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상흔>부터 <콩: 해골섬>까지, 개체와 환경의 관계 본문
[이런 장면에서 환경보다 개체는 훨씬 두드러집니다. 친숙한 환경은 비일상적인 개체를 둘러쌌습니다.]
2014년 영화 <고지라>와 영화 <콩: 해골섬>은 똑같은 세계 설정에 기반합니다. 2014년 <고지라>와 <콩: 해골섬>은 똑같이 몬스터버스 설정에 속합니다. 2014년 <고지라>는 전편이고, <콩: 해골섬>은 속편입니다. 하지만 <고지라>와 <콩: 해골섬>에는 여러 차이들이 있습니다. 가장 커다란 차이점들 중에서 하나는 기이한 동물상과 거대 괴수를 둘러싼 이질적이고 낯선 환경입니다. 영화 제목처럼, 2014년 <고지라>에서 핵심 소재는 고지라입니다. 무토 부부가 고지라에게 적대적이기 때문에, 무토 부부 역시 핵심 소재가 됩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비일상적인 상상력은 고지라와 무토 부부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반면, 제목이 가리키는 것처럼, 영화 <콩: 해골섬>에서 핵심 소재는 해골섬입니다. 킹콩이 해골섬을 통치하기 때문에, 킹콩은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나, 킹콩은 혼자 존재하지 않습니다. <콩: 해골섬>은 오직 킹콩과 스컬크롤러들에게만 주목하지 않습니다. 2014년 <고지라>는 오직 고지라와 무토 부부에게만 치중하나, 2014년 <고지라>와 달리, <콩: 해골섬>은 킹콩과 스컬크롤러들과 함께 해골섬 동물상을 보여줍니다. 2014년 <고지라>와 달리, <콩: 해골섬>에서 기이한 자연 생태계는 중요한 배경 무대입니다. 그래서 <콩: 해골섬>은 비단 비일상적인 거대 괴수만 아니라 기이한 배경 무대를 보여줍니다.
2014년 영화 <고지라>는 기이한 배경 무대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영화 속에서 배경 무대는 평범합니다. 배경 무대는 평범한 도시입니다. 우리(이른바 21세기 초반 서구 근대적인 문명인)에게 도시는 친숙한 공간, 친숙한 환경입니다. 적어도 열대 밀림보다 도시는 훨씬 친숙한 공간, 친숙한 환경입니다. 2014년 <고지라>는 친숙한 공간과 환경을 보여줍니다. 친숙한 공간에는 기이한 식물들, 낯선 미생물들, 이질적인 동물들이 없습니다. 아무리 고지라와 무토 부부가 비일상적인 상상력이라고 해도, 친숙한 환경(도시) 속에서 비일상적인 상상력(고지라와 무토 부부)은 존재합니다. 영화 <고지라: 괴수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고지라: 괴수왕>에는 모스라, 고지라, 라돈, 기도라를 비롯해 여러 거대 괴수들이 있습니다. 네 주연 거대 괴수들을 비롯해 여러 거대 괴수들은 친숙한 공간과 환경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영화 <고지라: 괴수왕>은 열대 밀림과 극지와 심해, 창공을 보여주나, 열대 밀림과 극지와 심해와 창공은 주된 배경 무대가 아닙니다. 이런 열대 밀림과 극지와 심해, 창공에는 기이한 식생들과 동물상이 없습니다. 영화 속에서 공간과 환경은 비일상적인 상상력이 되지 못합니다. 거대 괴수 생태계가 배경 설정이라고 해도, <고지라: 괴수왕>은 '기이한 환경'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고지라: 괴수왕>에서 '환경'은 친숙합니다.
영화 <고지라: 괴수왕>에서 모스라, 라돈, 기도라 같은 개체들은 비일상적인 상상력이나, '환경'은 비일상적인 상상력이 아닙니다. 하지만 생태계는 환경입니다. 우리가 자연 생태계를 머릿속에 떠올린다면, 우리는 생태계가 환경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생태계를 파괴하고 수탈한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사라져야 한다. 인류 문명은 자연 생태계를 평등하게 공유해야 한다. 평등한 공유를 위해 온갖 성 차별들, 인종 차별들, 계급 차별들은 사라져야 한다." 이렇게 환경 운동가는 주장할 수 있습니다. '환경' 운동가는 '자연 생태계'를 보호하기 원합니다. 환경 운동가는 자본주의가 생태계를 파괴한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에서 자연 생태계와 환경은 거의 동일한 개념입니다.
