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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과 <더 디비전>은 똑같은 미스터리가 아니다 본문

SF & 판타지/장르 정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과 <더 디비전>은 똑같은 미스터리가 아니다

OneTiger 2019. 4. 16. 20:03

"장르 소설 또한 그러하다. 장르 소설의 전설이라고 불리는 작가들을 보자. 스티븐 킹, 톰 클랜시, 애거사 크리스티, 코난 도일, 미야베 미유키? 모두 미스터리 장르로 분류할 만한 작가들이다. 물론 로맨스 소설 작가들 중에서도 대가들이 많지만, 지명도나 판매에 있어서 미스터리 장르에 미치지 못한다."



창작 서적 <도전! 웹소설 쓰기>에서 미스터리 소설을 소개할 때, 이재익 작가는 위와 같이 말했습니다. 제목처럼 <도전! 웹소설 쓰기>는 웹소설을 쓰는 방법들을 알려줍니다. 이 책이 상정하는 독자들은 초보 웹소설 작가들과 웹소설 작가 지망생들인 것 같습니다. <도전! 웹소설 쓰기>에서 여러 선배 웹소설 작가들은 어떻게 자신들이 웹소설들을 쓰기 시작했고 어떻게 연재하고 인기를 끌 수 있는지 차근차근 설명합니다. 작가들이 개인적인 경험담들을 솔직하고 자세하게 늘어놓기 때문에 초보 작가들과 작가 지망생들에게 이 책은 아주 커다란 도움이 될 겁니다.


문학을 비평하는 시각은 별로 깊지 않으나, 이런 깊이 대신 이 책에는 쉽고 생생한 설명들이 있어요. 만약 초보 작가들과 작가 지망생들이 웹소설에 익숙하지 않다면, 그들에게 이 책은 좋은 첫걸음이 될 겁니다. 이런 첫걸음으로 시작한 이후, 초보 작가들과 작가 지망생들은 좀 더 깊이 있는 창작 서적들과 비평 서적들로 나갈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예전에 두어 번 게시글이 이야기한 것처럼, <도전! 웹소설 쓰기>에는 많은 오류들이 있습니다. 특히, 작가들은 장르 소설에 너무 무지합니다. 작가들은 그런 무지를 아무렇지 않게 드러냅니다. 장르를 설명할 때, 작가들에게는 조심성이 별로 없어요.



미스터리 소설을 소개할 때, 이재익 작가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장르 소설'을 설명하기 위해 이재익 작가는 오직 미스터리 작가들만을 늘어놓았습니다. 스티븐 킹, 톰 클랜시, 애거사 크리스티, 코난 도일, 미야베 미유키. 이런 작가들을 늘어놓은 이후 이재익 작가는 그들이 '장르 작가'이고 동시에 '미스터리 작가'라고 지칭합니다. 이런 지칭이 옳은가요? 스티븐 킹은 단순한 미스터리 작가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여러 유명한 소설들은 SF 장르나 공포 장르에 가깝습니다. 공포 소설과 미스터리 소설이 똑같이 의문스러운 사건들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양쪽은 다릅니다.


스티븐 킹 역시 추리 소설들을 썼으나, 그렇다고 해도 스티븐 킹과 애거사 크리스티는 한 울타리 안에 들어가지 않을 겁니다. 애거사 크리스티는 흡혈귀가 마을 하나를 초토화시키거나 전염병이 전세계를 싹쓸이하거나 잘못된 과학 실험이 차원 관문을 열고 외계 괴물들을 부르는 소설들을 쓰지 않았어요. 어쩌면 크리스티는 그런 소설들을 썼을지 모르나, 독자들은 애거사 크리스티를 SF 작가나 공포 작가라고 인식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스티븐 킹과 애거사 크리스티가 다름에도, 이재익 작가는 두 작가를 한 울타리에 넣고 미스터리 작가라고 분류했습니다. 이건 엉뚱한 분류에요. 이런 관점에서 수많은 작가들은 미스터리 작가가 될 수 있습니다. <쿼런틴>이 미스터리 소설인가요?



소설 <쿼런틴>에서 주인공은 하드보일드 탐정입니다. 다른 숱한 하드보일드 탐정들이 그러는 것처럼, 소설 주인공은 전직 경찰이고, 아픈 사건을 겪었고, 심각한 트라우마를 드러냅니다. <쿼런틴>은 미래 시대를 이야기하나, 동시에 이 소설은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쿼런틴>을 데실 헤밋이나 데니스 루헤인이나 로렌스 블록과 비교하지 않을 겁니다. 기본적으로 <쿼런틴>이 하드 SF 소설이기 때문입니다. 하드보일드 탐정이 나온다고 해도, <쿼런틴>의 정수는 비열한 뒷골목이 아니라 우주를 전복하는 짜릿함입니다. 하드보일드 탐정은 그런 정수로 나가기 위한 매개체이고 안내인이고 발판입니다.


