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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인구 폭발과 계급 수탈, 환경 오염 본문

감상, 분류, 규정/생태 사회주의, 에코 페미니즘

인구 폭발과 계급 수탈, 환경 오염

OneTiger 2018. 1. 6. 21:00

SF 개론서 <대재앙 이후의 세계>는 환경 아포칼립스가 1970년대부터 늘어났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대략 1970년대부터 SF 작가들이 실질적인 환경 오염을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주요 소재로 이용했다는 뜻입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겠으나, 폴 에를리히를 빼놓지 못할 겁니다. 폴 에를리히는 <인구 폭발>을 썼죠. 이 양반은 인구가 너무 증가하면, 자연 생태계가 그 인구를 감당하지 못할 거라고 말했습니다. 자연 생태계는 한계가 있고, 인구가 그 한계를 넘어 소비한다면, 자연 생태계는 붕괴하고 말 겁니다.


인구는 환경의 변화, 특히 환경을 오염시키는 주범이 됩니다. 간단히 생각한다면, 인구 폭발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 같습니다. 사람들이 많아지면, 소비량이 늘어납니다. 소비량이 늘어난다면, 당연히 자원이 줄어듭니다. 자원이 너무 줄어들면, (인류가 살기에 알맞은) 자연 생태계는 붕괴할 겁니다. 간단한 논리죠. 사실 자원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문명들이 멸망한다는 사례는 드물지 않습니다. 그래서 SF 소설들은 인구 폭발을 경계하곤 합니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어떤 단편 소설에서 유토피아의 적정한 인구 숫자는 10억 가량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어떻게 아시모프가 10억 명이라고 계산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데이빗 피멘텔 같은 생태학자 역시 10~20억 명이 풍요로운 수치라고 이야기했죠. 저는 자세한 계산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문가가 저렇게 말했다면, 10억 명이 어떤 의미가 있는 숫자일 겁니다. 아마 아시모프와 데이빗 피멘텔은 비슷하게 계산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이런 '적정 인구'는 계산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매번 기준점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전세계 사람들이 얼마나 잘 먹고 살 수 있을까요. 어떤 소비를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요.


누군가는 매 끼니마다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한 끼에 고기 서너 점만 먹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싸구려 생선만 먹을 수 있습니다. 경제와 문화마다 소비량은 달라지고, 따라서 정확한 기준을 세우기 힘들 겁니다. 게다가 우리 인류는 어디까지 경작지를 넓힐 수 있을까요. 어떻게 경작 기술이 발달할까요. 왕년에 녹색 혁명은 화학 비료라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심각한 부작용이죠. 우리는 그런 부작용 없이 녹색 혁명을 다시 추구할 수 있을까요. 이건 대답하기가 까다로운 문제입니다. 미래에 어떻게 경제 구조가 변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미래학자들은 열심히 수치들을 계산하나, 아무도 함부로 미래를 장담할 수 없죠.



부양 능력은 생태학이나 산림 관리학 용어입니다. 인간과 동식물이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고 부양을 받을 수 있는 최대 능력을 뜻합니다. 이 개념을 인류 전체에 적용하면, 최대 인구 부양 능력을 산출할 수 있겠죠. 하지만 이런 계산법을 적용해도 해답은 모호합니다. 적정 인구 숫자? 하지만 이 세상에 인간만이 살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착각하나, 인간만이 이 지구의 거주민이 아닙니다. 우리는 너무 우리 자신만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SF 소설은 좋은 창문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고 다른 생명체들을 바라보기 위한 창문이죠.)


게다가 누군가는 지구 생태계가 100억 명을 부양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세계 연합의 식량 농업 기구는 고강도 농업을 시행할 경우 330억을 부양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허허, 330억…. 아득한 숫자로군요. 솔직히 인구가 330억으로 불어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마 그 전에 인공지능 특이점이 찾아오거나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거나 인구 증가가 정체되지 않을까요. 어쨌든 330억은 놀라운 숫자입니다. 어쩌면 마침내 인류가 달이나 화성에 식민지를 세울 수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달이나 화성으로 이주할지 모르죠. 뭐, 그냥 망상입니다.



인구 폭발은 뜨거운 논란거리이나, 모든 전문가가 '인구 폭발'을 걱정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떤 학자들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옹호하고, 수많은 인구가 자본주의 시장에서 경쟁하면, 더 나은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전문가들은 설사 인류가 기존 자원을 소모해도 대체 자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게다가 태양 에너지나 풍력 에너지는 무한합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선호하는 전문가들은 핵 발전소 역시 빼먹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항상 폭력을 동원한다는 사실을 외면하죠.


또 어떤 학자들은 인구가 아니라 소비 행태가 문제라고 말합니다. 만약 인류가 100억 명에 달해도 적절하게 소비한다면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사실 이 소비 행태는 굉장히 어렵고 중요한 요소입니다. 세계 인구는 모두 똑같이 소비하지 않습니다. 세계 인구가 70억 명이라고 해도 각자의 소비는 다릅니다. 누군가는 엄청나게 많이 소비하고, 누군가는 소비하지 못하고 굶주립니다. 박애 정신을 자극하는 사진들, 그러니까 피골이 상접한 아프리카 흑인 아이들을 보죠. 과연 이들이 소비자일까요. 이들이 무엇을 소비할 수 있을까요. 만약 흑인 아이들이 뭔가를 소비한다면, 왜 그렇게 피골이 상접하거나 악독한 질병에 걸릴까요.