이건 '생태계'와 '환경'이 완전히 똑같다는 뜻이 아닙니다. 생태계보다 환경은 훨씬 폭넓은 개념입니다. 하지만 일상에서 우리는 두 가지가 비슷하다고 간주합니다. 다양하고 수많은 생명체들이 상호 작용하는 동안, 이것은 생태계가 됩니다. 단수(單數)는 생태계를 조성하지 못합니다. 복수(複數)는 생태계를 조성합니다. 다양하고 수많은 개체들이 상호 작용한다면, 이건 환경이 될 겁니다. 생태계는 개체보다 환경에 가깝습니다. 생태계는 개체를 둘러싼 상호 작용들, 환경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태계를 말하고 싶다면, 우리는 환경을 언급해야 합니다. 우리가 환경을 언급한다면, 우리는 생태계를 환경 속에 집어넣을 수 있습니다. 생태계와 환경 사이에는 밀접하고 필수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2014년 <고지라>와 <고지라: 괴수왕>은 거대 괴수 생태계를 이야기하나, 두 영화 속에는 기이한 환경이 없습니다. 배경 무대는 친숙한 공간 도시이고, 그래서 거대 괴수 생태계가 주된 설정이라고 해도, 두 영화에서 비일상적인 상상력은 환경보다 개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습니다. 도시 속의 고지라는 친숙한 공간 속의 비일상적인 개체입니다. 아무리 고지라가 거대하다고 해도, 환경보다 개체로서 고지라는 비일상적인 상상력입니다. 고지라는 (개체를 둘러싸는) 환경이 되지 못합니다. 2014년 <고지라>와 <고지라: 괴수왕>은 환경보다 개체를 강조합니다. 반면, 영화 <콩: 해골섬>은 개체들과 함께 환경을 강조합니다.
해골섬 속의 스컬크롤러는 비일상적인 환경 속의 비일상적인 개체입니다. 영화 <콩: 해골섬>에서 거대 괴수 싸움박질이 중요한 볼거리이기 때문에, <콩: 해골섬>은 환경보다 개체에 초점을 맞추나, 그렇다고 해도 <콩: 해골섬>에서 환경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적어도 2014년 <고지라>와 <고지라: 괴수왕>보다 <콩: 해골섬>에서 환경은 훨씬 두드러집니다. 영화 제작자들은 기이한 동물상을 보여주기 위해 그들이 많은 노력들을 기울였다고 이야기합니다. 킹콩이 주연 거대 괴수라고 해도, 기이한 동물상 속에서 킹콩은 존재합니다. 2014년 <고지라>에서 환경은 다소 미약하나, <콩: 해골섬>에는 환경이 있습니다.
[이런 장면은 비단 기이한 개체만 아니라 기이한 환경(여러 상호 작용들)이 개체를 둘러쌌다고 보여줍니다.]
비단 2014년 <고지라>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고지라 시리즈는 '환경'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고지라 시리즈는 개체에 초점을 맞춥니다. 고지라 시리즈에서 중요한 것은 개체들(거대 괴수들)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애니메이션 <고지라: 괴수 행성> 시리즈는 다소 독특합니다. <고지라: 괴수 행성> 시리즈는 개체(거대 괴수)보다 환경(미래 지구 생태계)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에서 고지라는 고지라 '어스'가 됩니다. <고지라: 괴수 행성> 시리즈는 어떻게 지구 자연 환경이 바뀌고, 어떻게 인류가 환경 변화에 적응하고, 어떻게 사람들이 자연 환경을 바라보는지 이야기합니다. 이 3부작 시리즈에서 고지라가 개체보다 환경에 가깝기 때문에, 고지라보다 미아나와 마이나는 훨씬 중요한 것 같습니다.
<고지라: 괴수 행성> 시리즈는 거대 괴수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이 애니메이션 3부작은 어떻게 사람들이 자연 환경에 적응하는지 보여줍니다. 심지어 (아무리 미아나와 마이나가 모스라를 상징한다고 해도) 3부작 시리즈는 모스라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기이하고 울창한 식생 속에서 미아나와 마이나가 돌아다니는 동안, <고지라: 괴수 행성> 시리즈에서 개체보다 환경은 훨씬 중요한 상상력이 됩니다. 도시는 친숙한 공간이나, <고지라: 괴수 행성> 시리즈에는 도시가 없습니다. 도시가 나온다고 해도, 이건 외계 도시(메카 고지라 도시)입니다. <고지라: 괴수 행성> 시리즈가 환경을 강조하기 때문에, 이런 관점에서 <고지라: 괴수 행성> 시리즈는 <콩: 해골섬>과 비슷합니다.
