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어떻게 SF 소설들이 특정한 글씨체들을 이용하는가 본문
이재창 작가가 쓴 소설 <기시감>에서 소설 주인공은 석아찬이라는 청년입니다. 석아찬은 일기를 씁니다. 종종 소설 <기시감>은 석아찬이 쓴 일기를 보여줍니다. <기시감>은 일기를 이용해 배경 설정과 상황과 분위기를 알립니다. 일기는 솔직합니다. 인간은 일기에 솔직한 심정을 적습니다. 일기는 1인칭 시점을 이용해 솔직하게 모든 것을 말합니다. <기시감>은 전지적 작가 시점입니다. 전지적 작가 시점은 등장인물들의 심리들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지적 작가 시점은 등장인물들을 내려다봅니다. 이건 다소 권위적입니다.
전지적 작가 시점은 문자 그대로 전지전능합니다. 반면, 일기는 1인칭 시점입니다. 이런 1인칭 시점에는 권위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기가 열심히 배경 설정을 설명하거나 암울한 분위기를 털어놓는다고 해도, 독자는 담담하게 이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일기를 이용해 석아찬이 1인칭 시점으로 자신을 털어놓기 때문에, 독자는 다른 사람들보다 석아찬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어요. 이재창 작가가 이걸 의도했나요? 이재창 작가가 의도적으로 일기들을 집어넣었나요? 비록 이재창 작가가 이걸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일기 덕분에 석아찬과 독자는 솔직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일기는 소설 주인공의 특권이에요.
<기시감>은 일기를 다른 글씨체로 보여줍니다. <기시감>에서 대부분 서술 문장들 및 대사들과 석아찬 일기는 다른 글씨체를 사용합니다. 일기는 다른 글씨체입니다. 일반적인 서술 문장들과 석아찬 일기가 다른 시점을 이용하는 것처럼, 글씨체들 역시 바뀝니다. 일반적인 서술 문장들은 전지적 작가 시점입니다. 대사들 역시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비롯합니다. 반면, 일기는 1인칭 시점입니다. 석아찬은 개인적으로 일기를 적었습니다. 일기는 특별합니다. 그래서 일기는 다른 글씨체입니다. 석아찬이 개인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개인적인 분위기를 풍기기 위해, 일기는 다른 글씨체를 이용합니다.
어쩌면 여기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저 재미 때문에 이재창 작가는 다른 글씨체를 집어넣었는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도 독특한 글씨체 덕분에 석아찬 일기는 다른 서술 문장들 및 대사들과 다릅니다. 이렇게 소설은 글씨체를 이용해 뭔가를 강조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글자들은 시각적이지 않습니다. 글자들은 기호이고 어떤 현상이나 사물이나 대상을 시각적으로 보여주지 못합니다. 글자들은 사회적인 기호입니다. 이건 글자들이 보편적이라는 뜻입니다. 글자들이 보편적이지 않다면, 사람들은 글자들을 이용해 소통하지 못할 겁니다. 물론 이건 글자들이 완벽하게 보편적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언어는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언어는 끊임없이 바뀝니다. 언어는 사회적인 기호이고, 사회는 계속 바뀝니다. 1998년 남한 사회와 2018년 남한 사회는 똑같지 않습니다. 1998년 남한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았고 카톡을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1998년 남한에는 카카오톡이 없었습니다. 1998년 남한에는 카카오톡을 뒷받침하기 위한 스마트폰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2018년 남한 사회에는 스마트폰이 있고 카카오톡이 있습니다. 그래서 영희는 남자 친구 철수에게 "남친, 사랑해. 오늘 밤에도 내 꿈을 꿔~♥"라는 카톡을 보낼 수 있습니다. 1998년 남한 사람들은 이런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언어는 고정적이지 않아요.
