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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자연의 가치, 문명과 자연을 구분하기 본문

생태/상호 작용으로서 사회와 환경

자연의 가치, 문명과 자연을 구분하기

OneTiger 2017. 8. 21. 20:00

[게임 <블록후드>는 묻습니다. 도시는 생태계가 될 수 있는가? 문명과 자연이 적대적일까요?]



데이빗 하비는 <세계를 보는 눈>에서 환경 오염과 사회학을 논의합니다. 이 책은 데이빗 하비의 여러 논제를 담았고, 그 중에 환경 사회학도 들어있어요. 저는 이 책을 읽었을 때,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인상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자연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물음과 "문명과 자연을 구분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입니다. 우선 첫째 물음부터 살펴볼까요. 많은 사람들은 자연 환경이 소중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왜 자연 환경이 소중할까요?


이는 대답하기에 어렵지 않은 문제입니다. 자연 환경이 오염된다면, 인간들도 제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숲이 사라진다면, 홍수가 마을을 덮칠 겁니다. 쓰레기를 강물에 버린다면, 우리는 썩은 물을 마셔야 합니다. 핵 발전소가 무너지면, 주변 지역은 방사능 폐기물로 초토화가 됩니다. 토양이 침식되면, 작물을 제대로 키울 수 없습니다. 이처럼 자연 환경은 소중합니다. 관건은 이게 너무 원론적인 대답이라는 점입니다. 중요한 건 현실이죠. 자연 환경의 가치가 산업 개발과 만났을 때, 무엇에 중점을 두어야 할까요. 자연 환경의 가치는 산업 개발과 어울릴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자연 환경의 가치를 돈으로 계산하기 원합니다. 자연 환경을 돈으로 계산할 수 있다면, 우위를 쉽게 정할 수 있겠죠. 하지만 돈은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돈은 사회 구조의 영향을 많이 받고, 사회 구조에 따라 돈의 가치와 영향력이 달라지기 때문이죠. 어떤 부족민들은 돌멩이나 조개 껍데기를 화폐로 사용합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아무도 조개 껍데기를 화폐로 이용할 수 없을 겁니다. 이는 매우 조약한 비유지만, 그만큼 돈으로 뭔가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함을 뜻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연 그 자체에서 가치를 찾기 원합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꽤나 추상적인 방법입니다. 자연 그 차체에서 가치를 찾을 수 있을까요? 물론 방법들은 많습니다. 수많은 문학, 종교, 철학, 명상 등은 자연이 고귀한 영감과 신성의 원천임을 증명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수치화하기 어렵습니다. 평론가들은 문학 작품에 점수나 별점을 매기지만, 그런 점수나 별점 역시 주관적인 관점일 뿐입니다. 평론가라는 업무가 그 별점에 권위를 부여할 뿐이죠.



게다가 자연의 가치를 찾고 싶다면, 먼저 자연이 어떤 영역인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디까지 자연 환경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저기 러시아 북방의 아무르 호랑이가 뛰어다니는 눈 덮인 침엽수림이나 저기 호주의 화려하고 다채롭고 장대한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는 분명히 자연 환경입니다. 누구도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죠. 하지만 우리 인류의 주변 환경은 어떨까요. 마을 근방의 숲은 자연 환경일까요, 문명의 영역일까요. 도심지 내부의 공원이나 산자락은 문명일까요. 동네 뒷산에 올라가면, 수많은 나무들과 풀들과 버섯들과 새들과 곤충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분명히 자연 환경입니다. 도시 속의 자연이죠.


우리는 그런 것들과 지속적으로 상호 작용합니다. 만약 삼림 도시가 늘어난다면, '도시 속의 자연'은 더 많이 늘어날 겁니다. 데이빗 하비는 현실의 지리학과 도시 공간만 이야기하지만, 저는 과학적인 상상력을 발휘하고 싶습니다. 만약 미래 인류나 외계인이 생태 도시를 만든다면? 검마 판타지의 실반 엘프들처럼 미래 인류가 거대한 숲을 조성하고 그 숲을 도시로 만든다면? 자연과 문명의 경계는 더욱 흐려질 겁니다. 게다가 아무리 도시가 거대하다고 해도 이 총체적인 지구 생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경계선을 찾아야 할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자연과 문명의 경계선을 찾기가 매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데이빗 하비는 자연과 문명의 가치가 서로 나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자연과 문명의 경계선은 매우 희미하고 들쑥날쑥합니다. 따라서 하비는 자연과 문명의 관계를 변증법적으로 바라보기 원합니다. 그 양쪽은 대립되는 듯하지만, 서로 대립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자연은 문명을 낳고, 문명은 자연에 영향을 미치고, 문명 속에 자연이 있고, 문명이 자연적으로 바뀌고, 문명은 또 다른 자연을 낳고….


이렇게 자연과 문명은 역동적으로 상호 작용하고, 절대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절대 불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마르크스 방식의) 변증법이죠. 변증법은 상호 모순적인 관계 속에서 발전하지만, 정(테제)과 반(안티 테제) 중 어느 하나가 절대적으로 우위를 점유하지 못합니다. 정과 반은 끊임없이 합을 만들 뿐입니다. 저 역시 이런 시각에 동의합니다. 그래서 예전에 몇 번 말한 것처럼 저는 자연 환경을 보호한다는 뜻이 인류 문명을 평등한 구조로 만든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구조가 평등해질 때, 마침내 우리는 자연의 가치를 보존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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