<고지라: 괴수 행성> 시리즈가 환경을 강조하기 때문에, 거대 괴수 싸움박질은 시시하고 밋밋하고 단조롭습니다. 시리즈 3편 <행성 포식자>에서 고지라는 기도라와 싸우나, 솔직히 여기에 어마어마한 박력이 있나요? <행성 포식자>가 육중한 육박전을 보여주나요? 그건 아닙니다.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이 거대한 전투를 운운한다고 해도, 이건 그저 입에 발린 홍보 문구에 불과합니다. 거대 괴수 팬들이 <고지라: 괴수 행성> 시리즈를 향해 쌍욕들을 퍼붓는다고 해도, 이건 이상한 현상이 아닙니다. 물론 어떤 거대 괴수 팬들은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이런 거대 괴수 팬들은 "생태계 변화와 기술적 특이점, 신종 인류 이야기는 나쁘지 않다."고 평가합니다.
거대 괴수가 문명보다 야생에 속하기 때문에, 거대 괴수 이야기에서 환경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거대 괴수가 자연의 힘을 상징한다면, 자연 생태계가 웅장한 상호 작용들이기 때문에, 거대 괴수 이야기는 개체보다 환경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고지라 시리즈가 환경보다 개체를 강조하기 때문에, <고지라: 괴수 행성> 시리즈는 비판을 받아야 했으나, SF 울타리 안에서 거대 괴수 이야기는 얼마든지 환경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이미 19세기 쥘 베른과 허버트 웰즈는 비경 탐험, 거대 괴수, 낯선 자연 환경을 이야기했습니다. 21세기에서도 서던 리치 3부작이 그러는 것처럼, 거대 괴수 이야기에서 환경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비디오 게임 <서브노티카>에서 거대 괴수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아니, 거대 괴수는 핵심 소재입니다. 하지만 <서브노티카>는 오직 개체(거대 괴수)만 강조하지 않습니다. 이 게임은 환경을 강조합니다. <서브노티카>에서 상상력은 개체보다 환경입니다. 게임 플레이어들이 <서브노티카>를 머릿속에 떠올린다면, 게임 플레이어들은 비단 거대 괴수만 아니라 거대 괴수를 둘러싼 해양 환경을 함께 머릿속에 떠올릴 겁니다. 서던 리치 3부작이 레비아탄을 X 구역에 집어넣는 것처럼, <서브노티카>는 친숙한 공간 속에 거대 괴수를 집어넣지 않습니다. 비디오 게임 <서브머지드> 역시 비슷합니다. <서브머지드>에서 변이 고래 상어는 거대 괴수가 될 수 있습니다.
쪽배 소녀에게 변이 고래 상어는 거대 괴수와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변이 고래 상어는 혼자 존재하지 않습니다. 서던 리치 3부작이 그러는 것처럼, 이질적인 환경 변화 속에서 기이한 고래 상어는 헤엄칩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쪽배 소녀를 조종하는 동안, 게임 플레이어는 비단 기이한 고래 상어만 아니라 고래 상어를 둘러싼 이질적인 환경, 낯선 공간을 함께 바라봅니다. 2014년 영화 <고지라>에는 이런 느낌이 없습니다. 반면, <콩: 해골섬>은 어느 정도 이런 느낌을 간직합니다. 2014년 <고지라>처럼, <콩: 해골섬>은 거대 괴수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동시에 <콩: 해골섬>은 서던 리치 3부작, <서브노티카>, <서브머지드>와 어느 정도 비슷한 느낌을 공유합니다.
차이나 미에빌이 쓴 <상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소설 초반부터, <상흔>은 꾸준히 해양 생태계를 언급합니다. 소설 <상흔>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들 중에서 하나는 초거대 바다 괴수 아방입니다. 하지만 개체로서 아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아방이 전설적인 물고기(?)라고 해도, 기이하고 낯선 환경 속에서 아방은 존재합니다. 아무리 아방이 대단하다고 해도, 아방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전까지, <상흔>은 해양 생태계를 꾸준히 묘사합니다. 독자가 초거대 바다 괴수가 혼자 날뛰기 원한다면, <상흔>은 실망스러운 소설이 될 겁니다. 독자는 비단 아방만 아니라 사냥 오징어, 바다용, 둔클레오스테우스, 플레시오사우루스, 다른 많은 해양 생태계 요소들을 읽습니다. 소설 <상흔>은 아방이 이질적인 환경에 속한다고 이야기합니다.
