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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서브노티카>와 <스타타이드 라이징>과 <스카이림> 속의 서로 다른 관념들 본문

감상, 분류, 규정/다른 세계와 여러 관점들

<서브노티카>와 <스타타이드 라이징>과 <스카이림> 속의 서로 다른 관념들

OneTiger 2018. 8. 19. 18:57

[게임 <서브노티카>를 이용한 심해 산호초 분위기 동영상. 심해 생태계는 정말 신비롭습니다.]



YouTube 같은 동영상 사이트에는 '비디오 게임 분위기 영상들'이 있습니다. 흠, 비디오 게임 분위기 영상? 이게 뭐를 뜻할까요? 이는 <엘더 스크롤 V: 스카이림>이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같은 비디오 게임을 이용해 장대한 환경과 웅장한 음악과 적막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강조하는 동영상입니다. 시청자는 제레미 소울이 지은 비장미 넘치는 음악과 함께 북부 스카이림의 화려한 오로라와 드높은 설산들과 거대한 드래곤들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시청자는 눈발이 휘날리는 던 모로와 복잡하고 광활한 아이언포지와 서정적인 배경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YouTube에는 이런 동영상들이 많아요. (저는 <Skyrim - Music & Ambience - Night>와 <Vanilla Ashenvale - Day Ambience ASMR> 같은 영상들을 좋아합니다.) 동영상 시청자들은 이런 동영상들이 일종의 치유 장치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장대한 환경과 서정적인 곡조와 자연의 소리들을 보고 듣는 동안 시청자들은 마음을 평온하게 가라앉힐 수 있겠죠. 저는 이게 일종의 기술적 자연이라고 생각해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비디오 게임을 이용해 시청자들은 장대한 자연 환경을 접하죠.



저는 <스카이림>이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소개했으나, 다른 오픈 월드 게임들 역시 얼마든지 이런 동영상을 연출할 수 있을 겁니다. <스카이림>과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대표적인 오픈 월드 게임이고, 그래서 그런 분위기 동영상을 내놓을 수 있었죠. <엘더 스크롤> 시리즈는 오픈 월드 게임의 대표 사례입니다. 하지만 <엘더 스크롤> 시리즈는 중세 유럽 판타지입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를 비롯해 SF 비디오 게임들이 이런 오픈 월드를 구현할 수 있을까요? 물론 SF 게임들 역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설명한 것처럼, <노 맨즈 스카이>는 스페이스 오페라 게임이 어마어마한 대자연을 보여줄 수 있다고 호언한 사례입니다. <노 맨즈 스카이>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른 SF 게임들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서브노티카>는 어떨까요. <플래닛 노매드>와 <플래닛 익스플로러스>와 <아스트로니어> 역시 좋은 사례가 될 수 있겠죠. 아니면 <폴아웃 3>나 <매스 이펙트> 같은 롤플레잉 게임 역시 있고요. <폴아웃 3>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이고, 핵 전쟁이 파괴한 황량한 구역들을 보여줍니다. 솔직히 저는 이런 황량함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나, 어떤 사람들은 울창한 숲보다 이런 황무지를 좋아하겠죠.



이런 '오픈 월드'는 오직 비디오 게임만이 구현할 수 있는 특징입니다. 소설이나 만화나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는 이런 오픈 월드를 구현하지 못하죠. 사실 초기 사이언피틱 로망스 작가들은 비경 탐험을 이야기했고, SF 문학 역사에서 비경 탐험은 언제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역시 방랑이나 여정을 중시했고요. SF 독자들은 <잃어버린 세계>나 <광기의 산맥>이나 <지옥의 질주>나 <스타타이드 라이징>이나 <풀의 죽음>이나 <콩고>나 <로드> 같은 숱한 소설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 소설들은 주연 등장인물들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거나 방랑하는 상황을 묘사합니다.


