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흔>에서 마법 주문 재료로서 석유

소설 <상흔>은 스팀펑크 판타지입니다. 동시에 <상흔>은 해양 모험 이야기입니다. 소설 <백경>과 <보물섬>과 <해저 2만리>가 해양 모험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상흔>은 해상 도시 아르마다를 보여줍니다. 수많은 선박들은 해상 도시를 구성합니다. 육상 도시들과 달리, 아르마다의 토대는 수많은 선박들입니다. 수많은 선박들은 복잡하게 얽히고 드넓은 토대를 이룹니다. 이런 토대 위에는 높고 낮은 건물들이 있습니다. 아르마다 시민들이 거리들을 걷는 동안, 그들은 바다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언제나 아르마다 선단 도시에는 바다 냄새, 소금 냄새, 해초 냄새가 있습니다.

해상 도시 아르마다가 아주 거대한 선단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육상 도시와 달리, 아르마다는 움직일 수 있습니다. 여러 선박들은 아르마다에 사슬들을 연결하고 아르마다를 끕니다. 말들이 마차를 끄는 것처럼, 선박들은 아르마다를 끕니다. 아르마다가 너무 거대하기 때문에, 속도 역시 너무 느립니다. 도시 지도자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원합니다. 그들은 어떤 특별한 주문이 속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주문이 아주 방대하기 때문에, 이 주문은 엄청난 재료를 소비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주문 재료를 비축하기 위해 아르마다는 석유를 비롯해 여러 자원들을 시추합니다.

하지만 이건 일반적인 판타지 설정이 아닙니다. 석유? 석유가 마법 주문 재료가 될 수 있나요? 석유와 마법 주문이 어울릴 수 있나요? 여러 판타지들에서 마법 주문들에는 재료들이 필요합니다. 마법사들, 성직자들, 요술사들, 주술사들이 주문들을 외우는 동안, 그들은 특정한 재료들을 태우거나, 끓이거나, 부수거나, 얼리거나, 먹습니다. 주문을 구현하기 위해 주문 시전자는 특정한 재료를 소비해야 합니다. 주문 시전자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 못합니다. 주문 시전자는 특정한 물질에서 에너지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이건 모든 판타지에서 모든 주문 시전자가 반드시 특정한 재료를 소비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마법사는 오직 영창과 손짓만으로 주문을 구현합니다. 어떤 흑마술사는 바닥에 마법진을 그리고 제물을 바칩니다. 승려가 염주를 돌리고 읊조리는 것처럼, 어떤 성작자는 성표(divine mark)를 내밉니다. 어떤 주술사는 토템을 향해 기원을 날립니다. 이렇게 주문 시전자들은 다양하게 주문들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영창, 손짓, 마법진, 제물, 성표, 토템. 이런 것들은 매개체가 되고 무에서 주문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마법 재료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영창, 손짓, 마법진, 제물, 성표, 토템이 매개체가 되고 무에서 주문 효과를 이끌어내는 것처럼, 마법 재료 역시 똑같은 역할을 맡습니다. 판타지들에는 수많은 마법 재료들이 있습니다.

중세 유럽 판타지 <던전스 앤 드래곤스>에도 마법 재료들이 있습니다. 라이트닝 볼트와 파이어볼은 아주 유명한 주문입니다. 마법사가 번개 줄기를 날리고 싶다면, 마법사는 주문을 영창하고, 특정하게 손짓하고, 호박석이나 수정이나 유리 막대를 소비해야 합니다. 영창과 손짓과 유리 막대는 구성 요소입니다. 유리 막대(마법 재료)는 매개체가 되고 무에서 번개 에너지를 이끌어냅니다. 마법사는 번개 화살을 사악한 해골 병사에게 날릴 수 있습니다. 파이어볼 역시 영창, 손짓, 마법 재료가 필요합니다. 파이어볼 마법 재료는 구아노입니다. 구아노는 훌륭한 연소 물질입니다.

그래서 파이어볼 주문에는 구아노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파이어볼을 날리기 위해 마법사는 영창하고, 손을 휘젓고, 작은 주머니에서 작은 구아노를 꺼낼 겁니다. 구아노는 화염 에너지를 이끌어내고, 마법사는 해골 병사에게 불덩이(를 터뜨리는 작은 구슬)을 날릴 수 있습니다. 마법사가 플레임 애로우를 구현하고 싶다면, 마법사는 기름 몇 방울이나 부싯돌 몇 조각을 소비해야 합니다. 마법사는 해골 병사를 향해 불화살을 날릴 수 있습니다. 마법사가 수면 주문으로 상대를 재우고 싶다면, 마법사는 가는 모래를 뿌려야 합니다. 샌드맨이 잠을 상징하는 것처럼, 수면 주문에는 가는 모래가 필요합니다.

