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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생명의 어머니>, 인간 중심주의, 녹색 새싹 본문

SF & 판타지/신화적인 번성

<생명의 어머니>, 인간 중심주의, 녹색 새싹

OneTiger 2024. 10. 10. 11:20

[어머니 자연(대지 모신)과 녹색 식물들은 비슷한 위상이 됩니다.]



"찬 바람이 싸늘하게 두 뺨을 스치면 따스하던 삼립 호빵~. 몹시도 그리웁구나~♬" 이 노래처럼, 많은 사람들은 (삼립) 호빵을 좋아합니다. 아무리 호빵이 커다란 인기를 자랑한다고 해도, 어떤 사람들은 이 먹거리를 거부하는지 모릅니다. (삼립) 호빵이 SPC의 상품이기 때문입니다. SPC가 너무 악랄한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업은 이른바 살인 기업입니다. 이 살인 기업을 비판하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삼립) 호빵보다 찐빵을 먹기 원합니다. 비록 SPC가 너무 악랄한 기업이라고 해도, 그 자체로서, 호빵은 맛있는 먹거리입니다. 호빵처럼, 찐빵은 맛있는 먹거리입니다. 이건 채식입니다.

 

찐빵에서 밀가루와 팥은 주된 재료입니다. 이 재료가 식물에 속하는 것처럼, 찐빵은 채식입니다. 이 먹거리는 식물들에게 기반합니다. 비단 찐빵만 아니라 다른 많은 먹거리들 역시 비슷합니다. 찐빵이 증명하는 것처럼, 이 먹거리들이 증명하는 것처럼, 식물들은 인류 문명을 뒷받침합니다. 먹거리들 없이, 인류는 살아가지 못합니다. 조피아 키엘렌 자보로브스카는 고생물학자입니다. 이 과학자가 찐빵을 좋아하나요? 흐음…, 글쎄요. 저는 알지 못합니다. 비록 조피아 키엘렌 자보로브스카가 찐빵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건 먹거리입니다. 조피아 자보로브스카에게는 먹거리가 필요합니다.



비록 조피아 자보로브스카가 찐빵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 과학자는 어떤 것들을 먹고 영양분들을 섭취할 겁니다. 이 과정 없이, 조피아 자보로브스카는 살아가지 못합니다. 비단 이 과학자만 아니라 다른 인간들 역시 똑같습니다. 김예리 작가는 고생물학자가 아닙니다. 이 작가는 판타지 소설가입니다. 고생물학자와 판타지 소설가는 다릅니다. 양쪽이 다르기 때문에, 조피아 자보로브스카와 김예리 작가는 다릅니다. 양쪽이 다르기 때문에, 이 소설가에게 먹거리가 필요하지 않나요? 그건 아닙니다. (비록 이 소설가가 찐빵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 소설가에게는 먹거리가 필요합니다.

 

비록 조피아 자보로브스카가 찐빵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 과학자는 어떤 것들을 먹고 영양분들을 섭취할 겁니다. 이 과정 없이, 조피아 자보로브스카는 살아가지 못합니다. 이 과학자처럼, (비록 김예리 작가가 찐빵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 소설가에게는 먹거리가 필요합니다. 김예리 작가는 어떤 것들을 먹고 영양분들을 섭취할 겁니다. 이 과정 없이, 이 소설가는 살아가지 못합니다. 비단 김예리 작가만 아니라 다른 인간들 역시 똑같습니다. 그 어떤 예외 없이, 모든 (살아있는) 인간은 어떤 것들을 먹고 영양분들을 섭취합니다. 찐빵이 채식인 것처럼, 식물들은 먹거리들을 선사합니다.



모든 (살아있는) 인간이 영양분들을 섭취하기 때문에, 식물들이 먹거리들을 선사하기 때문에, 이 생명체들 없이, 인류는 살아가지 못합니다. 이 관점에서 식물들은 인류 문명을 뒷받침합니다. 비록 어떤 사람들이 고기 요리들을 좋아한다고 해도, 고기 요리들은 식물들에게 의지합니다. 동물 없이, 고기를 얻기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식물 없이, 동물은 존재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호랑이조차 이것을 증명합니다. 이 야수는 최고 포식자(알파 프레데터)입니다. 최고 포식자로서, 호랑이는 식물들을 먹지 않습니다. 고기를 얻기 위해 이 야수는 사슴을 사냥합니다. 호랑이와 달리, 사슴은 식물들을 먹습니다.

