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월-E>와 지속 가능한 세대 우주선 본문
※ 애니메이션 <월-E>의 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자고로 도시는 엄청난 식량을 소모합니다. 이런 도시를 뒷받침하는 생태계가 있을까요?]
애니메이션 <월-E>는 환경 아포칼립스에서 출발합니다. 지구는 거대한 쓰레기장이 되었고, 월-E는 유일무이한 청소 로봇 같습니다. 사방에 쓰레기들이 널렸기 때문에 월-E는 쓰레기들을 치우고, 치우고, 치우고, 또 치웁니다. 아무리 월-E가 쓰레기들을 치워도, 쓰레기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월-E는 쓰레기 마천루들을 세우고, 이런 쓰레기 마천루들은 지구를 대변합니다. 다른 생명체들, 인간들, 동물들, 식물들, 균류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친구 바퀴벌레가 월-E와 함께 살아갈 뿐입니다.
다들 어디로 갔을까요? <타임 머신> 같은 소설처럼 자연 생태계와 야생 동식물들이 멸종했을까요? 하지만 사람들은? 사람들이 어디로 갔을까요? 이 애니메이션은 쉽게 대답하지 않습니다. 오랜 동안 <월-E>는 그저 월-E와 이브와 바퀴벌레 친구를 보여줄 뿐입니다. 월-E는 이브를 짝사랑하고 이브에게 구애를 펼치나, 그런 장면들은 인간들이 어디에 갔는지 설명하지 않아요. 관객들은 그저 대기업이 자연 생태계와 인류 문명을 파괴했을 거라고 추측할 뿐이죠. 대기업은 모든 것을 점령했고, 따라서 대기업이 뭔가 나쁜 짓을 저질렀을 것 같습니다.
낯선 우주선이 이브를 태우러 왔을 때, 월-E는 우주선에 매달립니다. 우주선은 지구를 떠나고 머나먼 우주로 날아갑니다. 그때부터 <월-E>는 환경 아포칼립스가 아니라 우주 탐사 장르로 바뀌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웅장한 세대 우주선이 나타납니다. 세대 우주선은 거대한 우주 도시와 똑같습니다. 우주선은 내부에 거대한 도시를 갖추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삭막한 쓰레기장 지구와 달리, 세대 우주선은 번쩍거리고 풍족합니다. 세대 우주선은 기술적 유토피아 같습니다. 자동 기계들은 의식주를 해결하고 노동을 도맡습니다.
로봇들은 모든 수발을 들어주고, 사람들은 절대 일하지 않습니다. 우주선 선장조차 따분한 아침 인사 이외에 다른 업무를 맡지 않습니다. 인공 지능 항법 장치는 모든 것을 관리하죠. 생명의 요람 지구는 황량한 쓰레기장이 되었으나, 세대 우주선은 또 다른 고향이 되었습니다. 세대 우주선은 모든 것을 충족할 수 있습니다. 아마 이 부분에서 하드 SF 독자는 이렇게 물어볼지 모르죠. 이게 가능한가? 정말 거대한 우주선이 수많은 사람들을 꾸준히 먹여살릴 수 있나? 언젠가 자원이 고갈되고, 사람들이 굶주리지 않을까? 어떻게 세대 우주선이 자원을 보급할 수 있나?
어떻게 세대 우주선이 계속 식량을 공급할까요? 세대 우주선에는 식물이 없습니다. 세대 우주선에는 자연 생태계가 없어요. 우주선 선장은 이브가 가져온 새싹을 아주 소중하게 다룹니다. 이브가 새싹을 가져오기 전까지, 우주선 선장은 식물을 직접 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세대 우주선이 영양분을 만들 수 있을까요? <라마와의 랑데부>에 나오는 라마 우주선처럼 세대 우주선이 아주 거대한 유기물 찌개를 이용할까요? 하지만 우주선 안에는 그런 유기물 찌개 바다가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면 세대 우주선이 <소일렌트 그린> 같은 방법을 이용할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월-E>는 세대 우주선을 자세히 보여주지 않습니다. 인공적인 자연 생태계는 흥미로운 소재이나, <월-E>는 하드 SF 장르가 아닙니다. <월-E>는 가족 애니메이션이고, 자세한 설정을 이야기하지 않아요. 어쩌면 하드 SF 독자들은 이런 세대 우주선이 불가능한 설정이라고 비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월-E>의 세대 우주선에는 정말 거대한 유기물 찌개 수조가 있고, 자동 기계가 부산물들을 이용해 유기물 찌개를 계속 생성하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인류는 계속 세대 우주선에서 살 수 있을지 모르죠.
하지만 새싹을 봤을 때, 우주선 선장은 인류가 지구로 돌아가야 한다고 결정합니다. 이는 좀 이상한 결정입니다. 왜 세대 우주선에서 계속 살 수 있음에도, 선장이 지구로 돌아가야 한다고 결정했을까요. 세대 우주선에서 아무도 굶주리지 않고 잘 먹고 잘 살 수 있어요. 세대 우주선에는 비극적인 양극화나 경제 공황이나 환경 오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왜 이런 천국을 버리고, 인류가 지구로 돌아가야 할까요. <월-E>는 가족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을 폭넓게 살피지 못합니다. 이런 문제들을 살피고 싶다면, <월-E>는 자본주의와 환경 오염을 분석해야 합니다.
하지만 <월-E>는 가족 애니메이션이고, 가족 애니메이션에게 자본주의 비판은 어려운 작업이겠죠. 대신 우주선 선장은 윤리적인 동기에 호소합니다. 인류가 지구로 돌아가는 이유? 그건 지구가 고향별이기 때문입니다. 인류는 지구에서 태어났고, 계속 지구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건 인류의 천성입니다. 저는 이런 윤리적인 동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인류가 지구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왜 계속 지구에서 살아가야 하나요? 우리는 변할 수 있고, 과학 기술이 허락한다면, 우주에서 살아갈 수 있어요. 왜 우리가 우주로 나가지 말아야 하나요?
문제는 그런 과학 기술이 쉽게 등장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반영구적으로 자급자족하는 세대 우주선? 계속 순환하는 유기물 찌개? 정말 그런 기술이 쉽게 등장할 수 있을까요? 저는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류가 지구 생태계를 제대로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윤리적인 동기가 아닙니다. 이는 생태적이고 논리적인 동기입니다. 지구는 생명의 요람이고, 우리는 생명의 요람을 함부로 모방하지 못합니다. 지구가 없다면, 인류도 없습니다. 지구야말로 진짜 거대한 세대 우주선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