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자연 계열 치유사를 위한 방패와 로브 본문
[이런 튼튼하고 육중한 모습은 전사가 아니라 성직자입니다. 치유사 범주는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롤플레잉 게임 <던전스 앤 드래곤스>에는 기본적인 네 클래스들이 있습니다. 전사, 성직자, 도적, 마법사는 기본적인 클래스들입니다. 전사는 모험가 일행을 보호하고 근접 전투를 맡습니다. 성직자는 상처들을 치료하고 언데드를 퇴치합니다. 도적은 정찰과 함정 분해와 기습 공격을 맡습니다. 마법사는 불덩어리와 번개 줄기를 날리고 적들을 지지고 볶습니다. <던전스 앤 드래곤스>에는 네 클래스들 이외에 다른 많은 핵심 클래스들과 온갖 파생 클래스들이 있으나, 전사와 성직자와 도적과 마법사가 기본이기 때문에, <솔라스타> 데모 게임 플레이가 보여주는 것처럼, 간단한 던전 탐험들은 전사와 성직자와 도적과 마법사를 이용합니다. 여기에서 성직자는 가장 방어적입니다.
전사는 장검으로 해골 병사의 목을 날릴 수 있습니다. 도적은 기습 공격으로 악마 헤즈루의 뒷통수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습니다. 마법사에게는 길다란 설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강력한 파이어볼과 라이트닝 볼트 주문은 마법사를 대표합니다. 반면, 성직자는 적들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성직자가 좀비들에게 철퇴를 휘두른다고 해도, 이건 일반 공격입니다. 성직자는 신성한 성표를 내밀고, 언데드 퇴치 주문을 외우고, 악령들을 내쫓을 수 있으나, 다른 모험가들은 성직자가 공격 담당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성직자는 힐러입니다. 성직자는 걸어다니는 구급 상자입니다. 다른 모험가들은 다른 무엇보다 성직자가 걸어다니는 구급 상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직자는 가장 방어적입니다.
성직자에게는 공격 주문들이 있습니다. 성직자는 미라에게 신성한 빛줄기를 쏘거나, 화염 기둥을 내려치거나, 대지를 가르고 지진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소설 <드래곤 라자>에서 제레인트 침버가 엄청난 지진을 일으키고, '대마법사' 아프나이델이 "제가 프리스트(사제)를 하고 당신이 마법사를 하는 편이 어떻습니까?"라고 농담하는 것처럼, 힐러에게는 강력한 공격 주문들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모험가 일행은 성직자가 구급 상자라고 생각합니다. 성직자가 공격 주문들을 날린다면, 다른 모험가들은 왜 성직자가 아까운 주문 슬롯들을 공격 주문들에 할애하는지 비판할 겁니다. 성직자가 치유 담당이기 때문에, 성직자는 방어적입니다.
성직자가 방어적이기 때문에, 성직자는 약하지… 않습니다. 사실 성직자가 치유 담당이라고 해도, 성직자는 약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직자는 판금 갑옷과 사슬 갑옷을 착용하고, 방패를 들고, 전사 곁에서 철퇴를 휘두릅니다. 육중한 판금 갑옷과 방패와 철퇴 덕분에, 종종 성직자들은 성기사 같습니다. 외관에서 전사와 성직자는 별로 커다란 차이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아무리 마법사가 공격 담당이라고 해도, 마법사는 갑옷을 입지 않고, 방패를 들지 않고, 전열로 나가지 않습니다. 마법사는 로브를 입습니다. 후열에서 마법사는 중얼거리며 주문을 외웁니다. 반면, 아무리 성직자가 치유 담당이고 방어적이라고 해도, 성직자는 전열로 나갑니다.
