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외계 개척 생태계와 <레드 로자> 본문
[이런 스페이스 오페라처럼, 미래 인류가 외계 생태계에 닿는다면, 외계 생태계는 무슨 운명과 만날까요.]
소설 <우주의 개척자>가 말하는 것처럼, 외계 개척 이야기에서 생태학과 정치는 빠지지 못하는 소재입니다. 외계 개척 이야기는 새로운 자연 환경에서 새로운 인류 사회가 나타난다고 묘사합니다. 당연히 외계 개척 이야기는 자연 환경(생태학)과 사회 구조(정치)를 함께 들여다봐야 합니다. <우주의 개척자>는 태양계 내부 개척을 이야기하나, 태양계 외부 개척 역시 다르지 않을 겁니다. 현실적으로 태양계 외부 개척은 거의 불가능한 사업입니다.
가장 가까운 항성계까지, 우주 항해는 엄청난 시간을 소모할 테고, 태양계 외부 개척은 무모한 도전이 되겠죠. 이건 막대한 비용을 요구할 테고, 아무도 이런 거창한 사업에 쉽게 뛰어들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만약 차원 관문이나 초공간 도약이 가능하다면? 스페이스 오페라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미래 인류가 차원 관문이나 초공간 도약을 이용해 머나먼 외계 행성들로 진출할 수 있다면? 그때 신천지에서 미래 인류는 새로운 사회를 이룩할 수 있겠죠. 당연히 새로운 사회를 이룩하기 전에 개척자들은 새로운 자연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겁니다. 심지어 이건 테라포밍이 될지 모릅니다.
외계 행성이 불모지거나 외계 행성에 이미 자연 생태계가 존재한다고 해도, 개척자들은 지구와 비슷한 자연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겁니다. 지구와 비슷한 자연 환경이 없다면, 사람들은 먹고 살지 못할 테고, 새로운 사회 역시 나타나지 못하겠죠. 그렇다고 해도 외계 행성에 자연 생태계가 존재할 가능성은 높지 않을지 모릅니다.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 <아바타>는 외계 행성에 비단 울창한 열대 밀림만 아니라 지적 존재(외계인)가 있을 거라고 이야기하나, 이건 그저 뻥튀기 설정에 불과하죠. 수많은 스페이스 오페라들이 그런 것처럼, <아바타> 속의 판도라 위성 생태계는 그저 과장된 지구 생태계에 불과합니다. 판도라 위성 생태계는 그저 지구 생태계를 신비롭게 뻥튀기했을 뿐이죠.
우주 생물학자들은 외계 생태계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주 생물학자들은 외계 생태계를 긍정합니다. 하지만 외계 생태계가 존재한다고 해도, <아바타>와 달리, 그것은 과장된 지구 생태계가 아니겠죠. 외계 생태계를 상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직 지구 생태계만 관찰할 수 있고 지구적인 관점을 넘어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주를 초월하지 못하고 완전히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사고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상상하든, 그건 지구적인 관점에서 비롯합니다. 외계 생태계를 이야기하고 싶다면, SF 작가는 스페이스 오페라보다 엄중한 테라포밍을 고민해야 할지 모릅니다.
개척자들은 테라포밍을 이용해 불모지 행성을 생명체들이 살아숨쉬는 행성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테라포밍을 거친 이후, 불모지 행성은 살아숨쉬는 행성이 될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게 인간 중심적인 기술 제국주의라고 비판할 겁니다. 외계 행성에는 미약한 생태계가 있을지 모릅니다. 인류는 모든 생명체를 관찰하고 파악하지 못합니다. 외계 행성에서 테라포밍을 시도한다면, 개척자들은 저도 모르게 (인류가 아직 파악하지 못한) 생명체들을 멸종시킬지 모릅니다. 개척자들이 외계 생명체가 없다고 99.9% 확신한다고 해도, 불모지 행성에는 고유한 가치가 있겠죠.
