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생체 장비들이 생태적인 상상력에 속할 수 있는가 본문
[게임 <비욘드 어스>의 조화 함선들. 외계 생태 연구는 이런 함선들을 낳았을지 모릅니다.]
SF 세상에는 여러 생태적인 상상력들이 있습니다. 어떤 작가는 유전자 조작 생명체가 자연 생태계를 교란한다고 말합니다. 아쉽게도 많은 전문가들은 이런 상상력이 더 이상 상상력이 아니라고 말하죠. 어떤 작가는 거대 괴수가 도시를 짓밟는다고 이야기합니다. 뭐, 거대 괴수는 무조건 도시를 짓밟는 악당이 아닙니다. 작가가 관심을 기울인다면, 얼마든지 도시를 짓밟지 않는 괴수를 이야기할 수 있겠죠. 어떤 작가는 외계 행성에서 우주 탐사 대원들이 낯선 외계 식물상을 발견한다고 표현합니다. 비경 탐험 소설은 이런 우주 탐사 소설로 쉽게 이어질 수 있겠죠. 이런 외계 식생은 가장 흔한 생태적인 상상력일지 모르고요.
어떤 작가는 생체 비행선이나 생체 강화복이나 생체 우주선을 묘사합니다. 여기에서 SF 독자들은 이렇게 물을지 모릅니다. "아니, 이게 무슨 생태적인 상상력인가? 개조 생명체가 자연 생태계를 교란하는 이야기나 거대 괴수가 자연 환경을 누비는 이야기나 외계 식생은 문자 그대로 생태계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생체 강화복은 자연 생태계에 속하지 않는다." 네, 맞아요. 생체 강화복은 자연 생태계에 속하지 않고, 이건 생태적인 상상력이 아닐지 모릅니다.
소설 <거기 누구냐?>는 극지 과학 기지에서 외계 변신 생명체를 찾아내는 여러 과학자들을 이야기합니다. 외계 생명체가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누가 정말 외계 생명체인지 모릅니다. 그 덕분에 이 소설은 엄청난 긴장감을 형성하고, 영화 <괴물>은 그런 긴장감을 제대로 살렸습니다. 수제 작업 시각 효과 역시 끝내주고요. 피터 왓츠 역시 여기에 커다란 감명을 받은 것 같습니다. 피터 왓츠는 이걸 오마쥬하는 단편 소설을 썼어요. 그 소설은 외계 생명체들이 꿈틀거리며 지각을 갖추고 고민하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생명체들이 바뀌고 꿈틀거리고 서로 합치고 특이한 지성을 갖추는 과정….
소설 <블라인드사이트>나 <크라이시스: 리전> 역시 이런 특징을 드러냅니다. 피터 왓츠는 이런 주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습니다. <크라이시스: 리전>에서 나노 슈트 강화복은 착용자와 결합하고, 그건 나노 슈트-인간 공생체가 됩니다. 이 공생체가 생명체일까요? 아니면 이게 기계일까요? 아니면 이게 사이보그일까요? 설사 이 공생체가 사이보그라고 해도, 이게 전형적인 사이보그가 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 공생체를 인간으로 대해야 할까요? 생명체 부분(인간)이 멀쩡하지 않음에도, 기계 부분(나노 슈트)이 생명체 부분을 살려줌에도, 이게 생명체에 속할까요?
이런 물음들은 정말 흥미롭습니다. 미래에 우리는 기계와 합치거나 우리 육체를 바꾸거나 육체에 다른 생명체를 덧붙일지 모릅니다. 그때 우리는 다른 존재가 될 테고, 인간적인 단점들에서 벗어날지 모릅니다. 어쩌면 굶주림, 전염병, 각종 육체적인 한계들은 더 이상 우리를 구속하지 않을지 모르죠. 우리는 우리가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에 엄청나게 관심을 기울입니다. 따라서 생체 강화복 같은 이야기는 정말 흥미로울 겁니다. 이게 우리 그 자체가 바뀌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흥미롭다고 해도, 이게 정말 생태적인 상상력에 속할까요?
솔직히 나노 슈트-인간 공생체가 흥미롭다고 해도, 이게 자연 생태계와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나노 슈트-인간 공생체는 생태적인 상상력에 쉽게 속하지 않겠죠. 하지만 생체 강화복은? 피터 왓츠가 나노 슈트가 아니라 살아있는 생체 강화복을 썼다면, 그게 자연 생태계와 무슨 관계를 맺을까요. 흠,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자연 생태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생체 강화복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자연이 온갖 생명체들을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들을 모방할 수 있습니다. 이건 그저 생체 모방 공학이 아닙니다. 이건 기계를 생명체와 비슷하게 만드는 작업이 아니죠. 이건 정말 생명체를 주무를 수 있는 기술입니다.
현대 산업 문명에는 거대 공장들이 있습니다. 현대 도시에는 수많은 자동차들이 있습니다. 하늘에는 온갖 항공기들이 날아다닙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자연 생태계나 먹이 그물이나 생명체를 모방했을까요? 자동차가 생명체를 모방했나요? 아닙니다. 자동차를 만들 때, 인간은 바퀴로 굴러다니는 생명체를 모방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자동차를 만들 때, 자동차 디자이너들은 바퀴로 굴러가는 생명체가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을 겁니다. 아니, 지구 생태계에 바퀴로 굴러다니는 생명체가 있나요? 저는 잘 모르겠군요. (소설 <프래그먼트>는 그런 설정을 자랑스럽게 내놓습니다. 솔직히 저는 그게 뭐 별로 자랑스러운 설정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화성의 왕궁에서>는 그런 문제를 훨씬 흥미롭게 고찰해요.)
설사 지구에 바퀴로 굴러가는 생명체가 있다고 해도, 그런 생명체는 대중적이지 않아요. 자동차 디자이너들은 그런 생명체를 모방하지 않았죠. 흔히 우리가 관찰하는 육상 동물들에게는 다리들이 있고, 다리들이 있는 육상 동물과 자동차는 완전히 다르죠. 하지만 생체 강화복을 만들 때, 우리는 생명체를 모방할 겁니다. 우리가 생체 장비를 만든다면, 생명체를 관찰한 이후, 우리는 그걸 응용하겠죠. 그리고 자연 생태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런 생명체들 역시 존재하지 못하고요. 따라서 자연 생태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생체 비행선이나 생체 강화복이나 생체 우주선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생체 강화복은 생태적인 상상력이 아닐지 모릅니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생체 강화복을 만들 때, 우리는 생명체들을 관찰하고 연구해야 할 겁니다. 자연 생태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런 생명체들 역시 존재하지 못할 테고요. 어쩌면 우리는 외계 식생을 발견하고, 그걸 이용해 생체 우주선을 만들지 모릅니다. 유로파에서 탐사 무인기가 외계 생태계를 연구한다면, 그걸 이용해 과학자들은 생체 장비를 생산할지 모르죠. 이런 관점에서 저는 생체 장비들이 생태적인 상상력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자연 생태계를 바라보는 시각 없이 우리는 이런 상상력을 깊게 전개하지 못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