만약 게임 제작진이 이런 소설들을 비디오 게임으로 만든다면, 그런 게임은 오픈 월드가 되겠죠. 러브크래프트 소설들은 오픈 월드보다 어드벤처 게임이 되곤 하나, 저는 오픈 월드가 <광기의 산맥> 같은 소설에 훨씬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오픈 월드 게임 속에서 게임 플레이어가 어마어마한 외계인 지하 유적 속을 누빈다고 생각해보세요. <광기의 산맥> 같은 소설은 선형적인 어드벤처 게임이 아니라 비선형적인 오픈 월드 게임이 될 수 있습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니고 곳곳에서 외계인들의 흔적을 발견하고 연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게임 플레이는 하워드 러브크래프트가 상상한 방대한 외계인 유적을 재현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게임 제작진이 <스타타이드 라이징>을 오픈 월드 게임으로 만든다면, 저는 그게 꽤나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신종 돌고래를 조종하고 외계 바다를 누빌 수 있습니다. 신종 돌고래는 강화복과 바다 썰매와 각종 첨단 장치들을 이용해 외계 해양 생명체들을 연구하거나 자재들을 수집하거나 재료들을 가공할 수 있습니다. 침몰한 우주선 스트리커는 주거지와 대피소가 될 수 있겠죠. 음, 이런 비디오 게임 <스타타이드 라이징>은 <서브노티카>와 꽤나 비슷하겠군요. 아니, <스타타이드 라이징> 같은 소설 덕분에 게임 제작진은 <서브노티카>를 만들 수 있었는지 모르죠.


하지만 비디오 게임과 소설이 똑같이 비경 탐험을 묘사한다고 해도, 게임 플레이어와 독자는 서로 다른 것을 체험할 겁니다. <스타타이드 라이징>을 읽는 행위와 <서브노티카>를 플레이하는 행위는 서로 완전히 다릅니다. 양쪽은 똑같이 외계 해양 탐험을 이야기하나, 비디오 게임 플레이어는 <스타타이드 라이징>을 읽는 행위가 답답하다고 느낄지 몰라요. <서브노티카>는 비선형적입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어디로든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타타이드 라이징>은 선형적입니다. 독자는 오직 데이빗 브린이 묘사하는 것들만 읽어야 합니다.



[게임 <서브노티카> 속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웅장한 대자연을 마음대로 탐험할 수 있습니다.]



<서브노티카>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사방 곳곳을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여러 게임 플레이어들은 탐험을 중시합니다. 그들은 지도를 모두 밝히기 원하고, 작은 돌멩이와 풀씨 하나를 놓치지 않습니다. 저 역시 그런 유형입니다. <대항해 시대>, <엔들리스 스카이>, <인디아나 존스: 아틀란티스의 운명>, <공포의 저택 (매니악 맨션)>, <발더스 게이트>, <새틀라이트 레인>, <압주>, <쉘터> 같은 비디오 게임들을 플레이할 때, 저는 언제나 빠진 부분이 있는지 살폈습니다. 이런 게임 플레이어들을 위해 게임 제작진은 사소한 장소에 수집물이나 발견물을 놔두곤 합니다. 오픈 월드 게임은 그런 재미를 훨씬 강조할 수 있죠. 오픈 월드 게임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사방을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웅장한 환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건 오픈 월드 게임의 가장 큰 미덕일 겁니다. 반면, <스타타이드 라이징>은 그렇지 않습니다. <스타타이드 라이징>을 읽을 때, 독자는 선형적인 묘사와 줄거리를 따라가야 합니다. 아무리 데이빗 브린이 멋진 필력을 발휘한다고 해도, 데이빗 브린은 행성 전체를 완전히 구현하지 못합니다. 데이빗 브린은 그저 단어들을 이용해 외계 바다를 암시할 뿐입니다. 나머지는 독자들의 몫입니다. 독자들은 적극적으로 외계 바다를 상상해야 하고, 작가가 표현하지 못한 곳들을 상상해야 합니다.



