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아틀라스 메크의 표정과 레이븐 메크의 부리 곡선 본문
보드 게임 <배틀테크>는 보행 병기들을 묘사합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보행 병기들과 다른 병기들을 운용하고 전장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이 게임에는 기갑 차량들, 전차들, 헬리콥터들, 항공기들, 우주선들이 있으나, 가장 돋보이는 설정은 보행 병기들일 겁니다. 이것들은 배틀메크라고 불립니다. 배틀메크들은 두 다리로 쿵쿵 걷고, 강물을 건너고, 다리를 건너고, 험한 산을 오르고, 폐허를 누빕니다. 보행 병기를 좋아하는 여러 SF 팬들은 한 번쯤 배틀메크에게 관심을 기울였을 겁니다. 배틀메크는 다른 거대한 인간형 로봇들과 다릅니다.
배틀메크는 로봇보다 차량(vehicle) 분위기를 풍깁니다. 배틀메크들 중에는 인간과 비슷한 인간 형태들이 많습니다. 아틀라스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하지만 인간과 달리, 배틀메크들은 자유롭게 신체를 움직이지 않습니다. 거대한 인간형 로봇들과 달리, 배틀메크들에게 몇몇 관절은 지나친 사치입니다. 뒤로 걷는 동안 인간형 배틀메크들은 허리를 180도 회전하고 로켓들을 날릴 수 있습니다. 어떤 인간형 배틀메크는 팔을 별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팔이 포대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장면들은 (마징가 Z 같은) 일반적인 거대 인간형 로봇들과 다릅니다. 아틀라스는 가장 유명하나, 심지어 아틀라스조차 인간보다 차량에 가깝죠.
게다가 배틀메크들 중에는 비인간 형태들이 많습니다. 팀버 울프와 벌쳐, 우지엘, 쿠거는 대표적인 사례들입니다. 어떤 관점에서 본다고 해도, 벌쳐와 우지엘은 인간 형태와 거리가 멉니다. 어떤 SF 팬들은 아틀라스 같은 인간형 메크보다 벌쳐 같은 비인간 형태 메크를 훨씬 좋아합니다. 인간 형태가 너무 진부하기 때문이겠죠. 마징가 Z부터 에반게리온까지, 인간 형태 로봇은 너무 진부합니다. 반면, 벌쳐는 인간 형태 로봇이 아니라 두 다리가 달린 보행 전차에 가깝습니다. 사실 벌쳐가 현대 주력 전차들과 함께 행군한다고 해도, 그런 모습은 별로 어색하지 않을 겁니다. SF 팬들이 벌쳐 미니어쳐와 현대 주력 전차 미니어쳐들을 함께 전시한다고 해도, 그런 디오라마는 어색하지 않을 겁니다.
아틀라스는 꽤나 많은 인기들을 끕니다. 하지만 어떤 SF 팬들은 아틀라스를 싫어합니다. 설사 아틀라스가 차량 분위기를 풍긴다고 해도, 아틀라스가 마징가 Z와 다르다고 해도, 그들은 아틀라스가 거대 인간형 로봇 분위기를 너무 풍긴다고 생각합니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겠으나, 분명히 아틀라스보다 벌쳐는 현대 밀리터리 분위기에 훨씬 어울립니다. 아틀라스에게 '표정'이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훨씬 심합니다. 종종 병사들은 전차나 항공기에 표정을 그립니다. 그것들은 이른바 샤크 마우스입니다. 공격 헬리콥터와 고속정에게 샤크 마우스는 장식에 가깝습니다. 전투 헬리콥터와 고속정이 인간 형태가 아니기 때문이죠. 하지만 아틀라스는 인간 형태입니다. 이런 아틀라스에게 이상한 표정이 있다면….
인간에게는 두 눈이 있고, 그래서 인간은 시각적인 동물입니다. 인간 형태 로봇을 볼 때, 우리는 로봇에게 인간성을 투영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것 때문에 수많은 거대 로봇들은 인간 형태입니다. 건담 팬들은 왜 건담이 인간 형태인지 여러 이유들을 늘어놓겠으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로망이겠죠.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 형태가 로망이라고 느낍니다. 야생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동물 로봇을 좋아할지 모릅니다. 아무르 호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건담보다 조이드 검치 호랑이가 훨씬 매력적이라고 느낄 겁니다. (게다가 조이드 검치 호랑이는 단순한 동물 로봇이 아닙니다. 조이드 검치 호랑이는 Zi 행성의 자연 생태계에 속하죠.)
하지만 우리 인간이 인간이기 때문에,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인간들과 부대껴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르 호랑이와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동물보다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래서 조이드 검치 호랑이보다 건담은 훨씬 많은 인기들을 끌겠죠. 아틀라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차량 분위기를 풍긴다고 해도, 여러 SF 팬들은 아틀라스가 강철 거인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아틀라스는 인간 형태이고, 아틀라스를 바라보는 동안, 인간은 자신을 아틀라스에게 투영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만약 아틀라스에게 '표정'이 없다면? 아틀라스의 얼굴이 밋밋하거나 거기에 다른 기계 장치들이 있다면? 아틀라스를 바라볼 때, 우리 인간은 표정을 바랄 겁니다. 인간 형태에게 얼굴이 있다면, 얼굴에는 표정이 있어야 합니다.
