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애스시와 멜란지와 경제적인 문제 본문
[모래벌레, 사막 생태계, 멜란지 스파이스, 스파이스 채취. 이것들은 경제 현상으로 귀결합니다.]
"멜란지 스파이스를 지배하는 사람은 우주를 지배한다." 이 문구는 소설 <듄>을 가리키는 문구입니다. <듄>에서 귀족들은 아라키스 행성에 관심이 많습니다. 황제 역시 아라키스 행성에 관심이 많고, 하코넨 가문과 아트레이드 가문은 아라키스를 둘러싸고 싸웁니다. 귀족들과 황제가 아라키스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멜란지 스파이스 때문입니다. 아라키스 행성에는 원주민 프레멘들이 살고, 소설 주인공 폴 무앗딥은 프레멘들을 이끄는 지도자가 됩니다.
하코넨 가문이 프레멘들을 부려먹는 이유와 아트레이드 가문이 아라키스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와 다들 여기를 장악하려고 하는 이유 역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멜란지 스파이스 때문입니다. 소설 속에서 스파이스는 아주 희귀한 자원이고, 엄청난 가치가 있습니다. 스파이스는 엄청난 부를 가져다줄 수 있고, 그래서 다들 멜란지 스파이스에 매달립니다. 스파이스는 오직 아라키스 사막 행성에서, 오직 모래벌레에게서 비롯하는 자원이고, 그래서 황제와 귀족들은 아라키스 행성에서 시선을 돌리지 못합니다. 천연 자원은 돈이 되고, 돈은 권력이 됩니다. 멜란지 스파이스는 돈이고 권력입니다.
소설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은 <듄>과 비슷합니다. 지구인들은 애스시 행성을 침략했고, 거기에서 원주민들을 가혹하게 부려먹습니다. 왜 지구인들이 가혹하게 원주민들을 부려먹을까요. 원주민들이 못생겼기 때문에? 원주민들이 미개하기 때문에? 지구인들은 원주민들을 교화하고 계몽시키기 원했을까요? 그래서 애스시 행성을 침략했을까요. 아닙니다. 제목이 가리키는 것처럼 지구인들은 숲을 원했습니다. 그들은 목재 자원을 원했어요. 마치 소설 <우주 상인>처럼 지구에서 인류는 삼림을 심하게 벌채했고, 목재 자원은 희귀 자원이 되었습니다.
지구인들은 목재 자원을 원했고, 애스시의 풍성한 삼림을 탐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애스시 행성을 침략했고, 원주민들 역시 피해를 입었죠. <듄>에서는 멜란지 스파이스가 갈등을 불렀다면, <세상 숲>에서는 목재 자원이 갈등을 불렀습니다. 풍성한 숲은 저주가 되었고, 침략자들은 숲을 노략질했습니다. 이는 경제적인 갈등입니다. 희귀 자원이라는 경제적인 이유입니다. 존 스칼지가 지은 <작은 친구들의 행성> 역시 비슷합니다. 소설 속에서 대기업이 작은 털복숭이들을 학살하는 이유는 대기업이 털복숭이들을 싫어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대기업이 털복숭이들을 학살하는 이유는 천연 자원 때문입니다. 그들이 사는 지역에 태양석이 있었고, 대기업은 태양석을 캐기 원했습니다. 아마 대기업도 털복숭이가 귀엽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무리 털복숭이가 귀여워도, 대기업은 돈을 벌어야 했고 희귀 자원을 캐야 했습니다. 태양석은 엄청난 가치가 있는 희귀 자원이고, 그래서 대기업은 털복숭이들을 죽여야 했습니다. 제임스 카메론이 만든 <아바타>는 이런 연장선에 있는 작품입니다.
