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오페라와 어마어마한 학살들

광선총, 우주 함대 전투, 외계 침략자. 많은 사람들은 사이언스 픽션이라는 용어를 들었을 때, 저런 것들을 떠올릴 겁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다른 것들을 떠올리지 모릅니다. 구글링 이미지에서 '사이언스 픽션'을 검색하면, 다양한 미래 도시들, 우주 탐사선들, 외계 행성들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구글링 이미지가 꽤나 대중적이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이는 모든 사람이 광선총이나 외계 침략자만을 사이언스 픽션이라고 간주하지 않는다는 뜻이겠죠.

하지만 적어도 광선총이나 우주 함대 전투나 외계 침략자가 사이언스 픽션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겠죠. 무엇보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사이언스 픽션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지 모릅니다. 그리고 스페이스 오페라는 우주 전쟁으로 이어지고요. <사소한 정의>처럼 우주 전쟁을 배제하는 소설들 역시 존재하나, 대부분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우주 전쟁은 아주 중요한 사건입니다. 사실 독자들 역시 우주 전쟁을 구경하기 위해 스페이스 오페라를 원합니다. 만약 세상의 모든 스페이스 오페라 소설들이 <사소한 정의>와 같다면, 사이언스 픽션은 인기를 크게 잃을지 모르죠.

싸움 구경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구경일지 모릅니다. 그리고 사이언스 픽션 속에서 싸움은 한층 커질 수 있습니다.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별로 크게 싸우지 못합니다. 여러 강대국들이 한꺼번에 전략 병기들을 날린다고 해도 행성 하나를 끝장내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사이언스 픽션 속에서 행성 하나를 끝장내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다양한 스페이스 오페라 소설들은 거대 함선이 행성을 날려버리거나 불태우거나 유리로 만드는 상황을 묘사합니다. 거대 우주 함선이 아니라도 행성을 초토화시키는 방법들은 많습니다. 아이스 나인 같은 물건이 있고, 그레이 구 같은 물건이 있죠.

스페이스 오페라 소설들에는 인공 태양을 만들거나 인공 블랙홀을 만드는 종족들이 등장합니다. 자유롭게 생명들을 창조하는 종족들 역시 등장하죠. 초거대 건축물을 만드는 종족들 역시 빠지지 못하겠죠. 그런 종족들이 행성 하나를 날리지 못할까요. 우주 함선을 동원하든, 나노 기계들을 퍼뜨리든, 기후 전체를 바꾸든, 수많은 종족들은 행성 하나를 날려버릴 수 있습니다. 아니, 항성계 전체를 날려버릴지 모르겠군요. <링월드> 같은 소설은 무지막지한 상상력을 선보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스페이스 오페라 속에서 보다 거대하고, 보다 이질적이고, 보다 다양한 싸움들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아마 이런 거창한 전쟁 때문에 스페이스 오페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그래서 스페이스 오페라가 여러 하위 SF 장르들 중 독보적인 인기를 자랑하는지 모르죠. 저는 스페이스 오페라 소설들이 SF 소설 시장에서 얼마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지 아는 바가 없습니다. 아마 SF 평론가들은 그런 것들을 연구했을지 모르나, 저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스페이스 오페라는 분명히 커다란 인기를 끄는 장르입니다. 따라서 스페이스 오페라 소설들이 SF 소설 시장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고 추측해도, 그 추측은 별로 틀리지 않을 듯합니다.

거대한 우주 함선이 수많은 미사일들과 우주 어뢰들과 광선들을 발사할 때, 사람들은 그 장면을 황홀하게 구경하겠죠. 영화나 비디오 게임은 화려한 시각 효과를 동원하고 그런 장면들을 늘어놓습니다. 시각 효과 덕분에 영화나 비디오 게임은 더욱 우주 전쟁을 멋지게 꾸밀 수 있겠죠. 거대한 우주 순양함이 초공간을 도약하고, 숱한 우주 전투기들이 빠르게 출격하고, 온갖 함포들은 포탄들과 미사일들과 우주 어뢰들과 광선들을 날리고…. 이런 장면들은 스페이스 오페라를 상징합니다. 이런 장면들을 구경하기 위해 사람들은 스페이스 오페라를 찾아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사소한 정의>는 이런 장면들을 전혀 집어넣지 않습니다. 만약 모든 스페이스 오페라 창작물들이 <사소한 정의>와 같다면, 스페이스 오페라가 지금과 같은 위상을 누릴 수 있을까요.

하지만 좀 더 생각한다면, 우주 전쟁은 뭔가를 죽이고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광선총이든, 우주 전투기든, 우주 어뢰든, 다들 뭔가를 죽이고 파괴하는 물건들입니다. 이런 우주 전쟁이나 광선총이나 우주 전투기나 우주 어뢰에게 환호를 보내고 웅장한 음악을 덧붙일 이유가 있을까요. 전쟁은 어마어마한 비극입니다. 누구도 부정하지 않겠죠. 우주 전쟁은 훨씬 어마어마한 비극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여러 스페이스 오페라 소설들, 영화들, 게임들에서 숱한 우주 전쟁들을 구경하고 환호성을 지릅니다. 작가들, 영화 감독들, 게임 제작진들은 미사여구를 장식하거나 웅장한 음악을 덧붙입니다.

물론 창작물들 속의 우주 전쟁이 무모한 살육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그런 사람들은 온갖 명분들을 늘어놓습니다. 하지만 창작가들이 어떤 명분들을 늘어놓더라도 누군가가 죽는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할 겁니다. 게다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습니다. 우주 함대 전투가 터진다면, 현실 속의 전투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죽겠죠. 게다가 대부분 그들은 힘이 없는 사람들이겠죠. 은하 제국 황제나 그런 위인들을 위해 힘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겠죠. 행성 하나가 비극적으로 날아갈 수 있음에도 결국 스페이스 오페라는 그 많은 인민들(과 그 행성에 사는 생명체들)이 아니라 황제나 장군이나 초인을 강조하죠.

우주 전쟁을 찬란하게 묘사하는 스페이스 오페라가 무조건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 창작가들이 모두 전쟁광이라는 뜻도 아니고요. 현실 속의 군대들을 당장 해체해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하지만 얼마 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는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을 생각해야 할 겁니다. 저는 스페이스 오페라를 볼 때도 사람들이 그런 착취적인 관계를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