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안드로메다 성운>이 사이언스 픽션을 형성하는 방법 본문
'소설 <안드로메다 성운>으로 가는 길'은 이반 예프레모프가 쓴 해제입니다. 이 해제에서 이반 예프레모프는 어떻게 자신이 <안드로메다 성운>을 구상하고 설정하는지 이야기했습니다. 이반 예프레모프는 SF 소설을 쓰기가 만만하지 않다고 토로합니다. 특히, <안드로메다 성운>처럼 미래 사회와 우주 탐사를 거시적으로 전망하는 소설은 훨씬 고된 작업이 될 겁니다. 생생하게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그리기 위해 작가는 자신을 현실에서 분리해야 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반 예프레모프는 어떤 오두막에 자신을 가두고, 치열하게 글을 써야 했습니다. SF 소설은 비일상적인 요소를 묘사하는 소설이고, 그래서 일상이 <안드로메다 성운>에 끼어들지 못하게 작가는 막아야 했습니다. 만약 사소한 일상이 SF 소설에 끼어든다면, SF 분위기는 깨질지 모릅니다. 이반 예프레모프는 겐리흐 알토프와 발렌티나 쥬라블레바가 쓴 <별들에 대한 발라드>가 부정적인 선례를 남겼다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에서 성단 우주선을 묘사한 장면은 전체적인 분위기를 망칩니다. 소설 주인공이 면도할 때, 가장 가부장적인 방법으로, 고전적인 비누와 솔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반 예프레모프는 인류가 성단 우주선을 만들 수 있다면 면도 방법 역시 달라질 거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예프레모프는 고전적인 면도 방법이 <별들에 대한 발라드>를 망쳤다고 이야기했어요. SF 작가는 스스로 박차를 가하고, 사소한 사항들조차 통제하고, 자신을 머나먼 미래에 맡겨야 할 겁니다. <안드로메다 성운>을 쓸 때, 이반 예프레모프는 자신이 그랬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안드로메다 성운>이 정말 그렇게 일상에서 멀리 벗어나는 소설일까요. 어느 정도 그런 측면이 있으나, 그렇지 않은 측면 역시 있습니다. SF 작가는 미래 사회를 전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걸 위해 SF 작가는 고정 관념을 타파해야 합니다.
하지만 작가 역시 그저 인간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SF 작가가 노력한다고 해도, 현실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그건 불가능할 겁니다. 아무리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SF 작가가 시대를 뛰어넘고 싶다고 해도, 현실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어떤 측면에서 SF 작가는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으나, 어떤 측면에서 SF 작가는 현실을 미래에 투영할 겁니다. 저는 이반 예프레모프 역시 러시아 백인 남자 지식인이라는 한계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안드로메다 성운>은 정말 진보적인 소설이나, 그런 한계를 드러냅니다.
게다가 기술이 언제나 골고루 발전할까요? 어쩌면 기술은 불합리하게 발전할지 모릅니다. 모든 진보는 무조건 비례하지 않습니다. 만약 인류가 성단 우주선을 만들 수 있다고 해도, 면도하는 방법은 발전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성단 우주선 승무원들 역시 구닥다리 전기 면도기를 이용할지 모르죠. 이반 예프레모프는 면도를 언급했으나, 면도는 남자들의 문제입니다. 여자들의 문제는 어떨까요? 생리 같은 것들은? SF 작가들은 미래 면도 같은 문제를 언급하곤 하나, 생리를 별로 묘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비단 남자 SF 작가만 아니라 여자 SF 작가 역시 그런 것 같습니다.
물론 생리는 면도보다 훨씬 민감한 사안입니다. 면도와 달리, 생리는 생식에 관계된 문제이고, 그래서 누군가는 생리가 민망한 소재라고 생각할 겁니다. SF 작가에게 구태여 생리를 이야기할 의무는 없겠죠. 하지만 여자들에게 생리는 정말 중요하고 거치적거리는 문제입니다. 어떤 여자는 생리를 쉽게 해결하나, 어떤 여자에게 생리는 괴로운 문제입니다. 만약 SF 작가가 여자 우주 승무원을 묘사한다면, 생리 문제 역시 짚어야 할 겁니다. 작가가 생리를 너무 선정적으로 이용하는 작태와 작가가 생리를 민망하다고 생각하는 상황 모두 문제가 되겠죠. 가끔 SF 작가들은 여자가 무슨 동물인지 잊는 것 같아요.
하지만 SF 작가 역시 인간이고, 한낱 인간으로서 SF 작가는 이런 부분을 모두 챙기지 못할 겁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핵심 주제일 겁니다. 핵심 주제를 이야기할 때, SF 작가는 현실을 벗어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안드로메다 성운>은 자본주의를 타파하고 인류가 평등하게 우주로 진출하는 과정을 열심히 묘사합니다. 비록 <안드로메다 성운>이 여러 단점들을 드러낸다고 해도, 핵심적인 부분에서 이반 예프레모프는 성공을 거둔 것 같습니다. 만약 인류가 우주로 진출해야 한다면, 지구는 무슨 모습이어야 할까요?
지구는 장거리 우주선을 떠나보내는 발판이 되어야 합니다. 발판이 불안정하다면, 장거리 우주선 역시 불안정하겠죠. 설사 장거리 우주선이 안정적으로 떠날 수 있다고 해도, 발판이 불안하다면, 장거리 우주선에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우리가 서로 평등하게 살아가지 못한다면, 아무리 멀리 장거리 우주선을 띄우다고 해도,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대기업들이 빈민들을 착취하고 생물 다양성을 파괴하는 상황에서 장거리 우주선이 외계 행성들을 발견한다면, 대기업들은 외계 행성들을 착취할 겁니다. 결국 그건 또 다른 대항해 시대이고, 또 다른 식민지 수탈이고, 또 다른 비극이 되겠죠.
<안드로메다 성운>은 그런 상황을 비판하고, 인류가 평등하게 우주선을 띄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러 단점들이 있음에도 <안드로메다 성운>이 감동적인 이유는 그것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함께 성단 우주선을 자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빈민들이 당당하게 성단 우주선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안드로메다 성운>은 감동적일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반 예프레모프는 어지간한 하드 SF 작가들보다 훨씬 독보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