어느 행성에 희귀 자원이 있고, 침략자들은 희귀 자원을 원합니다. 침략자들은 외계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광물을 얻습니다. 침략자들이 외계 원주민들을 학살하는 이유는 다른 원인 때문이 아닙니다. 외계 원주민들이 파랗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대지모신을 믿기 때문이 아닙니다. 외계 원주민들이 파랗거나 대지모신을 믿는다고 해도, 판도라 위성에 희귀 광물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지구 대기업은 외계 행성을 침략하지 않았을 겁니다. 간단하죠. 이는 경제적인 원인입니다. 문화적인 원인이 아니라.
<듄>에서 귀족들은 멜란지 스파이스를 얻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가혹하게 프레멘들을 부려먹었습니다. 프레멘들이 지저분하고 촌스럽고 악취를 풍기기 때문이 아닙니다. 어떤 귀족은 개인적으로 프레멘을 싫어했을지 모릅니다. 아라키스는 사막 행성이고, 프레멘들은 목욕하지 않아요. 몸을 씻지 못하죠. 그래서 누군가는 프레멘을 혐오했을지 모릅니다. 목욕도 하지 않는 야만인 새끼들이라고 혐오했을지 모르죠. 하지만 그건 본질적인 이유가 아닙니다. 귀족들이 프레멘들을 부려먹은 본질적인 이유는 멜란지 스파이스 때문이었습니다. 아라키스 행성이 멜란지 스파이스를 생산하는 생산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숲>에서 지구인들이 애스시 행성을 침략한 이유는 지구인들이 애스시 문화를 무시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애스시는 미개한 털복숭이 원주민입니다. 누군가는 털복숭이 원주민을 혐오했을지 모르죠. 하지만 그건 본질적인 이유가 아닙니다. 본질적인 이유는 목재 자원입니다. 애스시 행성은 풍성한 삼림을 보유했습니다. 애스시는 목재 자원을 생산하는 생산 수단이죠. 본질적인 이유는 그겁니다.
<아바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판도라 위성에는 파란 나비 외계인들이 살고, 그들은 대지모신을 숭배합니다. 하지만 대기업은 나비 외계인들의 파란 피부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외계인들이 대지모신을 숭배해도 대기업은 거기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판도라 위성은 희귀 광물을 생산하는 생산 수단입니다. 그래서 대기업은 판도라 위성을 침략했어요. 판도라 위성에 희귀 광물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판도라 위성이 희귀 광물을 생산하지 않았다면, 외계인들이 서로 난리법석을 떤다고 해도, 대기업은 눈꼽만큼도 상관하지 않았을 겁니다.
핵심은 희귀 광물입니다. 외계인의 피부색이나 대지모신 신앙은 문제가 아닙니다. 설사 그게 문제가 된다고 해도 그건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그리고 현실 속에서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흔히 마주칠 수 있습니다. 아니, <듄>과 <세상 숲>과 <작은 친구들의 행성>과 <아바타>는 현실의 반영이죠. 현실에서 천연 자원을 둘러싼 수탈이 처참하기 때문에 저런 창작물들 역시 처참한 수탈을 그리겠죠. 아메리카 식민지, 부족민들, 금광이나 은광, 가격 혁명, 노예 무역, 사탕수수 농장…. 모두 자원을 독차지하고, 상품을 팔고, 이윤을 축적하는 행위였죠. 이는 경제적인 비극입니다. 뭐, <포카혼타스> 같은 가족 애니메이션조차 유럽인들이 금광을 노렸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의외로 수많은 사람들은 이런 원인을 무시합니다. 경제적인 비극들이 도처에 널렸음에도 사람들은 이런 경제적인 원인을 무시합니다. 이른바 인권 운동가들이나 진보 지식인들조차 그렇습니다. 인권 운동가들은 (이름처럼) 인권을 중시합니다. 진보 지식인들은 문화적인 현상을 중시합니다. 그래서 인권 운동가들이나 진보 지식인들은 경제적인 원인을 무시합니다. 그들은 경제적인 원인을 입도 뻥긋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경제적인 원인을 무시하고, 인권이나 문화적인 현상을 강조합니다.