이런 마법 재료들은 별로 비싸지 않습니다. 심지어 마법사는 가는 모래를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주문들은 훨씬 비싼 재료들을 요구합니다. 메타매직 파이어볼은 구아노보다 훨씬 비싼 재료를 요구합니다. 메타매직 파이어볼에는 1,900 금화짜리 파이어 오팔이 필요합니다. 메타매직 파이어볼을 날리기 위해 마법사는 비싼 파이어 오팔을 소비해야 합니다. 성직자가 죽은 사람을 부활(resurrection)시키고 싶다면, 성직자는 성수와 10,000 금화짜리 다이아몬드를 소비해야 합니다. 부활 주문이 삶과 죽음을 뛰어넘기 때문에, 부활 주문은 엄청난 다이아몬드를 요구합니다.

이렇게 <던전스 앤 드래곤스>에서 어떤 주문들은 마법 재료들을 요구합니다. 이런 마법 재료들은 1회성입니다. 범고래를 소환하기 위해 드루이드가 주문을 외우는 동안, 드루이드는 성표로서 겨우살이를 내밀어야 합니다. 이런 성표 역시 주문 구성 요소이나, 드루이드가 범고래를 성공적으로 소환한다고 해도, 성표 겨우살이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성표 겨우살이와 달리, 라이트닝 볼트를 위한 유리 막대, 파이볼을 위한 구아노, 수면을 위한 가는 모래, 플레임 애로우를 위한 부싯돌 조각은 1회성입니다. 메타매직 파이어볼을 위한 파이어 오팔과 부활을 위한 다이아몬드 역시 1회성입니다.

그래서 마법사가 모험을 떠나기 전에, 마법사는 주문 재료들을 충분히 준비해야 합니다. 만약 던전에서 마법사가 라이트닝 볼트를 날리고 싶다고 해도, 모험가 일행에게 유리 막대가 없다면, 마법사는 번개 줄기를 날리지 못할 겁니다. 마법사에게는 여러 작은 주머니들이 있고, 주문을 읊조리는 동안, 마법사는 작은 주머니에서 마법 재료를 꺼냅니다. <던전스 앤 드래곤스> 이외에 다양한 판타지들 역시 다양한 마법 재료들을 보여줍니다. 고대 신화들, 전설들, 민담들에는 다양한 식물들, 동물들, 금속들, 광석들이 있고, 판타지들은 이런 것들이 뛰어난 주문 재료들이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가가멜이 스머프들을 끓이는 것처럼, 마법 재료들은 아주 다양합니다.

피닉스 깃털, 드래곤 비늘, 바실리스크 이빨, 거대 호랑이 털가죽, 강철 나무 껍질, 맨드레이크 뿌리, 유니콘 뿔 같은 마법 재료들은 판타지 분위기를 띄울 수 있습니다. 종종 이런 마법 재료들은 중요한 이야깃거리가 됩니다. 피닉스가 희귀하다면, 피닉스 깃털을 얻기 위해 마법사들은 머나먼 여정을 떠나야 합니다. 사악한 마법사들이 유니콘 뿔을 노린다면, 드루이드들과 삼림 레인저들은 유니콘을 지켜야 할 겁니다. 마법사 실험실에서 바실리스크가 도망친다면, 도시 경비대는 비상 사태를 선포할 겁니다. 이런 마법 재료들은 판타지에 어울립니다. 뭐, 가가멜에게 스머프들은 마법 재료이고, 스머프들 역시 판타지에 어울릴 겁니다. 하지만 석유는? 석유가 판타지에 어울리나요?

석유는 화석 연료입니다. 화석 연료는 근대적입니다. 19세기 산업 자본주의는 식민지 수탈과 막대한 화석 연료(석탄)에 기반했습니다. 역사학자 로버트 마르크스는 서구 산업 자본주의가 식민지 수탈과 화석 연료에 기반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석유는 20세기 자본주의를 대표합니다. 석유, 자동차 산업, 서구 자본주의, 플라스틱 상품들, 무분별한 소비. 이런 것들은 전형적인 20세기 문화입니다. 서구 자본주의와 화석 연료 산업은 일치하지 않으나, 많은 사람들은 두 가지가 거의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석유를 비롯해 화석 연료를 비판합니다. 20세기 산업 문명이 화석 연료들을 태우기 때문에, 기후 변화는 심각한 생태 재앙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화석 연료에서 재생 가능한 연료로 산업 문명이 넘어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태양열, 풍력, 수력, 지력 같은 재생 연료는 무분별한 소비를 줄이고 풍요로운 환경을 조성하고 기후 변화를 막을 겁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석유가 바닥을 때릴 거라고 전망합니다. 산업 자본주의가 석유에 절대적으로 기반하기 때문에, 만약 석유가 고갈된다면, 산업 자본주의는 경제 공황에 빠질 겁니다. 이런 경제 공황은 세계 대전으로 이어질지 모릅니다. 경제 위기가 2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석유 고갈은 3차 세계 대전이 될지 모릅니다. 석유 고갈은 산업 문명을 무너뜨릴지 모릅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에게 석유 고갈은 좋은 소재입니다.