불모지 행성이 테라포밍을 거친다면, 이런 가치는 사라질 겁니다. 미래 인류에게 불모지 행성을 바꿀 권리가 있을까요? 인류가 불모지 행성에 손을 대지 말아야 할까요? 우주에서 인류가 생명의 씨앗들을 뿌려서는 안 될까요? 태양계가 멸망할 때까지, 지구에서 인류는 그냥 조용히 살아야 할까요? 어떤 사람들은 모든 생명체가 번성하기 바란다고 말할 겁니다. 비단 인류만 아니라 수많은 생명체들은 번성하기 바랍니다. 미래 인류가 지구 생태계를 다른 외계 행성들에 퍼뜨린다고 해도, 그건 자연의 섭리일지 모릅니다. 어쩌면 어머니 자연은 그걸 바랄지 모릅니다. 누가 어머니 자연의 속마음을 알 수 있겠습니까.
물론 가능성이 아주 미약하다고 해도, <아바타>처럼 외계 행성에 이미 풍성한 자연 생태계가 존재할 가능성은 있습니다. 아무리 <아바타>가 뻥튀기 설정에 불과하다고 해도, 우리는 미약한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하지 못합니다. 몇 백 년 이후, 미래 인류가 차원 관문을 넘어갈 수 있다면, 그들은 정말 판도라 위성 같은 외계 생태계와 만날지 모릅니다. 그리고 <아바타>가 묘사한 것처럼, 산업 발전은 외계 생태계를 수탈하고 오염시킬지 모릅니다. <아바타>는 생태계 파괴를 꽤나 피상적으로 다루었으나, 이런 문제는 숱한 외계 개척 이야기들을 꿰뚫을 수 있을 겁니다.
외계 행성에서 새로운 문명을 이룩하고 싶다면, 개척자들에게는 자연 생태계가 필요합니다. 자연 생태계가 존재할 때, 새로운 문명 역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인류 문명은, 심지어 첨단 미래 문명조차 자연 생태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먹고 살기 위해 사람들은 농사를 지어야 하고, 농사를 짓기 위해 사람들은 자연 생태계에 의존해야 합니다. 심지어 폐쇄적인 인공 생태계조차 문자 그대로 생태계입니다. 만약 외계 행성에 (인위적이거나 천연적인) 자연 생태계가 있다면, 그 자연 생태계가 무사할 수 있을까요? <아바타>가 경고한 것처럼, 산업 발전이 그걸 수탈하지 않을까요?
[진지하든 얄팍하든, 수많은 외계 개척 이야기들은 산업 발전과 생태계 파괴를 고민합니다.]
비단 영화 <아바타> 이외에, 하드 SF 소설부터 스페이스 오페라 비디오 게임까지, 수많은 외계 개척 이야기들은 산업 발전과 생태계 파괴를 고민합니다. 외계 개척 이야기에서 산업 발전과 생태계 파괴는 빠지지 않는 고민입니다. 이미 지구에서 우리는 숱한 환경 오염들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인류 문명이 외계 생태계에 닿을 수 있다면, 외계 생태계 역시 환경 오염들을 피하지 못할 겁니다. 테라포밍 이후 모방 지구 생태계, 스스로 번성하고 진화하는 천연 외계 생태계, 폐쇄적인 인공 생태계 모두 산업 발전에게서 자유롭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외계 개척 창작물들은 그저 과학자들이 우주선을 타고 폼나게 날아가는 이야기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외계 개척 창작물들은 생태계 파괴를 고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생태계 파괴를 고민할 때, SF 작가가 무슨 자료들을 참고할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우주 생물학이나 천문학이나 생태학 서적들을 머릿속에 떠올릴 겁니다. 하지만 진정한 대안은 (우주 생물학이나 천문학이나 생태학 서적들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을지 모릅니다. 케이트 에반스가 그린 만화 <레드 로자>는 SF 작가에게 대안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만화 <레드 로자>는 로자 룩셈부르크를 이야기합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20세기 초반 유럽의 공산주의 혁명가입니다. 20세기 초반 유럽에서 로자는 가장 뛰어난 공산주의 혁명가였죠. 러시아에 블라디미르 레닌이 있다면, 유럽에는 로자 룩셈부르크가 있을 겁니다. 당연히 <레드 로자>는 SF 이야기가 아닙니다. <레드 로자>에는 테라포밍이나 행성 공학이나 외계 식생이나 폐쇄 인공 생태계가 나오지 않습니다. <레드 로자>를 그리는 동안 케이트 에반스는 생체 우주선이나 외계 거대 괴수를 고려하지 않았겠죠.