가령, 한국인 사장이 동남 아시아 노동자를 고용한다고 가정하죠. 한국인 사장은 동남 아시아 노동자를 괄시하고, 폭행하고, 협박하고, 차별했습니다. 동남 아시아 노동자는 한국인 사장에게 제대로 대항하지 못했습니다. 왜? 왜 동남 아시아 노동자가 한국인 사장에게 제대로 대항하지 못했을까요? 한국 문화가 동남 아시아 문화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한국인이 동남 아시아인보다 더 강한 인격이나 성품을 갖추었기 때문에? 세계 인권 협회가 동남 아시아인보다 한국인의 인권이 더 우월하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그건 절대 아닙니다. 한국인 사장이 동남 아시아 노동자에게 임금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는 임금 때문이고, 경제적인 원인 때문입니다. 이는 절대 문화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한국인의 인권이 동남 아시아인의 인권보다 앞서기 때문이 아닙니다. 남한은 자본주의 강대국이고, 수많은 동남 아시아 국가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이는 자본주의라는 경제적인 문제입니다. 자본주의 체계에서 한국인과 동남 아시아인이 자본가와 저임금 노동자라는 문제로 얽혔기 때문이죠. 물론 저는 인권이나 문화적인 현상을 아예 간과하고 싶지 않습니다. 인권이나 문화. 네, 중요합니다. 우리는 서로의 인권을 존중하고 문화를 존중해야 합니다.
동남 아시아인이 촌스럽게 보이거나 동남 아시아 문화가 이질적이라고 해도, 한국인들은 그들과 그들의 문화를 존중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시급한 문제가 있고, 그건 경제적인 문제입니다. 자본주의 체계에서 자본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무시를 당합니다. 한국인 사장이 동남 아시아 노동자를 차별하는 이유는 동남 아시아 노동자가 경제적인 약자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라는 문제가 인권이나 문화적인 현상보다 먼저입니다. 따라서 약자들을 존중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해요.
하지만 인권 운동가들이나 진보 지식인들은 절대 이걸 언급하지 않아요. 그들은 모든 문제를 철저하게 인권이나 문화적인 현상으로 몰고 갑니다. 설사 그들이 경제적인 이유를 언급한다고 해도, 그걸 사소하거나 부차적인 이유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인권이나 문화적인 현상을 먼저 언급합니다. 하지만 인권이나 문화적인 현상이야말로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한국인 시장이 동남 아시아 노동자의 짙은 피부를 싫어했을까요? 짙은 피부를 싫어하기 때문에 한국인 사장이 동남 아시아 노동자를 폭행하고 협박하나요?
동남 아시아 노동자의 피부가 짙기 때문에 한국인 사장이 동남 아시아 노동자를 혐오할까요? 아닙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자본가와 저임금 노동자라는 관계에서 비롯하는 문제입니다. 다른 문제들 역시 비슷해요. 왜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학살했을까요? 유럽인들이 기독교를 퍼뜨리기 원했기 때문에? 유럽인들이 자신들의 우월한 문화를 자랑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아닙니다. 유럽 침략자들은 금광을 원했고, 천연 자원을 원했고, 토지를 원했습니다. 따라서 이건 경제적인 문제입니다.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경제적인 대안을 내놔야 합니다.
하지만 인권 운동가들이나 진보 지식인들은 철저하게 인권이나 문화적인 현상만 부르짖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의도하지 않게) 자본가들의 나팔수가 됩니다. 자본가들이 이윤을 축적하고 천연 자원을 착취하는 동안, 인권 운동가들이나 진보 지식인들은 인권이나 문화적인 현상만 타령합니다. 하지만 인권만 타령하면 뭐하겠습니까. 대기업은 인권에 관심이 없어요. 대기업은 이윤을 축적하는 영리 집단입니다. 자본가들은 오직 이윤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인권 운동가들이 자본가들에게 인권을 들이밀어도, 그건 아무 소용이 없어요.