언어가 고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언어는 수많은 오해들을 일으킵니다. 언어는 지배적인 관념을 반영합니다. 인류 사회에는 지배 계급이 있습니다. 지배 계급은 인류 사회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지배 계급은 언어에 영향을 미치고, 언어는 지배적인 관념을 반영합니다. 이런 단점들이 있음에도, 언어는 어느 정도 보편적입니다. 무너진 바벨탑 주변에서 사람들은 서로 소통하지 못했으나, 특정한 지역 안에서 사람들은 어느 정도 소통할 수 있습니다. 특정한 지역 안에서 언어는 어느 정도 보편적입니다. 글자들이 보편적이기 때문에, 글자들은 고유한 성질을 묘사하지 못합니다. 글자들은 시각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설은 글씨체를 이용해 시각적인 특징을 보여줄 수 있어요.
"유언장은 X 구역의 현실을 부정하는 것처럼, 생물학자조차 전혀 알아낸 바가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건 소설 <빛의 세계>에 있는 서술 문장입니다. 이 문장은 생물학자를 강조합니다. 일반적으로 서술 문장이 어떤 단어를 강조할 때, 서술 문장은 따옴표('')를 이용합니다. 하지만 이 문장은 따옴표보다 굵은 글씨체를 이용했습니다. 문자 그대로 굵은 글씨체는 훨씬 진하고 굵습니다. 독자는 굵은 글씨체를 시각적으로 주목할 수 있습니다. 따옴표보다 굵은 글씨체는 훨씬 단어를 강조할 수 있습니다. 만약 작가가 특정한 단어를 강조하고 싶다면, 작가는 따옴표보다 다른 글씨체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작가가 밑줄을 긋거나 색깔을 바꾸거나 글씨를 기울이거나 명조체 사이에 고딕체를 집어넣는다면, 독자는 시각적으로 그 단어에 주목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작가가 이런 방법들을 너무 남발한다면, 독자는 이게 식상하다고 느낄 겁니다. "유언장은 X 구역의 현실을 부정하는 것처럼, 생물학자조차 전혀 알아낸 바가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서술 문장에는 굵은 글씨체들이 너무 많습니다. 어떤 독자들은 무엇이 강조인지 이해하지 못할지 모릅니다. 첫째 서술 문장은 생물학자를 강조합니다. 둘째 서술 문장이 무엇을 강조하나요?
20세기 산업 문명에는 기계들이 있습니다. 20세기 산업 문명은 무전기와 전화기와 컴퓨터를 만들었습니다. 무전기와 전화기와 컴퓨터는 20세기 결과물입니다. 그래서 이것들은 좀 더 독특합니다. 소설 작가는 독특하게 컴퓨터 채팅을 묘사하기 원할지 모릅니다. 소설 <바다 밑>에서 아리카와 히로는 독특하게 컴퓨터 채팅을 묘사합니다. 소설 <기시감>과 소설 <빛의 세계>가 그러는 것처럼, 소설 <바다 밑>에서 일반적인 서술 문장들과 대사들은 딱딱한 글씨체가 아닙니다. 수많은 소설들에서 일반적인 서술 문장들과 대사들은 딱딱한 글씨체가 아닙니다. 하지만 <바다 밑>에서 컴퓨터 채팅은 딱딱합니다.
글씨체가 딱딱하다면, 딱딱한 글씨체는 기계적인 느낌을 풍길 겁니다. 이런 기계적인 느낌은 무선 통신이나 컴퓨터 채팅에 잘 어울립니다. 만약 일반적인 서술 문장들과 대사들처럼 <바다 밑>이 컴퓨터 채팅을 획이 있는 부드러운 글씨체로 썼다면, 느낌은 크게 바뀌었을 겁니다. 하지만 컴퓨터 채팅이 다른 글씨체이기 때문에, 이런 글씨체는 사람들이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본다고 강조할 수 있어요. 기계적인 느낌을 풍기기 위해 소설 작가는 글씨체를 바꾸거나 다른 기호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폭스 파이브. 라디오 체크. 라우드 앤 클리어."와 〔폭스 파이브. 라디오 체크. 라우드 앤 클리어.〕는 다른 느낌을 풍깁니다.