하지만 분명히 이 만화는 SF 작가에게 커다란 영감을 미칠 수 있을 겁니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자본주의 확장과 수탈을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레드 로자>는 태어나고 죽을 때까지, 어떻게 로자 룩셈부르크가 살아갔는지 조명합니다. 공산주의 혁명가로서 로자 룩셈부르크에게는 여러 업적들이 있습니다. 독일 사회 민주당이 총파업을 외면했을 때, 로자는 민중의 자발성을 외쳤고 총파업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습니다. 1905년 동구권 민중들이 혁명을 일으켰을 때, 로자는 민중 혁명을 기록했고 민중 혁명이 자본주의를 뒤집을 거라고 생각했죠. 게다가 여자이고 동시에 장애인이었음에도, 허우대가 멀쩡한 독일 사회 민주당 남정네들보다 로자는 훨씬 급진적이었습니다.
공산주의 혁명가로서 로자 룩셈부르크는 자본주의 내부에 수탈이 존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수탈은 윤리 문제가 아니고, 도덕 문제가 아니고, 양심 문제가 아닙니다. 수탈은 자본주의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개선하기 원한다고 해도, 결국 자본주의 경제는 대대적으로 수탈할 겁니다. 이런 수탈은 붕괴로 이어질 겁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자본주의가 붕괴할 거라고 예상했고 사회주의 혁명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을 비롯해 여러 사회 민주당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붕괴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 로자는 이런 사회주의자들과 격렬하게 대립했죠.
나중에 이런 사회주의자들은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을 부정하고 볼셰비키를 비난합니다. 심지어 카를 카우츠키 같은 사회 민주당 거물은 적백 내전을 지원하고 소비에트 정부를 없애기 원했죠. (블라디미르 레닌은 카를 카우츠키가 가증스러운 '배신자'라고 말합니다.) 20세기 초반 유럽에서 자본주의 붕괴는 아주 뜨거운 화제였습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자본주의가 무너진다고 말하는 대표적인 혁명가였습니다. 왜 이렇게 로자가 자본주의를 맹렬하게 비판했을까요? 이른바 '사회주의 혁명이냐 야만이냐' 문제에서 왜 로자가 개량을 선택하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는 자본주의 경제가 무조건 확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경제의 유일한 동력은 이윤 축적입니다. 근본적으로 오직 이윤 축적만을 위해 자본주의 경제는 움직입니다. 자본주의는 이윤을 훨씬 많이 축적하고 싶어합니다. 해마다 수많은 기업들이 더 높은 매출액을 외치는 것처럼, 자본주의는 제로 성장이나 느린 성장이나 마이너스 성장을 혐오합니다. 더 이상 재화들이 필요하지 않다고 해도, 자본주의는 더 많은 재화들을 생산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충분히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고 해도, 자본주의 경제는 더 많은 재화들을 생산해야 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 자본주의는 재화들을 생산하지 않습니다. 이윤을 축적하기 위해 자본주의는 재화들을 생산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내부에는 죄수의 딜레마가 있습니다. 더 많은 이윤을 축적하기 위해 자본가 계급은 임금 노동을 줄이고 싶어합니다. 임금 노동자들은 소비자들이고, 소비자들 없이 상품들은 팔리지 않습니다. 이런 모순이 극단에 도달할 때, 창고들에 수북하게 재화들이 쌓였음에도, 사람들이 재화들을 원함에도, 자본주의 시장은 붕괴합니다.