어떤 관점에서 <서브노티카>는 <스타타이드 라이징>보다 나을지 모릅니다. <서브노티카>는 게임 플레이어에게 직접 활동할 수 있는 방대한 세계를 선사합니다. <스타타이드 라이징>은 그렇지 못합니다. 사실 이런 비경 탐험 소설의 진짜 미덕은 탐험이 아닐지 모릅니다. 탐험이라는 관점에서 <서브노티카>는 <스타타이드 라이징>보다 훨씬 뛰어날지 몰라요. 비디오 게임 <서브노티카>는 웅장한 분위기 동영상을 연출할 수 있으나, 소설 <스타타이드 라이징>은 절대 그런 것을 연출하지 못하죠.


하지만 <스타타이드 라이징>에는 <서브노티카>가 따라가지 못하는 미덕이 하나 있습니다. 그 미덕 때문에 우리는 비경 탐험 소설을 읽을 겁니다. 그게 뭘까요? 그건 세계관입니다. 소설은 등장인물이 세계를 바라보는 세계관을 제시합니다. 심지어 1인칭 소설에서 독자들은 오직 그런 세계관을 통해 소설 속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세계관은 세계를 해석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보여주고, 독자들은 그런 세계관을 자신의 시야에 접목할 수 있습니다. 이는 오픈 월드 게임이 절대 따라하지 못하는 미덕이죠. 비경 탐험 소설에서 탐험은 그런 세계관을 강조하기 위한 매개체일 겁니다. 우리가 낯선 곳을 헤맬 때, 세계를 해석하는 시각은 훨씬 두드러지겠죠.



이렇게 <서브노티카>와 <스타타이드 라이징>은 다릅니다. 오픈 월드 게임은 웅장한 공간을 직접 게임 플레이어에게 선사합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그걸 직접 느낄 수 있고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반면, 비경 탐험 소설은 세계관을 중시합니다. 비경 탐험 소설을 읽은 이후, 우리는 그런 세계관을 이용해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를 분석하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저는 오픈 월드 게임과 비경 탐험 소설을 마무리하고, 좀 더 다른 이야기로 나가고 싶습니다. 어떻게 중세 판타지와 스페이스 오페라를 이용하는 오픈 월드 게임이 다른지 저는 살펴보고 싶습니다.


<스카이림>과 <서브노티카>는 모두 훌륭한 오픈 월드 게임입니다. <스카이림>은 중세 유럽 판타지이고, <서브노티카>는 스페이스 오페라입니다. (한쪽은 액션 롤플레잉 게임이고 다른 한쪽은 생존 건설 게임이나, 여기에서 저는 그런 차이를 접어두겠습니다.) 따라서 중세 판타지의 오픈 월드와 스페이스 오페라의 오픈 월드는 게임 플레이어에게 서로 다른 영향을 미칠 겁니다. 그게 뭘까요? 그게 무슨 차이일까요? 제가 살펴보고 싶은 요소는 오픈 월드 게임에서 중세 유럽 판타지와 스페이스 오페라가 드러내는 차이입니다. 하지만 양쪽을 대조하기 전에 저는 훨씬 일상적인 게임들을 언급할 수 있을 겁니다. 오픈 월드 게임에는 오직 중세 유럽 판타지와 스페이스 오페라만 있지 않습니다.



<그랜드 테프트 오토 V>와 <쉘터 2>는 훨씬 일상적인 게임입니다. 이런 오픈 월드 게임에는 현실을 뛰어넘거나 현실과 괴리되는 특정한 상상력이 없습니다. 아무리 게임 플레이어가 비일상적인 일탈을 꿈꾼다고 해도, <그랜드 테프트 오토 V>와 <쉘터 2>는 게임 플레이어를 머나먼 마법 왕국이나 머나먼 외계 바다로 데려가지 않죠. 하지만 <쉘터 2>는 <그랜드 테프트 오토 V>보다 훨씬 일상에서 멀 겁니다. <그랜드 테프트 오토 V>는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거대 도시를 묘사합니다. 반면, <쉘터 2>에는 북미 스라소니 가족이 나오고, 스라소니 가족은 장대한 툰드라와 고산 지대와 울창한 침엽수림을 돌아다닙니다.