2014년 <고지라>와 <고지라: 괴수왕>을 비롯해 고지라 시리즈에서 개체로서 고지라는 혼자 존재하나, 소설 <상흔>에서 아방은 낯선 공간, 기이한 배경 무대에 속합니다. <상흔>에는 비단 아방만 아니라 아방을 둘러싼 환경이 있습니다. 사실 <상흔>에서 아방보다 환경 묘사는 훨씬 커다란 비중을 차지합니다. 도시를 묘사하기 위해 차이나 미에빌은 자연 환경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차이나 미에빌에게 도시는 중요한 소재입니다. 하지만 차이나 미에빌은 자연 환경이 도시(인류 문명)를 둘러쌌다는 진리를 잊지 않습니다. 차이나 미에빌 이외에 수많은 작가들은 도시를 이야기합니다. 도시가 가장 거대한 인구 밀집 지역이기 때문에, 수많은 창작물들은 도시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런 창작물들이 자연 환경을 보여주나요?
[여기에서 거대 괴수가 핵심 소재라고 해도, 거대 괴수(개체)보다 해양 생태계(환경)는 훨씬 두드러집니다.]
그 자체로서 도시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도시에게는 외부 환경이 필요합니다. 소설 <홍수>에서 마가렛 앳우드가 도시와 야생 경계선을 흐릿하게 지우는 것처럼, 야생 환경 없이, 도시는 없습니다. 도시 속에서 신의 정원사들이 대왕 오징어를 노래하는 것처럼, 도시 속에서 바이오펑크 동물들이 돌아다니는 것처럼, 소설 <홍수>는 도시와 야생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홍수>와 달리, 수많은 창작물들은 도시가 혼자 존재한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수많은 창작물들은 오직 인간, 도시, 문명만 이야기합니다. 이런 수많은 창작물들과 달리, 소설 <홍수>처럼, <상흔>은 자연이 문명을 둘러쌌다고 강조합니다. 소설 <홍수>와 <상흔>은 이질적인 동물들을 이용해 야생과 도시 경계선을 흐릿하게 지웁니다.
<상흔>이 꾸준히 자연 환경을 묘사하기 때문에, <상흔>은 자연이 문명을 둘러쌌다고 강조할 수 있습니다. 2014년 <고지라>가 이것을 강조할 수 있나요? 2014년 <고지라>에서 고지라가 '자연의 힘'을 상징하기 때문에, 어떤 관객들은 고지라가 개체보다 환경에 가깝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고지라는 개체 같으나, 이건 그저 포장지에 불과하고, 고지라의 알맹이는 환경일지 모릅니다. 비록 '고지라 쓰나미'가 우스꽝스러운 홍보 문구라고 해도, 이 문구는 고지라가 환경이라고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2014년 <고지라>에서 고지라가 개체보다 환경을 상징한다고 해도, 고지라 '어스'와 달리, 2014년 <고지라>는 기이한 환경을 가시적으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도시 속에서 고지라가 걸어다니는 동안, 오히려 도시(문명)는 고지라(자연의 힘)를 둘러싼 것 같습니다.
도시 속의 고지라는 친숙한 공간 속의 기이한 개체입니다. 반면, <콩: 해골섬>은 기이한 공간(환경) 속의 기이한 개체입니다. <콩: 해골섬>에서 주연 등장인물들은 기이한 환경을 만나야 합니다. <고지라: 괴수 행성> 시리즈와 <서브노티카>와 <서브머지드>와 서던 리치 3부작과 <상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2014년 <고지라>와 <콩: 해골섬>이 똑같이 몬스터버스 시리즈라고 해도, <콩: 해골섬>에 기이한 환경이 있기 때문에, <콩: 해골섬>은 <상흔>과 비슷합니다. 2014년 <고지라>는 개체에 초점을 맞추고, <콩: 해골섬>은 어느 정도 환경을 보여주고, <상흔>은 개체보다 환경을 강조합니다. 이렇게 사이언스 픽션은 거대 괴수와 괴수를 둘러싼 환경을 다르게 조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