자본주의는 스스로 이런 모순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결국 이건 경제 공황으로 이어집니다. 이런 사태를 피하고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자본주의는 외부 환경으로 끊임없이 확장하고 수탈해야 합니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무한하게 확장해야 합니다. 자본주의는 뒤로 물러나거나 멈추거나 천천히 나가지 못합니다. 자본주의는 무조건 빨리 나가야 합니다. 절벽이 코 앞에 있다고 해도, 자본주의는 멈추지 못합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이런 이론을 전개했고 자본주의가 엄청난 비극을 일으킬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경제 공황은 자본주의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무조건 팽창해야 합니다.]
만화 <레드 로자>는 크게 세 부분들에서 자본주의 팽창을 설명합니다.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을 비판할 때, 로자 룩셈부르크는 그 자체로서 이윤의 지속적인 추구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주전자 안에서 물은 영원히 끓지 못합니다. 언젠가 뜨거운 물은 주전자 밖으로 넘칠 겁니다. 뜨거운 물이 주전자 밖으로 넘치는 것처럼, 자본주의 내부에서 잉여 가치를 추구하는 움직임은 자본주의 밖으로 넘칠 겁니다.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은 신용이 이런 문제를 해결할 거라고 예상했으나, 로자 룩셈부르크는 신용이 위기를 심화시킬 거라고 반박했습니다.
무한 팽창이 제한된 규모와 충돌할 때, 신용은 무분별한 투기를 부릅니다. 신용은 모든 교환을 복잡하고 인위적인 단계로 극단적으로 바꾸고, 결국 이건 대대적인 비극으로 이어질 겁니다. 2008년 금융 대란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2008년 금융 대란은 심지어 '죽은 사람에게조차 대출'하기 원했습니다. 목표는 이윤 축적이었습니다. 이윤을 축적할 수 있다면, 죽은 사람에게 대출하는 것 역시 아무렇지 않았죠. 죽은 사람에게 대출하는 사례가 극단적인 사례일까요? 이게 극단적인 사례라고 해도, 2008년 금융 대란에는 인위적인 투기 사례들이 넘칩니다. 정상적으로 순환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경제는 이런 극단적인 방법들을 동원합니다.
문제는 오직 경제적인 차원에서만 이런 경제 공황이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경제 공황에서 탈출하기 위해 자본주의는 엄청난 비용을 소모할 겁니다. 자본주의는 일부러 재화들을 쓸데없이 소모하거나 복구 비용을 과도하게 부를 겁니다. 2008년 금융 대란을 복구하기 위해 세계화 시장이 무슨 짓을 저질렀을까요? 구제 금융 비용이 어디에서 비롯했을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파산했을 때, 먹고 살기 위해 그들이 무엇을 했을까요? 이런 엄청난 낭비와 비용은 고스란히 자연 생태계로 돌아갑니다. 흔히 사람들은 하늘에서 돈이 뚝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돈이 돈을 낳는다고 말합니다.
이건 엄청난 착각이고 거짓말이고 망상이고 현실 왜곡입니다. 하늘에서 돈은 뚝 떨어지지 않습니다. 돈은 돈을 낳지 않습니다. 인간이 자연 생태계를 가공하고 재화를 생산할 때, 그 재화에는 가치가 있습니다. 인간 노동은 가치를 만듭니다. 이런 가치를 측정하기 위해 돈은 존재합니다. 그 자체로서 돈은 돈이 아닙니다. 화폐 뒤에는 자연 생태계와 인간 노동이 있습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이걸 인정하지 않습니다. 경제 공황은 이런 관계를 파괴하고 혼란을 초래합니다. 이미 지구 생태계는 이런 공황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외계 생태계가 예외일까요? 그건 순진한 착각이겠죠.