이건 언제나 중세 유럽 판타지에서 성직자들이 전열로 나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던전스 앤 드래곤스>에서 성직자들은 갑옷을 입고 방패를 들고 전열로 나가나, 소설 <드래곤 라자>에서 사제 제레인트 침버는 허름한 로브를 입습니다. 제레인트 침버는 샌슨, 길시언, 엑셀핸드와 함께 전열로 나가지 않습니다. 이건 다소 이상합니다. 분명히 <드래곤 라자>가 <던전스 앤 드래곤스>에 기반함에도, <드래곤 라자>는 제레인트 침버가 갑옷을 입고 방패를 들고 전열로 나간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제레인트 침버는 전열보다 후열로 빠집니다. 테페리 사원에는 육중한 무기들이 있고, 어떤 사제들은 육중하게 무장할지 모르나, <드래곤 라자>에서 제레인트를 비롯해 사제들은 묵직한 방패를 들지 않습니다.
<던전스 앤 드래곤스>와 <드래곤 라자>가 성직자와 사제를 다르게 묘사하는 것처럼, 중세 유럽 판타지에서 힐러들은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던전스 앤 드래곤스>처럼, 어떤 힐러는 방패를 들고 전열로 나갑니다. <드래곤 라자>처럼, 어떤 힐러는 로브를 입고 후열로 빠집니다. 만약 어떤 롤플레잉 게임 플레이어가 성직자를 좋아한다면, 게임 플레이어는 <드래곤 라자>와 제레인트 침버가 다소 실망스럽다고 느낄 겁니다. 롤플레잉 게임 플레이어는 엑셀핸드 곁에서 성직자가 방패를 내밀고 철퇴를 휘두르기 원할 겁니다. 만약 어떤 판타지 독자가 로브를 입은 사제를 좋아한다면, 갑옷으로 무장한 성직자는 다소 어색할 겁니다. "아니, 왜 힐러가 전열로 나가지?" 이렇게 판타지 독자는 반박할 겁니다.
성직자와 사제가 다른 것처럼, 드루이드 역시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던전스 앤 드래곤스>에서 성직자처럼 드루이드는 갑옷을 입고, 방패를 들고, 전열로 나갑니다. 드루이드가 금속 갑옷과 금속 방패를 싫어하기 때문에, 성직자와 달리, 드루이드는 별로 육중한 것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드루이드는 동물 동료를 부를 수 있습니다. 해골 병사들이 후열 마법사에게 돌진한다면, 드루이드와 멧돼지 동료는 해골 병사들을 가로막고 마법사를 보호할 겁니다. 심지어 드루이드가 경험들을 쌓는다면, 드루이드는 스테고사우루스와 우정을 맺을지 모릅니다. 스테고사우루스는 마법사를 든든하게 지킬 겁니다. 성직자보다 드루이드가 육중하지 않다고 해도, 전사 곁에서 드루이드는 얼마든지 전열을 사수할 수 있습니다.
이건 언제나 중세 유럽 판타지에서 드루이드가 갑옷을 입고 방패를 들고 커다란 야수와 함께 전열로 나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비디오 게임 <배틀 포 웨스노스>에서 드루이드는 로브를 입고, 지팡이를 들고, 후열로 빠집니다. <배틀 포 웨스노스>에서 드루이드 그림은 절대 육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드루이드 그림은 나긋나긋하고 부드럽습니다. 비단 이런 드루이드만 아니라 많은 자연 친화적인 힐러들은 전열로 나가지 않습니다. <던전스 앤 드래곤스> 드루이드와 달리, 다른 많은 자연 친화적인 힐러들은 로브를 입고, 지팡이를 들고, 후미로 빠집니다. 게임 플레이어들이 자연 친화적인 힐러를 좋아한다고 해도, 어떤 게임 플레이어들은 무장한 드루이드를 좋아하거나 싫어할지 모릅니다.
