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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블록후드>의 생태 공동체는 사이언스 픽션인가 본문

SF & 판타지/장르 정의

<블록후드>의 생태 공동체는 사이언스 픽션인가

OneTiger 2019. 3. 25. 17:58

[이런 풍경은 전형적인 사이언스 픽션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건 급진적인 사이언스 픽션인지 모릅니다.]



"게임 <블록후드>는 정말 멋지고 미래적인 도시를 보여준다." 이렇게 인터넷 게임 잡지 <코타쿠>는 게임 <블록후드>를 평가했습니다. 여러 게임 플레이어들은 이런 평가에 동의할 겁니다. <블록후드>가 보여주는 도시 풍경은 정말 환상적입니다. 특히, 건물들이 태양열 전지들과 풍력 발전기들과 여러 나무들과 야생 동물들을 골고루 갖춘다면, 이런 풍경은 훨씬 환상적이겠죠. 생태 공동체를 강조하는 게임으로서 <블록후드>는 이색적인 삼림 건물을 선사합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건물에 나무들을 심을 수 있습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건물에 나무들을 심는다면, 그것들은 숲이 될 겁니다.


동물들에게 숲은 좋은 서식지가 되겠죠. 다양한 야생 동물들은 서로 다른 자연 환경들을 선호합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다양한 숲들을 조성한다면, 건물은 노아의 방주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건물에서 주민들이 흑표범과 함께 살아가는 풍경은 다소 비현실적이나, 삼림 건물 그 자체는 현실적이고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죠. 게다가 건물들은 태양열 전지들과 풍력 발전기들을 이용해 스스로 전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구태여 석유를 시추하지 않는다고 해도, 건물들은 친환경적으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 친환경 설계는 싱그러운 삼림 건물들과 잘 어울립니다.



하지만 게임 잡지 <코타쿠>가 평가한 것처럼, <블록후드>가 보여주는 삼림 건물이 정말 '미래적'인가요? <블록후드>의 삼림 건물들이 미래적일 수 있나요? 만약 삼림 건물들이 미래적이라면, 그건 <블록후드>가 SF 게임이라는는 뜻일 겁니다. <블록후드>가 SF 게임이 될 수 있나요? 스팀 플랫폼의 <블록후드> 판매 페이지에는 여러 태그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이언스 픽션 태그는 없습니다. 사실 <블록후드>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전형적인 SF 게임이 아닙니다. 스팀 플랫폼에서 사이언스 픽션 태그를 검색한다면, 게임 플레이어는 다음과 같은 게임들을 구경할 겁니다.


<노 맨스 스카이>, <스텔라리스>, <폴아웃>, <엘리트>, <엑스컴>, <쥬라기 월드 에볼루션>, <서브노티카>, <케발 스페이스 프로그램>, <배틀테크>, 기타 등등. 이런 게임들은 전형적인 SF 게임들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것들이 SF 게임이라고 생각하죠. 우주선, 외계인, 인공 지능과 로봇, 거대 괴수, 보행 병기. 게임에 이런 것들이 나오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그 게임이 SF 장르가 아니라고 여길 겁니다. <블록후드>에 이런 것들이 나올까요? 그건 아닙니다. <블록후드>에는 우주선과 외계인과 인공 지능과 로봇과 거대 괴수와 보행 병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이 게임에는 태양열 전지들과 (사슴이나 늑대나 멧돼지나 흑표범을 비롯해) 야생 동물들과 온갖 나무들과 자치 공동체 합의가 있습니다.



태양열 전지들과 야생 동물들과 온갖 나무들과 자치 공동체는 별로 SF 같지 않습니다. 아무도 이런 것들을 SF 장르라고 생각하지 않겠죠. 설사 <블록후드>가 환상적인 삼림 건물을 보여준다고 해도, 사람들은 삼림 건물을 우주선이나 외계인이나 인공 지능과 비슷하게 간주하지 않을 겁니다. 우주선과 외계인과 인공 지능은 SF 울타리 안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으나, 삼림 건물은 그렇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정말 삼림 건물은 SF 소재가 되지 못하나요? SF 장르가 뭘까요. 우리가 무엇을 SF 장르라고 부를까요. 왜 SF 장르는 SF 장르가 되나요. 어떤 작가가 말한 것처럼, 작가가 뭔가를 SF 장르라고 주장한다면, 그게 무조건 SF 장르가 될까요.


로저 젤라즈니가 <프로스트와 베타>가 SF 소설이라고 우긴다면, <프로스트와 베타>가 SF 소설이 되나요? 구태여 로저 젤라즈니가 우기지 않는다고 해도, 많은 독자들은 <프로스트와 베타>가 SF 소설이라고 간주할 겁니다. 반면, 로버트 홀드스톡이 <미사고의 숲>이 SF 소설이라고 우긴다면, 모든 SF 독자가 아무 이의 없이 동의할까요? 어떤 독자들은 코맥 매카시가 쓴 <로드>가 SF 소설이 아니라 주류 문학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우주선과 외계인과 인공 지능과 거대 괴수가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SF 독자들에게 <로드>는 그저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불과합니다. SF 세상에는 숱한 포스트 아포칼립스들이 있고, <로드>는 그저 그것들 중에서 하나일 뿐입니다.



