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에코스피어 비극과 생체 우주선의 규모 본문
[규모가 부족한 생태계는 이런 게임과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은 계속 개입하고 복원해야 합니다.]
이른바 '에코스피어'라는 상품이 있습니다. 에코스피어는 폐쇄 어항을 가리킵니다. 동시에 에코스피어는 밀폐 해양 동물 테라리움이 될 수 있죠. 에코스피어 안에는 작은 새우들과 해조들, 박테리아들이 있습니다. 어항이 밀폐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새우들에게 먹이들을 주거나 물을 갈지 못합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어항에서 동물들은 오래 살지 못합니다. 동물들은 굶주거리거나 병에 걸리거나 숨을 쉬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계속 먹이를 주고, 어항을 청소하고, 물을 갈아야 합니다.
어항 관리는 꽤나 번거로운 작업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진짜 수족관보다 컴퓨터 스크린 보호기 속의 물고기들이 훨씬 낫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반면, 에코스피어는 사람들의 손길을 바라지 않습니다. 작고 닫힌 어항 속에서 새우들과 해조들과 박테리아들은 폐쇄 생태계를 순환합니다. 빛만 있다면, 에코스피어는 어떻게 폐쇄 생태계가 순환하는지 보여줄 겁니다. 빛은 해조들과 박테리아들에게 에너지 원천을 공급합니다. 새우들은 해조들을 먹습니다. 새우들은 호흡하고 배설합니다. 호흡 작용과 배설물들은 다시 해조들과 박테리아들을 먹입니다. 이건 순환 체계입니다.
에코스피어 상품들은 폐쇄 순환 체계가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관점에서 이건 식물 테라리움과 비슷합니다. 테라리움에는 밀폐 형태와 개방 형태가 있습니다. 밀폐 테라리움은 폐쇄 생태계입니다. 작고 닫힌 어항 안에서 굵은 모래들, 배양토, 식물은 폐쇄 생태계를 이룹니다. 어항 뚜껑을 닫기 전에 사람이 충분히 물을 뿌린다면, 오직 빛만으로 밀폐 테라리움은 계속 생태계를 순환할 수 있습니다. 밀폐 테라리움 안에서 식물은 햇빛을 이용해 광합성합니다. 광합성하는 동안 식물은 산소를 내뿜고 이산화탄소를 받아들입니다. 야간에는 햇빛이 없고, 따라서 식물은 산소를 받아들이고 이산화탄소를 내뿜습니다.
어항 내부 벽면에는 물기가 생기고, 물기가 바닥으로 흐를 때, 식물은 뿌리를 이용해 수분을 흡수합니다. 테라리움 상품들 역시 작은 폐쇄 생태계가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에코스피어나 테라리움이 좋은 생태학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뜻 이런 주장은 옳은 것 같습니다. 에코스피어나 테라리움은 꽤나 아기자기하고 예쁩니다. 동그랗고 투명한 유리 어항 속의 작은 새우들과 작은 나뭇가지들은 귀엽습니다. 실내 장식으로서 테라리움은 많은 인기들을 독차지합니다. 테라리움은 아주 잘 나가는 장식품입니다. 미적인 측면과 기능적인 측면에서 에코스피어는 좋은 장식품이고 동시에 생태학 모델이 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반론들이 있습니다. 반론들은 사실 에코스피어가 폐쇄 생태계가 아니라고 반박합니다. 에코스피어는 그저 천천히 죽어가는 생태계에 불과합니다. 에코스피어가 천천히 죽어가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저 에코스피어가 지속 가능하다고 착각할 뿐입니다. 설사 새우들이 번식하고 훨씬 오랜 동안 살아남는다고 해도, 결국 이건 정상적인 서식과 번식이 아닙니다. 에코스피어보다 테라리움은 훨씬 윤리적일지 모릅니다. 식물들은 고통을 느끼지 않습니다. 적어도 동물과 달리, 식물은 고통을 느끼지 않습니다. 나뭇가지나 꽃송이를 꺾기 위해 사람들은 마취제를 주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취제 없이 동물들이 수술을 받는다면, 동물들은 커다란 고통을 받을 겁니다. 설사 밀폐 테라리움 속에서 천천히 식물이 죽어간다고 해도, 거기에는 (우리 인간이 공감할 수 있는) 고통이 없을 겁니다. 반면, 에코스피어 속에서 고통스럽게 새우들은 죽어갈지 모릅니다. 이건 폐쇄 생태계가 아니라 감옥이고 고문실일지 모릅니다. 이건 고문 생태계일지 모릅니다. 고문과 생태계는 서로 어울리는 단어가 아닙니다. 생태계는 살아있고 꿈틀거리고 활기가 넘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에코스피어가 고문 생태계라면, 이건 끔찍한 동물 학대가 되겠죠.