 

사슴이 식물들을 먹고 영양분들을 섭취하기 때문에, 이 동물은 살아갑니다. 만약 식물들이 번성하지 않는다면, 이 동물은 사라질 겁니다. 사슴이 사라지기 때문에, 호랑이는 이 동물을 사냥하지 못합니다. 이 야수가 사냥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기를 먹고 영양분들을 섭취하기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만약 식물들이 번성하지 않는다면, 비단 사슴만 아니라 호랑이 역시 사라질 겁니다. 이건 호랑이가 식물들에게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심지어 최고 포식자조차 이 녹색 생명체들에게 의지합니다. 호랑이가 증명하는 것처럼, 아~, 자연 생태계에서 식물들은 기본적인 생명체들입니다. 인류 문명은 똑같습니다.



식물 없이, 동물은 존재하지 못합니다. 호랑이처럼, 심지어 최고 포식자조차 이 녹색 생명체들에게 의지합니다. 호랑이처럼, 가축들은 식물들에게 의지합니다. 만약 식물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오리부터 염소까지, 가축들은 사라질 겁니다. 가축들이 사라지기 때문에, 고기를 얻기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게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고기를 요리하기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게 가능하지 않은 것처럼, 비록 어떤 사람들이 고기 요리들을 좋아한다고 해도, 이 사람들은 식물들에게 의지합니다. 이 사람들이 의지하는 것처럼, 식물들은 기본적인 생명체들입니다. 인류처럼, 다른 야생 동물들은 똑같습니다.

 

호랑이가 식물들에게 의지하는 것처럼, 자연 생태계에서 이 녹색 생명체들은 기본적인 단계입니다. 비단 현재 생태계만 아니라 선사 생태계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비록 현재 생태계와 선사 생태계가 너무 다르다고 해도, 현재 생태계에서 식물들이 기본적인 단계인 것처럼, 선사 생태계에서 이 녹색 생명체들은 기본적인 단계입니다. 이건 어려운 지식이 아닙니다. 조피아 키엘렌 자보로브스카와 달리, 음…, 어떤 사람들은 고생물학 전문가들이 아닐 겁니다. 비록 이 사람들이 고생물학 전문가들이 아니라고 해도, 현재 생태계처럼, 선사 생태계에서 식물들이 기본적인 단계라고 인식하기는 어렵지 않을 겁니다.



[아무리 식물들이 기본적인 단계라고 해도, 이 그림은 식물들보다 동물들을 보여줍니다.]



호랑이가 최고 포식자인 것처럼, 티라노사우루스는 최고 포식자입니다. 이 포식자는 식물들을 먹지 않습니다. 고기를 얻기 위해 티라노사우루스는 에드몬트사우루스를 사냥합니다. 이 오리 주둥이 공룡은 초식동물입니다. 사슴이 식물들을 먹는 것처럼, 에드몬트사우루스는 식물들을 먹고 영양분들을 섭취합니다. 만약 식물들이 번성하지 않는다면, 사슴은 사라질 겁니다. 이 초식동물처럼, 만약 백악기 생태계에서 식물들이 번성하지 않는다면, 에드몬트사우루스는 사라질 겁니다. 비단 이 오리 주둥이 공룡만 아니라 다른 초식동물들 역시 사라질 겁니다. 초식동물들이 사라지기 때문에, 육식동물들은 사냥하지 못합니다. 이게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육식동물은 고기를 얻지 못합니다.

