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작은 자본론>에 관한 잡담 두 가지 본문
<작은 자본론>은 자본주의 체계의 모순과 착취를 고발하는 책입니다. 그리스 경제학자가 저자이고, 원래 제목은 '딸에게 들려주는 경제 이야기'입니다. 부모가 어린 딸에게 자본주의 체계를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체계의 등장과 각종 폐해를 (비교적) 알기 쉽게 서술합니다. '작은 자본론'이라는 제목이 잘 어울리는군요. 저자는 어린이에게 설명하는 것처럼 쉽게 설명하기 때문에 이런저런 사례와 비유를 자주 이용합니다. 그 중에 SF 창작물도 있습니다.
저자는 <프랑켄슈타인>, <매트릭스>, <블레이드 러너>를 사례로 들었습니다. 저는 이걸 봤을 때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저자는 하필 (SF '소설'이 아니라) SF '영화'를 사례로 삼았을까요. 분명히 <매트릭스>나 <블레이드 러너>보다 훨씬 자본주의 체계를 더 잘 비판할 수 있는 소설들이 많고 많습니다. 그럼에도 저자는 <매트릭스>를 언급했죠. 아마 저자가 SF 소설들을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사실 자본주의 체계를 비판하는 책들은 종종 SF 창작물을 언급하지만, 대부분 영화만 언급합니다. 영화의 파급력이 소설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겠죠.
저는 SF 장르의 진수는 영화나 게임이 아니라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매체는 자신만의 장점이 있으나, 그 중에서 소설이 사이언스 픽션의 정수를 제일 잘 담는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은 텍스트 매체이기 때문에 추상적인 이야기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고, 따라서 소설은 사변 문학을 제일 잘 담을 수 있는 그릇입니다. 영화나 비디오 게임 등은 영상 매체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사변이 약하죠. 영화나 비디오 게임이 <블라인드사이트>의 그 복잡한 정신 상태나 <소멸의 땅>의 그 기이한 분위기나 <솔라리스>의 그 학구적인 헛발질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저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나 비디오 게임은 자신만의 색깔을 입힐 수 있겠으나, 영화나 비디오 게임의 그런 사변은 소설의 사변에 미치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변이 약한 대신 사람들은 소설보다 영화에 접근하기 더 쉽고, 그래서 영화가 훨씬 많은 인기를 끌죠. 덕분에 <작은 자본론>의 저자 역시 소설보다 영화를 더 많이 설명하고요. 아쉬운 상황이지만, 뭐, 어쩔 수 없겠죠.
어쨌든 각설하고, <작은 자본론>은 자본주의 체계의 여러 폐해 중에서 환경 오염을 빼먹지 않습니다. 게다가 자본주의 체계는 환경 오염을 이익으로 환산하기 때문에 훨씬 위험하다고 주장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자본주의 체계가 좋아하는 것은 '교환 가치'입니다. 즉, 자본주의 체계는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얼마나 시장에서 잘 팔리는지 따진다는 뜻입니다. 만약 어떤 대상에게 교환 가치가 없다면, 자본주의는 그 대상을 무참하게 버립니다. 설사 그 대상에게 훌륭한 '실제 가치'가 있다고 해도 교환 가치가 없다면, 자본주의는 그 대상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본주의는 그 대상에게서 최대한 교환 가치를 이끌어내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생물 다양성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생물 다양성을 교환 가치로 만들려고 애쓰죠. 그 와중에 생물 다양성이 파괴되지만, 자본주의는 그걸 이익으로 계산합니다. 오직 교환 가치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울창한 숲은 풍부한 생물 다양성을 보장하지만, 자본주의는 거기에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숲이 파괴되고 사업이 벌어지면, 자본주의는 그걸 이득으로 계산합니다.
사실 일찍이 데이빗 스즈키가 이와 비슷하게 지적했습니다. 데이빗 스즈키는 (사회 과학자가 아니라 자연 과학자이자 환경 보호론자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체계를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했으나, 현재의 경제 구조가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비판했습니다. 스즈키는 경제 구조가 뭔가를 파괴할 때 이득을 계산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현재의 경제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데이빗 스즈키는 자본주의 체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몰랐겠지만, 학구적인 환경 보호론자로서 그걸 직감했죠. 허먼 데일리 같은 경제학자의 도움도 받았고요.
즉, 환경 보호론자와 사회주의 학자가 비슷한 목소리를 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저는 사회주의와 환경 보호론이 똑같이 자본주의 체계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회주의와 환경 보호론이 갈 길은 서로 다르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 연대할 수 있을 겁니다. 사회주의와 환경 보호론이 함께 자본주의를 뛰어넘지 못한다면, 계속 빈민들도 고통에 시달릴 테고 생물 다양성도 줄어들겠죠. 그건 서로 무관한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의 뿌리에서 뻗어나오는 문제입니다.
※ 책 마지막의 문구는 참 감명 깊군요. 정말 수많은 압박과 비웃음에 시달릴 사회주의자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듯한 문구…. 보다 평등한 세상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고 연대할 미래의 사회주의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문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