환경 아포칼립스 소설 <와인드업 걸>은 유전자 조작 거대 코끼리를 보여줍니다. 공장에서 거대 코끼리는 중요한 동력원입니다. 석유가 바닥을 친다면, 산업 자본주의가 석유를 거덜낸다면, 산업 자본주의는 이런 동력원에 기반해야 할지 모릅니다. 공장 속의 거대 코끼리는 심각한 동물 학대이고 동물 권리 침해입니다. 하지만 산업 자본주의는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기후 변화는 행성급 환경 오염이고 지질학적인 생태 재앙입니다. 기후 변화가 최악의 상황에 도달한다면, 세계 해안선들은 침수될 테고, 지리학자들은 세계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할 겁니다. 우리는 지구본들을 폐기하고 새로 만들어야 할 겁니다.

이윤을 축적하기 위해 지질학적 단위에서 산업 자본주의는 환경 오염을 저지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석유 산업을 비판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진짜 근본적인 문제가 석유인가요? 오직 석유만 문제인가요? 만약 석유 연료에서 태양열, 풍력, 수력, 지력으로 산업 자본주의가 넘어간다면, 더 이상 환경 오염이 문제가 되지 않나요? 그건 아닐 겁니다. 소설 <와인드업 걸>이 보여주는 것처럼, 동력원은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분명히 동력원은 중요한 문제이나, 훨씬 근본적인 문제는 사회 구조입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산업 문명이 태양열에 기반한다고 해도, 자본주의는 자연 환경을 계속 오염시킬 겁니다.

이런 논의가 보여주는 것처럼, 석유는 아주 근대적인 동력원입니다. 석유는 근대화(서구 자본주의)를 상징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석유가 마법 재료가 될 수 있나요? 마법은 전근대(前近代 pre-modern)적입니다. 마법은 신화들, 전설들, 민담들에 기반합니다. 서구적인 근대화가 나타나기 전에, 이미 사람들은 마법을 상상했습니다. 피닉스 역시 전근대적입니다. 서구적인 근대화가 나타나기 전에, 이미 사람들은 피닉스, 드래곤, 유니콘을 상상했습니다. 마법사가 피닉스 깃털을 가마솥에 집어넣고 끓인다고 해도, 이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석유는 근대적입니다. 전근대적인 주문과 근대적인 석유가 어울릴 수 있나요?

석유가 마법 재료가 될 수 있나요? 마법사와 스마트폰이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마법 주문과 화석 연료 재료는 어울리지 않을지 모릅니다. 마법사가 스마트폰 앱으로 주문을 구현한다면, 이건 다소 어색할지 모릅니다. 물론 애니메이션 <세일러 문>에서 세일러 머큐리가 작은 컴퓨터를 이용하는 것처럼, 마법 소녀는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사회 구조가 바뀐다면, 장르 창작물 역시 변화를 적용할 테고 이른바 기술 마법사(techno wizard)를 만들 수 있습니다. 석유는 판타지보다 사이언스 픽션에 어울리나, 판타지 역시 얼마든지 석유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특히, 소설 <상흔>은 일반적인 판타지보다 스팀펑크 판타지입니다.

스팀펑크는 전근대보다 근대(19세기 서구 자본주의)에 기반합니다. 소설 <상흔>을 비롯해 이른바 '바스-라그 3부작' 역시 19세기 산업 자본주의 문명을 (비판적으로) 보여줍니다. 어지간한 사이버펑크들보다 바스-라그 3부작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훨씬 더럽고 위험하다고 묘사합니다. 아무리 사이버펑크들이 자본주의 메트로폴리스를 부정적으로 묘사한다고 해도, 어지간한 사이버펑크들은 바스-라그 3부작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소설 <상흔>에서 석유는 마법 재료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아니, 오히려 맨드레이크 뿌리보다 석유는 훨씬 스팀펑크 마법 재료에 어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