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와인드업 걸>과 식량 주권 보호 본문
소설 <와인드업 걸>은 태국을 배경 무대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작가 파올로 바치갈루피는 미국 작가입니다. 왜 미국 작가가 태국을 배경 무대로 삼았을까요. 그저 신비롭고 이국적인 동양 분위기를 풍기기 위해? 종종 그런 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서구 사람들은 동양을 이용합니다. 하지만 <와인드업 걸>은 다국적 식량 기업들이 약소국 식량 시장에 침략하는 과정을 그립니다. 이 소설에서 주된 갈등 구도는 다국적 기업 대 약소국 시장이고, 그래서 파올로 바치갈루피는 태국을 배경 무대로 삼은 것 같습니다.
만약 배경 무대가 미국이나 유럽이었다면, 그런 국가들은 약소국이라는 느낌을 쉽게 풍기지 못했겠죠. 반면, 우리는 태국이 서구 제국주의에 침략을 당하는 동남 아시아 국가라고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 다국적 식량 기업들은 유전자 조작 작물들과 가축들로 세계 식량 시장을 독점하는 중입니다. 전세계적인 전염병이 퍼졌기 때문에 유전자 조작 작물들과 가축들 이외에 다른 작물들이나 가축들은 제대로 살아남지 못합니다. 다국적 식량 기업들에게 이건 황금 같은 기회였고, 그들은 유전자 조작으로 세계 식량 시장을 신나게 장악합니다.
어쩌면 이미 거대 식량 기업들이 세계 시장을 장악했기 때문에 치명적인 전염병은 그들에게 더 커다란 기회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장 지글러 같은 식량 전문가가 있었다면, 이런 상황을 보고 통탄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약소국임에도, 태국은 식량 시장을 개방하지 않고 다국적 식량 기업들에게 꿋꿋하게 저항하는 중입니다. 수입 식량들이 넘어올 때마다, 태국 환경 경찰은 난리법석을 일으키고 그것들을 반품합니다. 다국적 식량 기업들에게 태국은 골칫거리입니다. 태국은 자신들만의 유전자 조작 작물들과 가축들을 만들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다국적 기업들에게 저항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태국 식량 시장을 침략하고 싶다면, 다국적 기업들은 태국 유전자 조작 작물들과 가축들을 해킹해야 합니다. 이는 유전자 해킹이죠. 다국적 기업들이 그런 것들을 유전자 해킹하고, 거기에 저작권을 붙일 수 있다면, 태국 식량 시장은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식량 기업 직원은 태국으로 들어가고, 어떻게 태국 사람들이 이런 유전자 조작 작물을 만들었는지 파악합니다. <와인드업 걸>은 SF 소설이나, 어쩌면 이는 약소국이 식량 주권을 지키는 현실적인 방법일지 모릅니다. 만약 약소국 농민들이 스스로 개량 종자를 사용할 수 있다면, 서구 제국주의에게 매달리지 않겠죠.
사실 여러 약소국들에게 이는 꽤나 현실적인 고민이었습니다. 서구 제국주의는 자신들이 세계 식량을 좌우하기 원했고, 그래서 녹색 혁명을 지원했습니다. 녹색 혁명. 어감은 꽤나 좋습니다. 이 용어는 녹색당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느낌을 풍깁니다.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였습니다. 녹색당들은 녹색 혁명에 반대할 겁니다. 이게 대기업들이 주도하는 정책이기 때문입니다. 녹색 혁명은 식량 생산을 엄청나게 늘리나, 여기에는 개량 종자와 농업 기계화와 화학 비료가 필요합니다. 모두 막대한 비용을 소모하죠.
하지만 동남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의 가난한 농민들에게 무슨 돈이 있겠어요? 만약 그들이 녹색 혁명을 받아들인다면, 농작물 생산량을 늘릴 수 있겠으나, 그들은 대기업들에게 볼모로 잡히겠죠. 그래서 녹색 혁명 입안자들 역시 사회 인프라가 보장되지 않는 녹색 혁명이 실패한다고 회상했고요. 하지만 가난한 농민들이 파산한다고 해도, 서구 제국주의는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서구 제국주의는 그런 상황을 바랐을지 모릅니다. 약소국 농민들이 스스로 식량을 생산하고 식량 주권을 지킬 수 있다면, 그들은 서구 제국주의에게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숙이지 않겠죠. 먹고 살 수 있는 인간, 배를 불릴 수 있는 인간은 쉽게 남에게 굽히지 않습니다.
소비에트 연방이 농업 집산화를 계획했을 때, 미국이나 유럽은 그게 억압적인 방법이라고 게거품을 물고 날뛰었습니다. 하지만 서구 제국주의 역시 똑같은 짓거리를 반복합니다. 아니, 오히려 서구 제국주의는 훨씬 악랄합니다. 적어도 가난한 상황에서 소비에트 연방은 빨리 식량 생산을 늘려야 했습니다. 1차 세계 대전과 적백 내전 때문에 식량 생산량이 밑바닥을 때렸기 때문에 소비에트 연방은 꽤나 다급했습니다. 1차 대전과 적백 내전이 소비에트 연방의 책임이 아니었음에도, 그게 유럽의 책임이었음에도, 그것 때문에 소비에트 연방은 빨리 식량 생산량을 늘려야 했어요.
하지만 서구 제국주의 강대국들에게 그런 급박한 사정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풍족했음에도, 너무 풍족했기 때문에 서구 강대국들이 자본을 수출했음에도, 서구 제국주의는 폭력적인 녹색 혁명을 강요했죠. 동남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약소국들은 이에 저항해야 했고요. 그래서 인도네시아 같은 나라에서 공산당은 농민들과 함께 자체적인 개량 종자를 고민했습니다. 만약 인도네시아 농민들이 스스로 개량 종자를 만들 수 있다면, 그들은 서구 제국주의를 막아낼 수 있겠죠. 서구 제국주의는 그걸 용납하지 않았고, 인도네시아 공산당을 학살하는 독재자를 지원합니다.
그렇게 약소국들은 식량 주권을 지키지 못했고, 다국적 식량 기업들은 거대해졌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그렇습니다. 어쩌면 파올로 바치갈루피는 이를 반영하기 원했을지 모릅니다. 파올로 바치갈루피에게 그런 마음이 없었다고 해도, <와인드업 걸>은 현실을 너무 절실하게 반영합니다. 비록 현실에는 거대한 공장 코끼리가 없고, 투명화 고양이가 없고, 아름다운 여자 인조인간이 없으나, <와인드업 걸>은 어떻게 현실이 미래로 암울하게 이어질 수 있는지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우리 후손은 그런 미래를 겪어야 할지 모르죠. 그걸 막고 싶다면, 우리부터 현실을 바꿔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