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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인간처럼 생긴 인간적인 유사 인간 종족들 본문

SF & 판타지/장르 정의

인간처럼 생긴 인간적인 유사 인간 종족들

OneTiger 2017. 12. 8. 20:09

[게임 <엔들리스 스페이스 2>의 언폴른. 나무 외계인에게도 '인간 형체'는 필요합니다.]



스페이스 오페라와 검마 판타지에는 여러 종족들이 등장합니다. 어떤 종족은 호전적이고, 어떤 종족은 평화적입니다. 어떤 종족은 대의 제도를 시행하고, 어떤 종족은 왕을 숭배하죠. 어떤 종족은 포유류 형태이고, 어떤 종족은 파충류 형태에요. 어떤 종족은 첨단 기술을 자랑하고, 어떤 종족은 뛰어난 신체로 부족한 기술력을 보완합니다. 이런 수많은 종족들은 스페이스 오페라나 검마 판타지가 얼마나 많이 다채로워질 수 있는지 좌우합니다. 그런 다채로움은 작품을 보다 돋보이게 하고요.


종족들은 서로 성향이나 관습이 다르고, 이런 성향이나 관습이 부딪힐 때, 기이한 사건이 발생하거나 등장인물들이 한층 입체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나 검마 판타지를 쓰고 싶다면, 작가는 우선 독특한 종족들을 설정해야 할 겁니다. 군집 절지류 괴물이라거나 귀가 쫑긋하고 우아한 엘프들처럼 뻔한 공식을 이용해도 좋겠으나, 자신이 직접 설정한 독특한 종족은 그 작품에게 차별성을 부여하겠죠. 그리고 그런 종족을 설정할 때, 종족의 형체를 결정하는 과정 역시 중요할 겁니다. 많은 스페이스 판타지들이나 검마 판타지들은 인간 형체를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인간 형체는 아주 요긴한 설정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소설을 쓰는 작가와 소설을 읽는 독자 역시 인간입니다. 아무리 작가가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만들거나 아무리 독자가 희한한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해도 결국 양쪽 모두 인간입니다. 그래서 작가는 인간을 집어넣고, 독자는 인간을 읽습니다. 우리는 인간이 인간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에 익숙합니다. 사실 우리는 수많은 인간들에 둘러쌓였고 대부분 인간들을 바라봅니다.


인간이 아니라 다른 포유류, 조류, 파충류, 양서류 특히 어류를 훨씬 많이 바라보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듯합니다. 동물학자나 국립 공원 경비대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면, 대부분 사람들은 인간들과 어울리고 인간들을 바라보겠죠. 그래서 우리는 스페이스 판타지나 검마 판타지 속에서 인간을 찾기가 익숙할 겁니다. 만약 작가가 인간과 아주 동떨어진, 기괴하게 생겨먹은 종족을 설정했다면, 그 생명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묘사하느라 골머리를 싸매야 할 겁니다. 그런 생명체가 활이나 총을 쏠 수 있을까요? 손이 없음에도?



그 생명체는 어떻게 생긴 옷을 입을까요? 모험가 일행이 여행을 떠날 때, 그 생명체는 배낭을 짊어질 수 있을까요? 어깨나 등이 있을까요? 그 생명체는 복잡한 기계나 도구를 조립하거나 사용할 수 있을까요? 손이 없다면, 복잡한 기계를 조립하거나 도구를 사용할 수 있을까요? 인간에게 익숙한 우주선 조종대가 그 생명체에게 익숙할까요? 이것들은 아주 까다로운 물음들입니다. 그래서 여러 창작가들은 쉬운 해답을 선택하곤 합니다. '인간 형체'죠. 사람처럼 생긴 종족을 만든다면, 저런 물음들에 쉽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스페이스 판타지 작가가 파충류 종족을 만든다고 가정하죠. 이 파충류 종족은 두 발로 걷는 도마뱀처럼 보입니다. 흔한 설정이죠. 이 파충류 종족은 활이나 총을 쏠 수 있습니다. 인간처럼 두 손이 있기 때문입니다. 파충류 종족은 인간들이 입는 옷을 걸칠 수 있습니다. 인간처럼 생겼기 때문입니다. 파충류 종족은 배낭을 짊어지거나 복잡한 기계를 조립할 수 있습니다. 어깨와 등이 있고, 두 손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설 <시리우스>에서 시리우스는 자신에게 두 손이 없다고 절규했습니다. 인간처럼 생긴 생명체는 그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스페이스 판타지나 검마 판타지 창작물들에는 인간처럼 생긴 여러 종족들이 등장합니다.



머나먼 우주로 떠나는 우주선이든, 깊고 깊은 던전을 방황하는 모험가 일행이든, 인간처럼 생긴 종족들은 필수적입니다. 아름답고 멋진 여자든, 흉측하게 생긴 절지류 괴물이든, 어쨌든 양쪽 모두 인간처럼 생겨야 합니다. 인간처럼 생긴 종족은 인간처럼 행동할 수 있고, 그래서 작가는 여러 장면들을 편리하게 묘사할 수 있습니다. 뭐, 이런 휴머노이드, 그러니까 유사 인간 종족이 너무 상투적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작가가 노력한다면, 이런 유사 인간 종족을 이용해 얼마든지 파격적인 설정을 추구할 수 있어요.


가령, <페르디도 거리의 기차역>에 등장하는 벌레 인간 종족은 그저 파격에만 그치지 않고 독자의 선입견을 아찔하게 비틉니다. 이 스팀펑크 소설에는 온갖 유사 인간 종족들이 등장하나, 그게 진부하다고 느끼는 독자들은 별로 없을 듯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설정하기가 쉬운 작업은 아니겠죠. 데이빗 브린이 <스타타이드 라이징>에서 묘사한 것처럼 독특한 종족을 집어넣고 싶다면, 아예 소설 배경 자체를 바꿔야 할지 모릅니다. 그런 변화가 소설을 더욱 재미있게 자극할 수 있겠으나, 그 재미만큼 작가는 머리를 쥐어뜯을지 모르겠어요. 뭐, 그것 역시 창작하는 재미라고 부를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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