<던전스 앤 드래곤스>에서 드루이드는 든든한 동물 동료를 부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많은 자연 친화적인 힐러들에게 동물 동료는 필수적인 재주가 아닙니다. 다른 많은 자연 친화적인 힐러들은 그저 약초들을 바를 뿐입니다. <던전스 앤 드래곤스>에서 드루이드는 (문자 그대로) 저돌적인 멧돼지와 함께 뛰고, 구르고, 난리법석을 부리나, 다른 자연 친화적인 힐러들에게 이런 역할은 생소합니다. 후열에서 그들은 치유 주문을 외우거나 약초를 바릅니다. <던전스 앤 드래곤스>에서 전사가 쓰러질 때, 심지어 드루이드는 거대한 야수로 변신하고 전열을 지킬 수 있습니다. 고위 드루이드는 트리세라톱스로 변신하고 아이언 골렘을 들이받을 수 있습니다.
드루이드에게 이런 재주가 없다고 해도, 드루이드와 동물 동료가 전열에서 벗어난다면, 전사는 전열을 벅차게 지켜야 할 겁니다. 이런 드루이드는 다른 자연 친화적인 힐러들과 대조적입니다. "전사 곁에서 드루이드는 동물 동료와 함께 전열을 사수해야 해. 어떻게 전사가 많은 적들을 혼자 상대할 수 있어? 치유사는 전사를 보조해야 해." 이렇게 어떤 게임 플레이어는 생각할 겁니다. "아니, 왜 힐러가 전열로 나가지? 후열에서 힐러는 부상들을 돌봐야 해." 이렇게 또 다른 게임 플레이어는 생각할 겁니다. 그래서 누가 옳은가요? 이런 그림(링크)처럼, 중세 판타지에서 드루이드가 방패를 들고 동물 동료와 함께 전사를 보조해야 하나요? 아니면 후열에서 드루이드가 상처들을 돌봐야 하나요?
[자연 계열 치유사로서 드루이드에게는 방패, 갑옷, 동물 동료가 있으나, 이건 전형(典型)이 아닙니다.]
당연히 여기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던전스 앤 드래곤스>는 원조 롤플레잉 게임이나, <던전스 앤 드래곤스>에서 드루이드가 전열을 사수한다고 해도, 다른 중세 유럽 판타지들은 얼마든지 드루이드에게 로브와 지팡이와 후열 자리를 줄 수 있습니다. 후열에서 로브를 입은 우드 엘프 약초사가 지팡이를 들고 약초를 바른다고 해도, 이건 오류가 아닙니다. <던전스 앤 드래곤스>는 좋은 지침이 되나, 이건 절대적인 법칙이 아닙니다. 아무리 아랫집 수진이 <던전스 앤 드래곤스> 드루이드를 좋아한다고 해도, 아랫집 수진은 이게 법칙이라고 주장하지 못합니다. 아랫집 수진은 드루이드가 갑옷을 입고, 방패를 들고, 전사를 보조하기 원합니다. 드루이드는 멧돼지와 함께 뛰고, 구르고, 해골 병사들을 밀어내고, 전사에게 버프 주문을 걸어야 합니다.
드루이드와 우드 엘프 약초사가 똑같이 자연 계열 힐러라고 해도, 아랫집 수진은 우드 엘프 약초사보다 방패로 무장한 드루이드를 좋아합니다. 비단 아랫집 수진만 아니라 수많은 중세 유럽 판타지 팬들은 비슷하게 느낄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건 절대적인 법칙이 되지 않습니다. 다른 수많은 중세 유럽 판타지 팬들은 자연 계열 힐러가 로브를 입고, 지팡이를 들고, 후열로 빠지기 원할 겁니다. 중세 유럽 판타지들이 이런 자연 계열 힐러들을 보여준다고 해도, 아랫집 수진은 "이런 젠장, 이게 뭐야! 이건 잘못이야! 왜 자연 계열 힐러가 전열로 나가지 않지? 자연 계열 힐러는 방패로 무장하고 야수와 함께 전사를 도와야 해!"라고 부정하지 못합니다. 아랫집 수진은 그저 다양한 자연 계열 힐러들을 비교하고 대조하고 논의할 뿐입니다.