올더스 헉슬리가 쓴 <멋진 신세계>가 주류 문학일까요, SF 장르일까요? SF 소설에 경기를 일으키는 독자들 역시 <멋진 신세계>를 좋아할 겁니다. 사실 <멋진 신세계>는 바이오펑크 소설입니다. 분명히 <멋진 신세계>는 SF 소설이죠. 하지만 SF 소설을 싫어하는 독자들 역시 <멋진 신세계>를 인정합니다. 여러 문학 평론가들이 <멋진 신세계>를 주류 문학으로 인정하기 때문이죠. 이렇게 사람들은 SF 장르가 무엇인지 헛갈립니다. 이런 사람들은 SF 장르가 그저 우주선과 외계인과 인공 지능과 거대 괴수에 불과하다고 간주하고 <멋진 신세계>와 <로드>가 SF 소설이 아니라고 우깁니다. 하지만 SF 장르는 그저 우주선과 외계인과 인공 지능과 거대 괴수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에드워드 벨라미가 쓴 <뒤돌아보며>에는 우주선과 외계인과 인공 지능과 거대 괴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에드워드 벨라미는 이 소설이 사이언스 픽션(사이언티픽 로망스)이라고 말했습니다. 흔히 SF 평론가들은 이 소설이 미국 최초의 SF 소설이라고 말합니다. <뒤돌아보며>처럼, 여전히 수많은 SF 소설들은 우주선과 외계인과 인공 지능과 거대 괴수 같은 자연 과학적인 상상이 아니라 사회 과학적인 상상에 치중합니다. 자연 과학적인 상상과 하드 SF 장르는 SF 장르를 뒷받침하는 핵심이나, SF 장르는 그저 자연 과학적인 상상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SF 장르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SF 장르는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SF 장르는 자연 과학적인 상상력과 사회 과학적인 상상력을 동원하고 세상이 바뀐다고 말합니다. 우주, 자연, 문명은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우주, 자연, 문명은 바뀝니다. 소설,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연극, 게임이 우주와 자연과 문명의 역사를 고찰하고 변화를 예상할 때, 이런 창작물들이 시대적인 격차에 주목할 때, 그건 SF 장르가 됩니다. 소설 <로드>는 어떻게 자연과 문명이 바뀌는지 이야기합니다. 소설 속에서 변화는 암울한 멸망이고, 그래서 <로드>는 SF 소설,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이 됩니다. 소설 <멋진 신세계>는 유전 공학 기술이 인류 사회를 비극적으로 바꿀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멋진 신세계>는 SF 소설, 바이오펑크 소설이 됩니다. <프로스트와 베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미사고의 숲>은 좀 더 복잡한 논의에 들어갑니다. 이 소설은 전형적인 사이언스 픽션보다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미사고의 숲>이 자연 과학적인 상상력과 사회 과학적인 상상력을 떠나고 신화와 전설에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SF 팬들은 SF 장르에 전반적으로 무슨 요소들이 있는지 알 수 있겠죠. 이런 관점에서 <블록후드>가 SF 장르가 될 수 있을까요? <블록후드>가 자연 과학적인 상상력과 사회 과학적인 상상력을 동원하고 세상이 바뀐다고 말하고 시대적인 격차에 주목하나요?



<블록후드>는 인디 게임이고 많은 것들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블록후드>는 자연과 문명을 거시적으로 조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블록후드>는 또 다른 사회를 꿈꿉니다. 그건 생태 공동체입니다. 주민들은 서로 합의하고,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하고, 숲을 늘리고, 야생 동물들과 어울립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여기에 침범하지 못합니다. 사실 <블록후드> 스토리 모드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망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산업 자본주의는 무분별하게 개발하고 팽창합니다. 자본주의 경제는 자연 환경을 심각하게 파괴합니다. 모든 것이 무너질 때, 자본주의 역시 무너집니다.


자본주의는 영원불멸하고 전지전능한 신이 아닙니다. 자본주의는 그저 착취적이고 폭력적인 경제 현상에 불과합니다. 비록 <블록후드>는 자본주의를 자세히 분석하지 않으나, 본능적으로 자본주의가 옳지 않다고 직감합니다. 그래서 스토리 모드에서 이 게임은 자본주의가 망한다고 이야기했겠죠. 자본주의는 망합니다. 그리고 주민들은 또 다른 사회를 꾸릴 수 있습니다. 그건 생태 공동체가 될 겁니다. 따라서 <블록후드>는 '전복과 새로운 시작'을 이야기합니다. 숱한 SF 소설들처럼, <블록후드>는 세상이 바뀐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블록후드>는 얼마든지 SF 장르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시시한 테크노 스릴러 소설보다 <블록후드>는 훨씬 급진적인 SF 게임인지 모릅니다. 테크노 스릴러 소설들은 세상이 바뀐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시시한 테크노 스릴러 소설들은 지배적인 관념(자본주의 체계)에 도전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댄 브라운이 엄청난 규모의 사건을 쓴다고 해도, 그건 지배적인 관념에 절대 도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시한) 소설들과 달리, <블록후드>는 자본주의가 잘못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전복적인 주장은 SF 장르가 갖추어야 하는 필수 요소일 겁니다.


무엇보다 삼림 건물은 정말 미래적인 요소입니다. 아직 인류 문명은 삼림 도시를 실현하지 못했습니다. 삼림 도시는 아직 실험적인 단계입니다. <블록후드>는 삼림 건물들을 선사하고 삼림 도시를 보여줍니다. 당연히 <블록후드>는 SF 게임이 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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