 

육식동물이 고기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고기를 먹고 영양분들을 섭취하기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만약 백악기 생태계에서 식물들이 사라진다면, 비단 초식동물들만 아니라 육식동물들 역시 사라질 겁니다. 티라노사우루스는 똑같습니다. 아무리 이 수각류가 최고 포식자라고 해도, 이 포식자는 식물들에게 의지합니다. 비록 어떤 사람들이 고생물학 전문가들이 아니라고 해도, 티라노사우루스(포식자)가 식물들에게 의지한다고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을 겁니다. 이게 어렵지 않은 것처럼, 자연 생태계에서 식물들은 기본적인 단계입니다. 심지어 선사 생태계조차 똑같습니다. 아무리 이 녹색 생명체들이 기본적인 단계라고 해도, 많은 사례들은 생태학이 동물에게 초점을 맞춘다고 보여줍니다.



제목이 뜻하는 것처럼, <그림으로 보는 고생물학 도감>은 고생물학 서적입니다. 이 서적의 표지 그림은 여러 선사 동물들을 보여줍니다. 할루키게니아부터 둔클레오스테우스까지, 이 표지 그림은 여러 동물들을 보여줍니다. 이 동물들과 달리, 이 표지 그림은 선사 식물들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어랄라~, 이건 너무 이상합니다. 제목이 뜻하는 것처럼, <그림으로 보는 고생물학 도감>은 고생물학 서적입니다. 생물학은 비단 동물들만 아니라 식물들 역시 연구합니다. 자연 생태계에서 식물들이 기본적인 단계이기 때문에, 생물학에서 식물들은 훨씬 중요한지 모릅니다. 아무리 식물들이 중요하다고 해도, <고생물학 도감>의 표지 그림은 식물들보다 동물들을 보여줍니다.

 

이 서적의 표지 그림에서 식물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단 <고생물학 도감>만 아니라 다른 사례들 역시 비슷합니다. 어떤 고생물학 서적들은 선사 식물들보다 선사 동물들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아니, 많은 대중적인 고생물학 서적들은 선사 동물들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선사 동물로서, 티라노사우루스는 아주 유명합니다. 티라노사우루스처럼, 스테고사우루스, 트리케라톱스, 안킬로사우루스, 브라키오사우루스는 아주 유명합니다. 브라키오사우루스처럼, 선사 식물들이 아주 유명한가요?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브라키오사우루스와 달리, 선사 식물들은 유명하지 않습니다. 대중적인 고생물학은 이 기본적인 생명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비단 과학만 아니라 문화·예술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문화·예술들은 선사 생명체들을 묘사합니다. 특히, 사이언스 픽션(SF)에서 인간과 선사 생명체는 조우합니다. 이 문화·예술이 '다른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사이언스 픽션에 속합니다. 이 세계에서 인류 문명은 기술적인 특이점을 거칠 수 있습니다. 아주 향상된 인공 지능들은 미래 문명을 뒷받침할 수 있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와 달리, 현실에서 기술적인 특이점은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아직 아주 향상된 인공 지능들은 인류 문명을 뒷받침하지 않습니다. 이 인공 지능들처럼, 현실과 스페이스 오페라는 다릅니다. 양쪽이 다르기 때문에, 스페이스 오페라는 다른 세계가 됩니다.

 

스페이스 오페라가 다른 세계이기 때문에, 비록 현실에서 어떤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해도,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이건 가능할 수 있습니다. 비록 현실에서 기술적인 특이점이 다가오지 않았다고 해도,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인류 문명은 이 특이점을 거칠 수 있습니다. 기술적인 특이점처럼, 현실과 스페이스 오페라는 머나먼 관계입니다. 스페이스 오페라가 사이언스 픽션에 속하는 것처럼, 이 문화·예술은 다른 세계를 묘사합니다. 다른 세계로서, 사이언스 픽션은 인간과 선사 생명체가 조우한다고 묘사합니다. 비단 사이언스 픽션만 아니라 판타지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사이언스 픽션처럼, 판타지는 '다른 세계'입니다. 현실과 판타지는 가까운 관계가 아닙니다.