대략 2015년 경에 한국 환경 사회학자들은 전세계 인구의 80%가 하루 10달러로 생활한다고 조사했습니다. 대충 환율을 계산한다면, 우리 돈으로 10,000원 이상의 돈입니다. 이게 하루 생활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10,000원으로 하루를 생활할 수 있을까요. 씀씀이를 팍 줄여야 할 겁니다. 저만한 돈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빈곤한 환경에서 살아가겠죠. 물론 풍부한 시장이 있으나, 그 시장에서 돈을 쓰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이건 분배의 문제(더 정확히 말하자면 기득권이 생산 수단을 차지하는 '생산의 문제')입니다.


극빈층은 전세계 인구의 40%에 달하고, 이들은 전체 소득의 5%만 가져갑니다. 극빈층이 절반 가까이에 달하고, 소득은 고작 5%에 불과합니다. 반면, 상위 20%는 전체 소득의 75%를 가져갑니다. 6억 4000만 명의 아이들은 집이 없고, 4억 명은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합니다. 아이 엄마들은 분유도 제대로 타지 못합니다. 기업들이 깨끗한 물을 모두 차지하고 돈을 내라고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분배가 아니라 생산이 중요하죠.) 2억 7000만 명은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합니다. 뭐,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도 어른이 될 때까지 병원에 못 가는 아이들이 있죠.



어쩌면 저 수치가 틀렸을 수 있습니다. 저는 환경 사회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고, 저런 조사가 어떤 자료를 근거로 삼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게다가 2018년 1월 현재 저런 수치가 바뀌었을지 모르죠. 하지만 비록 저 수치가 틀렸다고 해도 빈곤층은 엄청나게 많아요. 그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작금의 거대한 위기들, 엄청난 환경 오염과 생물 다양성 감소와 이상 기후는 저런 막대한 빈곤층의 잘못이 아닙니다. 도대체 소득도 없는 사람들이 무슨 방법으로 기후를 변화시키겠어요.


이건 인구 숫자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 번 생각해 보죠. 미국의 중산층과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빈곤층 중에서 누가 더 많은 머릿수를 자랑할까요. 당연히 아프리카 대륙의 빈곤층이 더 머릿수가 많겠죠. 그렇다면 둘 중 누가 더 많은 환경을 오염시켰을까요. 손바닥만한 땅으로 농사를 짓는 빈곤층이 잘 먹고 잘 사는 중산층처럼 온실 가스를 내뿜을 수 있나요? 그런 빈곤층이 미세 먼지를 퍼뜨리거나 미세 플라스틱을 배출할 수 있나요? 그런 빈곤층이 방사능 폐기물을 버릴 수 있나요? 하다못해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볼 수 있습니다. 전력을 별로 사용하지 않는 시골 주민이 전력 송전탑 때문에 쫓겨나죠. 이건 그저 인구 문제가 아닙니다. 계급 수탈 문제입니다.



물론 인구가 불어나면, 당연히 환경이 오염될 겁니다. 그 사실마저 부정하지 못할 겁니다. 만약 인구가 100억 명을 넘어간다면, 그에 따른 파장과 충격을 분명히 목격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점은 인구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건 인구 그 자체가 막대한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기후 변화처럼 그야말로 전지구적이고 행성적인 환경 오염은 인구 폭발 문제가 아닙니다. 막말로 전세계의 100억 명이 검소하게 살 수 있다면, 이상 기후를 막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들이 존재하고, 인구 중 상당수의 빈곤층은 환경을 오염시킬 힘이 없습니다. 적어도 기후 변화나 미세 먼지를 일으키는 주범은 그들이 아닙니다. 설사 그들이 온실 가스나 미세 먼지를 내뿜는다고 해도 우리는 어떤 체계가 빈곤층을 그 지경으로 몰아붙이는지 주목해야 합니다. 대기업들이 대량 소비를 조장하면, 먹고 살기 위해 빈곤층은 그런 소비 형태를 따라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무 것도 가지지 못했고 뭔가를 결정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생산 수단을) 가진 자들이 사회 체계를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자연 생태계를 오염시키거나 파괴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인구, 기술, 조직, 물리 등이죠. 사람들은 그런 것들 중 흔히 인구나 기술만을 강조하나, 계급 수탈은 그런 것들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입니다. 아니, 어쩌면 계급 수탈은 인구나 기술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인구가 줄고 기술이 좋아져도 지배 계급이 수탈을 반복한다면, 환경 오염은 사라지지 않겠죠. 게다가 계급 수탈이 사라지면, 폭발적인 인구 역시 정체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이른바 선진국들은 그렇게 인구를 많이 불리지 않습니다. 여자들이 교육을 받고 활발하게 사회 활동을 한다면, 인구는 자연스럽게 줄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계급 수탈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약자들(여자들)이 교육을 받거나 활발하게 사회로 진출할 여지가 줄어듭니다. 자연히 인구는 늘어나기 마련이죠. 만약 누군가가 인구 폭발을 걱정한다면, 그 전에 계급 수탈부터 고민해야 할 겁니다. 교육을 받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진출하지 못하는 약자들을 우선 고려해야 할 겁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거대한 공장들이 내뿜는 온실 가스와 미세 먼지, 줄어든 생물 다양성을 복원할 해법은 영원히 멀어보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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