SF 설정은 이런 에코스피어를 훨씬 거시적인 소재에 적용할 수 있을 겁니다. SF 세상에서 인공 폐쇄 생태계는 좋은 소재입니다. 이미 우주 사업 전문가들은 인공 폐쇄 생태계를 연구하는 중입니다. 미래 인류는 달이나 화성을 개척할지 모릅니다. 달이나 화성에서 사람들은 먹고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지구는 식량들을 지원하겠으나, 화성 개척 사람들은 자급자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화성에서 사람들이 농사를 지어야 한다면, 그건 인공 폐쇄 생태계가 될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돔을 짓고, 돔 안에서 작물들은 자라야 할지 모릅니다.
물론 화성은 행성입니다. 비록 화성이 불모지라고 해도, 화성은 드넓은 영역을 자랑합니다. 게다가 지구는 계속 이것저것 지원할 겁니다. 어쩌면 화성 개척 주거지에게 인공 폐쇄 생태계는 필요하지 않을지 모르죠. 그렇다고 해도 숱한 SF 소설들은 미래 인류가 우주와 외계를 탐험하고 개척한다고 말합니다. 우주와 외계를 탐험하고 개척할 때, 먹고 살기 위해 미래 인류에게는 인공 폐쇄 생태계가 필요할지 모릅니다. 식량 이외에 산소나 생체 연료 역시 중요합니다. 장거리 우주선은 녹색 정원을 품을 수 있을 겁니다. 녹색 정원은 산소를 공급하고, 녹색 정원은 우주선 속의 인공 폐쇄 생태계가 될 수 있겠죠.
외계 행성 농장에서 태양열 발전기나 풍력 발전기나 지력 발전기를 이용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생체 연료 발전기를 이용하고 싶어할 수 있습니다. 화석 연료 발전기나 핵 발전기가 해답이 되지 못한다면, 생체 연료 발전기는 마지막 대안이 되겠죠. 사람들이 오직 생체 연료 발전기만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 존재할까요? 설사 그런 상황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SF 작가들에게 이건 재미있는 물음이 될 겁니다. 당연히 생체 연료 발전기는 생체 연료를 먹어야 하고, 생체 연료를 생산하기 위해 사람들은 생태계를 조성해야 할 겁니다.
숲이 없다면, 생체 발전기는 나무들을 태우지 못할 겁니다. 척박한 외계 행성에서 생태계를 조성하고 싶다면, 사람들은 인공 폐쇄 생태계를 연구할 수 있겠죠. 생체 우주선 역시 이런 상상력에 속할 수 있습니다. 장거리 세대 우주선 안에는 생태계가 있어야 합니다. 냉동 수면 기술이 없다면, 우주선 속에서 사람들은 먹고 살아야 합니다. 저장 식량이 충분하지 않다면, 사람들은 직접 작물들과 가축들을 키워야 합니다. 이게 가능할까요? 적어도 몇 십 년 이상 세대 우주선은 항해할 겁니다. 몇 십 년 동안 닫힌 공간 속에서 사람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요?