하지만 인권 운동가들이나 진보 지식인들은 죽어라 인권이나 문화적인 현상에만 매달리죠. 왜 그들이 경제적인 이유를 외면할까요. 저는 그들이 빨갱이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누구보다 사회주의자들은 경제적인 문제에 집중합니다. 위에서 여러 번 언급한 '생산 수단'은 사회주의적인 용어입니다. 따라서 생산 수단을 언급하는 순간, 인권 운동가들이나 진보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빨갱이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죽어라 생산 수단을 외면하고, 인권과 문화에만 매달립니다. 하지만 그건 오류입니다. 아라키스 행성과 애스시 행성과 판도라 위성은 스파이스와 풍성한 숲과 언옵테늄의 생산지입니다. 그래서 귀족들과 지구인들과 대기업은 그 행성들을 침략했어요.
인권 운동가들이나 진보 지식인들은 이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네, 빨갱이가 두렵겠죠. 소비에트 연방과 중국 공산당이 실패했기 때문에. 그들이 처참하게 몰락했기 때문에 인권 운동가들이나 진보 지식인들은 빨갱이를 외면하고 경제적인 문제를 외면하겠죠. 물론 모든 인권 운동가와 진보 지식인이 인권이나 문화적인 현상에만 집중하지 않습니다. 경제적인 문제에 집중하는 인권 운동가들이나 진보 지식인들 역시 많아요. 특히, 인간적인 생활을 보장하는 기본 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경제적인 문제들을 크게 완화할 수 있겠죠.
저는 인권 운동가들이나 진보 지식인들을 무조건 비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한국 사회에서 인권 운동이나 진보 운동은 경제적인 문제와 멀어지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이는 비단 한국 사회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신자유주의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수많은 인권 운동가들이나 진보 지식인들은 경제적인 문제를 회피하고, 경제 문제를 인권이나 문화 현상으로 몰고 가요. 한국 역시 그런 경향에서 예외가 아니죠. 아니, 어쩌면 한국 사회에서 그런 경향은 다른 나라들보다 강할지 모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반공 세뇌 국가이기 때문에 진보를 자처하는 지식인들이 경제적인 문제를 훨씬 더 회피하기 원하겠죠.
하지만 소비에트 연방과 중국 공산당이 실패했다고 해도 여전히 경제적인 문제는 핵심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본주의를 타파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겁니다. 사실 소비에트 연방이나 중국 공산당과 다른 길을 모색한 사회주의 세력들은 많습니다. 동남 아시아,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에 그런 세력들이 많죠. 하지만 그들은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해요. 정말 가난한 인민들이 자본주의를 타파할 수 있는 방법들을 무수히 시도했음에도 한국 사회는 거기에 너무 관심이 없어요. 좋습니다. 거대한 변혁이 너무 부담스럽다면, 기본 소득 같은 방법들을 궁리할 수 있을 겁니다.
따라서 인권이나 문화를 부르짖을 시간이 있다면, 인권 운동가들이나 진보 지식인들은 경제적인 대안을 좀 더 고민해야 할 겁니다. 사실 위에서 여러 창작물들을 언급했으나, 저는 <듄>이나 <작은 친구들의 행성>, <아바타> 역시 커다란 한계를 드러낸다고 봅니다. 그건 생산 수단의 사회적 공유를 외면하는 한계죠. 그런 한계는 <듄>이나 <작은 친구들의 행성>, <아바타>를 잘못된 결론으로 이끌지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듄>이나 <작은 친구들의 행성>, <아바타>는 인권 문제에만 매달리기보다 경제적인 문제를 함께 주목하는 것 같아요.
특히, SF 독자들은 <세상 숲> 같은 소설을 <빼앗긴 자들>과 같은 소설과 함께 고민할 수 있겠죠. 어슐라 르 귄은 그저 인권에만 매달리지 않고 생산 수단을 함께 고민했어요. 제게는 어슐라 르 귄 같은 SF 작가가 숱한 인권 운동가들이나 진보 지식인들보다 훨씬 낫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