결국 자본주의는 외계 생태계에 마수를 뻗을 겁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얼마나 자본주의 경제가 폭력적이고 끔찍하게 확장하는지 기록했습니다. 마다가스카르에서 프랑스 포병대는 꽃처럼 피어나는 수 천 명의 사람들을 학살했습니다. '야만인들의 여왕'은 유럽으로 끌려갔죠. 동물원이 야생 동물들을 전시하는 것처럼, 유럽은 흑인 여자를 전시했습니다. 설탕 카르텔의 미국 상원은 대포들과 전함들과 수많은 비용을 쿠바로 보냈습니다. 이건 죽음과 파괴의 시작이었습니다. 아프리카 남부에서 대영 제국 군대는 흑인 인민들을 짓밟았습니다. 군화들은 아이들의 시체들을 밟고 지나갔고, 사방에는 피가 흥건했죠.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미국 권력자들은 '사이좋게' 중국을 장악했습니다. 중국 인민들이 저항했을 때, 서구 강대국들은 중국 인민들을 아무렇지 않게 학살했습니다. 이런 무자비한 수탈 없이, 자본주의는 발달하지 못합니다. 사실 무자비한 수탈이 있었기 때문에, 식민지들을 수탈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발달하고 막대한 부를 끌어모을 수 있었죠. SF 작가들은 외계 개척 행성들을 외계 '식민지'라고 부릅니다. 지구에서 식민지 문제는 아직 풀리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게 남아메리카 국가들이 고생하겠습니까? 왜 베네수엘라 같은 국가들이 혼란에 빠지겠습니까? 지구에서 식민지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면, 외계 식민지가 예외가 될 수 있겠습니까?
자본주의 경제를 분석할 때, 로자는 상상 과학적인 가정을 동원합니다. 만약 지구에서 자본주의가 완전히 자리를 잡는다면? 모든 사람이 자본가나 노동자라면? 자본가는 공장이나 농장처럼 생산 수단을 소유합니다. 자본가는 노동자들을 이용해 상품들을 만듭니다. 시장에서 자본가는 상품들을 판매하고 이윤을 축적합니다. 자본가는 이윤을 다시 투자하고, 다시 상품들을 만들고, 다시 상품들을 판매하고, 다시 이윤을 축적하고, 다시 그 이윤을 투자합니다. 이렇게 가치가 증식할 때, 가치 증식은 자본이 됩니다. 그래서 카를 마르크스는 이런 경제 현상을 자본주의라고 부릅니다. 자본주의는 자본이 계속 가치를 늘리는 과정이고 흐름입니다.
이런 자본 순환 체제가 굴러가야 할 때, 가치가 계속 커지기 때문에, 소비 시장 역시 계속 커져야 합니다. 하지만 누가 이것을 모두 구입할 수 있을까요? 자본가 계급 전체는 상품을 모두 소비하지 못합니다. 자본가 계급은 이윤을 투자하기 원하고 모든 상품을 소비하지 못합니다. 모든 상품을 소비한다고 해도, 자본가 계급에게 그건 소용이 없어요. 노동자들에게는 상품을 모두 구할 여력이 없습니다. 상품들은 너무 많고, 노동자들은 너무 적은 임금들을 받습니다. 물론 지구에서 자본주의가 완전히 자리를 잡는다고 해도, 어떤 사람들은 자본가나 노동자가 아닐 겁니다. SF 소설 작가는 자본가나 노동자가 아니죠. 하지만 인간이 SF 소설을 먹고 살 수 있습니까? 어떤 SF 작가도 SF 소설을 먹고 살지 못합니다. 재화(식량)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먹고 살 수 있습니다. SF 소설은 먹고 살기 위한 재화(식량)가 아닙니다.
