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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회주의는 생태적 사회주의 본문

생태/인류세라는 착각

결국 사회주의는 생태적 사회주의

OneTiger 2017. 7. 13. 20:00

<데모크라시>는 플레이어가 정치와 경제를 관리하는 게임입니다. 일종의 정치 및 경제 시뮬레이션입니다. 정치 시뮬레이션답게 이 게임은 다양한 운동가들을 선보입니다. 그 중 대표적인 운동가는 사회주의자와 환경 운동가입니다. 사회주의자는 공공 복지를 선호하고, 국가가 의무 교육이나 무료 병원 등을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당연히 사회주의자는 자본주의적 방법을 싫어하죠.


환경 운동가는 공기 오염, 에너지 정책, 과세, 재활용 문제 등에 민감합니다. 환경 운동가는 정부의 응원군이 되거나 정부를 지극히 싫어할 수 있어요. 저는 <데모크라시>라는 게임을 플레이한 적이 없기 때문에 게임 속에서 사회주의자들이나 환경 운동가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회주의자와 환경 운동가가 연대하거나 환경 운동가가 사회주의적 대안을 실행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만약 그런 요소들이 있다면, 이 게임이 나름대로 현실을 반영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결국 환경 운동은 사회주의적 대안을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회주의적 대안이 없는 환경 운동은 실패하겠죠.



역사적으로 사회주의와 환경 운동은 많이 싸웠다고 합니다. 사회주의자가 노동자들을 위해 더 많은 공장을 짓기 원할 때, 환경 운동가는 그 공장들이 자연 생태계를 오염시킬 거라고 비판하죠. 사회주의자가 개발과 확장을 외칠 때, 환경 운동가는 그런 개발과 확장이 오염으로 돌아올 거라고 경고합니다. 하지만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는 동안, 사회주의와 환경 운동은 여러 부침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회주의자는 환경 운동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환경 운동가는 사회주의적 대안을 고민해야 할 겁니다.


사회주의나 환경 운동만으로 더 이상 가난한 노동자와 자연 생태계를 보호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최종적으로 사회주의가 생태 사회주의로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연 생태계를 생각하지 않는 사회주의는 진짜 사회주의가 될 수 없습니다. 자연 환경이 수탈을 겪을 때, 가난한 사람들이 함께 수탈을 겪었습니다. 자연 환경 수탈과 빈민들의 수탈은 절대 멀리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항상 붙어 다녔죠. 21세기의 기후 변화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기후 변화가 빈익빈 부익부를 초래한다고 말합니다.



환경 운동 역시 더 이상 자본주의를 용납할 수 없을 겁니다. 환경 운동은 자본주의를 넘어서고 다른 사회 구조를 바라봐야 합니다.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확장하고 생산해야 합니다. 무한한 생산과 확장은 자본주의 체계의 근본적인 속성입니다. 제한적인 생산량 따위는 없습니다. 환경 운동가들은 국가가 자본의 무한한 증식을 통제할 수 있다고 기대하지만, 저는 그런 기대가 헛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국가는 자본가의 편이 아닐 수 있으나, 결국 자본주의 체계의 편입니다. 국가가 자본가들을 통제한다고 해도 자본주의 체계를 통제하지 않습니다. 무분별한 생산, 끊임없는 확장. 이게 자본주의 체계의 핵심입니다. 자본주의 체계는 필요에 따른 소비를 고려하지 않고, 그래서 자연 생태계를 마구잡이로 낭비합니다. 그래서 소련은 그토록 막대한 환경 오염을 저질렀습니다. 자본가만 통제하면 뭐 합니까. 자본주의 체계가 그대로 굴러간다면, 자본가를 통제하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요.



따라서 사회주의는 환경 운동에게 귀를 기울여야 하고, 환경 운동 역시 사회주의와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이 둘이 독립적으로 행동한다면, 결국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을 겁니다. 노동 해방은 사회주의의 오랜 표어이지만, 노동 해방만이 사회주의의 표어가 되어서는 안 될 겁니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따라 무분별한 생산만을 뒤쫓지 말아야 합니다. 자본주의의 달콤한 과실만을 받아먹는 사회주의는 존재할 수 없어요. 자본주의는 그 달콤한 과실을 맺기 위해 자연 생태계를 수탈했고, 그게 가난한 사람들의 피해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필요에 따른 생산'은 생산을 위한 생산이 아니라 '자연 생태계를 고려하는 생산'을 뜻합니다. 환경 운동가 역시 더 이상 몇몇 정치인이나 국가 따위에 기대지 말아야 할 겁니다. 생산을 위한 생산과 필요에 따른 생산 앞에서 국가가 서있을 때, 국가는 생산을 위한 생산으로 가곤 합니다. 자본주의 체계를 뒤집지 않는다면, 국가는 계속 생산을 위한 생산만을 선택할 겁니다. 생산을 위한 생산은 자연 생태계를 그저 자원의 집합소로 바라볼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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