<그랜드 테프트 오토 V>에는 이른바 문명적인 것들이 나옵니다. 고층 건물, 자동차, 고속도로, 공장, 총기들. 그리고 무형적인 자본주의 시장 경제. 자본주의는 가시적이지 않으나, 분명히 <그랜드 테프트 오토 V>의 세계를 떠받치는 체계입니다. 하지만 <쉘터 2>는 그렇지 않습니다. <쉘터 2>는 문명보다 야생에 집중합니다. 여기에 인간적인 흔적은 없습니다. 따라서 게임 플레이어들은 인간을 넘거나 인간을 벗어나는 어떤 영성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쉘터 2>가 선보이는 가장 거대한 감성은 그것일 겁니다. 인간을 벗어나는 영성. 비록 물리적인 규모는 작으나, <쉘터 2>는 <그랜드 테프트 오토 V>보다 훨씬 거대한 게임일지 모릅니다.



[게임 <에코>는 목가적인 분위기를 추구합니다. 적어도 초기 분위기는 그렇습니다.]



2018년에 스트레인지 루프 게임즈가 출시한 <에코>는 어떨까요. <에코>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평온한 숲을 돌아다니고 뚝딱뚝딱 수제 오두막을 짓습니다. <에코>에는 이른바 문명적인 것들이 있으나, <그랜드 테프트 오토 V>보다 훨씬 목가적입니다. <쉘터 2>와 달리, <에코>는 인간을 벗어나는 영성을 추구하지 못하나, <그랜드 테프트 오토 V>보다 훨씬 문명에서 멉니다. 만약 인간을 벗어나는 영성을 느끼고 싶다면, 게임 플레이어는 <쉘터 2>를 선택하겠죠. 만약 광대한 자연에 문명을 좀 더 추가하고 싶다면, 게임 플레이어는 <에코>를 선택할 겁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아예 거대 도시를 떠나고 싶지 않다면, <그랜드 테프트 오토 V>는 좋은 선택일 겁니다. 저는 이런 차이가 <스카이림>과 <서브노티카>에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공간적인 차이들은 서로 다른 감성들을 조성할 겁니다. 거대 도시와 숲 속 오두막과 툰드라 초원이 서로 다른 감성들을 자아내는 것처럼, 우리가 중세 유럽 판타지나 스페이스 오페라를 선택하는 이유는 그것 때문입니다. <스카이림>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웅장한 마법 학교를 돌아다니거나 해골들이 딸깍거리는 깊은 동굴을 탐험하거나 드래곤이 날아다니는 산맥을 올라갈 수 있습니다.



오픈 월드 게임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마음대로 이야기를 조정할 수 있습니다. 주된 목표에 상관없이 게임 플레이어는 마음대로 헤엄치거나 낚시하거나 해골과 싸우거나 마법 학교를 관찰하거나 경치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오픈 월드 게임을 플레이할 때, 게임 플레이어는 그렇게 드넓고 선형적이지 않은 세계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랜드 테프트 오토 V>와 <스카이림>은 똑같은 드넓고 자유로운 세계를 선사합니다. 양쪽이 똑같이 드넓은 세계를 선사함에도, 왜 구태여 어떤 게임 플레이어들은 <그랜드 테프트 오토 V>보다 <스카이림>을 선호할까요? 우리가 중세 판타지를 선망하는 이유가 뭘까요? 저는 중세 판타지가 근대 산업 문명이 밀어낸 요소들을 돌려준다고 생각합니다. 근대 산업 문명은 귀족적인 신념, 명예, 윤리를 밀어냈습니다. 자본가들의 더러운 상술은 귀족적인 명예를 더럽혔어요.