[작가가 만화 속에 끼어드는 것처럼, 케이트 에반스는 이 부분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자본 순환 구조 때문에 자본주의는 계속 팽창해야 합니다. 이게 가능할까요? 작가 케이트 에반스는 무한한 팽창이 정말 가능한지 독자에게 묻습니다. 만화 <레드 로자>에서 케이트 에반스는 거의 대부분 오너캐를 그리지 않으나, 유일하게 이 부분에서 케이트 에반스는 오너캐를 집어넣습니다. 작가는 만화 속으로 직접 끼어들고 자본 순환 구조가 정말 무한하게 돌아갈 수 있는지 묻습니다. 그렇게 이 부분은 중요합니다. 작가가 만화 속으로 직접 끼어드는 것처럼, 이런 물음은 중요합니다. 자본주의 경제 발전이 무한할 수 있는가? 자본주의 경제가 계속, 빠르게, 무조건 발전할 수 있는가? SF 작가들 역시 물어볼 수 있겠죠.
만약 이게 불가능하다면, 자본 순환 구조가 불가능하다면, 자본주의는 비자본주의적인 외부 영역을 원할 겁니다. 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라면, 과잉 축적된 자본을 해소하기 위해 자본주의는 외부 영역으로 진출해야 합니다. 만약 지구가 포화 상태라면, 자본주의는 지구 밖으로, 외계 식민지로 시선을 돌릴 겁니다. 아니, 지구가 포화 상태가 아니라고 해도, 시장을 넓히기 위해 자본주의는 지구 밖으로, 외계 식민지로 시선을 돌릴지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말 외계 생태계가 파괴를 면할 수 있겠습니까? 자본주의와 상관없이, 외계 생태계가 번성할 수 있겠습니까?
자본가 계급은 기술 혁신을 좋아합니다. 기술 혁신 덕분에 자본가 계급은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상품들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상품들, 훨씬 더 많은 상품들, 그것보다 더 많은 상품들은 계속 쏟아집니다. 자본주의는 급속한 무한 생산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기술 혁신이 있기 때문에, 기술 혁신이 있음에도, 소비 시장은 줄어듭니다. 이런 급속한 무한 생산 체제에서 자본가 계급은 이윤을 제대로 축적하지 못합니다. 이건 환원적입니다. 이건 닫힌 회로입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이게 닫힌 쳇바퀴라고 간주합니다. 자본주의는 계속 쳇바퀴를 돌아야 합니다. 따라서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필수적으로 자본주의는 외부로 나가야 합니다. 자본주의는 비자본주의적인 영역을 잠식하고 확장하고 제국주의로 번집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제국주의라는 용어는 이것을 가리킵니다.
로자와 레닌 이전에도 제국주의라는 용어는 존재했으나, 로자와 레닌은 제국주의라는 용어를 정립하고 자본주의가 제국주의로 번진다고 말합니다.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자본주의는 제국주의가 되어야 합니다. 점령, 절도, 착취, 몰살, 징세, 값싼 소비재 공급, 천연 자원 유용, 국제 차관, 군사력을 이용해 자본주의는 제국주의가 됩니다. 사실 초기 자본주의는 열대 밀림을 밀어냈고 플랜테이션 농업에서 이득을 얻었습니다. 이미 세상에 나타났을 때부터 자본주의는 열대 밀림 파괴와 떨어지지 못했습니다. 열대 밀림을 파괴했기 때문에, 열대 밀림 파괴에서 비롯했기 때문에,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자본주의는 또 다시 열대 밀림을 파괴하기 원합니다. 자본주의는 무조건 열대 밀림을 파괴해야 합니다. 자본주의에게 다른 경로는 없습니다.
간단한 사례를 볼까요. 어떤 지역에서 자본주의 경제는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창고들에는 상품들이 수북하게 쌓였으나, 노동자들은 모든 상품을 소비하지 못합니다. 상품들이 팔리지 않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이윤을 축적하지 못합니다. 자본가들은 계속 자본을 순환시키고 싶어하나, 상품들이 팔리지 않고 투자할 곳이 없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자본을 순환시키지 못합니다. 이건 꽉 막힌 변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꽉 막힌 변기에게는 뚫어뻥이 필요합니다.