하드보일드 탐정 덕분에 독자들은 <쿼런틴>에 훨씬 몰입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해도 <쿼런틴>은 로렌스 블록과 똑같은 울타리에 들어가지 못할 겁니다. 데니스 루헤인 역시 하드 SF 울타리에 들어가고 싶어하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톰 클랜시? 톰 클랜시가 그저 미스터리 작가에 불과한가요? 그건 아니에요. 톰 클랜시는 밀리터리 테크노 스릴러 작가입니다. 테크로 스릴러에는 여러 작가들이 있어요. 톰 클랜시와 존 그리샴과 로빈 쿡은 똑같이 테크노 스릴러 작가들이고 미스터리 작가들입니다. 하지만 톰 클랜시와 존 그리샴과 로빈 쿡이 똑같이 미스터리를 중시하고 테크노 스릴러를 추구한다고 해도, 톰 클랜시와 존 그리샴과 로빈 쿡은 다릅니다.



세 작가들이 똑같이 테크노 스릴러를 쓰고 미스터리를 쓴다고 해도, 톰 클랜시는 군사 분야, 존 그리샴은 법정 분야, 로빈 쿡은 의료 분야를 맡았습니다. 종종 로빈 쿡은 SF 설정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댄 브라운 역시 테크노 스릴러 작가이고 동시에 미스터리 작가입니다. 하지만 댄 브라운이 애거사 크리스티와 똑같은 미스터리 작가인가요? 애거사 크리스티 독자들은 댄 브라운이 그저 상업적인 작가에 불과하다고 불평할지 모릅니다. 애거사 크리스티 독자들이 불평하지 않는다고 해도, 평론가들은 댄 브라운과 애거사 크리스티를 똑같이 분류하지 않을 겁니다.


애거사 크리스티는 인류가 진화하거나 멸망하는 이야기를 쓰지 않았어요. 그런 분야는 크리스티의 주된 특기가 아니었습니다. 애거사 크리스티라는 이름을 들을 때, 숱한 독자들은 미스 마플과 콧수염쟁이 포와로를 머릿속에 떠올릴 겁니다. 하지만 이재익 작가는 애거사 크리스티와 톰 클랜시가 똑같은 미스터리 작가라고 분류했어요. 게다가 장르 소설의 대가로서 톰 클랜시가 나와야 한다면, 마이클 크라이튼 역시 빠지지 못할 겁니다. 사실 대중적인 인기 작가로서 톰 클랜시보다 마이클 크라이튼은 훨씬 유명할 겁니다. 마이클 크라이튼 역시 미스터리를 즐깁니다. 동시에 마이클 크라이튼은 SF 울타리에 들어가요.



골수 SF 독자들은 마이클 크라이튼을 SF 울타리에서 빼고 싶어할지 모르죠. 예전에 웹진 alt.SF 역시 마이클 크라이튼이 정말 SF 작가인지 따진 적이 있어요. 하지만 골수 SF 독자들이 왈가왈부한다고 해도, <쥬라기 공원>이 SF 울타리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겁니다. 비록 <쥬라기 공원>은 좋은 SF 소설이 아닐지 모르나, 분명히 이 소설은 SF 울타리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톰 클랜시를 거론했음에도 이재익 작가는 마이클 크라이튼을 빼먹었어요. 마이클 크라이튼보다 톰 클랜시가 훨씬 유명하고 대중적이고 많이 흥행하나요?


글쎄요, 비록 그렇다고 해도 톰 클랜시처럼 마이클 크라이튼은 유명한 미스터리 작가입니다. 그리고 마이클 크라이튼은 단순한 미스터리 작가가 아니라 SF 작가에 아주 가까워요. 따라서 이재익 작가가 선정한 '장르 소설의 대가들'은 단순히 미스터리 작가가 아닙니다. 어떤 소설이 미스터리한 사건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그 소설은 무조건 미스터리가 되지 않습니다. 소설 <별의 계승자>는 아주 미스터리한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세상에, 외계에서 인간의 흔적이 나타났습니다! 게다가 인류가 아직 진화하기 전에! 이건 엄청나게 미스터리한 사건이에요. 전대미문의 사건을 풀기 위해 전문가들은 달려듭니다.