그래서 알렉시스 토크빌은 민주주의를 경멸했죠. 우리는 잃어버린 것들을 열망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고리타분하고 갑갑한 진짜 중세로 돌아가기 원하지 않아요. 그래서 중세 시대와 근대 산업 시대 사이에서 우리는 가상의 공간인 중세 판타지를 창조하고 거기에 들어갑니다. 각종 마법들과 종족들은 중세 판타지가 진짜 중세로 추락하지 않는 기반이고요. 물론 이는 우리가 중세 판타지를 선망하는 유일무이한 이유가 아닙니다. 개인적인 사례를 말한다면, 드루이드나 우드 엘프가 대중적인 자연관을 드러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중세 판타지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마법이나 드래곤이 기이한 사건을 일으키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은 중세 판타지를 좋아하겠죠. 하지만 그저 기이한 사건을 보고 싶을 뿐이라면, 사람들은 중세 판타지 이외에 다른 SF 장르나 공포 장르 역시 선택할 수 있어요.



저는 중세 판타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진보적인 중세를 꿈꾼다고 생각합니다. 진보적인 중세는 그들에게 귀족적인 신념과 명예와 윤리를 안겨줍니다. 따라서 <스카이림>은 두 가지를 접목합니다. <스카이림>은 귀족적인 신념과 명예와 윤리 체계를 기반에 깝니다. 그런 기반 위에서 <스카이림>은 드넓고 자유로운 공간을 형성하고, 게임 플레이어는 그런 공간을 돌아다닙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돌아다니는 공간은 신비로운 마법 학교나 깊고 깊은 동굴이나 드래곤이 포효하는 산맥이어야 합니다. 만약 게임 플레이어가 현대적인 공장이나 고층 건물에 들어가는 순간, 게임 플레이어는 근대 산업 문명을 연상할 겁니다. 그런 연상은 귀족적인 측면들을 밀어내겠고, 게임 분위기는 삭막해지겠죠.


<스카이림>을 플레이하는 게임 플레이어는 귀족적인 측면들을 웅장한 공간으로써 체험하기 바랍니다. 체계는 공간을 형성하고, 공간은 다시 관념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근대 자본주의(체계)는 거대 도시(공간)를 형성했고, 거대 도시(공간)는 귀족적인 명예(관념)를 몰아냈습니다. 그래서 <그랜드 테프트 오토 V>는 <스카이림>과 다릅니다. <스카이림>에서 신비로운 중세 마법 세계(체계)는 윈터홀드 대학(공간)을 형성했고, 윈터홀드 대학(공간)은 귀족적인 명예(관념)를 암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게임 플레이어들은 <그랜드 테프트 오토 V>보다 <스카이림>을 좋아합니다.



YouTube에는 <그랜드 테프트 오토 V>를 이용한 분위기 동영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동영상과 <스카이림>을 이용한 동영상은 서로 다를 겁니다. 로스 산토스 같은 공간과 화이트런 같은 공간이 서로 다른 관념을 조성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중세 유럽 판타지에서 자연 환경은 비교적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따라서 <스카이림>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귀족적인 측면들과 목가적인 측면들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비록 목가적인 측면은 보조적이나, 중세 유럽 판타지에서 목가적인 측면은 빠지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드루이드나 우드 엘프를 쉽게 마주칠 수 있죠.) 적막한 침엽수림 속에서 게임 플레이어가 차가운 바람을 맞을 때, 목가적인 측면은 귀족적인 측면보다 훨씬 중요하겠죠.