자본을 과잉 축적한 자본주의 경제에게는 뚫어뻥이 필요합니다. 1930년대 경제 공황은 2차 세계 대전이라는 뚫어뻥을 만났고, 신나게 군수 물자들을 찍었고, 공황을 해소할 수 있었죠. 하지만 이런 세계 대전이 없다면? 내부에서 순환이 막혔기 때문에 자본주의 시장은 외부로 진출해야 합니다. 자본주의 시장이 외부로 진출하고 외부에 새로운 시장을 만든다면, 거기에서 자본가 계급은 과잉 축적한 자본을 투자할 수 있고 다시 자본을 순환시킬 수 있겠죠. 그래서 열대 밀림은 열대 밀림이 아니라 새로운 시장이 되어야 합니다. 열대 밀림이 시장이 될 때, 기업들이 열대 밀림을 밀어내고 공장들을 지을 때, 자본가 계급은 거기에 투자할 수 있고, 이건 자본 순환이 되겠죠.
따라서 자본주의 경제에게 모든 것은 시장이 되어야 합니다. 야생 보호 구역? 그 따위 것은 없습니다. 야생 보호 구역이 이윤을 창출합니까? 이윤을 창출하지 못하는 야생 보호 구역 나부랭이는 사라져야 합니다. 만약 이런 현상이 전세계적으로 퍼진다면? 지구 자연 생태계가 꼼짝하지 못하고 이런 경제 현상에 사로잡힌다면? 이건 상상 과학적인 가정입니다. 따라서 이건 아직 입증되지 않은 이론입니다. 하지만 SF 작가들은 이런 상황을 가정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외계 개척 생태계는 안전하지 못하겠죠.
자본주의는 세계로 퍼져나가는 암세포입니다. 17세기에는 세계화라는 단어가 없었으나, 이미 유럽 자본주의는 대양 너머 열대 밀림을 파괴했습니다. 그렇게 자본주의는 나타났죠. 20세기 초반에는 세계화라는 단어가 없었으나, 로자 룩셈부르크는 암세포처럼 자본주의가 세계를 향해 폭력적으로 확장한다고 적었습니다. 이제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자본주의는 세계를 통째로 집어삼키고 다른 모든 경제를 말살시키기 원합니다. 하지만 내부에 죄수의 딜레마가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혼자 존재하지 못하고 또 다른 환경에 기반해야 합니다. 본질적으로 자본주의는 기생적입니다. 자본주의는 스스로 뭔가를 하지 못합니다.
바이러스가 무조건 다른 생명체에게 기생해야 하는 것처럼, 자본주의는 무조건 다른 환경에 기생해야 합니다. 자본주의는 전세계적인 것이 되고 싶어하나, 본질적으로 그건 불가능합니다. 그 자체로서 자본주의는 모순이죠. 그래서 로자 룩셈부르크는 자본주의가 붕괴한다고 생각했고, 사회주의 혁명이 필연적이라고 생각했고,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같은 사회주의자들과 격렬하게 대립했습니다. 만화 <레드 로자>는 지구 전체가 갈갈이 찢어지는 장면을 그립니다. 이건 그저 비유에 불과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지구 자연 생태계는 이미 갈갈이 찢어지고 뒤틀리는 중입니다. 지구 생태계가 찢어진다면, 외계 개척 생태계가 안전할 수 있을까요?
['미쳐 날뛰는 호랑이'라는 표현은 생물종 차별입니다. 하지만 경제학 분석은 틀리지 않을 겁니다.]
로자 룩셈부르크와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이 대립했을 때, 유럽은 1차 세계 대전으로 빠져드는 중이었습니다. 1916년 <유니우스 팸플릿>에서 로자 룩셈부르크는 말합니다. "대량 학살은 익숙하고 단조로운 일이 되었다. 자본주의는 자신의 덫에 걸렸고 더 이상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다. 치욕과 불명예를 뒤집어쓴 채 핏물을 철벅거리며 오물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자본주의 사회는 서있다. 자본주의는 평화와 정의, 질서, 철학, 윤리를 담당하기는 고사하고 숨쉴 때마다 전염병의 기운을 내뿜으며 난장판을 만들고 울부짖는 짐승처럼 문화와 인류를 파괴한다. 그렇게 흉측하게 벌거벗은 모습으로 자본주의는 나타난다."
