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사이언스 픽션이 황당하다는 통념 본문
[C-3PO와 R2-D2 피규어. 이런 것이 유치할까요? 문화 취향에 유치함과 고급스러움이 있겠어요.]
흔히 사람들은 SF 장르가 황당무개하다고 말합니다. 이는 사이언스 픽션을 외면하거나 무시하는 주된 이유들 중 하나입니다. 사실 사이언스 픽션은 언뜻 황당하게 보일지 모릅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비일상적인 요소를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SF 소설들은 외계 생명체들을 이야기합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다들 진보적인 외계 문명을 이야기하죠. 하지만 인류는 진보적인 외계 문명은 고사하고, 외계 미생물조차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수많은 SF 소설들은 인간과 흡사한 로봇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인류는 아직 기술적 특이점을 지나지 못했고, 인공 지능이나 로봇은 걸음마 단계입니다. 게다가 온갖 사이언스 판타지들은 여기에서 더 멀리 나갑니다. 시간 여행, 다른 차원의 지옥, 화려한 공중 함대전, 평행 세계, 우주 드래곤(!) 등은 유치하거나 어처구니가 없는 설정으로 보일 여지가 있습니다. 평범하게 현실을 살아가는 일반인은 다른 차원이나 평행 세계나 거대한 공중 전함이나 우주 드래곤 따위에게 쉽게 관심을 쏟지 못하겠죠. 그래서 그런 일반인들은 SF 장르가 유치하거나 황당하다고 생각할 테고, 외면하거나 무시할 겁니다.
여기에는 블록버스터 SF 영화나 SF 게임이 한몫을 했을 겁니다. 흥미 위주의 SF 영화들과 SF 게임들은 자극적인 전쟁이나 활극을 강조하기 위해 상상 과학을 이용합니다. 관객과 플레이어를 자극할 수 있는 온갖 요소들은 상상 과학이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씁니다. 2차 세계 대전의 태평양 상황이 시시하다고요? 걱정마세요. 사이언스 픽션은 우주 함대전을 꾸밀 수 있습니다. 허리케인이나 지진이나 해일이 시시하다고요? 걱정마세요. 사이언스 픽션은 운석을 떨어뜨리고 행성 하나를 가뿐하게 날려버릴 수 있습니다. 호랑이나 상어 같은 육식동물이 시시하다고요? 걱정마세요. 사이언스 픽션은 거대한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나 메갈로돈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아, 티-렉스와 메갈로돈으로 만족하지 못한다고요? 그런 사람을 위해 사이언스 픽션은 거대 괴수를 내보낼 수 있습니다. 재래식 병기들은 거대 괴수에게 흠집조차 내지 못할 겁니다. 얼마나 스펙터클합니까. 사이언스 픽션이 블록버스터 영화나 게임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입니다. 사실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영화들이나 게임들을 접했을 테고, 그래서 사이언스 픽션이 황당하거나 유치하다고 여길 겁니다. 비단 영화나 게임만 아니라 흥미 위주의 소설들 역시 별로 다르지 않아요.
<우리들>이나 <멋진 신세계>, <1984>, <개의 심장>, <유리알 유희>를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사실 이런 소설들은 고전 명작으로 당당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멋진 신세계>나 <유리알 유희>가 SF 소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겁니다. 아니, 오히려 어떤 사람들은 <멋진 신세계>나 <유리알 유희>가 SF 소설이 아니라고 죽도록 부인할 겁니다. 왜냐하면 <멋진 신세계>에는 적대적인 외계인들이나 거대한 공중 함대나 첨단 살상 로봇들이나 우주 드래곤이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멋진 신세계>는 분명히 상상 과학을 이용하나, 저는 이 소설이 사이언스 픽션이 아니라고 우기는 여러 사람들을 봤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공중 전함이나 우주 드래곤처럼 유치하고 황당한 설정만 사이언스 픽션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이언스 픽션을 판단하는 기준이 유치함과 황당함이죠. 상상 과학 자체가 아니라. 아니, 게다가 왜 우주 드래곤이 유치합니까? 왜 우주 드래곤이 황당한가요? 정말 우주 드래곤이 유치하고 황당한 설정인가요? 하지만 우리 인류는 우주 드래곤보다 훨씬 황당하고 어설픈 자본주의 체계에서 살아갑니다.
이 지구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굶어죽습니다. 반면, 다른 수많은 사람들은 일부러 음식들을 버립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식량을 식량이 아니라 상품으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고구마에는 식량이라는 사용 가치가 있으나, 상품이라는 교환 가치 역시 있습니다. 그래서 고구마는 상품이 되고, 굶어죽는 사람들은 상품을 사지 못합니다. 인류 문명은 수많은 사람들을 먹여살릴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지식인들은 그런 상황을 비판하지 않아요. 그저 착하게 살라는 설교만 열심히 늘어놓죠. 이 얼마나 유치하고 황당한 현실입니까. 대부분 지식인들은 이 유치하고 황당한 현실을 침이 마르도록 찬양하죠.
우주 드래곤이 황당한가요? 우리가 자본주의 체계를 타파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상상 과학도 자본주의보다 황당하지 않을 겁니다. 아, 그렇다고 해도 우주 드래곤이 황당하다고요? 네, 물론 우주 드래곤은 황당하게 보일지 모릅니다. 어쩌면 저 머나먼 우주 어딘가에 우주 드래곤이 날아다닐지 모르나, 그렇다고 해도 우주 드래곤이 현실적인 설정은 아니죠. 하지만 SF 작가들이 우주 드래곤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우주 드래곤이 정말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 아닙니다. 인간이 뭔가 거대하고 우주적인 존재를 경험하는 관념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입니다.
[게임 <플래닛 베이스>의 한 장면. 외계 행성 생태계 같은 상상력 역시 사이언스 픽션입니다.]
우주 드래곤은 존재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인간이 관념을 형성한다는 사실이고, 거대하고 우주적인 것에 반응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미래에 무엇이 등장할지 아무도 알지 못하나, 뭔가 거대한 것이 등장한다면, 우리의 의식은 계속 넓어질 겁니다. 그 가능성을 탐구하는 과정은 즐거워요. 왜 이걸 외면하거나 무시해야 합니까. 우주 드래곤은 관념이 변화는 과정을 실험하는 도구에 불과해요. 우주 드래곤은 표면이죠. 우리는 표면이 아니라 아니라 핵심을 살펴야 할 겁니다.