어쩌면 이런 자연 계열 힐러들은 '다양한 자연들'을 반영하는지 모릅니다. '자연'은 다양한 의미들을 가리킵니다. 싱그러운 녹색 나뭇잎은 자연입니다. 거칠고 억센 멧돼지는 자연입니다. 육중한 스테고사우루스는 자연입니다. 청아한 가을 하늘은 자연입니다. 압도적인 쓰나미는 자연입니다. 서정시는 자연이 아름답다고 노래합니다. 스팀펑크 판타지는 기이한 자연이 기이한 야수들을 낳는다고 묘사합니다. 생태학자는 자연이 풍요롭다고 예찬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야외 현장에서 생태학자는 기생충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울창한 숲 속에서 생태학자는 역동적인 생명력을 느끼고, 동시에 생태학자는 기생충들이 꾸물거린다고 인식합니다. 숲 속에서 야생 새들은 예쁘게 짹짹거립니다.
예쁜 새들에게는 기생충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들은 야생 새들이 끔찍한 질병에 걸린다고 이야기하지 않으나, 질병은 자연입니다.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자연'을 말하나, '자연'에는 여러 의미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연 계열 힐러들을 이용해 '다양한 자연들'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드루이드가 멧돼지 동료와 함께 해골 병사들에게 (저돌적으로) 돌진한다면, 어떤 중세 판타지 팬은 "그래, 이건 자연이야. 자연 계열 힐러는 저돌적이야."라고 생각할 겁니다. 후열에서 우드 엘프 약초사가 상처들을 돌본다면, 또 다른 중세 판타지 팬은 "그래, 자연은 이런 것이야. 자연 계열 힐러는 후열 치유에 집중해야 해."라고 생각할 겁니다. '자연들'이 다르기 때문에, 자연 계열 힐러들 역시 다른지 모릅니다.
비디오 게임 <네버윈터 나이츠 2>에서 드루이드는 데이노니쿠스 동료를 부를 수 있습니다. <네버윈터 나이츠 2>에서 드루이드에게는 오소리, 늑대, 멧돼지, 불곰, 흑표범, 거대 거미 동료들 이외에 데이노니쿠스 동료가 있습니다. 다른 동물 동료들은 기본적인 동물 동료이나, 데이노니쿠스 동료는 특별합니다. 드루이드가 데이노니쿠스 동료를 부르고 싶다면, 드루이드는 특별하게 공룡 동료 재주를 배워야 합니다. 데이노니쿠스 동료가 특별한 재주인 것처럼, 다른 많은 자연 계열 힐러들에게는 공룡 동료가 없습니다. <배틀 포 웨스노스>에서 드루이드는 공룡 동료를 부르지 않습니다. 아니, <배틀 포 웨스노스>에 야생 공룡들이 있나요? 비단 <배틀 포 웨스노스>만 아니라 중세 유럽 판타지에서 야생 공룡들이 일반적인 설정인가요?
어떤 판타지 팬은 왜 자연 계열 힐러가 공룡 동료를 부르는지 비판할지 모릅니다. 공룡은 진화 이론, 거시적인 생태계 변화를 가리킵니다. 중세 유럽과 진화 이론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공룡은 중세 유럽 판타지보다 사이언스 픽션에게 어울립니다. 하지만 또 다른 중세 판타지 팬은 공룡 동료를 옹호할 수 있습니다. 싱그러운 녹색 나뭇잎과 청아한 가을 하늘과 거칠고 억센 멧돼지가 자연인 것처럼, 데이노니쿠스 역시 자연입니다. 아무리 중세 유럽이 진화 이론을 알지 못했다고 해도, 중세 유럽 판타지는 진짜 중세 유럽이 아닙니다. 중세 유럽 판타지는 중세 유럽을 낭만적으로 가공하고 서구 근대화 시각을 집어넣습니다.