네, 그렇습니다. 자본주의가 모순에 달했을 때, 그건 경제 공황과 전쟁과 숱한 비극들로 이어집니다. 이런 모순이 지구 전체를 뒤덮는다면, 외계 개척 생태계 역시 안전하지 못하겠죠.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경제학 분석이 엉터리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21세기 초반 자본주의가 20세기 초반 자본주의와 다르다고 말할 겁니다. 하지만 정말 이런 분석이 엉터리일까요? 정말 21세기 초반 자본주의가 20세기 초반 자본주의와 크게 다를까요? <레드 로자>에서 로자 룩셈부르크가 제시하는 자본주의 팽창은 상상 과학에 가깝습니다. 정말 전세계가 자본주의가 될 수 있을까요? 이건 미래 예측입니다. 미래에 자본주의가 무슨 모습이 되고 무조건 붕괴할지 그건 미지수입니다. 아무도 미래를 함부로 예측하지 못하고, 로자 룩셈부르크는 틀렸을지 모릅니다.
로자는 자본주의가 팽창하고 붕괴할 거라고 예측했으나, 그건 망상일지 모릅니다. 로자는 거짓말을 믿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21세기 초반 오늘날, 우리는 자본주의가 팽창하고 자연 생태계가 파괴되는 장면들을 너무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계속 마수를 뻗고 싶어하고, 외계 생태계는 예외가 되지 못할 겁니다. 따라서 외계 개척 이야기를 쓸 때, SF 작가들은 로자 룩셈부르크의 경고를 고려할 수 있겠죠. 로자 룩셈부르크는 미래학자가 아니었고 생태학자가 아니었고 우주 생물학자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로자는 자본주의가 너무 빠르고 폭력적으로 팽창한다고 경고했습니다.
SF 작가들은 로자 룩셈부르크의 경고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겠죠. 자본주의 붕괴 이론이 틀렸다고 해도, 로자의 경고에는 아주 중요한 가치가 있습니다. 로자는 기후 변화를 예상하지 못했으나, 우리는 로자의 경고를 얼마든지 기후 변화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로자의 경고를 기후 변화에 적용할 수 있다면, 외계 생태계 역시 로자의 경고에 해당할 겁니다. 외계 개척 이야기는 환상적인 중간계 이야기가 아닙니다. 외계 개척 이야기는 미래 산업 문명에서 비롯합니다. 미래 산업 문명에 여전히 자본주의 경제가 존재한다면, 자본주의는 또 다시 대대적인 비극을 일으킬 겁니다.
무엇보다 이런 분석은 오직 자본주의만을 조준하지 않습니다. 만약 미래 산업 문명에서 자본주의가 사라진다고 해도, 소수가 생산 수단을 독점한다면, 그건 다시 대대적인 생태계 파괴로 이어질 수 있어요. 로자 룩셈부르크는 자본주의 경제를 분석했으나, (만화 속에서 로자가 칠판에 적은 것처럼) 기본적으로 로자는 소수가 생산 수단을 독점했다고 비판합니다. 생산 수단 독점. 다른 어떤 것들보다 비판의 기본적인 출발점은 이겁니다. 이런 비판은 오직 자본주의만을 조준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사회 이외에 다른 사회들에서도 소수는 생산 수단을 차지했습니다.
소수가 생산 수단을 독점하고 사회 구성원들이 평등하게 자연 생태계를 관리하지 못한다면, 그 사회가 자본주의가 아니라고 해도, 생태계 파괴는 필연적일 겁니다. 사이언스 픽션들이 이걸 외면한다면, 그런 이야기들은 근본적인 생태학 SF가 되지 못할 겁니다. 많은 사람들은, 심지어 SF 작가들조차 사이언스 픽션이 그저 첨단 과학들을 줄줄이 늘어놓는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야기들이 제대로 된 생태학 SF가 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