양쪽이 머나먼 관계이기 때문에, 비록 현실에서 어떤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해도, 판타지에서 이건 가능할 수 있습니다. 비록 현실에서 인간과 선사 생명체가 조우하지 못한다고 해도, 판타지에서 이건 가능합니다. 이게 가능한 것처럼,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과 비슷합니다. 양쪽이 비슷하기 때문에, 사이언스 판타지는 탄생합니다. 이 문화·예술은 인간과 선사 생명체가 만난다고 묘사합니다. 이 생명체는 식물보다 동물일 겁니다. 많은 사례들은 사이언스 픽션, 판타지가 식물보다 동물에게 초점을 맞춘다고 보여줍니다. 차이나 미에빌은 <상흔>을 썼습니다. 이 소설은 스팀펑크 판타지입니다. 이 판타지는 둔클레오스테우스를 보여줍니다.

 

둔클레오스테우스는 선사 동물입니다. 사이언스 판타지로서, <상흔>에서 인간과 이 동물은 조우합니다. 둔클레오스테우스와 달리, <상흔>은 인간과 선사 식물이 조우한다고 묘사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이 소설에서 선사 식물보다 선사 동물은 훨씬 인상적인 부분입니다. 차이나 미에빌은 선사 식물보다 선사 동물이 훨씬 인상적인 부분이라고 의도했습니다. 이 소설가가 의도하는 것처럼, 사이언스 판타지는 선사 식물보다 선사 동물이 훨씬 커다란 가치를 얻는다고 보여줍니다. 아무리 식물들이 기본적인 생명체들이라고 해도, 이 생명체들은 커다란 가치를 얻지 않습니다. 비단 선사 생태계만 아니라 현재 생태계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으음…, 이 표지 그림에서 식물들보다 동물(곤충)들은 훨씬 커다란 부분입니다.]



<생물 다양성은 우리의 생명>은 생태학 서적입니다. 제목이 뜻하는 것처럼, 이 서적에서 생물 다양성은 주된 주제입니다. 이 단어는 비단 동물들만 아니라 식물들 역시 포함합니다. 동물들처럼, 식물들은 생물 다양성에 속합니다. 아니, 자연 생태계에서 동물들보다 식물들은 기본적인 생명체들입니다. 생물 다양성은 다르지 않을 겁니다. 아무리 식물들이 기본적인 생명체들이라고 해도, <생물 다양성은 우리의 생명>의 표지 그림은 식물들보다 동물들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나비부터 코끼리까지, 이 표지 그림에서 동물들은 커다란 부분입니다. 동물들과 달리, 식물들은 커다란 부분이 아닙니다.

 

이 그림에서 식물들보다 동물들이 커다란 부분인 것처럼, 대중적인 생태학은 식물들보다 동물들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과학부터 예술까지, 선사 생태계부터 현재 생태계까지, 식물보다 동물은 커다란 가치를 얻습니다. 이 블로그는 다르지 않습니다. 이 블로그는 <SF 생태주의>입니다. 제목이 뜻하는 것처럼, 이 블로그에서 생태학은 주된 주제입니다. 이 과학은 고생물학을 포함합니다. 그래서 이 블로그는 선사 생태계를 떠듭니다. 선사 생태계에서 식물들은 기본적인 단계입니다. 아무리 이 생명체들이 기본적인 단계라고 해도, 후아양고사우루스처럼, 이 블로그는 식물들보다 동물들을 떠듭니다.



<고생물학 도감>이 할루키게니아를 보여주는 것처럼, <상흔>이 둔클레오스테우스를 묘사하는 것처럼, <우리의 생명>이 백상아리를 보여주는 것처럼, 이 블로그는 식물들보다 동물들을 떠듭니다. 어라~, 왜 식물보다 동물이 커다란 가치를 얻나요? 이유가 무엇인가요? 대답은 '인간 중심주의'인지 모릅니다. 차이나 미에빌은 인간입니다. 이 소설가처럼, 조피아 키엘렌 자보로브스카는 인간입니다. 이 고생물학자처럼, 김예리 작가는 인간입니다. 이 소설가처럼, 우리는 인간들입니다. 인간은 동물입니다. 플라타너스(식물)보다 조피아 자보로브스카(인간)와 후아양고사우루스(동물)는 비슷합니다.