중세 유럽에서 여자들은 중요한 직위들을 맡지 못했습니다. 반면, 드루이드 그림이 보여주는 것처럼, 중세 유럽 '판타지'에서 여자들은 중요한 직위들을 맡습니다. 서구 근대화가 나타난 이후, 거리에서 성 해방 운동이 붉은 피를 뿌리며 싸웠기 때문에, 서구 근대화 사회는 (형식적으로) 성 평등을 인정합니다. 이게 그저 형식적인 제도에 불과하다고 해도, 급진적인 성 해방 운동 덕분에, 서구 근대화 사회는 성 평등을 인정합니다. 여전히 급진적인 성 해방 운동은 온갖 모욕들과 수치들을 견디고 전진하는 중입니다. 1차원적이고 안락한 페미니즘이 가부장적인 자본주의에 충성하는 동안, 급진적인 페미니즘은 붉은 피로 종속 관계를 끝장낼 겁니다. 우리는 이런 시각을 중세 유럽 판타지에 집어넣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 평등을 중세 유럽 판타지에 집어넣을 수 있다면, 왜 우리가 진화 이론을 중세 유럽 판타지에 집어넣지 못하나요?
중세 유럽 판타지가 진화 이론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중세 판타지는 데이노니쿠스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런 데이노니쿠스는 고생물학을 제대로 고증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네버윈터 나이츠 2>에서 데이노니쿠스 동료에게는 깃털들이 없습니다. 현실에 데이노니쿠스 동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판타지 작가들은 데이노니쿠스 동료 설정을 만듭니다. 그래서 데이노니쿠스 동료에게 깃털들이 없다고 해도, 이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중세 유럽 판타지 작가들은 다양하게 자연을 이용하고 드루이드, 우드 엘프 약초사, 데이노니쿠스 동료를 만듭니다. 중세 판타지 작가들이 다양하게 자연을 이용하고 드루이드 설정들을 만들기 때문에, 그들은 드루이드 설정을 다른 것들과 연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드루이드 설정이 자본주의 환경 오염을 비판한다고 해도, 이건 오류가 아닐 겁니다. 우드 엘프 약초사는 선천적이지 않습니다.
비단 드루이드만 아니라 다른 사변 장르 설정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로봇 3원칙을 만들었습니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대표적인 SF 그랜드 마스터이기 때문에, 로봇 3원칙은 상당히 유명합니다. 심지어 로봇 공학자들 역시 로봇 3원칙을 연구합니다. SF 울타리 안에서 로봇 3원칙은 거의 공식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로봇 3원칙이 공식이라고 해도, 모든 로봇 이야기가 반드시 로봇 3원칙을 따라야 하나요? 로봇 이외에 다른 사이보그들, 안드로이드들, 인조인간들이 로봇 3원칙을 따라야 하나요? 만약 어떤 사이버펑크 소설에서 인조인간이 로봇 3원칙을 따르지 않는다면, 이게 오류인가요?
"아니, 세상에! 이 소설에서 인조인간은 로봇 3원칙을 따르지 않아! 소설 속에서 인조인간 공학자들은 로봇 3원칙을 알지 못해! 이건 잘못이야!" 이렇게 독자가 주장할 수 있나요? 그건 아닐 겁니다. 로봇 3원칙은 선천적이지 않습니다. 로봇 3원칙은 중력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만들기 전에 이미 선천적으로 중력은 존재했습니다. 반면, 사람들(아이작 아시모프)이 만들기 전에, 로봇 3원칙은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변 장르 설정들은 유동적입니다. 우리가 설정을 만들기 때문에, 우리는 얼마든지 설정을 확장하고, 줄이고, 바꾸고, 없앨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설정을 논의할 때, 우리는 이것을 명심해야 할 겁니다. 인간은 설정을 만듭니다. 인간 이전에 설정은 없습니다. 하늘에서 사변 장르 설정은 뚝 떨어지지 않습니다.