수많은 아틀라스 미니어쳐들과 그림들에는 표정들이 있습니다. 표정들이 각자 다르다고 해도, 분명히 표정들은 있습니다. 구글링 이미지에서 아틀라스 배틀메크를 검색한다면, 사람들은 숱한 표정들을 구경할 수 있을 겁니다. 표정이 없는 아틀라스는 드뭅니다. 얼굴이 밋밋한 인간은 기이할 겁니다. 그래픽 노블 <왓치맨>에서 로어세크(로르샤흐)는 일부러 이런 특징을 이용합니다. 로어세크에게는 표정이 없습니다. 아니면 로어세크에게는 이상한 표정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볼 때, 사람들은 불안하고 이상하다고 느낄 겁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입니다. 개인으로서 인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개인을 이야기할 때, 인간은 먼저 사회를 고려합니다. 사회가 있기 때문에 개인은 개인이 될 수 있습니다. 사회적인 존재로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야 합니다. '타인은 지옥'이라는 문구처럼 어울림은 쉽지 않으나, 우리는 계속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소통해야 합니다. 표정은 아주 중요한 의사 소통입니다. 어떤 여자가 어떤 남자에게 눈웃음을 지을 때, 그게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왜 여자가 남자에게 눈웃음을 짓겠습니까. 그건 의사 소통입니다. 사회적인 존재로서 인간은 의사 소통해야 하고, 설레고 두근거리는 눈웃음을 비롯해 표정들은 중요한 의사 소통입니다.
아틀라스는 인간 형태이고, 무엇보다 아틀라스에게는 뚜렷한 얼굴이 있습니다. 섀도우 호크 같은 인간형 메크와 달리, 아틀라스에게는 뚜렷한 얼굴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틀라스에게 표정은 필수적입니다. 청순한 아가씨와 달리, 아틀라스에게 살랑거리는 눈웃음은 어색하겠죠. (누군가는 아틀라스의 눈웃음을 좋아할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도 아틀라스에게는 표정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인간 형태를 바라볼 때, 우리가 표정과 의사 소통과 사회적인 관계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건 거의 생존 본능에 가까울지 모릅니다. 사회적인 존재로서 인간에게 사회적인 관계는 생존 본능에 가까울지 모릅니다. 따라서 어떤 철학이나 사상이 개인을 강조하고 사회적인 관계를 부정한다면, 그런 철학이나 사상은 인간을 파괴하겠죠. 안타깝게도 이 세상에는 개인을 강조하는 사상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런 사상은 지배적입니다. 사람들은 개인이 중요하다고 떠듭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조차 사회적인 관계를 떠나지 못합니다. 우리는 무인도가 아닙니다. 수많은 사회적인 관계들 속에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그런 사회적인 관계들이 없다면, 우리는 살아가지 못할 겁니다. 분명히 사회적인 관계들이 존재함에도, 우리는 개인을 외치고 개인이 전부라고 생각하죠. 사회 없이 개인이 살아가지 못함에도, 우리는 개인이 전부라고 착각합니다. 인간이 사회적인 존재가 아니었다면, 풍부한 표정들은 없었을지 모릅니다. 개인적인 동물들 역시 의사 소통합니다. 공작에게는 아름다운 꽁지 깃털이 있죠. 하지만 공작의 꼬리 깃털보다 인간의 표정들은 훨씬 풍부하고 다양합니다. 다양한 사회적인 관계들은 다양한 소통들로 이어집니다. 인간이 사회적인 존재가 아니었다면, 청순한 아가씨의 살랑거리는 눈웃음 역시 없었을지 모릅니다.
이렇게 아틀라스는 인간 형태 메크입니다. 아틀라스와 달리, 배틀메크들 중에서 동물 형태가 있을까요? 조이드 검치 호랑이처럼, 배틀메크가 동물 형태가 될 수 있을까요? 아주 유명한 배틀메크들 중에서 동물 형태는 드뭅니다. 아무리 팀버 울프나 벌쳐나 우지엘이나 쿠거가 비인간 형태 메크들이라고 해도, 그것들은 동물 형태가 아닙니다. 그래서 레이븐 배틀메크는 아주 독특합니다. 이름처럼 레이븐 메크는 조류 부리를 닮았습니다. 특히, 비디오 게임 <멕커맨더>에 나오는 레이븐 모델은 정말 조류 로봇과 닮았습니다. <멕커맨더>에서 레이븐이 뛰어가는 모습은 조류 로봇이 뛰어가는 모습과 닮았습니다. 비디오 게임 <멕워리어> 시리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겉모습처럼 레이븐 배틀메크는 중형 전투 역할이 아닙니다. 레이븐은 정찰 역할이고 전자 정보를 담당합니다. 속도가 꽤나 빠르기 때문에 레이븐은 적진을 교란하거나 둘러볼 수 있죠. 레이븐이 전파를 교란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게임 플레이어들은 레이븐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른 배틀메크들과 함께 돌아다닐 때, 독특한 곡선 부리 때문에 레이븐은 다소 이질적입니다. 배틀메크들은 곡선보다 직선들을 강조합니다. 반면, 레이븐은 곡선을 강조하죠. 누군가는 이런 모습을 싫어할지 모릅니다.
레이븐 메크는 여러 디자인들을 거쳤습니다. <멕커맨더>와 달리, 어떤 레이븐 디자인들은 곡선보다 직선에 가깝습니다. 이런 디자인들에는 구부러진 조류 부리가 별로 없습니다. 동물 분위기는 많이 사라졌죠. <멕워리어 온라인>에 나오는 레이븐은 <멕커맨더>에 나오는 레이븐과 완전히 다르죠. <멕워리어 온라인>에 나오는 레이븐은 별로 동물(조류 로봇) 같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이런 직선적인 레이븐이 훨씬 밀리터리 분위기에 어울린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하지만 안토니 가우디가 말한 것처럼, 자연적인 미학은 곡선입니다. 안토니 가우디가 직선들을 도입했다면, 사람들은 까사 바뜨요나 구엘 공원이 자연적이지 않다고 느꼈겠죠. 레이븐이 곡선을 잃는다면, 누군가는 그게 아쉽다고 느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