SF 작가들이 이런 상상력들을 고민할 때, 걸림돌은 규모입니다. 아무리 폐쇄 생태계가 정교하다고 해도, 그건 충분하지 않습니다. 자연 생태계에게는 비단 정교함만 아니라 규모가 필요합니다. 영역이 어느 정도 넓을 때, 자연 생태계는 생물 다양성을 퍼뜨릴 수 있습니다. 생물 다양성이 퍼질 때, 자연 생태계는 건강하게 순환할 수 있죠. 무슨 생태계에 얼마나 커다란 규모가 필요한지 그건 확실하지 않습니다. 생태 전문가들은 그걸 알겠죠. 이미 생태 전문가들은 비슷한 논문들을 숱하게 썼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정확하고 자세한 수치와 상관없이, 분명히 규모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반면, 에코스피어는 규모를 만족하지 못합니다. 사실 에코스피어보다 훨씬 일반적인 수족관 역시 규모를 만족하지 못합니다. 에코스피어가 그런 것처럼, 수족관은 스스로 순환하는 체계가 아닙니다. 수족관은 생태계 시뮬레이션 게임과 비슷합니다. 인간이 끊임없이 개입하고 관리하고 복원하지 않는다면, 수족관에서 죽은 물고기들은 둥둥 떠다닐 겁니다. 수족관은 <어스텅> 같은 생태계 시뮬레이션 게임과 비슷합니다. 양쪽 모두 인간의 손길을 요구합니다. 수족관과 <어스텅>에서 규모는 충분하지 않고, 따라서 무질서는 계속 확장할 겁니다.
수족관 생태계와 게임 속 생태계는 이런 무질서를 스스로 붙잡고 복원하지 못합니다. 사실 생태계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자연 생태계가 스스로 북치고 장구친다면, 게임 플레이어는 그게 재미가 없다고 생각할 겁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개입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게임 플레이어는 자신이 능동적으로 참가할 수 있는 세계를 원할 겁니다. 생태계 게임에 규모가 부족하기 때문에 게임 플레이어는 능동적으로 참가할 수 있습니다. 생태계 순환에는 '규모'가 필요합니다. 에코스피어와 수족관 생태계와 <어스텅>처럼, 생태학 SF 설정들 중에서 세대 우주선은 규모 문제를 가장 극심하게 겪을지 모릅니다. 깊고 깊은 우주 속에서 세대 우주선이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돌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규모' 때문에 장거리 세대 우주선은 생체 우주선이 되어야 하는지 모릅니다. 규모가 넓다면, 내부 생태계는 무질서하게 확장하는 엔트로피를 훨씬 제대로 붙잡을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우주선의 일부 장비들이나 부분들이 생체 조직들이라면, 내부 생태계는 생체 조직들과 상호 작용할 수 있을 겁니다. 생체 조직들이 규모를 넓히기 때문에 내부 생태계는 훨씬 원활하게 순환할 수 있을 겁니다. 생체 우주선은 천천히 굶어죽는 생태계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생태계가 될지 모르죠. 물론 어떻게 생체 우주선에서 내부 생태계와 생체 조직들이 상호 작용하는지 그걸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짧은 게시글은 그걸 설명하지 못합니다. 생체 우주선 논의에는 장편 소설이 어울릴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도 장거리 세대 우주선이 생체 우주선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겠죠.
게다가 이런 생태학 SF 설정은 지구 생태계라는 규모를 회고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무한히 확장하고 싶어합니다. 반면, 지구 생태계 규모는 제한적입니다. 따라서 자본주의 시장 경제와 지구 생태계는 공존하지 못합니다. 자본주의는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거나 지구 생태계에서 자본주의는 사라져야 합니다. 이미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엄청난 자연 생태계를 파괴했습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존재하는 지구 생태계는 에코스피어와 다르지 않을 겁니다. 이건 비극이자 고문이고 죽어가는 생태계입니다. 자본주의와 지구 생태계. 둘 중에서 하나는 사라져야 합니다. 지구 생태계는 사라져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해답은 하나입니다. 자본주의는 사라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