이렇게 오픈 월드 게임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공간을 직접 체험합니다. 따라서 오픈 월드 게임에서 공간과 관념이 맺은 관계는 아주 중요할 겁니다. 여기에서 슬슬 저는 스페이스 오페라를 언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중세 판타지를 이용하는 오픈 월드 게임이 이런 관념을 형성한다면, 스페이스 오페라를 이용하는 오픈 월드 게임이 무슨 관념을 형성할까요? <서브노티카>에서 외계 해양 생태계를 둘러볼 때, 게임 플레이어가 무슨 관념을 형성할까요? 아니, <서브노티카>는 도시보다 야생을 중시하죠. <헤일로 3>이나 <매스 이펙트 3>은 오픈 월드가 아니나, 이런 게임들은 웅장한 미래 도시를 보여줍니다. 어떻게 <매스 이펙트 3>가 <서브노티카>와 다를까요?



[게임 <헤일로> 시리즈는 오픈 월드가 아니나, 게임 플레이어는 방대한 지역을 돌아다닐 수 있어요.]



일반적으로 SF 독자들은 현재를 돌아보고 싶어합니다. 현재가 무사히 미래로 나갈 수 있을까요? 현재의 문제가 미래에 무슨 파장을 미칠까요? 현재의 지식이 전부일까요? 미래에 더 넓은 세상이 펼쳐지지 않을까요? 우리가 현재적인 고정 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았을까요? SF 독자들은 이런 것들을 계속 물어봅니다. 거기에 대답하기 위해 SF 소설들은 현재를 미래에 투영하거나 미래를 현재로 끌어옵니다. 그렇게 SF 소설들은 결론을 도출하나, 그런 결론들은 얼마든지 틀릴지 모릅니다. 하지만 결론이 옳든 틀리든,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가능성을 바라보는 시각 그 자체입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들은, 특히, 스페이스 오페라 게임들은 전투나 액션에 치중하고, 가능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희미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런 시각은 아예 없지 않습니다. <매스 이펙트 3>는 거대 미래 도시를 보여주고, 게임 플레이어는 그런 도시를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게임 플레이어는 현재가 진보할 거라는 확신을 받습니다. 웅장한 미래 도시(공간)를 마음대로 체험할 수 있기 때문에 게임 플레이어는 그런 확신을 더욱 받을 수 있습니다. 비디오 게임이 거대한 물리적인 공간을 자랑할 때, 게임 플레이어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탐험 욕구를 채울 수 있어요. 하지만 오직 탐험 욕구만이 중요하다면, 왜 누군가가 <그랜드 테프트 오토 V>를 더 좋아하고, 또 다른 누군가가 <매스 이펙트 3>을 더 좋아하겠어요?



<매스 이펙트 3>가 인류 문명의 진보를 말한다면, <서브노티카>는 우리가 다른 세계로 이주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당연히 그런 이주는 첨단 과학 기술에 기반합니다.) 다른 세계에는 다른 식생들이 존재할 테고, 다른 식생들을 둘러보는 동안, 게임 플레이어는 인식의 지평선을 넓힐 수 있겠죠. 게임 플레이어는 지구 생태계가 세상의 전부가 아니고 완전히 다른 생태계가 존재한다고 깨달을 수 있겠죠. 뭐, 흔한 스페이스 오페라들처럼, <서브노티카>의 식물상과 동물상은 지구 생태계의 뻥튀기입니다. 스타니스와프 렘이나 피터 왓츠는 <서브노티카>가 빈약한 상상력을 드러낸다고 비판할지 몰라요.


하지만 지구 생태계의 뻥튀기라고 해도, <서브노티카>의 식물상과 동물상은 지구 생태계가 전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비록 충격은 약하겠으나, <서브노티카>는 기이한 식물상을 이용해 분명히 충격을 줄 수 있어요. 게다가 외계 식물상 역시 자연 생태계이기 때문에, <쉘터 2>가 그런 것처럼, <서브노티카>는 인간을 벗어나는 영성을 추구할 수 있죠. 따라서 <서브노티카>는 인식의 지평선을 넓히고, 동시에 인간을 벗어나는 영성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장엄한 외계 해양 생태계를 바라보는 동안, 게임 플레이어는 두 가지를 합칠 수 있을 겁니다.



