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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유령 여단>과 로봇이 등장하지 않는 스페이스 오페라 본문

SF & 판타지/개조 생명체들

<유령 여단>과 로봇이 등장하지 않는 스페이스 오페라

OneTiger 2018. 2. 22. 13:47

스페이스 오페라와 로봇은 잘 어울리는 한쌍입니다. 그저 잘 어울릴 뿐만 아니라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로봇은 아주 중요한 소재가 됩니다. <파운데이션> 시리즈의 은하 제국은 로봇 이야기로 이어졌죠. <플레바스를 생각하라>는 인류 문명이 인공 지능을 이용해 유토피아를 만들었다고 묘사합니다. <사소한 정의>에서는 우주 함선의 인공 지능이 주인공입니다. 이런 소설들을 비롯해 온갖 스페이스 오페라 만화들, 영화들, 게임들은 여러 로봇들을 선보입니다.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인류는 우주를 항해할 수 있고, 그런 기술력은 각종 로봇들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다른 항성계로 항해하는 인류가 로봇을 만들지 못한다면, 그건 꽤나 모순적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로봇을 이야기하지 않는 스페이스 오페라 창작물들 역시 많을 겁니다. 로봇은 스페이스 오페라의 필수적인 조건이 아닐 겁니다. <유령 여단> 같은 소설은 그런 창작물들 중 하나겠죠. <유령 여단>은 스페이스 오페라보다 밀리터리 SF 소설에 가깝습니다. 내무반에서 병사들이 떠드는 장면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령 여단>은 거대한 우주를 보여주고, 여러 종족들이 서로 싸웁니다.



따라서 <유령 여단>을 스페이스 오페라 소설이라고 불러도 그건 틀리지 않을 겁니다. <유령 여단>에서 인류는 아주 놀라운 기술력을 선보입니다. 궤도 승강기, 거대한 우주 정거장, 초공간 도약 우주선, 나노 기계들, 극단적인 신체 개조, 기타 등등. 하지만 로봇이 보이지 않습니다. 인류는 온갖 놀라운 기술력들을 선보이나, 그것들 중 로봇은 없습니다. 인간형 로봇들이나 다른 로봇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스스로 작동하는 기계가 아예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인류 개조 병사는 머리에 컴퓨터를 탑재했고, 혈관에 나노 기계 피를 넣었습니다.


그것들은 주변 상황을 스스로 파악할 수 있고, 병사가 의식을 잃거나 상황을 판단하지 못할 때, 병사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개조 병사의 개인 화기는 개조 병사의 두뇌 컴퓨터와 이어지고, 다양한 발사 형태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뇌 컴퓨터나 자동 개인 화기를 인공 지능이나 로봇이라고 부르기는 어색합니다. 독자가 SF 소설을 읽을 때, 흔히 떠올리는 로봇은 인간형 금속 로봇일 겁니다. 아니면 인간형이 아니라고 해도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여러 관절들이 달린 기계일 겁니다. <유령 여단>에 그런 기계는 나오지 않아요.



왜 <유령 여단>에는 그런 기계, 그런 로봇이 나오지 않을까요. 아마 개조 병사 설정을 부각하기 위해서일 겁니다. <유령 여단>에는 희한한 개조 병사들이 등장합니다. 바이오펑크를 좋아하는 독자는 <유령 여단>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겁니다. 외계인들과 싸우기 위해 인류 개척 방위군은 아주 독특한 병사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런 개조 병사들은 더 이상 인간처럼 보이지 않아요. 이 소설에서 일반적인 인간이 개조 병사가 되는 과정은 핵심적인 재미를 뒷받침합니다. 그런 재미가 빠진다면, 아마 <유령 여단>의 재미는 절반쯤 달아다니겠죠. 그게 빠진다면, <유령 여단>은 보다 평범한 밀리터리 SF 소설이 될 테고, 아예 주제 자체가 망가질 겁니다.


따라서 개조 병사는 <유령 여단>을 지탱하는 핵심 설정입니다. 하지만 만약 인류 개척 방위군이 인간형 로봇들을 만들 수 있다면? 인류 군대가 인간형 로봇들과 다른 형태의 로봇들을 양산할 수 있다면? 인류 군대는 그것들을 전장에 내보낼 수 있습니다. 로봇 병사는 개조 병사를 대체하거나 보조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개조 병사는 의미를 잃을 겁니다. 로봇 병사라는 소재가 개조 병사라는 소재를 잡아먹을지 모르죠.



작가는 그런 상황을 피해야 했고, 그래서 로봇을 아예 빼놨는지 모릅니다. 이는 개인적인 추측일 뿐입니다. 저는 왜 존 스칼지가 로봇을 묘사하지 않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해요. 하지만 저는 로봇이 등장했다면 소설 분위기가 많이 흐려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로봇이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령 여단>이 제대로 주제를 전개할 수 있었죠. 그렇다고 해도 이는 무리가 있는 설정 같습니다. 궤도 승강기와 차원 도약 우주선을 만들 수 있는 개척 방위군이 로봇 하나 만들지 않는 상황…. 뭔가가 좀 이상하지 않나요.


현실 속에서 수많은 공학자들은 로봇을 만드느라 애씁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한다면, 인류 개척 방위군 역시 각종 로봇들을 보유해야 합니다. 물론 SF 소설이 언제나 현실을 따라갈 이유는 없습니다. SF 소설은 얼마든지 현실과 다른 길을 갈 수 있어요. 현실 속에서 공학자들이 로봇을 만든다고 해도, SF 작가는 현실과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아예 로봇과 컴퓨터를 금지하는 <듄> 같은 소설이 있죠. 로봇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유령 여단>이 아쉽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유령 여단>이 로봇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건 별로 오류나 잘못이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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