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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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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인류세라는 착각

'자연이 병든다'라는 문구의 의미

OneTiger 2017. 7. 7. 20:00

[백악기 멸종은 공룡들에게 포스트 아포칼립스입니다. 이건 질병이 아니죠. 자연은 병들지 않아요.]



"이 자연계에서 인간만이 거의 유일하게 자연을 병들게 할 수도 있고, 치유할 수도 있는 생명체이다." 이 문구는 박호성의 <자연의 인간, 인간의 자연>에 나옵니다. 비단 이 철학 서적만 아니라 여러 창작물들과 책들에서도 비슷한 문구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연이 병든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작금의 환경 오염을 보고 '지구가 아프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자연 생태계가 변화하는 것이 병든다는 것을 의미할까요.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거나 생물 다양성이 감소하는 것이 무조건 부정적일까요.


물론 <자연의 인간, 인간의 자연>은 그리 단순한 책이 아닙니다. 그저 지구가 아프다고 평면적으로 호소하는 책이 아닙니다. 이 책은 여러 철학 사상들을 돌아보고, 자연관과 인간관을 꿰뚫어봅니다. 하지만 "인간만이 거의 유일하게 자연을 병들게 할 수 있다." 같은 문구는 많은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구를 접할 때마다 저는 묻고 싶습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여러 환경 오염들, 산업 폐기물, 매연, 온실 가스, 미세 플라스틱, 쓰레기 섬 등은 확실히 자연이 병들었다는 증거일 겁니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은 오직 인류가 등장한 이후에 벌어졌을까요. 인류가 등장하기 이전 혹은 산업 시대가 시작하기 이전에 저런 현상은 벌어지지 않았을까요.



지구는 45억 년 전에 태어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지구를 '자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빅뱅 이후 우주가 탄생했으나, 그 우주를 자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역시 별로 없을 듯합니다. 왜냐하면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하고 온갖 물리 및 화학적 현상이 벌어진다고 해도 거기에 생명이 없다면 우리는 그걸 자연으로 취급하지 않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미생물들의 생태계는 어떨까요. 38억 년 전에 미생물들이 나타났고, 이후 몇 십 억 년 동안 미생물들은 (그들 나름대로) 복잡한 생태계를 이뤘습니다.


사실 지구 생태계의 역사는 미생물들의 역사입니다. 만약 생물 진화의 역사가 38억 년이라면, 미생물들은 그 중 30억 년 이상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대략 5억 년 전에 복잡한 생태계가 본격적으로 출발했죠. 게다가 미생물들은 여전히 자연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습니다. 여러 동물들이나 식물들이 사라진다고 해도 (그 동식물과 공생하거나 거기에 기생하는 미생물들을 제외하고) 미생물들은 별로 아쉬워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미생물들이 없다면, 동식물들은 살아갈 수 없겠죠.



이렇듯 미생물들은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미생물들의 생태계를 '자연'으로 봐야 할까요. 몇 십 억 년 전에 커다란 동물들이 아직 출현하기 전에 미생물들만이 지구상에서 득실거렸을 때, 그 상태가 자연일까요. 혹은 우주 승무원들이 외계 행성에서 외계 미생물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행성의 생태계는 자연일까요. 솔직히 저는 뭐라고 대답하지 못하겠습니다. 이런 미생물들의 생태계는 일반적인 자연 생태계의 모습과 거리가 멉니다. 우리는 녹색 숲과 파란 하늘과 싱그러운 초원과 화려한 꽃과 꿀벌과 나비와 사슴 등을 자연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지구상에서 자연계는 지리와 생물 진화에 따라 다른 모습을 그렸습니다. 무더운 사막과 혹독한 극지와 어두운 동굴과 미지의 심해 역시 나름대로 생태계를 품었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자연계입니다. 저 역시 녹색 숲과 형형색색의 산호초를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런 것들을 자연계에서 제외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길고 수많은 생태계들 속에서 수많은 생명들은 흥망을 거듭했습니다. 가령, 조류들은 열심히 산소를 만들었습니다. 이건 자연을 병들게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치유하는 것일까요. 산소가 가득한 대기는 긍정적이고 치유적인가요.



물론 대부분 사람들은 산소가 가득한 대기를 긍정적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 세상에는 혐기성 생물들도 있습니다. 게다가 어쩌면 외계 생태계는 우리가 상상하는 생태계와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SF 소설의 생태계보다 훨씬 더 희한한 생태계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생태계는 별로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을지 모릅니다. 게다가 우리는 '원주민'이 자연 친화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원주민들도 얼마든지 숲을 밀어내고 대형 동물들을 멸종시켰습니다. 산업 자본주의 이전이 자연 친화적이었다는 주장은 너무 낭만주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자연이 병든다'는 개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상황이 긍정적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물론 현재의 상황은 어마어마하게 부정적입니다. 그저 저는 '자연이 병든다'라는 문구가 너무 모호하고 추상적이라고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른바 수구 꼴통들은 저런 표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환경 운동가들이 막연히 관념적인 자연을 지킨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그런 자연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죠. 그런 자연은 오직 광신도의 몽상 속에만 존재할 겁니다.



현재의 부정적인 상황을 보다 정확히 표현한다면, 자본주의 체계와 착취를 거론해야 할 겁니다. 자본주의 체계가 막대한 오염을 일으켰고, 그 오염이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칩니다. 게다가 산업 자본주의는 이윤을 축적하기 위해 동물들을 극악한 고통에 빠뜨리죠. 동물들 역시 우리와 똑같은 고통을 느끼고 우리 후손들도 다양한 동물들과 함께 살아갈 권리가 있으나, 자본주의 체계는 그런 사안에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자본 축적만이 지상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자연이 병든다는 것이 막연한 문구라고 생각합니다. 그보다 더 주목할 것은 (인간과 동물을 포함한) 수많은 생명의 고통입니다. 저는 그게 훨씬 명확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자연을 보존한다는 것은 그런 고통을 멈추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고통을 멈추고 싶다면, 우리가 이 자연을 평등하게 이용해야 할 겁니다. 자본주의 체계에서는 그게 절대 불가능하겠죠.



※ 이미지 출처: https://www.bbc.co.uk/programmes/p00l4md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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