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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식수 전쟁>과 <퍼스트 콘택트>의 환경 상상력 본문

SF & 판타지/디스토피아, 아포칼립스

<식수 전쟁>과 <퍼스트 콘택트>의 환경 상상력

OneTiger 2018. 4. 3. 19:21

[거대 괴수와 생태계 변화와 자본주의 비판이 맞아떨어진다면, 그건 정말 멋진 상상력이 될 겁니다.]



새시 로이드가 쓴 <식수 전쟁 2017>은 환경 아포칼립스입니다. 영어 제목은 카본 다이어리이고, 제목처럼 이 소설은 기후 변화를 이야기하죠. 비단 기후 변화만 아니라 자원 고갈이나 질병 역시 중요한 문제이고, 이런 환경 오염은 대대적인 난민이나 억압이나 내전을 부릅니다. 다시 이런 것들은 좌파적인 투쟁으로 이어지고, 사람들은 정부를 갈아엎기 원해요. 기후 변화를 비판하기 위해 새시 로이드는 여러 상상력들을 추가했으나, <식수 전쟁>은 별로 사이언스 픽션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아주 현실적인 소설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기후 변화나 자원 고갈 같은 문제를 체험했고, 그걸 머나먼 미래나 다른 차원이라고 여기지 않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마가렛 앳우드 역시 자신이 SF 소설가가 아니라고 말했겠죠.) 하지만 환경 아포칼립스 세상에는 좀 더 멀리 나가는 상상력들이 있습니다. 파올로 바치갈루피가 쓴 <와인드업 걸>은 개조 생명체들을 보여줍니다. 개조 작물들은 현실적인 소재처럼 보이나, 거대한 개조 코끼리나 깜빡이는 투명 고양이는 미래적인 상상력이죠. 그런 깜빡이는 고양이들이 자연 생태계를 교란한다면, 그건 커다란 위협이 되겠죠.



제목처럼 <와인드업 걸>은 인조인간을 이야기합니다. 제목이 와인드업 걸인 이유는 주연 등장인물들 중 하나가 인조인간이고 삐걱거리며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고전적인 인조인간 이야기처럼 <와인드업 걸>에서 인조인간은 노예가 되고 자유를 찾아 탈출하기 원합니다. <와인드업 걸>은 전반적으로 환경 아포칼립스이나, 한편에서 고전적인 인조인간을 이야기해요. 이 소설은 환경 아포칼립스인 동시에 인조인간 이야기입니다. <식수 전쟁 2017>과 달리, <와인드업 걸>은 전형적인 SF 소설입니다.


저는 파올로 바치갈루피가 좀 더 다양한 개조 생명체들을 보여줬다면, 소설이 훨씬 재미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바치갈루피에게 괴수를 만드는 솜씨가 있으나, 작가 본인이 그걸 끝까지 밀고 나가지 않는 듯해요. 좀 더 본격적인 괴수를 보고 싶다면, <고지라> 같은 영화는 좋은 선택이 될 겁니다. 2014년 <고지라>는 핵 발전소가 거대 괴수들을 불렀다고 이야기합니다. 1954년 원조와 달리 2014년 <고지라>는 핵 전쟁보다 핵 발전소에 치중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 후쿠시마 재난 같은 핵 발전소가 핵 전쟁보다 가시적인 위협이었기 때문이겠죠.



고지라와 무토 부부는 정말 초자연적인 야수들입니다. 아무리 <와인드업 걸>이 거대 코끼리나 깜빡이는 고양이를 선보였다고 해도, 그런 동물들은 이 장대한 괴수들에게 비교가 되지 않을 겁니다. 무토 부부는 도시 하나를 간단하게 짓뭉갤 수 있습니다. 어지간한 재래식 병기는 수컷 무토조차 막지 못합니다. 고지라는 현대적인 함대를 멀리 따돌리고 빠르게 헤엄칠 수 있습니다. 고지라가 도시에 상륙했을 때, 병사들과 전차들과 함선들은 총알들과 포탄들과 미사일들을 퍼부었으나, 고지라는 생채기조차 입지 않았어요. 어떤 관객들은 아가미가 약점이라고 말하더군요.


하지만 고지라가 정말 도시를 밀어버리기로 작정했다면, 군대가 아가미를 공격했다고 해도, 고지라를 막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꽤나 재미있지 않습니까. 아가미가 달린 고지라. 흠, 고지라는 심해 괴수죠. 역시 괴수의 로망은 바다 괴수이고요.) 하지만 고지라는 너무 황당한 상상력 같습니다. 아마 SF 세상에서 거대 괴수는 가장 황당한 상상력들 중 하나일 겁니다. 이렇게 초자연적인 야수가 자연 발생적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요. 심지어 거대 생체 병기조차 별로 설득력이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식수 전쟁 2017>이나 <와인드업 걸>과 달리, <고지라>에서 정말 중요한 부분은 환경 아포칼립스가 아닙니다. 환경 오염(핵 폐기물)은 괴수들을 소환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고, 중요한 부분은 거대 괴수들입니다. 그래서 <식수 전쟁>이나 <와인드업 걸>과 달리, <고지라>는 별로 좌파적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거대 괴수가 무조건 우파적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창작가가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거대 괴수를 이용해 자본주의를 비판할 수 있겠죠. <고지라>는 그러지 않았으나, 이 글에서 저는 좌파적이라는 측면보다 상상력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환경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고지라>는 상상력의 종착역을 보여주는 사례일까요. 아니, 훨씬 거대한 상상력이 있겠죠. 비디오 게임 <판도라: 퍼스트 콘택트>에서 인류 세력들은 지구에서 달아나고 외계 행성에 정착합니다. 개척 세력들 중 비비안 가디니어가 대변하는 테라 살붐은 환경 오염을 막고 외계 자연을 보존하기 원하고요. 그래서 테라 살붐은 녹색 정치를 펼치죠. 이 외계 행성에는 떠다니는 섬이나 거대한 앵무 조개 같은 괴수들이 존재하고요. (역시 괴수의 로망은 바다 괴수입니다.)



저는 <식수 전쟁>보다 <퍼스트 콘택트> 같은 쪽에 끌립니다. 거대 괴수가 없는 환경 아포칼립스. 너무 밋밋하고 심심하군요. 그게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저 개인적인 취향이 그런 쪽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테라 살붐 같은 단체는 자본주의를 제대로 분석하지 않죠. 만약 어떤 SF 창작물이 자본주의를 제대로 분석하고, 거대 괴수를 이야기하고, 환경 아포칼립스를 묘사한다면, 3박자가 척척 맞아떨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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