 

조피아 자보로브스카와 후아양고사우루스처럼, 해바라기(식물)보다 김예리 작가(인간)와 코끼리(동물)는 비슷합니다. 우리가 인간들이기 때문에, 인간과 동물이 비슷하기 때문에, 과학부터 예술까지, 선사 생태계부터 현재 생태계까지, 식물보다 동물은 커다란 가치를 얻는지 모릅니다. 이건 인간과 동물이 100% 똑같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간으로서, 김예리 작가는 (판타지) 소설을 씁니다. 비단 이 작가만 아니라 다른 소설가들 역시 비슷합니다. 많은 소설가들은 많은 (판타지) 소설들을 씁니다. 이 소설가들과 달리, 코끼리는 아무 소설도 쓰지 않습니다. 이 동물처럼, 다른 야생 동물들은 똑같습니다.



후아양고사우루스부터 백상아리까지, 야생 동물들은 아무 소설도 쓰지 않습니다. 인간이 소설을 쓰는 것처럼, 동물이 소설을 쓰지 않는 것처럼, 인간과 동물은 다릅니다. 비록 양쪽이 다르다고 해도, 분명히, 양쪽에게는 본질적인 교집합이 있습니다. 김예리 작가에게는 머리, 몸, 두 팔, 두 다리가 있습니다. 코끼리에게는 머리, 몸, 두 앞다리, 두 뒷다리가 있습니다. 김예리 작가에게는 두 눈, 코, 두 귀, 입이 있습니다. 코끼리에게는 두 눈, 코, 두 귀, 입이 있습니다. 이 형태처럼, 인간과 동물은 비슷합니다. 계통 분류학 지식들과 상관없이, 양쪽에게 본질적인 교집합이 있다고 인식하기는 가능합니다.

 

이게 가능한 것처럼, 인간과 동물은 가까운 관계입니다. 적어도, 식물(해바라기)보다 인간(김예리 작가)과 동물(코끼리)은 가까운 관계입니다. 우리가 인간들이기 때문에, 인간 관점에서 우리는 세계를 이해합니다. 인간과 동물이 가까운 관계이기 때문에, 인간 중심주의는 식물보다 동물에게 커다란 가치를 부여하는지 모릅니다. 인간 중심주의에서 <고생물학 도감>은 벗어나지 않는지 모릅니다. 이 관념에서 <우리의 생명>, <상흔>은 벗어나지 않는지 모릅니다. 이 블로그는 다르지 않습니다. 이 블로그가 선사 식물들보다 선사 동물들을 떠드는 것처럼, 이 블로그는 이 관념에게 종속됩니다.



비록 이 블로그가 인간 중심주의에게 종속된다고 해도, 다행히(?), 이 블로그는 어머니 자연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고대 신화부터 스페이스 오페라까지, 포스트 아포칼립스부터 던전 탐험까지, 이 블로그는 어머니 자연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이 여신이 '자연의 힘'을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대중적인 문화·예술에서 어머니 자연은 '자연의 힘'을 대표하기 위한 상징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례들은 식물들이 이 여신을 구성한다고 묘사합니다. <하스스톤>은 카드 게임입니다. 이 게임은 서사 판타지(에픽 판타지)입니다. 이 서사 판타지는 생명의 어머니를 묘사합니다. 이 여신은 어머니 자연입니다.

 

<생명의 어머니의 선물>은 녹색 새싹을 보여줍니다. 이 카드는 드루이드, 자연 주문에 속합니다. 드루이드는 자연 성직자에 가깝습니다. <생명의 어머니의 선물>은 자연과 식물이 비슷한 위상이라고 묘사합니다. 양쪽이 비슷한 것처럼, 생명의 어머니와 식물은 비슷한 위상이 될 수 있습니다. 게임 제작자들은 이 여신이 어머니 자연(대지 모신)이라고 의도했을 겁니다. 비록 그들이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생명의 어머니와 대지 모신에게는 본질적인 교집합이 있습니다. 양쪽은 비슷합니다. 생명의 어머니와 식물이 비슷한 위상이기 때문에, 이건 어머니 자연과 식물이 비슷하다는 뜻입니다.



[자연 생태계에서 이 녹색 생명체들은 기본적인 단계입니다.]