오픈 월드 게임이라는 형식이 이런 관념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엔들리스 스페이스 2>는 짧은 그림 동영상들을 이용해 여러 밀림, 해안, 툰드라, 초원, 늪지, 심해 환경들을 소개합니다. 그런 그림 동영상들을 볼 때, 게임 플레이어는 인식의 지평선을 넓히고, 동시에 인간을 벗어나는 영성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은 너무 짧습니다. 관념을 더욱 강화하고 싶다면, 감성을 더욱 확장하고 싶다면, 우리는 그런 순간들을 계속 유지해야 합니다. 이런 말이 있죠. "몸이 멀어진다면, 마음 역시 멀어진다." 저는 이 말을 뒤집고 싶습니다. "마음이 가까워지기 위해 먼저 몸이 가까워져야 한다."


<엔들리스 스페이스 2>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심해 동영상을 그저 아주 짧게 감상할 뿐입니다. 하지만 <서브노티카>는 심해 생태계를 아주 구석구석 입체적으로 보여줍니다. 따라서 게임 플레이어는 그런 관념과 감성을 훨씬 강화하고 확장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오픈 월드 게임은 게임 플레이어에게 감성을 선사합니다. 그래서 <서브노티카> 같은 게임은 매력적입니다. 이런 게임은 아주 매력적이죠. (하지만 좋은 컴퓨터가 없다면, 게임 플레이어는 그저 YouTube 동영상만 구경해야 하겠죠.)



SF 오픈 월드 게임을 만들 때, 게임 제작사들이 이런 부분에 초점을 맞출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게임 제작사들은 최대한 웅장한 환경을 구현하느라 애쓸 겁니다. 게임 제작사들이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SF 오픈 월드 게임은 저런 감성들을 형성하겠죠. 물론 숱한 게임 플레이어들 역시 여기에 주된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겁니다. <스카이림>과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서브노티카>와 <매스 이펙트 3>를 플레이할 때, 게임 플레이어들은 무기, 방어구, 경험치, 재료, 자재, 공구에 관심을 기울이겠죠. 그런 것들 때문에 게임 플레이어들은 오픈 월드 게임을 플레이하겠죠.


하지만 게임 플레이어들이 스페이스 오페라나 중세 유럽 판타지나 도시 범죄 같은 장르를 고르는 이유가 아예 없지 않을 겁니다. 오픈 월드 게임과 장르는 감성적인 기반을 깔고, 그 위에서 전투와 생존과 건설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스카이림>을 좋아하고, 누군가는 <서브노티카>를 좋아하고, 누군가는 <그랜드 테프트 오토 V>를 좋아하겠죠. 그래픽 기술이 계속 발달하기 때문에 앞으로 게임 제작사들은 훨씬 더 환상적인 오픈 월드 게임들을 내놓을 겁니다.



[게임 <아스트로니어>는 환상적인 외계 식생을 강조합니다. 누군가는 이걸 판타지 식생보다 좋아하겠죠.]



게임 플레이어가 공간을 직접 체험하기 때문에 오픈 월드 게임에서 그래픽은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초기 <엘리트> 우주 비행 게임을 떠올려보세요. 그때 게임 제작사들은 <서브노티카> 같은 게임을 꿈꾸지 못했죠. 하지만 이제 게임 플레이어들은 아예 증강 현실 장치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스타타이드 라이징>을 증강 현실 장치로 즐길 수 있을지 몰라요. 그런 탐험은 정말 환상적이겠죠. 하지만 그런 증강 현실 게임에는 데이빗 브린이 해석한 세계관이 없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SF 팬들이 소설과 게임을 함께 즐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SF 소설 없는 SF 게임은…. 거기에는 사변이 없고, 오직 시청각적인 자극만이 있겠죠. 뭐, 누군가는 그런 취향을 좋아하겠으나, 저는 사변과 시청각적인 체험을 합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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