[엘프 약초사와 드루이드는 똑같이 자연 계열 치유사에 속하나, 엘프 약초사는 묵직한 방패를 들지 않습니다.]
비디오 게임 <워크래프트 III>에서 나이트 엘프 드루이드는 아군을 치유하고, 버프를 걸고, 우직한 야수로 변신합니다. 이런 모습은 전형적인 드루이드이나, <워크래프트 2>에는 드루이드가 없습니다. <워크래프트> 시리즈에서 드루이드는 상대적으로 늦게 나타났습니다. <워크래프트 2>는 1995년 12월 출시 게임입니다. 이미 1996년 게임 <히어로즈 오브 마인트 앤 매직 2>에서 소서리스 진영에는 드루이드가 있었습니다. 소서리스 진영 드루이드는 자연 계열에 속하나, 여기에서 드루이드는 치유사보다 공격 마법사에 가깝습니다. 1996년 게임 <섀도우 오버 미스타라>에는 녹색 나뭇잎들을 휘날리는 엘프 루시아가 있습니다. 엘프 루시아는 자연 계열 마법 검사입니다. 엘프 루시아와 드루이드가 똑같이 자연 계열 마법 검사가 될 수 있나요? 엘프 루시아가 21세기 드루이드 설정의 원조가 될 수 있나요?
이미 이 시기에는 <디앤디>의 <드루이드 핸드북 The Complete Druid's Handbook>이 존재했습니다. 판타지 팬들이 (드루이드가 없는) <워크래프트 2>와 <섀도우 오버 미스타라>의 엘프 루시아와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 2>의 드루이드를 고려하고 계보를 그릴 때, <드루이드 핸드북>이 중요한 기준이 되지 않나요? 이런 사례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허공에서 드루이드 설정은 번쩍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드루이드 설정은 여러 과도기들과 흐름들을 거쳤습니다. 심지어 19세기 서구 사람들은 중세 유럽 판타지와 드루이드를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20세기 중반~후반에서 중세 유럽 판타지가 자리를 잡는 동안, 드루이드를 비롯해 자연 계열 성직자들, 마법사들 역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드루이드 설정에는 발생 원인, 생산 조건이 있습니다. 드루이드 설정은 절대 고정적이지 않고 선천적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현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그 현상이 고정적이거나 선천적이라고 착각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그게 당연히 존재한다고 착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로봇 3원칙은 고정적이지 않고, 선천적이지 않고, 당연하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로봇 3원칙은 뚝 떨어지지 않습니다. 비단 사변 장르 설정들만 아니라 인류 문명에서 수많은 현상들은 고정적이지 않고, 선천적이지 않고, 당연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살아가나, 심지어 허공에서 이런 자본주의 사회조차 번쩍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우드 엘프 약초사부터 자본주의 시장 경제까지, 인류 문명에서 수많은 것들에게는 흐름, 발생 원인, 과도기, 생산 조건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흐름, 발생 원인, 과도기, 생산 조건을 무시하고 외면합니다.
사람들은 하늘에서 뭔가가 뚝 떨어지거나, 땅에서 불쑥 솟거나, 허공에서 번쩍 나타난다고 믿습니다. 사람들은 돈이 돈을 낳는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북한이 사악한 독재 국가라고 욕합니다. 사람들은 유럽 백인들이 고상하고 세련되었다고 떠받듭니다. 아이가 딸린 미혼모가 가난한 이유는 미혼모가 게을러빠지고 못되처먹고 남자에게 꼬리를 치는 갈보년이기 때문입니다. 흑인들이 범죄자가 되는 이유는 원래 깜둥이 새끼들이 존나게 야만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들은 흐름, 발생 원인, 과도기, 생산 조건을 무시하고 외면합니다. 하지만 인류 문명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그 자체로서 고정적이고, 선천적이고, 당연한가요? 우리는 이것들을 의심해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