<생명의 어머니의 선물>은 대지 모신과 식물이 비슷하다는 뜻입니다. 이 여신이 자연의 힘을 대표하기 때문에, 식물은 자연의 힘을 대표합니다. 이 블로그가 대지 모신을 외면하지 않기 때문에, 이 블로그는 식물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비록 고생물학을 논의하기 위해 이 블로그가 선사 식물들보다 선사 동물들을 떠든다고 해도, 이 블로그는 식물들이 자연 생태계의 기본적인 단계라고 인식합니다. 아, 물론, 식물들은 그저 동물들을 위한 먹거리들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식물들이 기본적인 단계라고 해도, 이건 100% 전부가 아닙니다. 그 자체로서, 식물은 아름다운 생명체입니다.

 

그 자체로서, 식물은 놀라운 생명체, 멋진 생명체입니다. 기본적인 단계와 상관없이, 어떤 생태학 덕후들은 식물이 아름다운 생명체, 놀라운 생명체, 멋진 생명체라고 느낄 겁니다. 비록 식물들이 먹거리들이 아니라고 해도, 비록 이 녹색 생명체들이 기본적인 단계가 아니라고 해도, 그 자체로서, 식물은 아름다운 생명체, 놀라운 생명체, 멋진 생명체일 수 있습니다. 이 생명체들은 울창한 열대 밀림을 구성합니다. 그래서 열대 밀림은 생물 다양성을 위한 보물 창고가 됩니다. 아무리 열대 밀림이 보물 창고라고 해도, 아…, 삼림 파괴는 위험한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어라~, 이유가 무엇인가요?



아무리 열대 밀림이 아름답다고 해도, 아…, 삼림 파괴는 위험한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왜 이 비극이 위험한 수준을 넘어섰나요? 21세기 초반, 세계화 자본주의는 지배적인 경제입니다. 이 경제에게 훨씬 많은 돈들은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언제나 세계화 자본주의는 훨씬 많은 돈들을 벌기 원합니다. 열대 밀림보다 플랜테이션 농장은 훨씬 많은 돈들을 법니다. 열대 밀림보다 산업 단지는 훨씬 많은 돈들을 법니다. 세계화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경제이기 때문에, 이 경제가 훨씬 많은 돈들을 벌기 원하기 때문에, 어휴~, 플랜테이션 농장, 산업 단지는 열대 밀림을 몰아냅니다.

 

세계화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경제이기 때문에, 삼림 파괴는 위험한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아무리 대지 모신과 식물이 비슷한 위상이라고 해도, 아무리 식물이 아름다운 생명체, 놀라운 생명체, 멋진 생명체라고 해도, 아무리 열대 밀림이 생물 다양성을 위한 보물 창고라고 해도, 세계화 자본주의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돈, 돈, 돈, 돈, 돈, 돈벌이가 가장 중요한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지구 가열화조차 다르지 않습니다. 훨씬 많은 돈들을 벌기 위해 세계화 자본주의는 너무 많은 가스들을 배출합니다. 그래서 생명의 어머니(대지 모신)와 이 파괴적인 경제는 대립합니다.



※ 플라타너스(식물)보다 조피아 자보로브스카(인간)와 후아양고사우루스(동물)는 비슷합니다. 조피아 자보로브스카와 후아양고사우루스처럼, 해바라기(식물)보다 김예리 작가(인간)와 코끼리(동물)는 비슷합니다. 계통 분류학 지식들과 상관없이, 양쪽에게 본질적인 교집합이 있다고 인식하기는 가능합니다. 이게 가능한 것처럼, 인간과 동물은 가까운 관계입니다. 양쪽이 가까운 관계이기 때문에, 이건 동물 권리가 타당하다는 뜻입니다. 인간과 동물이 비슷하기 때문에, 만약 인간이 동물을 죽인다면, 이건 비극일 겁니다. 동물 권리는 틀리지 않습니다.



※ 게임 <하스스톤> 카드 출처:
https://hearthstone.blizzard.com/ko-kr/cards/100093-lifebinders-gift

※ 사진 <… Green Shrub> 출처: Eugene Golovesov,
http://www.pexels.com/photo/raindrops-on-green-shrub-20513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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