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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오징어와 문어 사이에서 본문

SF & 판타지/크고 작은 괴수들

오징어와 문어 사이에서

OneTiger 2017. 7. 11. 20:00

[게임 <적색 경보 2>의 컨셉 아트. 대왕 오징어는 크라켄을 낳을 수 있는 원본이죠.]



허먼 멜빌의 <백경>에는 거대한 흰 오징어가 나옵니다. 거대한 오징어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으나, 이 부분은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주인공 선원은 거대한 오징어를 보고, 바다의 수많은 비밀 중에서 하나가 드러났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일등 항해사 스타벅은 거대한 오징어를 바다의 악마라고 부르고, 거대한 오징어보다 차라리 모비 딕이 낫다고 이야기합니다. 거대 오징어의 출현 분량은 상당히 짧지만, 그래도 이 놈은 모비 딕과 비견되었죠.


한편으로 빅토르 위고의 <바다의 노동자>에는 커다란 문어가 나옵니다. 이 문어는 거대한 오징어만큼 크지 않습니다. 원래 문어보다 오징어가 훨씬 거대하죠.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현재 가장 거대한 두족류는 심해의 대왕오징어입니다. 거대한 문어들도 있지만, 대왕오징어 같은 괴수는 아닙니다. 어쨌든 빅토르 위고는 커다란 문어가 바다 괴수라고 생각했고, 주인공과 문어와의 사투를 그렸습니다. 사실 문어의 출현 분량은 상당히 짧습니다. <바다의 노동자>는 문어를 표지 그림으로 삼았으나, 문어는 아주 짧게 등장합니다. 어쩌면 위고는 커다란 문어가 (출현 분량이 짧아도) 인상적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이처럼 유명한 고전 소설가들은 거대한 오징어와 커다란 문어를 선보였습니다. 당연히 SF/판타지 창작가들도 두족류 괴수를 그냥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SF/판타지 창작가들이 허먼 멜빌이나 빅토르 위고의 영향을 받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니, 허먼 멜빌은 분명히 SF 작가들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하지만 허먼 멜빌이 <백경>을 쓰지 않았다고 해도 SF 작가들은 두족류 괴수를 요긴하게 써먹었을 겁니다. 두족류 괴수는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괴수입니다. 우선 크라켄은 아주 유명한 괴수이기 때문에 두족류 괴수는 쉽게 인지도를 끌어올 수 있습니다.


게다가 두족류는 촉수들을 강력한 무기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어류들은 이런 촉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맹수들도 이런 촉수가 없습니다. 촉수는 뭔가를 휘감고 조이고 부러뜨릴 수 있기 때문에 파괴적인 괴수에게 아주 유용한 부위입니다. 빅토르 위고는 커다란 문어를 묘사할 때 얼마나 촉수가 파괴적인 신체 부위인지 줄줄이 설명했습니다. 만약 SF/판타지 창작가가 두족류 괴수를 묘사하고 싶다면, <바다의 노동자>를 반드시 읽어야 할 겁니다. 정말 촉수에 관한 명문입니다.



하지만 문어와 오징어의 촉수는 다릅니다. 문어의 촉수는 모두 길다랗고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하지만 오징어의 촉수는 서로 다릅니다. 8개는 짧고, 두 개는 굉장히 길죠. 이 두 개는 사냥 촉수입니다. 오징어는 먹이를 향해 촉수 두 개를 재빨리 날리고, 자기 품으로 끌어옵니다. 그리고 나머지 8개 촉수들이 먹이를 붙잡습니다. 그 외에도 문어와 오징어는 여러 모로 다른 동물입니다. 문어는 바다 밑바닥이나 바위 틈에서 흐느적거립니다. 흐느적거리는 둥근 몸통과 여러 촉수들의 조합입니다. 반면, 오징어는 날렵한 삼각형 생김새처럼 바닷속을 헤엄칩니다.


문어는 촉수의 막으로 헤엄치지만, 오징어는 아예 지느러미가 따로 달렸기 때문에 훨씬 빠르고 유연하게 헤엄칠 수 있습니다. 문어가 오징어만큼 크지 않은 이유는 문어가 밑바닥 동물이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고래상어나 고래도 바닷속을 부유하죠. 이들은 문어처럼 밑바닥에서 흐느적거리지 않습니다. 물론 이는 개인적인 추측에 불과하고 근거는 없습니다. 어쩌면 어느 생물학자가 이미 이런 원인을 밝혔을지 모르겠군요. 어쨌든 문어와 오징어는 두족류를 대표하지만, 서로 다른 동물입니다. SF/판타지 창작가가 두족류 괴수를 만들고 싶다면 두 개를 합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오징어와 문어 중 뭐가 더 많은 사랑을 받는지 모르겠습니다. 두족류 괴수는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에 모두 골고루 등장하지만, 창작가들은 각자의 개성에 따라 문어나 오징어를 선택하는 것 같습니다. 유명한 SF/판타지 소설 중에서 오징어와 문어 중 누가 더 많을까요. 어쩌면 어떤 SF 매니아가 그런 걸 조사했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문어와 오징어 중 누가 더 많이 등장했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문어보다 오징어가 훨씬 써먹기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말했듯 오징어는 바닷속을 빠르게 헤엄칩니다. 즉, 좀 더 활발하게 보이고 그래서 괴수로 써먹을 여지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이미 현실에 대왕오징어라는 괴수가 있습니다. 대왕오징어는 현실의 크라켄이죠. 그래서 오징어가 거대 두족류 괴수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떤 창작가들은 문어의 다리가 더 길기 때문에 문어가 더 좋은 괴수라고 생각할지 모르죠. 정답은 없을 겁니다. 창작가들의 상상력에 달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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