독자들이 '미스터리함'을 따진다면, 독자들은 숱한 추리 소설들과 범죄 소설들과 느와르 소설들과 탐정 소설들보다 <별의 계승자>가 훨씬 '미스터리하다'고 이야기해야 할 겁니다. 조직 폭력배? 마약 밀수? 뒷골목 패싸움? 치정과 불륜? 업계 재벌의 스캔들? 고작 그것들이 '미스터리'합니까? 외계에서 인류의 흔적이 나타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약 패거리들의 싸움이나 재벌의 불륜이 미스터리가 되나요? 로버트 소여는 미스터리와 사이언스 픽션 사이에 커다란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움베르토 에코 역시 과학자와 탐정이 비슷한 과학적인 방법론에 의지한다고 말했습니다.


뭐, 이재익 작가는 <별의 계승자>가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말할 겁니다. 이 소설에 전대미문의 '미스터리'가 있기 때문에. 그래서 <별의 계승자>는 하드 SF 소설이 아니라 미스터리 소설이 됩니다. 이재익 작가는 <별의 계승자>가 하드 SF 소설보다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말할 겁니다. 이렇게 이재익 작가는 수많은 소설들을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분류할 수 있을 겁니다. <별의 계승자> 역시 SF 울타리에서 뛰쳐나오고 미스터리 소설이 되어야 해요. 하지만 이건 오류일 겁니다. <별의 계승자>에서 중요한 것은 미스터리가 아닙니다. 마이클 크라이튼에게서 중요한 것은 미스터리가 아닙니다. 스티븐 킹에게서 중요한 것은 미스터리가 아니에요.



마이클 크라이튼과 제임스 호건과 스티븐 킹에게 미스터리가 중요하다고 해도, 이런 미스터리들은 애거사 크리스티가 쓰는 미스터리와 다릅니다. 온갖 SF, 공포, 탐정 소설들에는 미스터리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이야기하기 위한 방법들은 다릅니다. 독자들이 이것들을 똑같이 미스터리라고 간주한다면, 문학 평론가들에게는 구태여 장르들을 분류하기 위한 이유가 없을 겁니다. 이재익 작가는 로맨스 소설을 무시했으나, 사실 로맨스 소설에도 미스터리가 있어요. 소설 <너에게 닿는 거리 17년>에는 '시공간을 뛰어넘는 미스터리'가 있어요. <너에게 닿는 거리 17년> 역시 아주 거창한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게다가 왜 우리가 오직 소설들만 이야기해야 하나요? 밀리터리 매니아들은 소설 <레인보우 식스>를 좋아하고 동시에 영화 <붉은 10월>과 비디오 게임 <더 디비전>을 좋아합니다. 만약 애거사 크리스티와 톰 클랜시가 똑같이 미스터리 작가라면, 애거사 크리스티 독자들이 <더 디비전>을 좋아하나요? 아니면 밀리터리 매니아들이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좋아하나요? 하지만 아무리 케네스 브래너가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호화롭게 만들었다고 해도, 밀리터리 매니아들은 이걸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밀리터리 매니아들은 애거사 크리스티와 미스 마플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겁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과 <더 디비전>이 똑같이 미스터리를 이야기한다고 해도, 두 미스터리는 다릅니다. 미스 마플은 어떻게 비행 공격 무인기가 TAC-50 지정 사수 소총과 연동하는지 따지지 않을 테고, 밀리터리 매니아들은 왜 마스 마플이 안락 의자 탐정인지 따지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재익 작가는 이것이 모두 똑같다고 말해요. 이재익 작가는 자신이 등단 작가이고 업계에서 아주 잘 나가는 작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재익 작가가 등단 작가이고 동시에 잘 나가는 작가라고 해도, 결국 이재익 작가는 장르 소설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적어도 이재익 작가는 테크노 스릴러와 사이언스 픽션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제대로 알지 못함에도, 이재익 작가는 조심성 없이 함부로 장르를 분류하고 재단합니다. 비단 이것만 아니라 <도전! 웹소설 쓰기>에는 오류들이 너무 많습니다. 모든 인간은 실수합니다. 실수는 죄악이 아니에요. 여기 <SF 생태주의>에도 숱한 실수들과 오류들이 있습니다. 여기 <SF 생태주의>는 오타들을 양산하는 오타 양산 공장입니다. 하지만 <도전! 웹소설 쓰기>는 너무 거침없이 실수들을 들이댑니다. SF 소설에 무지한 국내 상황에서 SF 소설에게 이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거에요. 아니, 오히려 이건 피해를 끼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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