은유'라는 정의는 별로 틀리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과학적 사회주의라는 용어 역시 이런 시점에서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과학적 사회주의.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자신들의 철학을 그렇게 불렀어요. 그렇다면 과학적 사회주의에서 과학은 무엇을 뜻할까요? 어떤 사람들은 과학 잡지나 자연 과학자들을 떠올릴지 모릅니다. 사실 아이작 뉴턴이나 찰스 다윈은 유럽 과학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살았을 때 <종의 기원>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어요. 엥겔스 역시 <종의 기원>을 혁명적인 책이라고 호평했고요. 그렇다고 해도 과학적 사회주의에 자연 과학을 덧붙인다면, 그건 상상 과학을 일반적으로 과학으로 오해하는 것과 비슷할 겁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두 가지 이유에서 자신들의 이론이 과학적이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역사적 유물론과 잉여 가치입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그저 윤리에만 기대지 않고, 두 가지 이론을 근거로 자본주의를 비판했어요. 그래서 자신들이 과학적이라고 생각했죠. 여기에서 과학을 논리로 치환해도 좋을 겁니다. 막연히 윤리나 공상에 기대지 않고, 논리적으로 생각하자는 취지죠. 아무리 엥겔스가 <자연 변증법> 같은 책을 썼다고 해도, 만약 과학적 사회주의를 그저 자연 과학과 비슷하게 취급한다면, 엥겔스를 오해하는 길이겠죠.
사실 자연 과학이 엄청난 성과를 이루었기 때문에 과학이라는 단어는 많은 오해들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런 오해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단어 자체보다 맥락과 본질을 파악해야 할 겁니다. 상상 과학과 과학적 사회주의 양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