이지스: 베트남 전쟁 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사령부를 폭격했으니까요. 발착 장소가 자유로운 CH46이나 CH53으로 피스톤 운송하게 되겠군요. 04/07(일) 18:15
"CH라는 게 뭔가?" 토요오카 현경 본부장의 물음에 아카시는 시 나이트와 슈퍼 스텔리온이라고 대답하려다가 "대형 운송 헬기입니다."하고 정정했다.
SF 소설들과 판타지 소설들에는 비인간 존재들이 있습니다. 비인간 존재들은 특별하게 말합니다. 이런 특별한 발성을 표현하기 위해 소설 작가는 글씨체를 바꿀 수 있습니다. 이영도 작가가 쓴 <퓨쳐 워커>에서 데스 나이트들은 외칩니다. "얼얼어어붙붙은은 마마음음 핏핏빛빛 깃깃발발." 데스 나이트들이 핏빛 깃발을 외칠 때, 이런 발성은 메아리를 울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영도 작가는 특별히 글씨체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이영도 작가는 그저 음절들을 덧붙였을 뿐입니다. 이런 방법 역시 시각적인 측면을 강조합니다. 독자는 두 눈으로 글자들을 읽으나, 청각적인 충격을 느낄 겁니다.
시각적인 기호들은 청각을 자극합니다. "얼얼어어붙붙은은 마마음음 핏핏빛빛 깃깃발발."에서 시각은 청각으로 전환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들은 특별한 글씨체가 아닙니다. 워드 프로그램이 오직 명조체만 지원한다고 해도, 작가는 얼마든지 "얼얼어어붙붙은은 마마음음 핏핏빛빛 깃깃발발."이라고 쓸 수 있습니다. 반면, 소설 <페르디도 거리의 기차역>에서 외계 거미 직조자는 특별한 글씨체를 이용해 말합니다. 이런 글씨체는 낡은 타자기 글씨체 같습니다. 소설 <페르디도 거리의 기차역>에서 인간을 비롯해 유사 인간 종족은 획이 있는 부드러운 글씨체로 말합니다. 심지어 미스터 모틀리나 지옥의 악마 대사 같은 기이한 존재들조차 획이 있는 부드러운 글씨체로 말합니다.
소설 <페르디도 거리의 기차역>에서 거의 유일하게 직조자는 다른 글씨체로 말합니다. 그래서 유사 인간 종족들과 미스터 모틀리와 지옥의 악마 대사보다 직조자는 훨씬 특별한 것 같습니다. 사실 지옥의 악마보다 외계 거미 직조자는 훨씬 대담합니다. 지옥의 악마는 슬레이크 나방을 두려워하나, 직조자는 슬레이크 나방과 직접 싸웁니다. 게다가 슬레이크 나방들이 다굴을 친다고 해도, 직조자는 열심히 그것들과 싸웁니다. 이렇게 SF 소설들과 판타지 소설들이 비인간 존재들을 묘사하기 때문에, SF 소설들과 판타지 소설들에게 특별한 글씨체들은 유용합니다.
주류 문학 역시 특별한 글씨체를 이용할 수 있으나, 주류 문학에는 외계 거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SF 소설들과 판타지 소설들은 특별한 글씨체들을 훨씬 멋지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SF 작가가 워드 프로그램을 이용해 소설을 쓴다면, SF 작가는 워드 프로그램이 무슨 글씨체를 지원하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아무리 SF 작가가 독창적인 방법을 머릿속에 떠올린다고 해도, 워드 프로그램이 특정한 글씨체를 지원하지 않는다면, 독창적인 방법은 도루묵이 될 겁니다. 사실 이 게시글 역시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다행히 티스토리 워드 편집기는 여러 글씨체들을 지원합니다. 만약 티스토리 워드 편집기가 오직 몇몇 글씨체만 지원했다면, 저는 이런 게시글을 쓰지 못했을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