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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 외부만을 바라보는 시각 본문

SF & 판타지/비경 탐험

인류 문명 외부만을 바라보는 시각

OneTiger 2017. 12. 14. 20:18

아서 클라크에 관한 비평들을 찾아보면, 비슷한 수식어들을 여러 차례 볼 수 있습니다. 아서 클라크는 거시적인 상상력으로 경외적인 우주 문명을 노래하는 작가입니다. 아서 클라크가 쓴 소설들을 읽을 때마다 독자들은 관조적으로 인류 문명을 바라보고 이성적이고 거대한 우주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아서 클라크는 우주가 무조건 인자하다고 말하지 않으나, 이성을 믿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지혜로운 외계 문명을 그리곤 했습니다. 그런 외계 문명 앞에서 인류는 오만하고 초라한 존재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오만하고 초라한 인류 역시 발전할 수 있고, 이성적이고 현명한 미래 문명을 세울 수 있습니다. 종종 아서 클라크는 우울한 분위기를 풍기고, 아마 세계 대전과 냉전을 거치는 동안 그런 경향이 점점 더 심해졌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아서 클라크는 인간성을 믿는 작가였고 미래학자였습니다. 그래서 아서 클라크를 냉철하고 우울하게 기억하는 작가들이나 독자들이나 평론가들은 별로 없을 겁니다. 아서 클라크가 무조건 이성적이고 현명한 문명을 묘사했다고 기억한다면, 그건 기억은 잘못일 겁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그런 쪽이었죠.



그렇게 거시적이고 경외적인 상상력을 선보이는 아서 클라크 역시 한 가지 빠뜨린 점이 있습니다. 수많은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인류가 계급 투쟁을 겪었는지 표현하지 않았죠. 예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아서 클라크는 인류를 단일한 집단으로 뭉뚱그렸습니다. 인류에게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소설들에서 클라크는 계급 투쟁을 별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희망적인 소설들에서도 그런 경향을 별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인류 역사에서 계급 투쟁을 언급하는 행위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서 클라크처럼 거시적으로 인류 문명과 진보를 논의하는 작가는 더욱 그런 부분에 신경을 쏟아야 할 겁니다.


왜냐하면 인류 역사에서 숱한 학살들이나 오염들은 계급 착취에서 비롯했기 때문입니다. 주인과 노예가 분리되지 않았다면, 왕과 백성들이 분리되지 않았다면, 귀족과 소작농이 분리되지 않았다면, 강대국과 식민지가 분리되지 않았다면, 숱한 학살들과 오염들은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남자들만 생산 수단을 차지하지 않았다면, 일부 사람들만 생산 수단을 차지하지 않았다면, 숱한 성 폭행들과 생물 멸종들 역시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인류 역사에서 많은 사람들은 지배 계급과 맞서 싸웠습니다. 지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현대 인류 문명에서 자본주의는 아주 지배적인 관념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은 자본주의와 맞서 싸웁니다. 그런 사람들 역시 문제가 없지 않습니다. 자본주의와 싸우는 사람들 역시 많은 문제들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사람들은 지배 계급이라는 구조적인 수탈을 무너뜨리기 위해 애씁니다. 아서 클라크는 이런 투쟁을 별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저 인류 전체가 탐욕스럽고 오만할 뿐입니다.


아서 클라크는 지배 계급이 피지배 계급을 수탈하고 지배적인 관념을 퍼뜨리는 과정을 묘사하지 않아요. 아서 클라크가 쓴 소설들에서 문명 사회를 돌아보는 거시적인 시각은 자주 등장하나, 그 시각은 문명의 본질을 꿰뚫지 않습니다. 작가는 그저 겉표면만 훑어보고, 다시 우주로 시선을 돌릴 뿐입니다. 우주를 바라보는 그 시각은 정말 장대합니다. 정말 황홀하고 신비스럽습니다. 소설을 읽을 때마다 뇌리를 스치는, 그 광활한 불꽃 같은 감성을 잊을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인류 문명을 바라볼 때, 아서 클라크의 시각은 지배 계급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습니다.



물론 아서 클라크가 계급 투쟁을 뚜렷하게 그릴 의무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서 클라크는 거시적인 우주 문명을 논의하는 작가이고, 따라서 우주를 논의하기 전에 먼저 인류 문명의 본질을 꿰뚫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서 클라크의 소설들을 읽을 때마다, 저는 뭔가가 허전합니다. 인류 문명 외부를 바라보는 시각은 경외적이나, 내부를 바라보는 시각은 진부합니다. 비단 아서 클라크만 아니라 다른 작가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들 진보와 혁신과 전복과 경외를 이야기하나, 결국 지배 계급이 허용한 범위 안에서 그런 것들을 이야기할 뿐입니다. 다들 지배 계급이 허용하는 테두리 밖으로 발을 내밀지 않습니다. 다들 다른 자리에서 바라볼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아서 클라크만 언급한 이유는 아서 클라크가 이런 방면에서 제일 대표적인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서 클라크를 포함해 계급 투쟁을 간과하는 수많은 작가들을 모두 언급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인류 문명 외부를 바라본다고 해도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 구조를 파악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아, 어떤 소수 작가들은 그런 구조를 파악하고, 문명의 본질을 꿰뚫곤 하죠. 저는 고전적인 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부터 현재의 마가렛 앳우드나 차이나 미에빌까지, 다들 그런 작가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서 클라크 같은 작가들은 멋집니다. 정말 매력적이죠. 하지만 동시에 문명의 본질을 꿰뚫는 소수 작가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저는 SF 세계가 더욱 풍성해진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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