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셜록 홈즈와 영국의 제국주의 본문
만화 <명탐정 코난>은 사이언스 픽션과 추리를 결합한 탐정 이야기입니다. 사실 사이언스 픽션은 별로 비중이 크지 않고, 기본적으로 이 만화는 탐정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고등학생 탐정이 초등학생으로 작아진다는 설정이 핵심을 차지하기 때문에 이 만화를 사이언스 픽션이라고 불러도 완전히 틀린 시각은 아니겠죠. 어쨌든 이 만화를 그리는 작가나 이 만화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SF 설정에 별로 관심을 없을 듯합니다.
단행본 책표지에서 계속 추리 소설들을 소개하는 점에서 알 수 있듯 작가는 <명탐정 코난>을 탐정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SF 설정은 탐정을 흥미롭게 부각하기 위한 들러리에 불과하죠. 지킬 박사를 하이드로 바꾸는 것만큼 기이한 약물이 등장한다고 해도, 음성 변조 장치나 고속 스케이드 보드나 근력 강화 신발이나 축소 장치가 등장한다고 해도, <명탐정 코난>은 탐정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강철 도시>나 <쿼런틴>이나 <얼터드 카본>과 달리 SF 설정 위에 탐정 이야기를 깔지 않습니다. 탐정 이야기에 상상 과학이라는 양념을 뿌렸을 뿐이죠. 쿠도 신이치가 에도가와 코난이라는 설정은 중요하나, <명탐정 코난>은 <쿼런틴>과 다른 울타리에 속할 겁니다.
탐정 이야기를 중시하는 만화답게 <명탐정 코난>은 셜록 홈즈에게 열렬한 찬사들을 바칩니다. 우선 주인공 쿠도 신이치부터 셜록 홈즈를 열정적으로 사모하는 인물입니다. 홈즈가 이야기한 저 유명한 문구인 "불가능한 것을 모두 제외한다면, 남은 것은 진실이다. 설사 아무리 그게 믿기지 않는다고 해도 그렇다." 같은 대사 역시 멋지게 날려줍니다. 쿠도 신이치는 "셜록 홈즈를 좋아하는 인물은 본질적으로 악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농담에 가까운 대사이나, 그렇게 신이치가 셜록 홈즈를 좋아한다는 뜻이죠.
저는 저 대사를 봤을 때, 잠시 의문이 들었습니다. 비록 농담에 가까운 대사이나, 정말 셜록 홈즈를 좋아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악하지 않을까요? 흠, 셜록 홈즈는 불의를 참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홈즈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심지어 그들이 범죄를 저질러도 눈감아줍니다. 겉보기에 꽤나 냉철하고 괴팍하나, 홈즈는 따스한 인간미를 믿는 인물입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한 셜록 덕분에 어떤 사람들은 셜록 홈즈가 냉혈한이라고 오해하나, 소설 속의 진짜 홈즈는 수많은 빈민들을 도왔습니다. 그런 소설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어요. 아마 왓슨이 공개하지 않은 이야기들에는 그런 빈민들이 더 많이 나오겠죠.
홈즈는 분명히 인간미를 믿는 인물입니다. 게다가 흑인을 차별하지 않으려고 애썼고, (자신이 여자를 무시한다는 사실을 인식함에도) 되도록 여자들을 존중하려고 애썼죠. 평론가들은 <보헤미아 왕국의 스캔들>이 셜록 홈즈를 널리 알린 단편이라고 평가합니다. 이 소설에서 셜록 홈즈는 여자(아이린 애들러)에게 한 방 먹었죠. 홈즈를 널리 알린 단편이 홈즈에게 한 방 먹인 여자를 소재로 삼았다는 사실은 모순적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서 코난 도일은 주저하지 않고 그렇게 썼어요. 셜록 홈즈는 인간미를 추구하는 인물이고, 따라서 홈즈를 좋아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선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아서 코난 도일은 제국주의를 지지하는 인물이었어요. 영국은 인도를 침략했으나, 셜록 홈즈는 그걸 별로 비판하지 않습니다.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 인도는 악랄한 범죄자들과 위험한 동식물들과 해로운 질병들이 들끓는 지역으로 등장합니다. 인도는 무슨 악마의 소굴 같습니다. 인도를 악랄하게 묘사하는 소설들을 제외한다면, 유명한 소설들이 줄줄이 빠질 겁니다. 코난 도일은 <얼룩 띠>가 멋진 소설이라고 평가했으나, <얼룩 띠> 역시 인도를 음산한 소굴로 묘사하죠.
그런 사실을 제외한다고 해도 분명히 코난 도일은 제국주의를 지지하는 인물입니다. 영국이 식민지를 침략할 때, 도일은 그걸 지지했죠. 셜록 홈즈 시리즈를 읽을 때, 독자들은 코난 도일이 그런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셜록 홈즈 시리즈를 모두 불태워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게다가 작가의 성향이나 철학은 언제나 소설과 상통하지 않습니다. 작가의 성향과 소설의 성향은 각자 존재합니다. 레프 톨스토이는 자신의 성향을 온전히 담기 위해 자신이 과거에 쓴 <전쟁과 평화>를 부정했으나, 작가의 성향과 소설의 성향은 각자 존재할 수 있어요.
<수달 타카의 일생>을 쓴 헨리 윌리엄스처럼 작가와 소설은 얼마든지 갈라질 수 있죠. 코난 도일이 제국주의를 지지했다고 해도,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 인도가 악마 소굴이라고 해도, 어떤 독자는 홈즈에게서 선한 면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홈즈 팬들은 인정하지 않겠으나) 셜록 홈즈는 가공의 인물이고 가공의 인물을 좋아하는 마음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저 저는 독자들이 가공의 인물을 둘러싼 실제 역사와 사회를 좀 더 자세히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흠, 그게 바로 셜록 홈즈다운 태도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